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릿발 깊게 내린 추운 절망이 찾아오면

난 조용히 와인 한 잔을 가득 채우리라.

흐릿한 성광을 받아 신음하는 유리잔에

허영된 열망 한 잔을 가득히 채우리라.


어긋나고 문드러져 비어버린 심장에

일렁이는 선혈, 두근대는 선홍빛 물결을

흘러넘칠 때까지 가득히 채우리라.


아아, 아름다운 아류의 한 잔.

찬란하게 빛나던 내 만월의 청춘이여.

쉴 틈 없이 쫓았던 내 정열의 방황이여.


투영한 유리잔에 새빨간 미련이 넘실거려

핏기 없는 손에 혈흔을 아로새기더라도.

나는 개의치 않고 와인 한 잔을 채우리라.

목매여 발버둥 치던 이 갈증을 잊게 해줄

까마득한 와인 한 잔을 가득 채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