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떨리는 손으로 엘리베이터의 차가운 회색 버튼을 누른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엘리베이터 버튼의 차가운 감촉이 유달리 소름끼치게 느껴진다. 하긴, 그렇게 느껴질만 하다. 지금은 자그마치 새벽 3시니까. 대부분의 아파트 입주민들은 자고있을 시간이다. 내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이 괴담은 진행 도중 다른 누군가가 탄다면 실패한다. 그렇기에 가장 사람이 적은 새벽 시간대를 고른 것이다. 잠깐, 이런 생각을 하니 도리어 점점 무서워진다. 모두가 자고있다는 말은 바꿔 말하자면 내가 어떤 위험에 처해도 도우러 와줄 사람이 없다는 뜻 아닌가? 


"4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 엘리베이터 안내음이 정적을 깨고 차가운 밤공기를 가로지른다. 열린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 내 거친 숨소리가 넓게 울려퍼졌다.


"그래, 이건 그냥 괴담일 뿐이야. 설령 위험한 일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호출벨을 누르면 되고 정 무서우면 중간에 그만 두면 되니까 일단 계속 해보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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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닫힙니다."


 나는 겁먹은 나 자신을 애써 진정시키며 다음 층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2층... 2층 버튼이었다. 내가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몇초간의 시간이 흐르고 엘리베이터는 2층에 도착했다.


"2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가 2층, 내가 사는 층에 도착했다. 어쩌지? 지금에라도 그만 둘까? 아니, 그럴수는 없었다. 바로 지금을 위해 새벽 3시까지 졸린 몸을 일으켜가면서 견뎌왔던것 아닌가? 그리고 아직은 괴담의 극초반이다. 지금 멈춘다면 호기심에 나중에라도 이걸 다시 시도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문이 닫힙니다."


 설마 다른 누군가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기라도 할까 나는 서둘러 6층 버튼을 누른다. 그래, 그만둘수는 없지. 이 나라에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고작 인터넷 괴담과 엘리베이터 따위에 겁먹고 도망치랴? 그럴수는 없지. 나는 가슴을 펴고 엘리베이터 문 위의 기판을 바라보았다. 4층, 5층, 그리고 6층.


"6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6층 문이 열렸다. 예상대로 아무도 타지 않고 순조로웠다. 나는 다시 2층 버튼을 누르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5층, 4층, 엘리베이터가 한층 한층 내려갈때마다 고양되었던 내 마음도 같이 한층 한층 내려가는것만 같았다. 다시 2층에 도착했다. 이제 괴담의 막바지 단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제 곧 이 괴담이 허구인지 진실인지가 판가름난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10층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는 한번 덜컹이더니 천천히 10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괴담의 내용에 따르면 여기서 10층으로 간 뒤 5층으로 내려가면 한 여자가 탄다고 한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9층을 지난다면, 거의 성공한 것이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기판을 올려다 본다. 9층,


"10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바깥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했다. 잠만, 다시 생각해보니 고요한게 당연했다. 지금은 새벽 3시, 시계를 켜 시간을 확인해보니 지금은 3시 10분이었다. 새벽 3시, 그것도 어중간하게 3시 10분에 집 밖에 나갈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고 말고. 나는 호기롭게 5층 버튼을 누른다.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간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동안 나는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기능을 켠다. 만약 5층에서 그 여자가 탄다면 그 여자를 찍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로 이세계로 가게 된다면 돌아오기 전에 거기서 사진과 영상을 가득 찍고 유튜브에 업로드할것이다. 그럼 난 일약 스타가 되겠지. 만약 여자가 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수면 시간이 조금 줄어드는 것일뿐 그닥 큰 손해는 아니었다. 이제 곧 5층에 도착한다.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어 문에 앵글을 맞춘다.


"5층입니다. 문이 열립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나는 긴장된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여다본다. 5초, 10초, 30초가 지나도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지 않는다. 이게 왜 이러는거지? 괴담에는 엘리베이터가 멈춘다는 이야기는 추호도 없었는데?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것을 느끼며 버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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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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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각


 발소리였다. 정확히 두번. 나는 그 자리에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려던 자세 바로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엘리베이터 안의 기분나쁜 공기 사이로 누군가 엘리베이터에 오른듯 짧고 부드러운 바람이 휙하고 부는것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엘리베이터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어둡고 공허한 아파트의 복도만이 보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아니 확실하게 내가 지금 이 상황에 너무 과몰입하여 잘못 들은것이 분명했다. 나는 코웃음을 쳤다. 


"결국 이것도 가짜였구만."


 나는 1층 버튼을 눌렀다.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배가 고파졌다. 아파트 앞 편의점에서 야식거리를 사서 먹어야겠다.


"문이 닫힙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차가운 기계음이 퍼진다. 나에게 안도감을 주는 소리였다. 분명 정감따윈 느껴질리 없는 차가운 기계의 목소리였지만 지금의 나에겐 마치 어머니가 이름을 불러줄때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덜컹


 내 몸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뭐지? 이건 왜 이러는거지? 이건 분명 엘리베이터가 올라갈때 느껴지는 바로 그 느낌인데? 나는 고개를 돌려 기판을 바라보았다. 6층이 표시되고 있었다. 뭐가 잘못된거지? 분명 여자는 타지도 않았어. 그런데 엘리베이터는 왜 올라가는거지? 아니야. 이성적으로 생각하자. 낡은 건물이면 오작동으로 간혹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다고 괴담에서 말했어. 분명 그런 것이겠지. 뭐, 아무리 오류라고는 해도 1층을 눌렀는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라니, 유튜브 조회수 벌기로는 딱이네. 


 나는 내 폰으로 고개를 돌려 카메라 모드를 동영상 촬영 모드로 전환했다. 그리고 앵글을 기판으로 맞추기 위해 폰을 움직였다.


"...어?"


 짧은 순간이었지만 핸드폰 화면에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나는 다시 그곳을 비춰보았다. 검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가 있었다. 나는 보지 못했었는데, 계속 거기 있었다.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않고 말았다. 저 여자는 도대체 뭐지? 분명 방금 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나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입에서는 옅은 신음도 흘러나왔다. 그리고 내 핸드폰 화면 속의 여자는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10층, 10층입니다."


 어느새 엘리베이터의 안내음이 울렸다. 10층에 도착했다. 나는 화들짝 놀라 엘리베이터 문을 바라보았다. 문 너머에서는 마치 여러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지하철을 탈때처럼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열립니다."


 문이 열렸다. 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다시 내 폰을 바라보았다. 내 폰 액정에는 여자는 온데간데 없이 그저 엘리베이터 벽만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문 밖을 바라보았다. 석양이 지는듯 노을빛에 붉게 물든 세계가 보였다. 그리고 그곳은 마치 잔잔한 호수 위에라도 있는지 오로지 습한 바람에 따라 잔잔히 물결치는 검은 물 뿐이었다.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폰을 들어 그곳을 비추었다. 폰의 액정을 통해 나는, 거기에 수많은 사람이 빼곡히 서있는게 보였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 아니, 사람이 맞기는 한가? 눈이 파인듯 검고 창백한 피부를 가진, 입을 반쯤 벌리고 개처럼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저것들이 과연 사람이 맞기는 할까? 


 갑자기 그 사람들이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참방 참방 참방 참방, 그놈들의 걸음거리에 맞춰 물소리가 요란히도 울려퍼졌다. 

안된다. 저것들이 여기 들어오게 해서는 안된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엘리베이터 닫힘버튼을 타닥타닥 연타했다.


문이 닫히지 않는다.


 이윽고 나를 감싸오는 축축한 손길들이 느껴졌다. 그 숫자가 너무 많았기에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머리가 붙잡혔을때, 흐트러져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마침내 깨닫고 말았다.


"아... 그 괴담에는... 돌아가는 방법은 나와있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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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나무위키에서 엘리베이터 괴담보고 갑자기 삘받아서 써봤습니다. (역시 괴미챈에 올렸었는데 여기도 올리고 싶어 올려봤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