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복도를 한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식당에서 입을 것 같은 고무 앞치마를 두른 여자는 구둣발 소리를 복도 전체에 울리며 뚜벅뚜벅 걷다가 이내 어느 방 앞에서 멈췄다.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물이 잔뜩 채워진 욕조와 공중에 묶인 채 매달린, 머리에 두건을 덮어 쓴 사내가 있었다. 그 옆의 다른 남자들이 여자에게 경례를 하며 말했다.


“경위 님, 여기 잡아 왔습니다.”


여자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자 그 남자가 즉시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여자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이더니 이내 묶여 있는 사내를 향해 내뱉으며 말했다.


“벗겨.”


남자들이 사내의 얼굴을 거리는 두건을 벗기자 사내는 약한 조명에도 눈이 부신듯 몇 번이고 눈을 깜빡였다. 여자는 사내를 싸늘한 눈빛으로 바라보더니 대뜸 담배 연기를 사내의 얼굴에다 뿜으며 말했다.


“이 새끼가 무슨 조폭 행동대장이라고 했었나?”


“네!”


“이름은?”


“위세호라고 합니다.”


“중국인이야?”


“조선족입니다.”


여자는 언짢은 얼굴로 담배를 또 사내의 얼굴에다 뿜더니 말했다.


“나가 봐.”


“네.”


남자들이 나가자, 여자는 의자에 마치 아저씨처럼 앉았다.


“위세호 씨, 안녕하신가?”


사내는 유창한 한국어로 소리쳤다.


“여긴 어디야?! 나, 날 뭐하러 끌고 왔어?”


“현대사 시간에 주무셨나…? 뭐, 중국놈이라면 모를 법도 하지.”


여자는 팔을 양 옆으로 쭉 벌렸다.


“남영동에 온 것을 환영한다. 잘못한 놈, 잘못 안 한 놈이 끌려오는 곳이지. 하지만 넌 잘못한 쪽이구나. 그럼 환영식을 해야지?”


여자는 벽에 달린 기계장치로 다가가 레버를 앞으로 밀었다. 사슬에 매달린 사내의 몸 역시 앞으로 움직여 욕조 바로 위에 위치하자, 사내 역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이봐 잠…”


“물 좀 마셔.”


여자가 레버를 내리자 사내는 그대로 욕조 안에 처박혔다. 사내의 묶인 몸이 흔들리고, 욕조에 올라오는 거품이 조금씩 사그라들자 여자는 다시 레버를 올렸다. 사내가 물을 토해내며 헐떡이자 여자는 미소를 지었다.


“고작 이정도로 호들갑 떨면 힘들건데…”


여자가 기계의 다른 버튼을 누르자 사내의 손에 전극이 물렸다.


“이제 짜릿할거야.”


특유의 소리와 함께 사내의 비명이 방을 울렸다. 여자는 새로운 담배에 불을 붙이며 투덜거렸다.


“아까 그 녀석이 요즘 나한테 잘 보이려고 이리저리 해주던데, 승진하고 싶어서일까? 내가 좋아서일까? 조선족 양반, 한번 맞춰 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대답이 없네? 그… 예전에 유행하던 책이 있었는데 말이야… 뭐더라? 그래! ‘물은 답을 알고 있다’였지. 한번 입증해 볼까?”


여자는 또 레버를 내렸다. 1분 뒤, 다시 레버를 올리자 사내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뭐… 뭘… 묻고 ㅅ… 싶은 거야?!”


“니네 대장. 어디 있어?”


“몰라!”


“알 때까지 즐겨 보자고.”


사내의 비명과 함께 스파크가 또 튀었다.


“이제 기억이 좀 나나?”


“그래…”


“어디 있어?”


“그러니까…”


“땡! 늦어.”


또 레버가 내려가자 사내는 다시 욕조 안에 처박혔다.


“이봐, 어쩔거야? 네가 너무 몸부림을 쳐서 물이 줄었잖아.”


여자는 수도꼭지를 돌렸다. 물이 욕조에 넘치기 직전까지 차오르자, 여자는 수도꼭지를 잠그고 레버를 올렸다.


“5초 준다. 빨리 말해.”


“대림동… 중앙시장…”


“중앙시장에 돌아다닌다는 거야? 아니면 중앙시장 안에 본거지가 있는 거야?”


“…”


“물로 해선 안 되겠군.”


여자는 방 한켠에 놓인 단검을 들었다. 날의 일부에 녹이 슬었음에도 날카롭기 짝이 없어 마치 일부러 녹이 슬게 만든 것 같았다.


“이 15cm 단검이 네 가슴팍에 15cm 크기의 자상을 만들 거야. 천천히, 1cm씩 움직일 건데… 말하지 않으면 정확히 15cm 자상이다.”


여자는 그렇게 말하며 사내의 가슴팍을 단검으로 천천히 긋기 시작했다. 피가 칼날을 따라 여자의 손과 팔을 적시고, 사내는 비명을 질렀지만 칼날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5cm… 6cm… 초짜일 땐 여기서 실수를 많이 해서 너무 큰 상처를 입히곤 했지. 아니면 너무 빨리 그어서 실패하거나. 7cm… 벌써 절반이나 왔어. 15cm를 다 긋고도 그 아가리를 열지 않는다면 다음은 네 발바닥을 그을 거야.”


“중앙시장에 놈이 운영하는 가게가 있어! 돈세탁 용이지만…! 아무튼 놈이 거기 항상 짱박혀 있다고!”


여자는 잠시 칼을 움직이기를 멈췄다.


“음~ 아주 좋아. 좋은 정보야. 하지만 아직 6cm 남았어.”


“뭐?! 다 불었잖아!!”


“불라고 했지, 불면 멈춰준다고 한 적은 없어.”


사내는 미친듯이 비명을 질렀다. 피가 뚝뚝 떨어져 타일 바닥을 붉게 물들이자, 여자는 다시 버튼을 만졌다.


“상처가 난 상태에서 전기가 통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상처로 피가 솟구쳐, 그리고 피가 타서 그 틈으로 연기도 피어 오르지. 어떻게 아냐고? 너 같은 새끼들을 수도 없이 구워 봤으니까.”


또 사내는 몸부림을 쳤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상처에서 피와 연기가 튀자 사내는 축 늘어졌고, 여자는 그 15cm 단검을 사내의 뺨에 들이밀었다.


“이걸로 죽지 않는다는 건 내가 잘 알지. 기절했나? 아니면 기절한 척 한걸까? 대체로 이러면 일어나지.”


여자는 단검을 들어 그대로 어깻죽지를 쑤셔버렸다. 사내가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자 여자는 칼을 쑥 빼버렸다.


“성능 확실하네. 어이, 조선족. 아쉽게도 이번이 마지막이야. 너에게 ‘특별히’ 선택권을 주지.”


여자는 1부터 5까지 숫자가 적힌 카드를 들이밀었다.


“이거 중에 하나 골라 봐. 네가 고른 것 중에 하나로 끝낼 거니까. 참고로 전부 15와 연관이 되어있으며 고르지 않거나, 다른 숫자를 고르면 5개 전부 쓴다. 10초 줄게.”


사내의 호흡이 마구 거칠어졌다.


“4, 3, 2, 1…”


“사, 삼번! 삼번으로!”


“3번! 난 3을 좋아하지. 다른 번호는 뭔지 한번 볼까? 먼저 1번”


1번 카드를 뒤집자 사내는 안도했다.


“내가 사랑하는 베레타 M9A4로 15발을 갈기는 거였어! 다음은 2번!”


2번 카드를 본 사내의 얼굴이 안도로 풀어졌다.


“15분 동안 전기 통닭! 아~ 이거 아쉽게 되었구만. 다음, 4번.”


사내는 기쁨에 눈물까지 흘렸다.


“물고문 15분. 이거 걸린 사람이 좀 되는데, 아깝네. 5번.”


사내는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15cm 와이어로 교살. 아아~ 아쉬워라. 난 브레스 컨트롤을 좋아해서 말이야. 남편이랑 할 때 가끔 내 목을 조이거든. 그럼 네가 고른 3번은 뭘까~ 바로바로~!”


3번 카드를 뒤집자 사내가 가지고 있던 희망은 한순간에 절망으로 바뀌었다. 여자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방금 그 15cm 단검으로 깊이 15cm의 상처 150개. 혹시 네가 멀쩡하게 걸어 나갈 거라고 생각했나? 여기 남영동에 들어왔다가 제 발로 나가는 사람은 딱 둘뿐이야. 경찰과 형사, 잡혀온 사람이 어떤 죄를 저질렀든, 죄가 진짜로 있든 없든 적어도 자기 발로는 못 빠져나가. 지금 두려운가? 확실히 두려운 모양이군, 질질 싸고 있는 걸 보니까 말이야. 하지만 반응이 너무 빠른걸? 150번 찌르기 전까진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을 거니까.”


“사, 살려…”


“제노사이드에서 살아 남은 조선족이 오늘 한 명 없어지는 군."


사내의 비명이 방과 복도를 울렸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듣고 그를 구하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곧 그 방으로 올 사람은 단 두 명, 그의 시체를 소각장에 던질 말단 경찰들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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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병맛은 못쓰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