작품: 

1. https://arca.live/b/writingnovel/64494024

2. https://arca.live/b/writingnovel/64651815


몰타의 매를 본 적 있는가? 원초적 본능은? 헬레네와 투란도트, 카르멘을 관통하는 장미의 가시 돋힌 줄기. Femme fatale을 해석하면 '파멸적인 여성'이 된다. 남성들을 파멸에 빠뜨리는 여성. 그 본위가 어떠한지에 상관 없이 토네이도의 핵처럼, 얽히는 이들에게 비극적인 운명의 씨앗이 되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은 전형적인 팜 파탈 비극이다. 

팜 파탈적 존재인 예은은 또한 초현실적인 면모로 묘사된다. 제 멋대로 학교를 오고 다니며, 대부분의 상황이 일어나는 그녀의 집도 일반적이지 않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표현은 작품 내에서 그녀를 신비롭고 재단할 수 없는 존재로 만든다. 그녀에게서는 짙은 블루스 리듬이 풍겨온다. 작중에서 의도적으로 파멸로 끌어들이는 행태나 비현실적인 이미지에서 이토 준지의 '토미에'를 떠올리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인 시윤은 일상에 머물러 있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반복되는 삶은 그에게 지루함만 안겨주며, 혼자 옥상에서 노을을 보며 재즈를 듣는 것이 삶의 낙이 된다. 시윤의 세상은 재즈와 노을로써 이루어진다.


(작품의 처음 몇 문단, 즉 시윤이 해가 지는 하늘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작가는 직접적으로 죽음을 언급한다. 후반부에 가서 이 강렬한 표현들은 복선으로써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다.)  


예은은 갑작스럽게 시윤의 세상에 미끄러지듯 들어온다. 눈에 바로 들어온 그녀의 외모를 제외하고, 시윤은 예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재즈는, 챗 베이커의 음악은 그녀를 합법화하는 수단이다. '노을은 언제나 볼 수 있는 거잖아.' 이 한마디로써 예은은 재즈와 노을을 분리시킨다. 재즈는 이제 예은과 결합한다. 그 날 이후 마지막 날 전까지 시윤은 노을을 보지 않는다. 대신 예은이 새로이 가져온 것은 영화다. 그의 삶은 (일주일 동안) 재즈와 영화, 예은으로써 만들어져간다.


그녀는 상대를 자신으로 물들인다. 그러나 시윤은 저항하지 않는다. 영화를 평소에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따로 불만을 심하게 제기하지 않는다. 빠져나올 수 없는 유혹의 소용돌이에 그는 걸려들고 있다.


시윤은 학교를 빼고 일주일 동안 예은의 집에서 산다. 이 소설을 5단계로 나누었을때 전개 과정은 모두 예은의 집에서 일어난다. 집은 이상하다. 사람이 살기에는 부자연스럽고 부족한 집이다.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집으로써 기능할 수 없는 곳이다. 이 곳은 덫이다. 하지만 그는 눈치채지 못한다.


그들은 일주일 동안 수없이 많은 영화들을 보고, 피곤하면 재즈를 튼다. 영화들은 대부분 시윤의 기준으로 '난해하고, 잔혹하며, 시종일관 무엇인지 모를 광기에 찬'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그는 예은이 있어 행복한 나날이었다고 말한다. (여담으로 나는 예은의 영화 취향이 마음에 든다. 정말 대단한 영화들 아닌가! 그녀가 팜 파탈만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 영화 이야기만 할 수 있을 것 같다.)


훌륭한 영화와 노래들이지만, 이 6일간의 생활은 작품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집과 마찬가지로 예은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다. (시윤은 다가가고 싶었지만 예은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일은 마지막 날에 일어난다. 


마지막 날의 단 하나의 마지막 영화는 '상실'이다. 오로지 작가의 창작으로 보이는 이 영화는 '돌멩이'로 인해 미쳐버린 남자의 모습을 다룬다. 아, 시윤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른다. 그는 '상실'을 통해 느꼈어야 한다. 시윤의 세계는 노을과 재즈에서 재즈와 영화, 예은으로 바뀌었었다. 그러나 재즈와 영화는 일주일의 생활을 통해 예은에게 종속되었다. (심지어 영화는 원래 예은에게서 나온 것이다.) 이제 그의 삶을 이루는 것은 예은 하나다. 영화는 직접적인 복선이다. 스스로의 전부라 여겼던 것의 상실. 


일주일의 끝은 흐지부지해 보인다. 내일 보자는 시윤의 말에 예은은 직접적인 답을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예상할 수 있다. 서스펜스적인 비극의 카타르시스가 다가온다.


뒷 이야기, 즉 위기-절정-결말이 한번에 몰아치는 이 짧은 구간의 줄거리를 굳이 풀어쓰지는 않겠다. 복선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이기도 하고, 직접 읽어보는 것이 더 오래 여운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말했듯이 비극은 커다란 과오가 아니라 작은 실수로부터 생겨나야 한다. 스스로가 실수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아주 작은 티끌. 시윤에게는 예은과의 만남부터, 그녀가 다가오기를 허락했으며, 그녀의 위험성을 몰랐다는 것이 실수였다. 


모든 것이 끝난 후, 시윤은 다시 한번 하늘을 바라본다. 원래 그의 세상을 지탱했던 노을은 보이지 않는다. 불씨와 먼지만이 그의 위로 쌓여간다. 그의 세상은 완전히 무너졌고, 예은은 새로운 희생자를 찾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고대 그리스 신화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팜 파탈의 비극은 셀 수 없이 쓰여졌고, 그만큼 많은 형태와 줄거리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번 백일장의 주제인 <최고의 광기>에 대해서는 정말로 잘 맞는 소설이다. 


전체적으로 이번 백일장에서 (아직 끝나지는 않았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었다. 묘사나 세밀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매력적인 스토리와 정석적으로 잘 풀어낸 이야기 진행이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다음 작품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