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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세상은 하나둘씩 무너졌다.


그리고 그 시작은 카니발이었을 것이다.

그래, 카니발이었다.


그날 카니발에서 그 혼령만 안 만났어도 이렇게는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혼령이 준 육편만 먹지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 혼령을 피하기에는 그 육편의 맛은 너무 미미(美味)였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결국 오늘도 그 혼령에게로 와버렸다. 그 너무나도 맛있는 육편을 얻기 위해서였다.


"혼령님, 육편을 주시옵소서."

"싫다. 그러면 나를 즐겁게 해달라."


혼령을 즐겁게 할 만한 것? 그거면 충분하겠지.


바로 주머니에서 레이저를 꺼냈다. 그리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고향에서 전해져오는 전통적인 춤 '사이보그 댄스'였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 근미래적이고 초차원적인 춤사위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넋을 놓고 마치 자신이 시간여행을 한 것처럼 감격하는 춤이었다.


혼령도 흡족한 듯 했다. 혼령은 나에게 육편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 육편은 나의 것이다!"


저 멀리서 무언가 거대한 것이 몰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티라노사우르스였다.


"내 이름은 티라노사우르스 라이더! 나보다 더 혼령님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감히 너처럼 무식하게 티라노사우르스나 타고 다니는 정신나간 놈이 혼령님을 어떻게 기쁘게 할 수 있겠나!"


나의 선전포고를 티라노사우르스 라이더(이하 라이더)는 가볍게 무시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100만원이옵니다."

그것은 금본위제도에서 아주 잘 먹힐 뇌물이었다.


그러나 역시 혼령님에게는 통하지 않는 듯 했다.


"이런 걸로 나를 기쁘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느냐? 저자의 사이보그 댄스처럼 재미있는 것을 가져오너라."


역시 우리 고향의 사이보그 댄스는 여기서도 통할 줄 알았다.

그러나 라이더도 대항할 수단이 있는 것 같았다,


"좋다. 너에게 댄스배틀을 신청한다. 이긴 자가 혼령님의 육편을 갖는 것이다!"

"좋다. 허락한다."


라이더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매우 강력한 불교의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주 신성하고,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마치 무소유의 세계에 온 듯 편안했다.


"어떠냐. 이것이 나의 '돈오점수 댄스'이다."


"호오, 확실히 강적이로군. 이만한 싸움은 오랜만이군."


세상에는 마릴라피나타파이라는 단어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지는 않아서 서로에게 떠넘기려는 미묘한 눈빛. 그러나 그런 말을 만든 사람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승부에 그런 말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유상의치 댄스."


유상의치. 치과에서 사용하는 보철물의 일종. 이 말을 그대로 녹여낸 듯 마치 이가 아프지만 치과에 가기 싫어함과 동시에 치과에 가지 않으면 이 통증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소년의 모습을 담아낸 댄스이다. 이는 내가 5살때 치과에 다니면서 터득한 댄스였다. 


내 경이로운 춤사위에 라이더가 감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라이더도 곧 맞받아쳤다.


"세신사 댄스."


확실히 감탄스러웠다. 목욕탕 알몸으로 누워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긴다는 수치심과 이를 능가하는 때가 벗겨진단는 행위로 인한 쾌감. 이 모든 것을 한방에 녹여낸 것이 세신사 댄스였다.


나도 질 수 없었다. 라이더도 질 수 없었다. 이에 우리는 동시에 댄스를 추기로 했다.


"메이드 댄스!"

"복상사 댄스!"


확실히 대단했다.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메이드에 대한 취향, 그리고 그 취향의 종착지. 그 둘이 어울린 댄스는 대단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서로는 서로의 댄스 배틀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우정이 싹트고 있었다.


그때였다. 혼령님이 우리의 정신을 일깨우며 일침을 주었다.


"야 이 미친 새끼들아, 너희 때문에 마을이 날아갔잖아!"


그 말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주변에는 잔해더미가 뭉탱이로 나뒹굴었고, 나선계단은 이미 부서져있었다. 이 외에도 마을은 완전히 붕괴되어 장수풍뎅이 한 마리조차 남지 않았다. 그야말로 폐허도시였다.


"우리가 무엇을 한 거지?"

"그러게. 그 육편 때문에..."


혼령이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해 육편을 던졌다.

"댄스배틀은 재밌었다. 그러니 양쪽 모두에게 육편을 주겠다. 그러나 이 마을은 너희들이 모두 복구해야 할 것이다."


육편을 넙죽 받았다. 라이더는 원반을 받는 강아지처럼 입으로 육편을 받았다. 저런 기술이 있다니 나도 따라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너희들에게 무화과타르트를 주겠다."


혼령님께서 육편에 이어 무화과타르트를 하사하셨다. 나도 라이더를 따라서 입으로 받았다. 라이더도 질투하더니 같이 입으로 받았다.


"이 무화과타르트는 댄스력에 비례해 마을을 회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 힘으로 마을을 고쳐라."


혼령님의 놀라운 뜻에 감탄했다.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결심했다. 바로 춤을 추기로.


"알카에다 댄스!"

"특이값 분해 댄스!"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알카에다 댄스는 뒤틀린 신성력을 통한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주었고, 특이값 분해 댄스는 수학적으로 정갈하게 임의의 행렬을 부수는 정돈된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아직 부족하다! 너희들은 고깃국에 들어가는 맛간장 정도의 양밖에 마을을 고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그 춤을 추는 수 밖에."

삼분손익법 댄스. 국악에서 악기인 십이율관의 길이를 정하는 방법. 아주 전통적이고 향토적인 춤이지만, 잘 정립된 체계와 정갈한 음색이 매력적인 댄스였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깊은 것이 있었다. 삼분손익법 댄스는 수백년간 이어져온 댄스. 음악으로부터 인정받기만 한다면 수백년간 축적된 에너지를 빌릴 수 있을 것이었다.


"삼분손익법 댄스!"

"삼분손익법 댄스!"


그 순간 마을이 반짝 빛이 났다. 우리는 음악에게 인정받았다. 삼분손익법 댄스로 마을이 번쩍이더니 다시 돌아왔다.


"다행이다."

"그러게. 우리가 해냈어."


서로 부둥켜안았다. 이제 우리는 하나였다. 우리는 일심동체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을을 부순 벌로 통아저씨가 작은 가방에서 나오듯이 우리도 작은 가방에 구겨져서 운반되어 내쫓겨졌다. 그래도 다시 받아줄 마음은 있는 듯 했다.


나와 라이더는 서로의 손을 잡으며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해냈어."

"평생 함께 하자."


그렇게 둘은 사랑의 댄스를 추었다.


그러나 사랑의 댄스는 너무 강력해 블랙홀을 만들 지경이었고, 결국 혼령은 킬러를 고용해 그들을 처리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을 때까지도 한 쌍의 오리처럼 서로를 붙들며 행복해하고 있었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