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졸았다. 난로가 꺼져 손발이 시리다. 입김도 난다. 달빛에 창가로 눈을 돌린다. 눈이 내린다.


 "오늘 밤 전국에 15cm 이상의 폭설이 내릴 것으로 예상..."


 속보를 확인하고 다시 밖을 본다. 좀 전보다 눈이 더 쌓였다. 평소 같았으면 집에서 커피나 마셨겠지만, 오늘따라 밖에 나가고 싶다. '동심이 자극되어서'와 같은 이유는 아니고,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여유롭기 때문이다.


 눈이 쌓일 동안 챙겨 입을 옷이나 점검하자.


 먼저 장갑을 찾는다. 옷장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작년에 사 둔 거라 그런지 짱짱하고 착용감이 좋다. 그다음에는 패딩을 꺼낸다. 보온이 잘 되는 게, 역시 거위 털이다. 마지막으로 핫팩 두 개를 꺼낸다. 탈탈 흔들어 양쪽 주머니에 한 개씩 넣는다.


 장구 채비를 끝내니 밖이 눈으로 꽤 덮여있다. 이제 신발을 신는다. 그리고 문을 연다. 집보다 훨씬 싸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한 준비가 아까워 길을 나선다.


 마침내 눈밭에 입성하였다. 너무도 조용한 것이 눈 내리는 소리까지 들릴 지경이다. 그 고요를 음미한다. 그리고 무언가 골몰히 생각한다. 머릿속이 점점 어지러워진다.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단순하게 고민한다. 맨 처음 생각난 것은 눈싸움이지만 같이 할 사람이 없다. 이 깊은 밤에 친구에게 연락하기도 좀 그렇다.


 그렇다면 차선은 눈사람이다. 눈사람을 만든다면 어떤 모양이 좋을까?


 눈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 번째는 2단 눈사람으로, 특유의 미니멀리즘이 돋보인다. 두 번째는 3단 눈사람이다. 나비넥타이를 달면 신사다움이 잘 나타난다. 3단 눈사람은 만들기 힘드니까 2단으로 만들기로 한다.


 먼저 손으로 눈을 모은다. 그리고 그걸 뭉쳐 살살 굴린다. 처음에는 손바닥으로, 그다음엔 손가락까지 써서. 어느 정도 커지면 주위를 돌아다니며 원하는 크기까지 눈을 굴린다. 이걸 한 번 더 하고 둘을 합친다. 마지막엔 기호에 따라 장식하면 완성이다.


 눈사람을 완성하니 뿌듯하다. 하지만 허망하기도 하다. 이제 다시 집에 가야겠다. 어, 근데 뭐지? 누군가 뒤에서 걸어온다. 눈사랑 할 사람을 구하는가?


 "이봐요."


 "왜 그러시죠?"


 "이것 좀 도와줄 수 있습니까."


 패딩을 뒤집어쓴 사람이 자루를 가리킨다. 어둠 속이라서 얼굴이 잘 보이진 않는다.


 "어디까지 도와드릴까요?"


 "쩌어기, 저쪽."


 방향을 확인한다. 알겠다 말하고 도와준다. 그가 끌어당기면 나는 앞으로 민다.


  "고맙수."


 그의 말을 듣고 이제 나도 집으로 향한다. 그런데 사내가 갑자기 포대에 말을 건다.


 "어이. 아직 살아 있나?"


 그러자 자루가 꿀렁거린다.


 "움직이라 한 적은 없다."


 사내가 포대를 발로 몇 번 걷어차더니 움직임은 곧 잦아들었다. 괜히 나섰다간 나도 저 포댓자루에 담길지 모르겠다. 


 집에나 가야지.


0화의 피해자가 어떻게 잡혀 왔을지 상상해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