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아름다운 날이었다.

 나는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별빛마저 춥다고 얼어붙은 기분이 들던 날. 공습 경보로 사람들이 패닉에 빠지고도 한참이나 지났다.

 어디를 향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처음부터 목적없이 걷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다... 그저 침묵과도 같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추워"


 작게 소리내었다.

 앞마리를 날리고 이마 한 가운데 있는 뿔에서부터 바람이 나를 쓸어내렸다. 그리고 눈앞에는 황혼이 펼쳐졌다.


"..."


 어쩌면 처음부터 이것을 보기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주데카에서 톨로메아까지 걸어왔는지도 모른다.

 조금 더 빠르게 걸었다.


"하....하하...."


 아름다움을 만끽하며 저 먼 하늘 끝에서 흰 점들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한둘이 아니다. 점은 선이 되더니 바글바글해졌다.

 다가온다. 늦었다는것은 진작 알고 있다. 도움을 요청하거나 도망칠 생각은 없었다. 사람은 얼마나 외로운 것일까. 

 천적들은 이제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왔다. 수백의 왈라쿠저들이 곧 창으로 나를 꿰뚫고 어디론가 데려가겠지. 그것은 그냥 끝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이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자


 하늘로부터, 황혼으로부터 무언가 내려왔다.둥글고. 매끈한 한손에 쏙 들어올 수 있는 크기의 물체가.

 황혼이 마치 손을 뻗어 건내주려는것 같았다.

 그것은 눈송이 같이, 빗방울 같이 천천히 내 시야에서 점점 아래로 떨어졌다.


 움켜쥐었다.


  얼마 떨어져있지 않은 하늘로부터 빽빽한 검은 선들이 살의를 가지고 일제히 다가왔다. 움켜쥔것에 입술을 가져갔다.

 생각을 하고 움직이지 않았다.


 반짝이는 별빛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목에 건 종에서 소리가 나는 하얀 날개들이 빠르게 나를 둘러쌌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멘트 바닥과 철창이 생각났다. 심장이 떨렸다. 


 그리고 완전히 저문 황혼의 마지막 빛이 나를 품에 안았다.

황혼에게는 내일이 있지만 나에게는 있을까? 물이 주르륵 흐르는것 같았다. 나는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자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날은 아름다운 날이었다.

 커튼같은 천이 내 얼굴을 덮었고 손에 쥔 구체는 부드럽고 말랑했으며 굽은 글자가 내 옆에 떠올랐고 머리 위 뒤쪽에 크고 븕은 고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