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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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지원은 눈을 떴다. 자리에서 일어나자 마자 느껴지는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본 지원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곳은 지원의 집이 아니라 다른 곳이었으며, 왜인지 그녀는 팬티만 입고 있었다. 지원은 뱀처럼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옷을 찾았다. 그때, 누군가 문 밖에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이곳으로 다가오는 것을 눈치챈 지원은 조용히 문을 노려보았고, 마침내 문이 벌컥 열리자 지원은 그 정체와 눈이 마주쳤다. 다름 아닌 레나였다. 그것도 방금 씻고 나왔는지 알몸의. 단 몇 초 동안의 정적이 이어진 끝에, 둘 모두 집이 떠나가라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아아악!! 어딜 보는 거예요!!”


“그러는 내 옷은 왜 벗긴 건데?!!”


둘은 말없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한참 있다가 지원이 말했다.


“너, 너 설마 자는 동안 나한테 무슨 짓이라도 한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니죠! 무, 물론… 그런 마음이 들긴 했지만. 후환이 두려워서 그걸 어떻게 해요!”


“그럼 내 옷은 어디 갔어?! 난 왜 이 꼴로 자고 있는데? 그리고 여긴 어디야?! 네 집 아니야?”


“일단 진정 좀 해요! 다 말 해 줄 테니까.”


지원이 겨우 진정하자, 레나는 옷을 갈아 입은 다음 설명했다.


“기억 안 나는 거예요? 어젯밤에 자정 가까이 될 때까지 마시고 집 가기 전에 태워다 준다며 차 부른 다음 제 집 앞에서 쓰러지셨잖아요. 제가 언니 집을 모르니까 어쩔 수 없이 제 집에서 재웠죠.”


“그럼 내 옷은?”


“그… 집에 들어오자 마자 언니가 먹은 걸 다… 그래서 옷은 지금 빨고 있어요.”


지원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당할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였다.


“다행히 주변이 멀쩡한 걸 봐선 그거 외에는 사고 친 건 없나 보네.”


“네, 그렇죠. 언니 잠버릇 엄청 고약하던데요? 자다가 중간에 깨서 거실에서 잤어요.”


지원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전에는 이 정도쯤 마셔도 끄떡없었는데… 늙은 것 같다. 아무튼, 고마워.”


“별 말씀을 요. 덕분에 좋은 구경 했어요. 근데 언니 대체 근육이 얼마나 붙어 있는 거예요? 무슨 가슴까지 근육이던데.”


“이 새끼가 만졌냐!!”


“네! 말랑하면서도 딱딱했어요.”


지원은 싸우는 것조차 포기하고 주저 앉았다.


“어휴,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주저 앉은 지원은 레나의 방을 바라보았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몰랐는데 해커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간단한 컴퓨터 한 대만 놓인 방은 여자의 방이라는 느낌이 약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그나저나 집에 간단한 컴퓨터 밖에 없네? 의외인걸?”


“네? 무슨 뜻이예요?”


“아니, 뭔가 해커라고 하면 집 한쪽에 어마어마한 수의 모니터가 달린 컴퓨터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단 말이지.”


레나는 미소를 지었다.


“영화 많이 보시나 봐요? 사실 그러고 싶긴 한데… 전기세가 너무 많이 들어서요. 그런 건 LAD 지하에 있어요. 조 씨 사무실이요.”


지원은 문을 열고 거실로 나왔다. 주방과 거실이 함께 있는 방에서 지원은 TV 앞에 털썩 주저 앉아 물었다.


“그래서 빨고 있는 옷은 얼마나 남았어?”


“30분은 남았죠. 아침 드실래요?”


“해주면 고맙지.”


“아, 그리고.”


지원은 옷장에서 티셔츠 한 장을 꺼내 던졌다.


“이거 입어요. 쬐끄만 젖통 흔들고 다니지 말고.”


“죽고 싶냐?”


레나는 묘하게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죽여 보시던가요.”


잠시 후, 한창 요리를 하던 레나에게 지원이 다가왔다.


“레나, 부탁이 있는데.”


“네? 뭔데요?”


“작은 옷 없냐? 옷이 너무 크다… 가슴이 다 보이잖아.”


레나는 한눈에 봐도 웃음을 참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게 제일 작은 건데요.”


“이런 씨발. 죽어버려.”


“힘의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빨리 밥이나 해.”


잠시 후, 두 사람은 아침밥을 먹고 이리저리 이야기를 나눴다. 지원이 물었다.


“그래서, 금요일날 할 일 말이야. 내가 해 본 경험상 위장취업이 괜찮을 것 같아.”


“위장취업이라면?”


“너랑 내가 거기 매춘부로 위장하고 그 인간이랑 같은 방에 들어간 다음, 납치를 하든 뭘 하든 해서 정보를 불어내게 만드는 거지.”


“하지만 그 사람이 우리 둘 중 한 명을 지명하리란 보장이 없잖아요.”


“내가 그런 식으로 의뢰를 처리했을 땐 거기 포주가 조 씨랑 아는 관계였는데. 이번에도 그걸 이용하거나, 아니면 정말 너나 내 능력을 믿어야지. 난 몰라도 너는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이거 때문에.”


지원은 손가락으로 레나의 가슴을 툭 쳤다.


“아무튼, 이건 조 씨한테 한번 물어볼 게.”


지원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잠시 후, 조 씨가 전화를 받았다.


“어, 미세스 리. 아침부터 무슨 일이야?”


“조 씨, 부탁이 있어. 지난번에 갔던 갈음동에 ‘로켓 퀸’이라는 매음굴이 있을 거야. 그 쪽 관계자랑 뭐 아는 사이라던가 그런거 있어?”


“’로켓 퀸’? 거기면 내 소관이 아니야. 하지만…”


잠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조 씨가 입을 열었다.


“거기 포주가 돈을 엄청나게 밝히기로 유명하지. 한 30만원 정도만 꽂아주면 넘어갈 수 있을 걸? 그나저나 거긴 왜?”


“말하자면 설명이 길어. 내일 가서 알려줄게. 고마워, 조 씨.”


전화가 끊기자 지원은 기지개를 폈다.


“그렇게 됐어. 내일 LAD로 오라고.”


“그나저나 언니, 전화 받을 때… 왜 그런 거예요?”


“응? 뭐가?”


“손가락으로 거길 눌렀잖아요.”


“응? 그래, 그렇게 눌러서 받는데 왜?”


“눈짓만 해도 받을 수 있는데요?”


잠시 정적이 돌더니, 지원은 몹시 당황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 그냥 나한테는 이게 익숙해서 그래! 뭐, 뭐 문제 있어?!”


“없죠.”


레나는 그제서야 지원이 자신보다 10살은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귀여우셔.’


잠시 후, 세탁이 완료되자 레나는 옷들을 꺼냈다.


“언니, 근데 이거 안 말랐는데요?”


지원은 아직도 축축하게 젖은 빨래들을 바라보았다.


“그냥 집에 갈까? 나중에 찾으러 올 게.”


“상관은 없는데… 어떻게 가시려고요?”


“차 있잖아.”


“아, 그렇네요. 그럼 제 옷은 언니 옷 가지러 올 때 줘요.”


“그렇게 할 게.”


짐(그러니까 권총)을 정리하는 지원을 보던 레나가 물었다.


“브라도 빌려 드릴까요?”


“어차피 안 맞아.”


잠시 후, 무사히 차에 탑승한 채 집에 돌아온 지원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또 잠을 청했다. 밤이 되어서야 일어난 그녀의 눈에 문뜩 창문 너머로 보인 서울의 야경은 이루 말 하기 힘든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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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의를 위한 적절한 검열


TMI) 지원의 연락처에는 레나가 '젖탱이 큰 변태 꼬맹이'로 저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