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이 끝났다. 광기의 역습이라는 창작문학 채널에 딱맞는 주제로 이루어진 대회였다. 백일장에는 별의별 맛있는 글들이 많이 올라왔고, 유저들의 호응도 굉장했다.


그렇게 백일장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성대하게 막을 내렸다. 이제 심사만이 남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여기에 있는 것인가. 


"자, 자.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눈을 들어 앞을 보았다. 어떤 수염을 희끗하게 기른 아저씨 한 명이 근엄해보이는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네모반듯한 책상. 그리고 손에 들린 작은 망치.


판사였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재판장이었다.


"자, 검사 측. 말씀하세요."


"피고 창붕이는 광기의 역습 대회가 개최되었음에도 작품을 제출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피고 창붕이에게 노동교화형을 선고합니다."


검사로 보이는 사람이 천천히 종이를 읽어나갔다.


그보다도 노동교화형이라니.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를 빠져나가야겠어.


"이보시오! 제가 왜 여기 있는 진 모르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요!"


"어이, 닥쳐라."


검사가 검집에서 검을 빼내어 꺼내들었다. 아주 기다란 일본도였다. 그리고 일본도에는 뭐라뭐라 쓰여있었다.


'노인의 나체에 성욕을 느끼는 자만 쓸 수 있는 검...?'


"그럼 이어서 하겠습니다. 피고 창붕이는 대회기간임에도 대회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죄질이 매우 무거운 바로, 범국가적 사회질서에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사회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중대한 테러 행위에 해당합니다. 법질서를 교란하는 이 흉악한 정치사범에게 중형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검사 측 의견은 잘 들었습니다. 이제 피고인 측 의견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미친 새끼들아, 여기가 뭐하는 데냐고!"


"어허! 정숙하시오! 여기는 신성한 재판장이오. 차분하게 말해보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천천히 발언하도록 하죠."


잠깐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저는..."


"자, 이상 피고인의 발언 잘 들었습니다."


"아니 나 말 다 안 끝났... 읍읍"


"발언을 하라고 하니 숨만 고르시다니, 이거 인성에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는 것 같군요. 그럼 변호사 측 의견을 들어보도록 하죠."


변호사가 있었어? 진작에 이야기해주지.


뭐, 이제 됐나? 변호사가 알아서 잘 해주겠지 뭐.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가 백일장에 글을 쓰지 않은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렇지, 이게 변호사지. 이제야 좀 재판장같네.


"피고인은 그저 노동교화형을 받고 싶었을 뿐입니다."


...뭐?


"피고인이 노동교화형을 받고 싶지 않았다면 대회에 왜 나오지 않았겠습니까? 이는 이 나라에 이바지하고 이 나라의 경제를 자기 한 몸 다 바쳐 일으켜 세우려는 애국자의 뜨거운 열망인 것임에 분명합니다. 노동에 따른 피, 땀, 눈물. 이 얼마나 숭고한 가치관입니까?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입니까? 이래도 피고의 숭고한 뜻을 무시하고 짓밟으실 생각이십니까?"


변호사 이 미친 새끼가 변호사 자격증은 어떻게 딴 거야.


그때 법정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가 울려퍼졌다. 누군가는 브라보를 외쳤고, 판사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에 젖어있었고, 검사는 이 말이 맞는지 검사하다가 감격에 벅차올랐다.


검사가 말했다.


"인정합니다. 노동교화형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치이자 이데올로기. 이렇게나 투철한 시민정신은 처음 봤습니다."


판사도 거들었다.


"이 얼마나 반듯하고 듬직한 청년인가. 그래, 이제 피고인의 최후 발언을 들어보도록 하지."


이건 미친 짓이었다. 도대체 분위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 것인가.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아무래도 한 소리 해줘야겠다. 이대로 가다가는 나는 빼도박도 못하고 노동교화형으로 갈 운명이었다.


그리고 마침 지금 이 순간은 최후발언 시간. 아까는 발언을 판사가 막았지만, 이제는 제대로 내 생각을 재판장에 알릴 생각이었다.


그래, 결심했다.


"저는..."


"이상 피고인의 최후발언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동스러운 장면입니까!"


'시발?'


"요즘같은 시대에 이런 뜻있는 청년은 처음 보았습니다. 좋습니다. 감동먹었습니다. 이에 따라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노동교화형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검사측, 수여하세요."


검사가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신성한 의식을 치르는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나를 바라보았다. 파란 보석이었다.


"당신이야말로 이 파란 보석에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이 권한을 당신에게 드리겠습니다."


"읍읍..."


"그리고 추가로 당신에게 이 검을 드리겠습니다. 이 검이야말로 파란 보석의 자질에 알맞는 시험대. 어서 이 검을 뽑아보시죠."


검사가 검을 내밀었다.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얼른 검을 받아서 집어 던졌다.


그런데 그때 검이 떨어지면서 검집과 분리되었다.


재판장은 모두 감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이상 파란 보석의 수여식을 마치겠습니다. 그럼 이상 피고에게 노동교화형을 선고하겠습니다!"


"와아아으아아아아아아아앙아!"


"읍읍! 읍읍읍!"



그렇게 기 적같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