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도 잠을 깨우는 것은  기쁨이나 상쾌함이 아니라 피곤함과 미련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항상 독촉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우리가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또 그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독촉이 될 수도 있고 농담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독촉을 농담으로 만드는 것은 변화이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삶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것을 살아가는 방식뿐이다.”

그의 말이 끝난다. 그가 책상에 종이를 내려놓는다.

여기저기서 손과 손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그것을 박수라고 부르자, 이렇게 합의하였다. 

적어도 나는 합의한 적 없으니까, 하지만 내가 언제 '우리'에 너까지 포함된다고 하였지? 난 그런 적 없어.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와 그 위의 책상, 그리고 그 위에 얹혀 있을 멍청한 얼굴들은, 그런 헛소리를 아주 자랑스럽다는 듯이 하고 있다.

아무도 그의 이름은 부르지 않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에 쓰인 것을 읽는 사람의 말에만 귀를 기울인다.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이다. 자연스러운 만큼 당연한 행위이다. 

그런 행위에 반감을 가진다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비합리적인 일이다. 이 일련의 문장들은 사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오, 지켜본 증인이 있으니 이는 참되도다.


생각과 행동은 반대되는 말이 아니니, 현실에 집중하자는 막연한 격려는 어깨를 스치고 지나갈 뿐이다. 그가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도 수업은 계속 진행되고, 다음 사람은 발표를 한다. 그와 수업은 서로 다른 길을 가지만, 발표의 번호가 그에게 도달하였을 때 비로소 둘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현실은 그가 없어도 지속되지만, 현실 없이는 그도 지속될 수 없으니, 그는 종이를 들고 왔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채 존재하지 않는 수업을 들으며 역시 존재하지 않는 노인의 말대로 행위하고 있다. 그건 이상한 일이다.


교사의 모습을 한 악마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잠에서 깨어난 인간, 그의 이름을 부른다.


소진, 그것이 그의 이름이다. 

미망에 사로잡혀 신문 뱉는 기계와 씨름하던 어리석고 가련한 남자아이. 

환상이라는 이름의 변명 속에서 지하철은 그를 괴롭히고 더욱 어리석게 만든다. 


참아 내는 것이 아니다. 

견디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 사실을 모른다. 

그냥 하는 것이다. 

우리가 조용한 인생을 살듯이, 그도 조용하게, 그냥 하는 것이다.





다시 해 볼 수 있을까? 3인칭이라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현실을 도피할 방법은 나처럼 어린 사람에게 잔혹하기만 하다. 만약 그 방법을 인지하고 있다면. 그래도 나에게는 선택지가 없다. 


그러니 다시 해 볼 것이다.





“재미있게도 잠을 깨우는 것은 기쁨이나 상쾌함이 아니라 피곤함과 미련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삶은 항상 독촉으로만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그것은 우리가 삶을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또 그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독촉이 될 수도 있고 농담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독촉을 농담으로 만드는 것은 변화이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삶이 아니다. 변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그것을 살아가는 방식뿐이다.”

그의 말이 끝난다.  그가 책상에 종이를 내려놓는다. 

그 행동이 끝나기도 전에 너나 할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찔한 폭발음이 사방에서 귀를 포위한다. 그 소리는 장장 십 초 동안 계속된다.

불길한 긴장. 


저게 사람의 손에서 나올 수 있는 소리일까. 

그건 그렇고 방금 그 말은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이지? 


하고 소진은 턱을 괸 채로 생각했다. 


그저 잡생각이다. 

하루에도 수백 번씩 의미 없이 찾아왔다가 의미 없이 떠나는 잡생각이야.

그런데 방금 그 말은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것이었을까? 


그 질문은 의미 없이 떠나지 않는다. 둘 중에 무언가는 맞을 텐데 그는 그 질문이 의미가 없는 것인지 떠나지 않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아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생각이 많은 걸까? 

그건 그렇고 방금 그가 한 말은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 거지? 

그게 문제가 아니야. 

듣지 않은 말을 어떻게 알겠어, 다른 말은 듣지도 못했는데? 

그럼 내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건가? 

아니…그럴 리가. 

근데 지금 뭐 하고 있지? 

여기는, 교실이네. 

그럼 수업 중인가. 

그래, 수업 중인 거야. 

난 그냥 졸았던 거고. 

그래, 다른 생각을 한 게 아니라 단순히 잠깐 졸았던 거야.


그런데 지금 뭐 하고 있었지? 


그는 앉은 채로 벌떡 일어난다. 주위를 조용히 둘러보았다. 책상, 그 위에 멍청한 얼굴, 또 책상, 그 위에는 또 다른 멍청한 얼굴, 사물함, 문, 천장, 책상, 그 위에 굉장히 감동한 얼굴. 영락없는 중학교 교실이다. 완벽히 정상적인 교실이다. 


그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건 무슨 기분이지. 

이건 또 무슨 이상한 기분이야? 


자신 안에 갇힌 기분이다. 자신 바깥의 현실은 그저 들러리처럼 자신을 꾸미고 있는 기분. 


이게 무슨 기분이지? 

이게 무슨 이상한 기분이냔 말이야? 


그는 눈을 부릅뜬다. 눈을 감았다 뜨고 뺨을 때린다. 아프지 않다. 


아프지 않다? 


그는 뺨을 다시 때린다. 여전히 아프지 않다. 그는 뺨을 때린다. 때리고 또 때린다. 아플 때까지 때린다. 하지만 절대 아프지 않다. 왜? 왜 아프지 않지? 내가 뺨을 때렸나? 뺨을 때리긴 했나? 이상한 기분이다. 그는 이상한 기분이다. 소진은 지금 이상한 기분이다.



“소진!”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소진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그는 화들짝 놀라 횡설수설했다.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네 선생님?”


소진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한다. 하지만 대답은 없다. 교탁 앞에 선 여자는 소진을 묘한 눈길로 바라본다. 아이들이 더 크게 웃는다. 살짝 거슬릴 정도로. 방금 소진의 이름을 불렀던 사람이 한숨을 쉬며 조용히 속삭인다.


‘발표해야지!’


그 말에 소진은 당황한다.

 

발표? 무슨 발표? 

아, 아까 그 사람이 한 게 발표였나? 

당연한 사실인데, 일어서서 종이에 쓰인 것을 읽는 게 발표지. 

그래서 그 사람은 말을 끝낸 다음에 종이를 내려놓았겠고. 

그래, 발표가 끝났으니 종이도 필요가 없겠지. 

종이를 계속 들고 있으면 팔이 아프니까. 

근데 그렇게 가벼운 걸 들고 있어도 팔이 아픈가? 

뭐라는 거야, 당연하지. 그냥 팔만 들고 있어도 아픈데…


“소진.”


교탁 앞에 있는 여자가 팔짱을 끼고서 엄하지만 약간 장난기 섞인 말투로 소진을 부른다. 그는 그 여자가 왜 그런 투로 말하는지 알 수가 없다. 발표, 그래, 발표 말이지. 그는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발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무슨 발표? 아니, 발표. 발표?


그럴 리가아니, 나는, 희토류 같은 느낌

아마, 다가오는 인간비슷한 종류의?

아니아마다시는아니야.

정말로.




그는 알고 있다. 어쩌면 아직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현실과 타협하는 시도는 언제나 딜레마처럼 보이지만, 그랬다면 애초에 타협이라고 불리지도 않았겠지. 그가 가진 것을 우리가 쓸 수 있길 바란다. 너무 늦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