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의 낮은 짧다. 5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태양은 빌딩 숲 뒤로 숨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빨 빠진 석양을 정면으로 받으며, 리돌은 편지를 부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사실 모양새가 편지를 부친다기 보다는 어떤 실험을 행하고 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맞는 것 같다. 리돌은 어디서 갖고 왔는지 주먹만한 쇠공 하나를 옥상 가운데 두었다.

 

 “여기 편지가 있습니다.”


 리돌은 그 편지가 들었다는 공을 가운데 놓고, 이리저리 돌아 다니며 원자 분해기로 쇠공 주변의 빈 공간 이곳 저곳을 쏘아 대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고정시키는 것처럼. 

 마치 정원사 같은 모양새였다. 공기로 이루어진 가지를 파란색 광선으로 다듬는, 허공의 예술가. 나는 문 바로 앞에서 리돌이 거행하는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고, 나비도 내 옆 장독대에 앉아 리돌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주로 무언가를 쏘아 올리는 것이 그리 간단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준비하는 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리돌은 자신의 일에 몰두하다, 우리가 계속 자신을 쳐다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자 살짝 민망한 듯한 미소를 짓고서는 양해를 구했다.


 “조금 더 오래 걸릴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마치 게임 회사들 서버 터질 때 하는 말 같군 그래. 하여튼 방금 말한 것을 보아 할 때, 저 '편지 부치기' 를 그렇게 빨리 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기다림 중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내 옆에 있는 지성체에게 대화를 시도하였다. 리돌의 움직임을 계속 응시하면서.


 “방금 말했던 거 있잖냐.”


 “음? 뭐냐, 인간.”


 “리돌이 가면 너도 같이 달나라로 갈거냐?”


 “아, 그것 말인가. 주군이 가는 곳에 가신이 따라 가는 것이 당연한 법. 왜, 내가 남기를 바라는가? 하, 이놈의 인기란.”


 왜 너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냐.  나는 자화자찬의 헛소리를 싹 무시하고서는 원래 물어보고 싶었던 것을 말하기로 하였다.

 

 “너 뭐 가족이 있다고 그러지 않았냐? 놔두고 혼자 달나라로 가도 되는 거야?”


 “아, 나의 형제들. 생각해보니 그대에게 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군. 그들은 이미 자신의 영역을 찾아 떠나 갔다. 우리 고양이들은 워낙에 독립심이 강해서 말이지. 이미 걱정할 필요 없는 한 마리 한 마리의 성묘가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


 약간의 침묵 뒤에, 이젠 나비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그러했듯이, 딱히 서로를 바라보지는 않은 채.


 “그러는 그대는 어떠한가, 인간.”


 “나?”


 “만약에 주군이 이 곳을 떠나게 된다면, 그대에게 남겨진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겠느냐는 말이지.”


 “글쎄? 별로?”


 대답은 즉답으로 나왔지만, 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긴 하다. 만약에 지금 편지를 보내는 것이 성공하면 리돌은 높은 확률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녀석이 사는 곳이 어디인가. 지하철 타고 인천에서 서울 가듯이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가면, 이제 못 보는 것이나 다름 없는 것이다.

 서로를 원해서 만난 것은 아니지만, 6개월간 서로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을.

 나의 심드렁한 대답을 들은 나비는, 갑자기 스삭스삭하는 소리를 내었다.  무슨 소린가 옆을 둘러보니, 그냥 뒷발로 머리를 긁는 것이었다. 


 “그래? 아직 잘 모르고 있는가 보군.”


 “뭘 잘 몰라?”


 “이성이라는 잣대는 참으로 불편한 점이 많아.”  

  

 선문답 하는겨? 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든 말든, 나비는 머리긁기를 마칠 때 까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뒷발이 뒤통수에서 떨어지고 나서야, 나비는 주욱 리돌을 응시하며 맥 빠지는 투로 이야기를 재개했다.

 

 “내가 볼 때는 주군과 그대는 분명 서로가 서로를 좋아하고 있다.”


 “뭐? 내가? 쟤를?!”


 나의 부정을 들은 나비는 혀를 끌끌 차며 나를 바라 보았다.


 “지금 내 머릿속에 '생각'이란 것이 덧씌워 지긴 하였지만, 아직 동물로서의 감은 남아 있다. 그대와 주군 사이에 오고가는 모습들은, 분명 서로를 좋아할 때 나오는 반응들이었다. 분명히, 인간의 세상에서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던가.”


 이 고양이 놈이 갑자기 뭔 소릴 하는 거야? 내 찌그러진 표정을 보거나 말거나 나비는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사유를 할 수 있게 된 나로서는 지금, 그대의 모습이 조금 이해가 가는군. 다른 누군가를 '좋아한다' 라는 감정이 그 자체로 온전히 나오지 않는 것. 좋아한다는 자신의 감정보다 방금 말한 이성이 더 무거울 때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겠지. 보통 동물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것 뿐이지. 구애의 춤을 추던가, 짝짓기를 하던가.” 

 

 “야, 그래, 뭐. 철학 수업은 됐어. 근데, 나는 그렇다 치고, 저 국어듣기평가 하는 목소리에서 어떤 감정이라는 게 느껴지냐? 거기서 나에 대한 호감이라던가, 그런 게 보이는 거야?”


 나비는 그 말을 듣자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나는 그대가 말한 것과 같은 소위 '생각'으로 이루어진 겉껍데기들을 모두 배제한 두 '암수'사이의 순수한 '감정'을 말한 것이다, 인간.” 


 “아... 그래.”


 말하는 고양이는 마치 이해 못하는 학생을 훈계하듯, 대답 안의 중요한 단어에 딱딱 강세를 두어 설명조로 이야기하였다. 나는 전혀 납득하지는 못했지만, 그냥 두리뭉실하게 대답해 버렸다. 더 할말이 없기도 하고.  


 “뭐, 주군은 그렇다 치고 그대 역시 그런 자각이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냥, 주군의 옆에 있는 가신으로서 한 마디 첨언을 했다 생각해 다오. 방금 내가 한 말은 흘려 들어도 좋다.”


 그럴 거면 얘기를 꺼내지 마. 사람 마음만 복잡해 지잖아. 나는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였다. 멋적기도 하고, 이 녀석의 말을 들으니 생각을 정리해야 될 것이 너무 많아져서 말이지. 


 저 녀석이 나를 좋아한다고?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때 되면 밥 달라고 하는 것 이외에 제대로 말하는 것도 없는 데에서 도대체 어떤 부분이?

 아니, 그보다, 

 내가 저 녀석을 좋아한다고?

 내가?

 

 “민재?”


 “응? 으음.”


  어유, 깜짝이야. 너무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던 듯 하다. 리돌은 편지를 보내기 위한 의식을 끝마친 듯 하였다. 어느 샌가 모르게 내 앞에 다가와 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으니. 

 그런데... 갑자기 리돌과 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깝게 느껴진다. 집에서 밥을 먹을 때, 밥상머리에서 흘린 것을 닦아 줄 때도 이것보다 가까이 다가갔을 터인데, 오늘은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나비 녀석이 아까 이야기한 것 때문에 그런가? 

 

 “민재, 내 얼굴은 빨갛습니다.”


 니 얼굴이 아니라... 내 얼굴이 빨갛다는 이야기겠지. 지금 내 상태는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왠지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홱 돌리며 대답하였다. 


 “아, 아냐. 그것보다, 편지 준비는 다 됐어?”


 “네, 다 되었습니다.”


 리돌은 내 질문에 환하게 웃으면서, 마치 발레를 하듯 한바퀴를 돌면서 아까 장치를 하던 곳으로 돌아갔다. 그러고서는 두 손으로 쇠공이 있던 곳 위의 공간을 가리켰다. 마치 마술사가 커텐 뒤에서 꺼낸 미녀를 소개하듯이.

 확실히 마술같아 보이긴 한다. 아까까지 바닥에 놓여 있던 쇠공은 지금은 공중에 떠 있었다. 그냥 그것 뿐이면 이 녀석이 지금까지 보여줬던 능력하고 별반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떠 있는 모양새가 확연히 달랐다. 쇠공은 일정한 간격으로 위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있었다. 마치 드라이어 위에서 왔다갔다 하는 탁구공처럼, 쇠공은 투명한 연두색 기운으로 둘러 싸인 관 안에서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마도 리돌이 아까 원자분해기로 그렇게 만져대던 것은 공기중에 저런 구조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였던 듯 하다. 그리고 그 아래는, 똑같은 연두색으로 덮인 커다란 사각형 틀이 놓여 있었다. 안쪽이 심히 복잡해 보이는 것이 이 구조물을 구축하는 데에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리돌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설명을 시작하였다.


 “첫째, 그의 누이가 설명했듯이 과학자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붙잡히지 않았을 정도로 작았던 껍질은 연료 없이 스스로 쏴야 했다. 따라서 우리는 대기 중에 폭발적인 요소를 수집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폭탄의 중간에 완충장치를 설치하여 문자가 증발하지 않도록 하고, 폭발을 방지하기 위해 양날의 소음 장치를 추가했습니다.”


 나는 무척이나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원래 못 알아들을 말은 빨리 넘겨야 된다. 왠지 무언가 과학적인 설명을 한 것 같긴 하지만,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아저씨를 데려와도 이 녀석의 말을 지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냥 모두 건너 뛰고 결론만을 듣기로 하였다.


 “그래서, 지금 모두 끝난 거? 이제 발사하면 되는거야?”


 리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정확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우리는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나의 문과적인 마인드로는 왠지 달이 보일 때 쏘아야 할 것 같지만 아마 리돌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얼마나 기다려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옥상 위의 모두가 침묵으로 기다리고 있던 그 때, 리돌의 시선이 나의 이마 윗쪽으로 고정되었다. 리돌은 유심히 나의 두상을 쳐다 보면서 말했다.


 “민재, 머리를 자른 겁니까? 아름다운 헤어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이제서야 본 거냐.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잘랐다. 그 니가 좋아하는 선 보러 가려고.”


나의 이죽거림에 반응한 것은 리돌이 아니라 나비였다.


 “음, 훌륭한 벼슬을 가진 닭이 짝짓기를 잘 하는 법이지. 훌륭한 준비성이다, 인간.” 


 “너 진짜 뒤진다, 그러다.”


 나비놈의 뒷목을 잡고 들어 올려 한바탕 패대기를 치고 싶었으나, 녀석은 어느새 리돌 쪽으로 도망간 지 오래였다. 나비는 옷자락을 타고 리돌의 어깨로 쪼르르 올라가  머리카락 안에서 나를 얄밉게 바라 보았다. 리돌은 나비를 쓰다듬어 주면서 내게 물었다.

 

 “그 선을 보면서, 당신은 결혼을 의미합니까?”


 마음 속 어딘가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래, 성희 씨가 제대로 알려 줬구나. 이제야 좀 그래도 질문 다운 질문이 나오는구만. 어쨌든 저 녀석의 입에서 논리적인 결론이 도출되었다는 것이 기쁘다. 물론 그 사이에 현실적인 단계를 십몇 계단 정도 뛰어 넘은 부분은 차치하자. 사람이 한 번에 많은 것을 바라면 안 된다.


 “글쎄? 일단 그런 것부터 생각하기 보다는 우선 만나 보고 말해야 겠지. 사람은 만나 봐야 아는 거잖아.”


 “맞습니다.”


 내 말을 긍정하고서, 리돌은 천천히, 산책을 하듯이 옥상 위를 거닐기 시작했다. 살풋 불어오는 찬바람에 하얀 원피스 자락은 걸음에 맞추어 가볍게 흩날렸다.


 “민재를 만날 때까지 나는 야만인 지구의 모든 사람들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하긴, 너 처음 만났을 때 그렇게 말했잖아.” 


 지금도 다른 사람한테 대하는 게 뭐가 달라지진 않았을 것 같지만. 이 말은 입 밖으로 굳이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지구상에 위대한 문명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달에 돌아 왔을 때 나는  사람들에게 지구에 관한 좋은 점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민재 덕분입니다.”


 달나라 소녀는 태양빛을 등지고 발걸음을 멈추어 나를 바라보았다. 내 가슴팍까지 깊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마치 후광이 비추듯이, 리돌의 하얀 머리카락 뒤로 샛주황색 석양이 몸을 뉘였다.


 “나는 이 만남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달 안에.”


 언제나 무미건조한 말투의 달나라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햇빛 때문에 리돌의 얼굴 윤곽 중에 입꼬리만이 간신히 보일 뿐, 눈을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 말을 한 소녀도, 그 말을 한 나도 모두 시간에 묶여 버렸다. 왠지 모를 숙연함이 이 좁은 옥상을 에워싸고 있었고, 마치 연극의 막이 내리듯이 석양은 빌딩 지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추었다.

  리돌은 눈을 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