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또 그 친구 파일 보고 있나?"

"아 예. 뭐...."

"자네가 그 친구 전속도 아니고. 적당히 해도 되지 않겠나."

"하하 그런가요."


마법소녀 정신관리부 소속.
김시우.

시우는 방금 전부터 파일 하나를 이리저리 뒤집고 있었다.


"그러다간 자네가 맡는 다른 애들도 힘들어지네. 내,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야."


끄덕끄덕.

듣기 싫다는 듯, 김시우가 설렁설렁 고개를 끄덕였다.

에잉 요즘 젊은 애들은- 으로 시작하는 선배의 흉담을 한귀로 흘리면서, 김시우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다른 애들도 데리고 병문안을 가봐야겠다."


*


"상담... 이요?"

"그래. 힘들 거 아니냐 너희도."

"딱히 없는데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같은 건."

"내가 말한 건 괴수와 싸우는 게 힘들진 않냐는 뜻이었는데."

"아."


김시우의 마법소녀 - 아메리카노에 대한 첫인상은 이러했다.


"괜찮니? 얼굴에 상처가 있잖아!"

"됐어요. 계단에서 굴렀어요."

"계단에서 구른 정도로 마법소녀가 다치겠어?
보자, 뭔가에 강하게 부딪힌 거 같은데?
이번 괴수가 그렇게 강했던 거야?"

"그런 거 아니... 아 맞아요. 좀 강하더라고요."


스물과 서른의 중간 정도 나이.

김시우의 나이였다.

김시우에겐 나이차가 있는 동생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보니 마법소녀 - 아메리카노는 나이가 몇이라고 했지?"

"마법소녀의 신상정보는 공개금지잖아요."

"아...."

"... 17이에요. 괴수만 없었으면 지금쯤 고등학교를 다녔을 나이죠."


17.

살아있었다면 자신의 여동생도 17 즈음의 나이였을 테다.

나이를 듣고 나서부터 김시우는 어쩐지 마법소녀 - 아메리카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럼 하와와여고생인가?"

"전 마법소녀가 되기 전엔 남자였어요. 이젠 다 옛날 일 같지만."

"... 막 그렇게 말해도 되니?"

"그럼 비밀로 해주세요."

"그런가. 혹시나 했는데 아니었나보네."

"뭐가요?"

"... 내 여동생도 살아있었으면 너 정도 나이였거든."

"선생님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데요?"

"스물다섯."

"저희 삼촌도 살아계셨으면 꼭 선생님 나이였겠네요."


이 녀석, 어른을 놀려먹어?

김시우는 아메리카노의 머리에 꿀밤을 한알 선물했다.

마법소녀는 왜 갑자기 쥐어박냐며 김시우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보니 아메리카노란 이름 말이야."

"네."

"네가 스스로 지은 거야? 마법소녀의 코드네임은 사역마가 지어주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어때?"

"... 어느 쪽일 것 같으세요?"

"좀 구린 거 보니까 사역마가 지었나? 젊은 애들 센스는 아닌 거 같은데."

"......."

"아. 아야. 왜 때려. 때리지 마. 때, 때리... 선생님 화낸다?"


건방진 아이.

언제부턴가 김시우의 머릿속에서 한 마법소녀의 이미지가
건방지고 자기 주장이 강한 아이로 변모했다.

자기 얘기를 하기 싫어하던 차가운 아이에서.



"저번 괴수 전엔 왜 그렇게 싸웠어?"

"제 딴에 최선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다른 애들과 협력했으면 더 편했던 거 아니야?"

"다른 애들은! ... 아니에요. 걔들은 아니에요."

"너무 혼자서만 싸우는 거 아니야?
윗선에서도 네가 훈련 때마다 합동 훈련을 끔찍히 기피한다고 바가지를 긁던데."

"어쩔 수 없어요 그건."

"다른 애들하고도 친하게 지내봐. 이것도 임무의 일환이니까."


좋은 말만 나눈 것은 아니다.

소녀에게 있어선 마음의 상처가 된 말도 한 적이 있었다.


"제 마음대로 됐으면 이 고생 안 해요."

"무슨 말이야?"

"아무 것도 아니에요."


스스로의 멍든 팔을 쓰다듬으며 소녀가 중얼거렸다.

김시우가 그 전말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나중이었다.


"아메리카노는-."

"리카. 리카라고 부르죠.
괜히 이름이 기니까 번거롭잖아요."

"리카? 리카 좋은데?"

"이번엔 구리다고 안 놀리시네요?"

"그거 고안한 거 너 맞았지, 역시?"

"... 삐쳤어요. 말 걸지 마세요."


둘만 아는 별명도 새로이 만들기도 했다.

김시우는 이 시간들을 [즐거운 시간이었다] 라고 평했다.

그러다 얼마 전에 사고가 났다.


"미쳤어?!"

"제가 뭘요. 아메리카노, 저 정신 나간 애가 문제인데."

"그 자리에 마법소녀만 8명이 있었어! 8명이면 리카를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인원이었고!"


병실에 다른 소녀들까지 끌고 온 김시우는 화냈다.


"그땐 저희도 마력이 충분치 않았어요.
괴수한테 닥돌한 미친 여자를 구하는 것보단 우리 목숨을 부지하는 게 우선이었다고요."

"닥돌이라니, 리카가 아니었으면 그 자리에 있던 민간인은...!"


도무지 참을 수 없어져 화를 내었다.


"병원이에요 선생님. 언성을, 언성을 그렇게 높이지 마세요."

"... 마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도 다 거짓부렁이잖아.
본부로 전이마법을 펼칠 기력은 있고 저 애를 위해 방어마법 하나를 펼쳐줄 마력은 없다고?!"


소녀들이 작심하고 전개하는 거짓말에
그 뒤에서 아슬히 느껴지는 더럽고 비열한 심보에 화를 내었다.

돌아온 것은 별 이상한 아저씨를 다 봤다는 시선 뿐이었지만.


"왜 저래? 급발진을 하고."

"몰라. 저 아저씨 찐따 같이 나대기로는 시설 제일이잖아."

"고 지지배한테 반한 거 아니야?"

"이제 30 가까워져가는 아재가? 변태 아니야?"

"어쨌든, 꼴볼견끼리 잘 어울리긴 하네."


개인실을 나서는 여자 아이들은 쑥덕쑥덕 떠들어댔다.

김시우는 옛 기억을 떠올렸다.

점심을 늘 식당이 아니라 자신의 상담실에 와서 해결하던 리카의 모습을.


'식당은 그... 애들이 많아서요.'

'자리가 없다고?'

'그렇다기보단 그... 아니다, 생각해보니 자리가 없긴 하네요.'


무언가 깨달은 바가 있어
김시우는 그 뒤를 쫓아가 따귀를 걷어올리려다 포기하였다.

의사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늘밤이 고비네요. 환자가 살려는 의지가 충분하다면 괜찮겠지만....'


"이대로 끝나지는 말자 리카야. 그때 먹겠다던 국밥도 아직 안 먹었잖아.
마법소녀가 무슨 국밥을 그리 좋아하냐고 핀잔 주는 것도 그만 두마....
맞아, 네가 좋아하던 만화, 주인공이 입에서 번개를 쏜다는 그거. 2편이 나오기 시작했다.
같이 봐야지. 나한테만 영업을 시키고 넌 안 볼 작정이냐? 응?"


김시우가 리카의 손을 잡았다. 며칠째 들어올려지지 않은 손을.

며칠째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음에도 리카의 손은 무척 부드럽고 고왔다.


"이 모지리야!
후속작이 나왔다는데 침대에 누워서 잠이나 자는 게, 그게 팬의 자세냐?
네가 말하던 '찐팬' 의 자세야!!"


어르고 달래다 지쳐 성을 내기 시작하였을 때 어깨 위에 묵직한 압박감이 올라왔다.


"친구."


작고 조심스런 호명.

그리 하여 당사자인 김시우외엔 누구도 듣는 것이 불가능한 호명.

김시우가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목소리는 말을 그치지 않았다.


"친구. 그대로 듣게. 친구는 아직 내 모습이 보이지 않을 테니."

"... 나도 많이 약해졌군. 환청을 다 듣고."

"환청은 아니라네."


김시우가 병문안으로 가져다 놓은 화병에서 꽃이 하늘로 올라갔다.

꽃은 하늘에서 곡예를 선보이다가 다시 고이 화병 속으로 돌아갔다.


"단지 자네에게만 안 보이는 것 뿐이지."

"... 귀신은 아닐 테고, 마왕군 소속이냐?"

"어허, 감이 빠른데. 과연 내 안목이 틀리지 않았어."


목소리는 김시우를 꾀어 병동의 밖으로 나오게 하였다.

김시우는 투명한 목소리와 뭐라 말을 섞었다.


"... 그럼 네 말대로면 정말 저 애가 깨어날 수 있단 거야?"

"마법소녀 한명 뿐이면 가능하고도 남지.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시간?"

"변화 이후 마력을 모으는 데까진 시간이 좀 걸리거든.
네 경우엔 사흘 정도 소모되겠군."

"어떻게 믿지?"

"어허, 견제는 관두게. 너도 머리론 알고 있잖아? 내 말에 거짓은 없네."


쯧. 김시우가 혀를 찼다.

김시우 또한 분명 마음 어딘가에선 그렇게 느끼긴 했다.


"그리고... 내 말이 거짓이라도 잃을 게 없지 않나?"


김시우는 머리를 싸매었다.

김시우는 설령 자신이 죽더라도 누구 하나 슬퍼해줄 사람 없는 처지였다.

마수의 1차 침공 당시 김시우는 주변인을 잃었다.

이미 많이 잃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새로이 쌓게 된 유일한 인연은,
풍전등화의 신세였다.


"믿으마."

"잘 생각했어, 이제 이 조각을 삼키면 돼."

"이게 뭐지?"

"우리 마족의 몸조각이지. 특별히 예쁜 놈으로다가 골랐으니 안심하고 먹으라고.
마력을 모으는 것도, 전달하는 것도 쉽게 할 수 있는 놈이라네."

"... 사흘만 기다려다오 리카. 금새 너를 깨워주마."


그날 이후 김시우를 목격한 인간은 한명 뿐이었다.

그 인간이라 함은 아이러니하게도 절대 볼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


"선생님!"


마법소녀 아메리카노가 깨자마자 찾은 인물은 김시우였다.

좁은 개인병실을 이리저리 둘러본 리카는, 아무도 없단 걸 깨닫고 의아한 듯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며칠간 식사를 원활히 수행하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곱고 부드러운 손을.


"선생님 어디 갔는지 아세요?"


병원을 맨발로 도망 나온 리카는 곧장 상담실을 향했다.

상담실에는 리카가 잘 아는 상담선생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저도 선생님인데요."

"아이 참, 상담 선생님이요!"

"네. 그러니까 상담선생."


아메리카노가 안절부절하다가 말을 보탰다.


"'김시우' 선생님 어디 갔는지 아세요?"

"김시우 선배요? 글쎄요. 행방불명이라던데."


마법소녀 아메리카노는 그날 발이 부을 때까지 뛰어다녔다.

리카는 병동에 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없었다.

정신조차 흐릿한 채로 앓아 누워있던 환자의 머리에는
무슨 말소리가 들리거나 하지 않았다.

리카가 울며 눈 앞의 적에게 퇴원 전후의 이야기를 읊었다.


"그래서 아무 것도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았고."

"그래?"

"그래도 유일하게 들린 게 있어서... 선생님이 뭐라 말을 걸어주는 것 만큼은 어렴풋이 기억이 나서...."

"그렇구나."

"그래서 선생님하고...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다시 일어난 거에요."

"그래서 병원에는 없었던 것이로구나."

"근데, 근데 왜....."


아메리카노의 손이 축 쳐졌다.

늘 그렇듯, 부드럽고 고운 손이었다.


"선생님이 거기 계신 거에요...."

"편해지자 리카야. 너도 힘들잖아.
여긴 편하다. 내 손을 잡지 않으련?"

[마법소녀 아메리카노, 반복한다. 지금 당장 눈 앞의 서큐버스 퀸을 죽여라.]


무전기가 마법소녀 아메리카노를 독촉하는 새에
리카가 울먹였다.

"선생님 아니죠? 선생님은 남자였잖아요."

"마족이 되니 새로운 몸과 새로운 마음가짐이 생기더구나.
이제 널 괴롭히던 아이들도 내가 혼내줄 수 있다. 리카."

"아니라고 해요. 아니라고 해줘요...."

"마법소녀가 되어서 좋은 건 하나도 없었잖니.
나도 네가 마법소녀를 하는 게 항상 안타까웠다.
그땐 그 여자들이 너를 괴롭히는 걸 몰랐는데도 말이야.
당사자인 너는 오죽했겠니. 오죽 힘들었겠니."

"못 해요. 못 잡아요....
우리 가족들 마수가 잔인하게 죽이는 거 다 봤어요.
제가 어떻게 해요."

"그냥 리카야."

"그냥 선생님."

"나랑 같이 가자꾸나."

"그만 해줘요."

"난 너를 아낀다. 내가 어떻게 너를 죽이겠니."

"전 선생님이랑 못 싸워요. 제가 어떻게 그래요."

"그 녀석들보단 훨씬."

"선생님하고만은 못 싸워요."

"부디, 내게 오렴."

"제발... 이러지 말아주세요."


마법소녀 아메리카노가 서큐버스 퀸을 붙들고 울었다.

무전기에선 가혹하게 서큐버스퀸을 죽이란 명령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적어도 수신자의 입장에선
별로 기쁘지 않은 선물이었다.

크리스마스였다.

눈은 내리지 않았다.

*

틋챈 출품작 백업용
틋챈 대회하고 있더라
딱히 틋챈 버전하고 차이는 없음
https://arca.live/b/tsfiction/6604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