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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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그녀는 나에게 이리도 친한 사람처럼 접근하는가, 레나는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치 오랜 친구를 대하는 듯 그녀를 끌고 홍대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렇게 돌다 들어간 곳은 유명 프랜차이즈 햄버거 집이었다. 문을 열자마자 주문을 받는 로봇 점원이 말을 걸었다.


“두한이네 사딸라 버거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메뉴를 골라주세요.”


지원이 말했다.


“내가 살게. 아무거나 골라.”


“…상하이 조 버거 세트”


“M자 버거 세트.”


“드시고 가실 건가요?”


“그래.”


두 사람이 자리에 앉고 오래지 않아 로봇이 햄버거 세트를 가져왔다. 버거를 먹으며, 지원은 레나를 바라보았다. 햄버거를 들고 있었음에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지원의 눈치를 보고 있는 레나를 보며 지원은 다시 말을 걸었다.


“레나, 깨작깨작 먹지 마. 그리고 나 보고 너무 겁먹지도 말고.”


“네…”


지원은 배양육으로 된 햄버거 패티를 씹으며 투덜거렸다.


“쌀로 만든 빵에 배양육 패티, 뭘로 만들었는지도 모를 채소까지… 완벽한 햄버거야.”


어찌어찌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지원이 다시 말을 걸었다.


“이렇게 갑자기 달라붙은 이유가 궁금하지? 물어보고 싶었거든, 네 이야기. 왜 그렇게 특이할 정도로 경찰과 삼성을 증오하는지 말이야.”


레나의 표정이 정말로 어두워졌다.


“…카페로 가죠. 거기서 말해 드릴게요.”


“카페, 커피를 각자 시키고 앉은 가운데 레나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고민했어요… 역시 처음부터 가는 게 좋겠네요. 전…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유복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아버지는 삼성에 금속 판형 제품을 납품하는 중견기업의 사장이었고, 어머니는 그 지역에서 유명한 변호사였죠. 어린시절에는 정말로 부족한 거 없이 자랐어요. 특별한 날 뿐이긴 해도 진짜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먹기도 했고, 주말마다 치킨도 먹을 수 있었죠. 원하던 건 거의 대부분 가질 수 있었어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싸우기는커녕 말싸움조차 한 적이 없었고, 집은 언제나 행복했어요. 그런데… 제가 12살 때, 그 행복한 생활은 끝나고 말았죠. 아버지의 회사는 자기들만의 기술로 삼성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었는데, 삼성이 그 기술을 훔쳐서 자기들 것으로 만들었어요. 특허를 통째로 빼앗은 거죠. 아버지는 그 삼성을 상대로 소송까지 불사했지만… 돌아오는 건 비참한 패배와 삼성의 보복이었어요. 회사는 그 자리에서 강제로 파산 처리되고 아버지에게 어마어마한 빚을 안겼죠. 어머니에겐 비리 변호사라는 누명을 씌워 변호사로 일하지도 못하게 했어요. 그날부터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주 싸우고, 점점 식탁에 올라오는 것도 품질이 낮아졌죠. 어린 마음에 자주 투정을 부렸었는데… 어느 순간 저도 그런 투정을 부리는 걸 그만뒀어요. 투정 부려봤자 돌아오는 건 똑같았으니까…”


지원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레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다른 공장에 겨우 취직했어요. 웃기지 않아요? 기업의 사장이란 사람이 하루아침에 몰락해서 막노동이나 하는 게…”


레나의 목소리가 점점 흔들렸다.


“작은 공장이란 게 늘 그래요. 기계보다 사람이 싸다면서 사람만 고용하고, 하루 16시간씩 쉬는 날도 없이 사람을 굴리죠. 그래도 두 분 다 저에게는 웃음만 보여줬어요. 아버지가 기계에 손가락이 잘렸던 날에도, 월급을 만원만 올려 달라고 했다가 그 공장 사장놈에게 맞고 돌아왔을 때도… 그러다 제가 15살이 됐을 때, 부모님은 결국 동료 직원들과 같이 선택을 했어요.”


“설마…”


“그날, 두 분과 동료들은 거리로 나왔어요. 월급을 조금만 올려달라고, 일요일 만이라도 쉬게 해달라고… 오래지 않아 경찰들이 몰려왔고, 그 분들에게 돌아온 건…”


레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기 시작했다.


“선두가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도망쳤어요. 하지만… 놈들은 끝까지 거기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을 찾아 죽여버렸어요! 어머니도, 아버지도 모두 잃은 저는 거리로 나와 정처없이 돌아다녔어요. 그러다가, 조 씨를 만나고, 해커가 된 거예요.”


지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레나를 꼭 안아줬다.


“정말… 고생이 많았구나. 미안해, 난 경찰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사과할 게.”


“아니요… 괜찮아요.”


레나가 어느 정도 감정을 추스리자, 지원이 말했다.


“분위기가 많이 무겁네, 오늘 일 없지? 신나게 놀자! 내가 낼게.”


레나도 어찌어찌 표정이 풀리고 미소가 드러났다.


“네!”


둘은 홍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주로 젊은 레나가 이끄는 대로 따랐지만, 지원은 아무런 이견 없이 신나게 따라다녔다. 그렇게 이곳저곳 돌아다니던 두 사람은 술집에 이르렀다. 술잔이 서로 부딪히며, 지원이 물었다.


“그래서 레나, ‘레나’라는 이름은 본명이야?”


“아니요, 그럴 리가요.”


“그럼 원래 이름이 뭔지 알려줄 수 있어?”


“절~대 안돼요! 내 본명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미래의 남편!”


“과연 한 명일까?”


“으으… 너무해요 언니.”


한참 술잔이 오고 가던 그때, 한 무리의 남자들이 술집에 들어오더니 그 중 가장 잘생긴, 온 몸을 크롬으로 도금한 남자가 다가왔다.


“이봐, 아가씨들. 둘이서 마시지 말고 우리랑 같이 마시지 않을 레?”


레나와 지원은 서로 마주보더니 귀찮다는 얼굴로 동시에 말했다.


“꺼져요.”


단숨에 차인 남자는 뻔뻔할 정도로 미소를 짓더니 지원의 손목을 잡았다.


“튕기지 말고, 같이 마시면 술 맛이 더 좋다니…”


지원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팔을 세차게 털어 손을 뿌리쳤다. 자존심이 상한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이거… 말로는 안 되나?”


그 말에 지원이 양 손에 힘을 주며 일어서려는 그때, 레나가 지원을 제지했다.


“언니, 언니가 힘쓸 필요 없어요.”


레나의 초록색 눈이 빛나더니, 크롬 피부의 남자는 마치 건전지가 떨어진 로봇처럼 그 자리에 쓰러졌다. 레나가 그 무리들에게 말했다.


“너네 일행인 것 같은데, 데려가지 그래?”


다시 주변이 조용해지자 두 사람은 계속해서 술을 마셨다. 한참동안 술잔을 기울인 끝에, 둘 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나마 이성을 유지한 지원이 말했다.


“여기까지 마시자, 더 마셨다간 네가 못 버티겠어.”


이미 혀가 풀린 레나가 말했다.


“왜에~? 한 잔만 더 하자~”


지원은 그런 레나를 부축하며 계산 후 술집을 나왔다.


“레나, 너 집이 어디야?”


“언니이이~ 한 잔만 더 하자고~!”


“닥치고 빨리 주소나 불러.”


자기 차를 부른 지원은 이미 맛이 가버린 레나를 대충 뒷자리에 태우고 그녀가 말한 주소로 차를 이동시켰다. 지원이 사는 곳 보다는 그나마 더 나은 연립주택에 레나를 겨우겨우 끌고 낡은 침대에 눕혔다. 레나는 아직도 인사불성이었다.


“휴~ 쓸데없이 무겁네. 야, 레나. 물 한 잔 마셔도 되지?”


그때, 레나가 갑자기 지원의 팔을 잡았다.


“왜, 레나?”


“언니… 츄~ 해줘.”


“ㅁ, 뭐? 얘가 갑자기 뭐래?”


“언니이이~ 나 언니 좋아해…!”


“완전 취했구나, 너.”


그때, 갑자기 레나가 지원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고, 지원은 그만 중심을 잃고 말았다. 잠시 후,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지원은 가는 내내 투덜거렸다.


“레나… 취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넌 죽었어…!”


그녀는 몰랐다. 다음날 일어났을 땐 완전히 필름이 끊겨 둘 다 기억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하지만 계죄에는 크나큰 기억이 남으리라는 것을. 다음날 눈을 뜬 지원은 계좌에서 참 많은 돈이 빠져나간 것을 알고 경악했다.


“…내가 어디서 이렇게 돈을 썼지? 잠시 생각해보자…”


‘햄버거집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 사고, 사진 찍고, 놀고, 술집에서… 술집에서… 뭐했더라?’


지원은 계속해서 술집에서 있었던 일부터 집에 오기까지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려 노력했으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완전 필름 끊길 때까지 마셨구만… 집안 꼬라지나 이불이 멀쩡한 거 보니 완전 아슬아슬하게 마셨네.”


지원은 언제나처럼 씻고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운 뒤 오랜만에 입원한 남편을 보러 갈 요량으로 입을 옷을 고르려 했다. 또 조 씨한테 연락이 오지 않았다면. 지원은 가볍게 짜증을 내며 연락을 받았다.


“무슨 일이야?”


“미세스 리, 지금 LAD로 왔으면 좋겠어. 괜찮은 의뢰가 들어왔는데, 미세스 리한테 딱 맞을 것 같아서.”


“…기업이랑 관련된 거야?”


“그래.”


지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도 그럴것이, 남편을 못 본지 벌써 한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알았어, 금방 갈게.”


지원은 대충 옷을 입고 어제 산 총을 챙긴 뒤 현관에서 간밤에 온 공문을 확인했다.


10월은 방역의 달


방역 대상

고양이, 살쾡이 등 고양이과 동물

닭, 오리, 비둘기, 거위, 메추라기 등 야외에 서식하는 가금류

그 외 허가 받지 않은 동물 전체

위 동물 발견 시 가까운 경찰서로 연락 바랍니다. -서울광역시청


지원은 공문을 빠르게 삭제한 뒤 차를 타고 LAD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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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한이네 사딸라 버거점: 2038년 서울 잠실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 600여개 매장이 있는 햄버거 프랜차이즈. 4달러, 즉 4000원부터 시작하는 가격과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기가 높다. 프랜차이즈 이름은 21세기 초 유행한 드라마의 주인공과 밈에서 따왔다고 한다.

방역: 2030년 고양이과 생물들에게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생했다. 전세계에 퍼진 바이러스로 고양이과 생물의 30%가 5년만에 멸종하는 치명적인 사태에 이어 인수공통감염의 조짐까지 보이자 정부는 2036년 특단의 조치로 국내의 모든 고양이과 생물을 살처분하는 특별법을 발의했다. 가금류의 경우 2033년 신종 조류독감의 발생으로 인해 허가받지 않은 시설 외의 모든 조류가 사살당했다. 현재 조류를 보기 위해선 기업이 운영하는 양계장(일반인 출입금지)이나 일부 동물원에 가야하는 실정이다.

금크양: 금발 크롬도금 양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