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단어 : 


홀아비좆

공산당 선언

파프리카

창작문학채널

정월대보름

세신사

제사



그냥 쓰고싶은 것을 썼습니다. 좀 길어지긴 했는데..






Over!




 "......으."

 그는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머리가 텅 빈 채로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

 "......내 머리가 비어있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야! 내 머리의 잘못이야."

 민희가 지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문제점과 현 가계 부채의 증가에 대해서 깊게 논했지만 진석의 머리에는 무엇 하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부가 더 많은 보조금을 지금해야한다는 이야기였나?"

 "아니야!"

 민희는 테이블을 툭 치며 화를 냈다. 카페 안은 좀 시끄러웠기 때문에 내 여자친구가 큰 소리를 내었다 한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정말이지. 뭐 궁금하다고 해서 설명해주면 이해도 못하고 말이야. 내가 봤을 땐 경제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개념조차 머리에 들어있지 않음이 분명해."

 "뭐. 그럴 수 있지."

 "저번에는 대구랑 대전중에서 어디가 더 남쪽에 있는지도 몰랐잖아!"

 "모를 수도 있지."

 "다 그렇게 수긍해버리면 어떡해.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어. 내 생각엔 기초상식 정도는 좀 길러둬야 할 것 같아."

 "뭐. 알겠어. 너 커피 다 마셨지? 나갈까?"

 "재촉하지마. 시간은 나가야 할 시간이긴 하지만."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떠다니고 바닥에는 낙옆이 조금 떨어져있다. 길가의 몇 그루의 나무의 수만개의 나뭇잎들은 노랗게 물들어 당장이라도 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덧없음이라면 꽃이랑 다를바가 없고 아름다움을 비교해봐도 그렇다. 민희는 카페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은 잊어버린 것 처럼 산책로를 방방 뛰어다니고 있었다. 진석은 그녀가 산책로의 풍경과 구분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 장면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노란 가로수들 사이에서 툭 튀어나오지 않고 어우러져서 자연스러운 물상이 되어 있었다. 그녀는 시카고 학파의 열렬한 신봉자이지만 지금에선 그저 귀여운 대학생이었다. 진석은 시카고 학파와 케인즈 학파의 차이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 역시 지금은 별로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진석은 고체물리학을 전공하였고 이를 통해 서서히 떨어지는 주변의 나뭇잎들의 거동을 통계적으로 분석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사진찍어줄께."

 가방에서 삼각대를 꺼내서 스마트폰을 거치해두고 타이머가 설정된 스마트폰의 셔터 버튼을 누른 후 뛰어가서 서서 포즈를 취한 후 둘은 웃었다.

 "이쁘게 나왔네."



 세현은 눈을 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밀실. 자신은 손이 뒤로 묶인채로 의자에 앉아있다. 자신의 주변에는 모르는 남자 넷이 나를 보고 있었다.

 "어이. 할 이야기 없나?"

 있지. 갑자기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던 나의 얼굴에 갑자기 무언가를 가져다대었고 나는 의식을 잃었다. 그렇다면 나는 납치를 당한 것인데, 이 사람들의 용모를 보니 뭔가 높은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외모만 말숙한 건달이거나. 잘 모르겠다.

 "당신들은 누굽니까? 왜 제가 여기에있죠?"

 "우리는 김세현씨를 심문할겁니다. 당신은 국가 안보에 위협을 끼치는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사태의 위급함을 고려 우리는 당신을 구금하기로 한겁니다. 바로 본론으로 넘어갑시다."

 그냥 약간 잘생긴 옆집 아저씨처럼 생긴 사람이 세현에 귀에 입을 가져다대고 물어보았다.

 "물티슈를 어떻게했지?"

 "물티슈?"

 "너가 데리고 있는 여자. 그 여자는 물티슈이다."

 세현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가 물티슈. 사람이 물티슈. 다 처음들어보는 정보였다. 게다가 그는 그런 수상한 여자와 접촉한 적도 없었다. 그는 아파트에서 월세로 자취를 하고 있었으며 취직준비를 하면서 집에서 재료를 사와서 이런저런 요리를 해먹는 것을 재미로 삼아 하루하루를 사는 무고한 백수였다. 그의 잘못은 아마도 하루쯤 밖으로 나가서 밥을 먹어볼까 하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 것 밖에 없을 것이다.

 "저는 몰라요!"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있어. 모든 증거가 너의 혐의를 정황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그게 무슨말인지 저는 몰라요!"

 "안되겠군."

 그는 탁자에 작은 통을 올려놓았고 그 덮개를 열었다. 안에는 샤프심 굵기의 쇠로 된 침들이 담겨있었다.

 "이게 너의 손톱 아래로 들어갈거다."

 세현은 생각했다. 나는 누명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거부해봤자 고문은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한편으로 생각했다. 우리나라 정부가 이 정도로 비인도적이었나? 이리도 국민에게 잔인한가? 내가 물티슈를 숨기고 있다는게... 그렇게 큰 죄인가?"

 "저......는 물티슈가 뭔지도 몰라요."

 "하하하!"

 옆의 남자가 웃는다. 외모만 봐도 악랄하게 생긴 그는 나에게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것만 같았다.

 "내가 오늘 들은 이야기중에서 가장 웃긴 농담이었어...."

 세현은 자신의 결백함을 보이려고 해봤자 끔찍한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알았다......


 흙길을 터벅터벅 걷고있는 남자가 있었다. 지나가던 고라니가 저 먼치에서 잠깐 멈춰서 그를 보더니 이내 나무들 사이로 들어갔다. 이윽고 그 남자는 한 오두막과 연못을 발견했다. 그는 연못 옆에 잠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그는 안이 보이지 않는 보따리 둘을 땅에 내려놓고 바닥에 앉았다. 연못의 한가운데에는 꽃이 있었다. 그 꽃을 꺾는 것은 결코 쉽지않아 보인다. 산속은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그는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다. 오두막 안은 버려져 있었으며 매우 너저분했다. 그는 다시 나왔다. 그는 호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가 정신을 집중하자 연못의 물이 모두 얼어버렸다. 그는 얼음 위를 걸어가서 그 꽃에 손을 데었다.. 손에 쥐어진 뜯겨나간 꽃은 곧이어 바스라지더니 어떤 글귀가 적힌 종이로 변하였다. 그 남자는 그 글귀를 읽는다.


 "지금부터 물티슈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씀드릴께요!"

 그 말을 하기가 무섭게 그들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세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왜 놀라는걸까.

 "저는 물티슈를 좋아해요. 집에 브랜드별로 물티슈를 사놓거든요. 제 집에는 물티슈가 한가득입니다. 어느날 저는 클럽에서 한 여자를 만났고 그녀가 마음에 들어 모텔로 향했고 피자를 시켜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말하더군요. 자신이 사실은 물티슈라고요. 저는 믿지 못했지만 그녀는 당당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당연히 그녀를 수집하여 저의 콜렉션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게 저번주 금요일이었어요. 저는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녀를 데리고 제 친구들에게 보여줬습니다. 친구들이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비로소 제가 인간형 물티슈의 오너가 되었구나 하는 자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물티슈는 지금 어디로 갔지?"

 "그건 말입니다."

 "지금 진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서 말하고 있잖아!"

 "아닙니다. 저는 진실만을 말합니다."

 "앞으로 한마디라도 더 거짓말을 하면 이 침을 다 삼키게 할거야."

 "이봐. 우리가 아무리 악독해도 그런 짓은 하지 않아. 손톱을 전부 뽑아버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만."

 "그래서 저를 못믿는겁니까?"

 "우리는 그것만 원해. 물티슈가 어디있는지."

 "편의점에 가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을 하는게 아니잖아!"

 세현은 화가났다.

 "제가 물티슈를 더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당신들 손에 넘어가면 무슨 짓을 할지 제가 어떻게 압니까?"

 주먹이 세현에게 날아왔고 세현은 의자째로 뒤로 자빠졌다.


 그때였다. 갑자기 외부에서 굉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건물이 뒤틀리는 듯한 소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너 밖에 나가서 좀 확인해봐."

 세현과 남자들이 있던 취조실의 천장이 덜컹 하더니 위로 날아갔다. 세현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젠 확인해볼 필요가 없겠네......'

 그리고 나서 세현을 고문하려던 남자들도 공중으로 날아가서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

 덜컹! 취조실의 문이 열렸다. 세현은 잠시 생각하고선 유연성을 발휘해 묶여있는 팔 사이로 다리를 통과시켜 수갑을 앞으로 뺐다. 그리고선 취조실 앞을 달렸다. 이상하게도 내부에는 그를 제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앞으로 내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크지 않은 건물이었다. 세현을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현은 막 달렸다. 그러다가 발에 무언가 차였다. 자동차 키였다.

 밖은 어두웠다. 세현은 주차장으로 갔다.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아마 자신을 쫓아오는 거겠지. 열림 버튼을 막 눌러대면서 주차장을 가로지르며 뛰어가다가 깜빡거리며 백미러가 열리는 흰색 렉서스를 발견했다. 세현은 묶여있는 손으로 힘겹게 차 문을 열고 닫은 다음 시동을 켰다.

 "잠시 실례하지."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조수석 문이 열리고 이상한 차림의 남자가 탑승해버렸다. 그는 손에 배낭을 두개 들고 있었다. 세현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날 잡으러 온 사람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세현의 손목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수갑이 스르륵 풀렸다. 그는 자유로워진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근데... 어디로 가야하지......'

 세현은 일단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물티슈를 찾으러가지."

 "네?"

 "우리들이 물티슈를 찾으러가야지."

 "하지만 저는 물티슈가 뭔지도 모른다구요!"

 세현의 목소리는 과장되게 에코가 들어가있다. 차는 계속 달려나간다. 스크린이 꺼진다. 크레딧이 올라간다. 불이 켜진다. 영화관의 사람들은 이것이 현실이 아님을 가볍게 깨닫고서 일어나 출구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 무리에는 진석도 있었다.


 오락실에서 둘은 공을 주워서 골대에 열심히 집어넣고 있었다. 진석은 안쓰던 근육을 쓰다보니 몸이 벌써 뻐근한 듯 하다. 결과는 동시에 3라운드 진입에 실패. 단 몇 골 차이로 진석의 진땀승이었다.

 "나를 위해 괜히 아슬하게 맞춰줄 필요 없어"

 민희가 웃으면서 말한다. 그런 거 안했는데. 그는 최선을 다했다. 혹시 그녀가 나를 위해 저준 것이 아닐까? 그건 모르는일이다.

 진짜로 모르는 일이다.

 "물리학과답게 분석하면서 던지라고!"

 "그거랑 그건 별개라고!"

 "생각해보니까 당구는 내가 확실하게 더 우위인데."

 "그러니까 상관없다니까."

 "당구공의 움직임을 물리학적으로 잘 예측하면서 치면 될텐데. 아무래도 너는 바보인 것 같네. 잘할 줄 아는게 없어"

 농구공을 실컷 던지고나서 주변을 둘러본다. 중학교 시절에 진석은 철권하는 친구를 따라 오락실에 발을 들였고 거기에서 리듬게임에 입문했었다. 투덱이 눈에 띈다. 'IIDX 45 Void Wanderer'. 도통 컨셉을 알 수 없는 버전이구나. 민희는 노래방에도 들르자고 했다. 참고로 민희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박자감이 좀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비밀이다.

 노래방에서 나온 후 나는 시간이 남으니 영화를 보자고 제안했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상영 목록을 보면서 '이건 아직도 하네.' '봤던건데...' '재미있는게 없네...'와 같은 말을 하면서 툴툴대었다.

 "나 이 영화 아직 안봤어."

 "나도 그건 안봤는데.. 평가가 너무 나쁘지 않아?"

 그러더니 그녀는 그 영화를 그가 먼저 관람한 다음 자신에게 영화의 감평를 보고할 것을 제안했다. 같이 보면 좋지 않냐는 말에 민희는 이미 다본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밖에 없으며 저 독보적으로 평가가 나쁜 영화에 오히려 흥미가 생겼지만 굳이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너가 반드시 봐야한다는 논리를 들었다. 그럼 차라리 근처의 농촌 역사 박물관에 가보자는 그의 제안도 그녀는 다음으로 미뤘다. 꼭 보라는 그녀의 당부. 그리고 둘은 포옹과 키스를 했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방금 본 영화는 요즘에 유행하고 있는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클리셰의 파괴 말이다. 하지만 클리셰를 파괴하는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플롯은 이상해졌고 메세지는 흐려지고 말았다. 진석은 이 영화가 별로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연출만 봤을때는 훌륭했다. 취조실의 천장이 들어올려진다거나 제임스가 탁자 위의 물컵을 얼리는 장면 등이 말이다. 하지만 맥락이 없으니 영화는 그냥 보기에만 그럴싸하게 보일 뿐이었다. 진석은 물티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보려 했으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왜인지 그냥 짜증나고 오만해 보이기만 하는 인물들만 있었고.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 이동했다. 진석은 자신이 예전에 살던 곳에 내렸다. 이곳은 과거의 기억과는 많이 달랐다. 분명 뒷산이 있던 곳이 다 깎여나가 평탄한 공원과 도서관이 지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치 산이 있었긴 했냐는 듯 차도가 깔려 저 너머로 뻗어있는 것이 보였다.

 사실 그는 사흘 전에 전화를 받았다. 휴대폰에 찍힌 그의 이름을 보고서 그는 오랜만에 만나서 식사하고 술이나 먹자는 줄 알았다. 고등학교 동창이라 대학생일때 자주 만나서 같이 놀았었다. 지금은 조금 서먹해졌지만 결코 먼 사이는 아니였으니까.

 "큰집에는 갔어?"

 "모래 당일치기로 제사지내고 올 듯."

 "그러면 그 다음날에 우리 한번 만나자. 나 인생샷을 찍고 싶거든."

 "뭐. 사진?"

 타이밍이 중요하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한다. 장소는 이미 봐왔는데 혼자서 찍긴 아무래도 좀 힘들 것 같아 나를 부르겠다는 것이었다. 뭐. 친구사이니까 안될 건 없지.

 그리고 진석은 저 멀리서 비닐봉투를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뭐 먹을건 별로 없어서. 자."

  식탁에는 빨강과 노랑의 잘려진 파프리카 조각들이 접시에 놓여 있었다. 진짜 너희 집에는 먹을 것이 없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한 조각을 집어들었다.

 무슨 꿍꿍이지. 혹시 파프리카에 약이라도 탄거 아냐. 방의 책꽂이를 둘러보다가 '공산당 선언'이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녀석도 혹시 간첩 아니야?

 "이 책은 왜 있어?"

 "그거 우리아빠 책이야."

 "이런 책이 집에 있다니."

 "아빠가 책읽기가 취미셔서. 온갖 책들이 집에 있어."

 과연 책장에는 프로이트, 쇼펜하우어 등 여러 학자들의 책들이 들여져 있었다. 오래되어 보이는 책을 꺼내서 책을 펼치자 세로쓰기가 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오래된 책에서 나오는 특징적인 향기가 느껴진다.

  그의 비닐봉투 안에는 여러가지 레토르트 식품들이 담겨있었다. 슈퍼에서 물건을 사서 오는 길이었단다.

 "이것들은 다 뭐야?"

 "내 식량. 간편하게 끼니를 채울 수 있지."

 "이런 것들 말고 좀 제대로 챙겨먹어."

 "그렇지만 이게 편한걸. 안챙겨먹는 것보단 나아. 그리고 가끔 파프리카나 오이 꺼내서 먹으니까 영양불균형도 없을거야."

 "너 보기보다 철저한 편이구나. 동시에 엉성하지만."

 "나도 너가 파프리카를 생각보다 잘 먹어줘서 다행이네."

 분명하다. 이것은 분명히 파프리카에 독이든 뭐든 타 놓은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나도 어쩔 순 없다.


 준비물은 별거 없다. 디지털카메라와 기타 물품들을 트렁크에 넣고 일단 저녁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추석 다음날이라서 식당은 다들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곳이 문을 닫았다. 우리는 미리 전화를 해둔 상태였기 때문에 인도 식당에 들어가 예정된 시간에 카레를 먹을 수 있었다.

  상가에는 여러 간판들이 있었다. 저 건물 1층에 있는 귀금속 가게는 내가 이사를 가기 전부터 있던 오래된 곳이다. 문득 민희에게 반지를 선물할 날을 상상해봤다. 바로 옆의 빵가게는 빵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맛있어보인다. 그리고 그 옆 간판에는 '세신사 전문 양성학원 6F'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런 학원도 있구나 라고 무심결에 생각했다.

 "확실히 기존에 먹던 인스턴트 카레와는 다른 느낌이지만 인도에 직접 가본 적이 없으니 이게 진짜 본토의 카레는 아니겠지. 하지만 맛있어. 그렇지?"

 성태는 운전하면서 방금 먹은 식당에 대해 진지하게 리뷰했다. 진석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날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지금 거의 다 왔는데 너도 주변을 한번 둘러봐. 달이 나와야 하거든."

 "달?"

 하늘을 쓱 둘러보았으나 달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걸어가자 상가 건물에 가려져있던 보름달이 얼굴을 드러냈다.

  "뭐. 딱히 생각나는 곳은 없는데."

  "그래? 그럼 여기서 바로 준비하는거야."

  성태는 육교를 가리켰다. 육교 너머로 아파트 단지가 보였는데 아파트들은 서로 마주보면서 일렬로 정렬되어 있었다. 아파트는 양 옆의 하늘을 가렸고 가운데에서 트여있는 하늘이 드러나있었다.

  "30분 뒤에 달이 한가운데에 올거야. 그때 맞춰서 찍으면 돼. 나와 달이 같이 보여야 해."

  과연. 저 하늘 가운데에 달이 위치하는 것을 상상해보니 꽤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은 미리 연습촬영을 하고 간단한 피드백을 했다. 이 친구가 나를 추석에 부른 이유가 있었구나. 한달에 딱 한번 이런 구도의 사진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 있을까.

  달이 미학적인 특정 위치에 자리잡는 것은 그저 '연출'일 뿐이다. 확실히 쿨해 보이긴 할거다. 그런데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친구를 굳이 불러서 찍을 만큼의 의미 말이다.

  그러나 진석은 곧 후회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는 것이 좀 내키지않았다. 이게 무슨 돈 주고 보는 영화도 아니고. 모든 것이 진지한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인생샷은 유명 관광지나 전망에서 찍은 것과는 확연하게 차별화가 되는 것도 있었다. 조금 수수하긴 해도 말이다. 그래서 진석은 순순히 협조했다.

  준비를 다 마친 성태는 이런 말을 했다.

  "봉준호도 마더의 마지막 장면을 찍을때 정확한 장소와 시간을 찾느라 고생했다고 해."

  "......그래."

  시간이 되었고 달이 하늘의 한가운데에 자리잡았다. 육교와 정확히 정렬되었을 때 성태는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너도 원한다면 찍어."

  "아니. 난 됐어."

  그러다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야. 같이 한번 찍자."

  성태가 카메라를 조작하고 나서 나에게 다가왔다. 우리 둘은 같이 서서 셔터가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사진을 확인해봤다. 커다란 달이 있고 육교가 있고 사진 전체가 아름다운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그 대칭의 중심점에 나와 그가 있었다.

  미소짓는 진석을 보고 성태가 의외라는 듯 말을 던졌다.

  "난 너가 전혀 이해못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흥미가 있는 것 같네."

  "뭐. 아무튼. 여기는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네."

  "주거지구에서도 좀 구석진것도 있고. 상가에는 사람들 많던데. 다들 집 밖을 잘 안나오네?"


 "성태야. 너라면 거기에서 무엇을 할 것 같으냐."

  아빠의 목소리였다. 성태는 마우스 휠로 아카라이브라는 사이트의 창작문학채널 페이지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어딜요."

  "아니. 아빠 어디가는지도 몰라?"

  "아뇨. 알죠."

  "흠."

  "저는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다니 고맙다."

  스피커폰이 켜져있는 전화가 키보드 옆에 놓여있다.

  "그래서, 너는 우주에 가면 뭘 하고싶니?"

  "아빠는 거기서 주어진 임무와 실험을 할 거잖아요. 따로 하고싶은 일을 찾고있는 건가요. 만약 제가 가게 된다면. 저는..... 뭐. 인터넷만 되면 돼요. 거기는 인터넷 돼요?"

  "너는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실시간으로 스트리밍하는걸 유튜브에서 본 적이 없니?"

  국제우주정거장(ISS)이 구식 설계와 유지보수 문제로 임무를 종료한 이후로도 미국의 아르테미스 계획은 비록 몇 차례의 연기가 있었음에도 계속 진행되었다. ISS를 대체할 루나 게이트웨이는 달을 공전하는 차세대 우주 정거장으로 완공된 이후에 공모를 통해 '데이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2년에 걸쳐서 데이지가 완성된 후로 벌써 10년이 지났다. 거기에 아빠가 간다고 하셨다. 좀 특별한 일이긴 하지만 아빠 말고도 여러 한국인들이 이미 우주로 올라가본지라 이젠 언론에서도 크게 주목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데이지가 ISS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잖아요."

  "여러 시도 끝에 월드 와이드 웹이 연결된 지 3년 째 란다."

 "하지만 속도가 느리다면 의미가 없죠. 저는 라플라스 다크니스의 방송을 봐야 하거든요."

 "그건 뭐냐."

  "홀로라이브 모르세요?"

  "홀.. 홀애비좆? 홀아비좆이라고?"

  "하... 아빠...."

  "그게 버튜버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너가 맨날 보는? 진짜 내 아들은 글러먹었구나. 갑자기 밥은 잘 챙겨먹는지 의심이 드는군. 우주에 가서까지 그런걸 보겠다는거냐."

  "물론이죠. 달의 헤일로 궤도 위에서 지구를 바라보면서 그녀의 방송을 보게 된다면 정말로 최고의 경험이 되겠네요. 달 뒷편으로 가지 않으니 통신이 끊길 일도 없겠구요."

  "아들아..."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그러면 호시카와 사라의 방송을 보기로 하겠다."

  "아버지.... 당신은 대깨니였군요."

  "대깨홀인 너가 할 소리는 아니다."

 허허 하고 아빠가 웃는다.

  "아들아. 내가 왜 그녀의 방송을 보는지 아느냐?"

  "아마 사라와 동년배라서 코드가 맞으시는 것 아닐까요."

 "부정하지 않겠다. 대신 그녀의 이름을 보렴. 호시카와 사라. 이름에 '별'이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역시 아빠는 우주를 좋아하시는구나. 아마 데이지에서 우울증에 걸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홀로라이브의 호시마치 스이세이도 이름에 별이 들어가요. 이참에 홀로에 입문해보는 건 어떨까요?"

  "난 관심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됐고. 잘 다녀오세요."

  "보고싶으면 밤마다 하늘을 보렴. 달 주변에 별보다 밝게 빛나는게 보일거다. 거기에 아빠가 있다."

  "네."

  "그리고 전화도 할 수 있을거야. 아마."

  "아빠도 좋아하시겠네요."

  "뭘?"

  "아니에요."


  조수석에 앉아있는 진석은 휴대폰 알림 소리를 듣는다. 민희의 카톡 메세지였다.

 '뭐해.'

 '친구 만나고 있어.'

 '그러면 사진 찍은거 있으면 보여줘.'

 '알겠어.'

  이젠 익숙한 간섭이다.

  사진을 찍었을 때 카메라는 자동으로 사진을 클라우드로 전송했다. 성태는 그 자리에서 나에게 사진을 보내주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이걸 예상하고 같이 찍은 건 아니였는데 말이지. 나는 사진을 전송해주었다.

  "성태야. 너 혹시 보름달 돌아올때마다 이렇게 사진 찍을 생각은 아니지?"

 운전하던 그가 대답한다.

  "좋은 생각인데."

  "이번 추석에 찍고. 다음달, 그 다음달에도. 정월대보름에도 찍겠네."

  "뭐 꼭 그렇게까진 아니더라도 가끔 생각나면 다시 너 불러줄게."

  "그래. 육교는 그대로 있겠지."

 진석은 사진을 다시 확인해본다.

  "되게 감성있게 찍혔어. 달도 이쁘고."

  "그래?"

  "옷을 더 잘 입고올걸 그랬나."

 "그러면, 혹시 달을 좀더 확대해볼래?"

  "달을?"

  "응. 달을 자세히 봐봐."

   달 표면에는 크레이터들이 만들어낸 복잡한 무늬들이 있었다. 이런 것 까지 잡아내다니 역시 보통 카메라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뭔가 눈에 띈다.

 "달 위에 있을거야."

  "위에 말이지... 아."

  뭐가 있긴 했다.

  "커다란 인공위성이 있네."

 좀 더 자세히 실펴보니 왠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모양이다.

  "이거 달을 공전하는 인공위성 아니야? 데이지인가? 이게 사진에도 찍히는구나."

  "어떻게 알았어?"

  "과학 잡지에서 본 기억이 있어서."

 "너 보기보다 교양이 좀 있구나?"

  "나 그 말 살면서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

  진석은 성태를 보고 있었는데 그는 왜인지 뿌듯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말을 이어나갔다.

  "거기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