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는 옛날부터 '겨울'이었다. 눈이 내리고 처음 밟는 발자국의 소리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어릴 적 기억이 가장 많이 남은 계절은 아이러니하게도 '여름'이다.

강렬히 아지랑이가 피던 어느 한여름의 오후 3시, 매미 소리가 쟁쟁히 울리고 뜨거운 열기가 내리쬐는,

나무 그림자 사이사이로 들어온 햇볕이 눈을 부시게 했던 그 날들의 기억이 선하다.

적당히 습하고 시원한 바람이 뺨을 스치고 느껴지던 그 여름의 향취가 선하다. 

명절날 시골 할머니댁의 마루에 앉아 먹던 수박의 맛과

친척들과 옹기종기 모여앉아 보던 투니버스의 동심과

일요일마다 찾아오던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가 선하다.

폴더폰과 스마트폰 사이를 지나가던 시절, 스마트폰 쓴다 하면 부러워하던 그 시절의 아이들이 선하다.

오후를 지나 저녁으로 달려가는 태양의 붉은 노을빛이 나무들을 비추면 나던 미묘한 외로움이 그리워진다.



설명할 수 없는 노스탤지어와 끝 없이 펼쳐지는 기억들의 병풍.

무언가 잃어버린 듯 아련히 생각나는 배경들과 사람들이 

아마도 내가 가장 그리워하는 과거의 조각들이다.

한여름,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