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와봤어요........소설도 자주 올릴거지만 에세이 탭 따로 만들어줬으면 해요........


이건 과제물이라 교수님이 평가하실테지만, 그래도 다수한테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제 본글 시작합니다


본인은 문창과 새내기라 글이 병신같을 수도 있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보통 이 질문을 받으면 ‘가진 재주라곤 이것 밖에 없어서’라는 답을 내놓는다. 물론 이 말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아주 맞는 말인 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재주가 이것뿐인 것은 맞지만,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며 밥값을 벌 바엔 차라리 굶고 말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한다.

그렇다면 어째서?

현실은 더럽고, 힘들고, 낭만이라곤 찾아볼 수 없으며, 사람들은 신념을 포기하고, 사랑은 이익관계를 동반하고, 악당들은 재판 이후에도 고개를 들고 다니고, 정당한 복수를 공권력이 방해하고, 부조리가 차고 넘친다. 그리고 더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우리는 이것을 바꿀 수 없다. 종종 사람들은 ‘이번에야말로 세상이 바뀔 거야’라며 기대를 품어보지만, 3개월만 지나도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새끼나 저새끼나 그놈이 그놈’이라는 말을 중얼거린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부조리의 총량은 감소하지 않는다. 단지 형태가 바뀌고, 가해지는 대상이 바뀌고, 숨겨질 뿐이다.

 

나는 아편 제조자이다.

 

마르크스는 이런 말을 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아편’이라는 단어를 ‘마약’으로 해석하여 종교는 인민을 중독시키고, 재기불능으로 만드는 독극물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살던 당시엔 아편은 진통제였다.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잠깐이나마 고통을 잊고 휴식할 시간을 주는 약이었다.

마르크스가 저 비유를 통해서 하고자 했던 말은 아마도 “종교는 세상의 부조리를 없앨 수는 없지만, 인민들이 고통을 잊게 하고,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약이다.”였을 것이다.

내가 추구하는 창작은 ‘아편 제조’이다.

 

적어도 내 창작물 속에서는 모든 곳에 낭만이 넘치고, 사람들이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사랑은 맹목적이며. 악당들은 심판받고, 복수는 모든 방해물을 돌파해야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픽션을 읽으며 몰입하여 잠깐이나마 고통을 잊고, 휴식에 들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런 작품 속에도 투쟁과 악 자체는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독자들이 주인공의 투쟁에 몰입하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테니까. 주인공이 낭만적이거나, 신념에 목숨을 걸거나, 복수의 칼을 아득바득 갈며 열의로 가득 차 있다면, 독자들은 그가 추구하는 것이 결국엔 그를 부러뜨리고, 투쟁이 실패하며 스토리가 비극으로 끝나게 될 지라도 만족할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은 그러한 투쟁조차 존재하지 못할 정도로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내가 추구하는 비극과 희극의 차이는 끝까지 달콤한 알사탕과 끝맛이 약간은 씁쓸한 다크초콜릿의 차이다. 순문학같은 한약은 애초에 논외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미 현실이 부조리인데 창작물조차 사람들에게 그 부조리와 아픔을 되새겨줄 필요가 있을까? 마치 암환자의 모르핀을 끊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줌의 즐거움이면 편히 휴식에 들 환자들에게서 굳이 즐거움을 빼앗고, 현실의 쓴맛을 순문학이라는 이름의 한약으로 입 안에 쑤셔넣어 되뇌이게 할 필요가 있을까?

“환자들이 편히 잠에 들게 놔두어라.” 이것이 내 창작 신념이자 원칙이고, 내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문학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지.

 

그렇다면 나는 ‘인민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내 한몸 바쳐 아편을 제조하겠다’라는 어떤 대단한 신념을 가지고 창작이라는 길을 선택했을까?

아니다. 나도 그 환자 중 한 명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내 입맛에 맞는 진통제가 필요하다. 순문학은 아픔을 늘릴 뿐이고. 웹소설은 마치 메스암페타민처럼 너무 인공적인 향이 강하다. 장르문학중 몇몇 작품들은 효과가 좋지만, 그래도 여전히 내 입맛에 백 퍼센트 맞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직접 내 아편을 제조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만일, 만일, 사람들이 내 입맛에 공감하고. 나와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서 어떠한 시장을 이룰 수 있을 정도라면, 그들을 ‘독자’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규모라면. 더욱 좋을 것이다. 뭘 하든 간에, 같이 할 사람이 많다면 행복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