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쯤, 여름방학 때, 나는 게임에 미쳐서 시골에 사는 놈인데 불구하고 pc방에 가겠다고 매일같이 20분이 걸리는 버스를 탔다. 얼마나 많이도 갔는지, pc방 사장님이 내 얼굴과 이름을 기억할 정도였다. 생각해보면, 그때 게임에 미칠만한 이유가 있긴 했다. 그때는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을 하겠다는 꿈을 가지긴 했지만, 악기 하나 다룰 줄 몰랐고, 취미라고는 게임밖에 없었으니까. 거기에 당시 나는 찐따였다. 친구들 중에는 기댈 만한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부모님께 기대기에는 그때 다니던 학교가 기숙사가 있었고, 나는 그 기숙사에서 평일 동안 지내다가 주말 동안만 부모님의 얼굴을 보다 보니까 부모님이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게임에 미쳤다. 받는 용돈은 모두 pc방에 쏟아부으며, 조용히 입 닥치고 게임만 죽어라 해댔다. 게임을 오래 하다 보면 두통이 생기는데, 나는 계속 게임을 해대니 몸이 적응했는지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다른 게임을 또 해도 머리가 아프지 않게 되었다.

 그런 나날을 보내던 중, 한 일이 있었다. 평소처럼 게임을 하고, 슬슬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pc방을 나왔는데, 밖에 비가 약하게 내리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었다. 싸늘한 공기에 무력해지고, 비 오는 날 분위기에 눌려 우울해지고, 그동안 pc방에서 게임만 해댔다는 사실이 내 목을 조르는 듯 숨 막혔다. 

 '나는 그동안 뭘 한 거지?'

 허송세월을 보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기억이 내가 편하게 놀지 못하도록 막고, 채찍질했다. 그래서 음악을 하고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을 동안 미친 듯이 통기타를 배워 학교에서 가장 기타를 잘 치는 놈이 되도록 하였고, 음악 이론을 배우게 했다. 아쉽게도 음악에 대한 꿈은 내가 다시 게을러지고 다른 유명한 뮤지션들의 음악을 들으며 주눅이 들어서 버렸지만.

 고등학교 1학년 2학기 때쯤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가 웹소설에 도전해본다는 말 한마디에. 그때 나는 음악에 대한 꿈을 폐기해서 세울 목표가 필요했다. 나는 좋다 싶어서 바로 따라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는 웹소설보다는 순문학을 좋아해서 순문학 쪽을 목표로 잡았다. 그렇게 목표를 세우고 고등학교에 있는 동안 글을 썼다. 엄청 많이 썼다고 자부할 정도는 아니지만, 생각이 나면 바로바로 썼다. 그러면서 글 실력도 늘고, 전에 음악에 대한 꿈을 가졌던 때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의 작품을 보며 주이 들던 태도를 바꿔 그 작품을 보며 배울 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글을 쓰다가 처음으로 a4용지로 100쪽 내외의 소설 하나를 썼는데, 그걸 쓰고 나서 힘이 빠졌다. 그 소설을 쓰고 나서 6개월 넘게 소설을 쓰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다른 친구 중 그림을 그리는 친구 한테 '너는 글 좀 써.'라는 일침을 들었다. 일침을 듣고 나서 친구에게는 '아, 쓸껴. 걱정말어.'라며 능청스럽게 대답했지만, 또 중학교 때의 허송세월을 보낸 기억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머릿속에서 붕 떠다니던 주제와 스토리를 짜 맞춰 소설 하나를 구상했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 쓸 때는 분량을 50쪽을 목표로 썼으나, 구상을 제대로 안 하고 바로 소설을 쓰니 소설 속에 생길 사건이 부족했고, 캐릭터도 부족해 20쪽에서 얼렁뚱땅 끝마쳐 망했다. 그 이후로도 불안했지만, 소설을 쓰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그동안 방치했던 사마귀가 너무 커 결국 절제 수술을 했고, 일주일 동안 입원을 했다. 입원을 한 동안 소설을 쓰려고 했지만,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어 가져온 책 3권을 읽었다. 그러나 책도 하루 종일 붙잡고 읽어서인지, 4일 만에 다 읽었고 나는 할 일이 없어 또 중학교 때를 떠올렸다. 그 기억이 불러오는 기분을 쫓아내려고 소설을 구상하려 했지만, 짧은 단편은 생각이 하나도 안 나고 장편만 생각이 나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져 미칠 것 같았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내 유튜브에 철학 관련 영상이 보였다. 고등학교 때 소설만 읽다가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구절이 자꾸 떠올라 니체의 책을 찾아 10권 정도를 한 번에 사 읽었다. 그런 내게 철학 영상은 반갑게 느껴졌다. 내가 읽어봤던 니체, 사르트르는 물론, 아직 읽어보지 않은 비트겐슈타인, 움베르트 에코 등을 접하며 철학적인 생각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약자를 대하는 태도나 여러가지를 생각하다가 문득 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입원해 있는 동안 아무것도 안 한다고 생각했지?'

 책을 읽기도 했고, 소설에 대한 생각도 하고, 철학을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난 지금 입원해 있는 상태이고, 글이 떠오르지도 않고 노트북이나 공책에 글을 쓰는 자세가 불편해 집중을 제대로 못 하는데, 어떻게 소설을  수 있겠는가. 딱 이 생각이 나고 나서, 또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까지 너무 나를 몰아붙이려고 한 게 아닐까.'

 6개월 동안 소설을 쓰지 않기도 했지만, 소설을 쓰는 이유 중 불안해서 소설을 쓰는 거라니. 미래가 막막해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죽어라 쓴다니. 겨우 불안하다는 감정 하나로 일평생 소설을 쓸 수 있다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재미를 느끼면서 소설을 쓰면 모를까.

 그 생각을 하고 나니, 편안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내 목에 채워진 목줄과 내 엉덩이를 때리던 채찍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머릿속에 뭐가 떠올랐다고, 불안하다고 구상도 제대로 안 하고 쓰면 안 된다는 것도 경험하고 나니 지금까지 없었던 여유가 생기는 느낌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한 이후, 소설이 떠올라 하나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족끼리 삼겹살을 먹다가 나만 덜 익은 걸 먹었는지, 장염에 걸려 또 일주일 동안 입원하게 되었다. 그때는 불안함이 없었다. 어차피 소설은 퇴원하고 나서도 쓰면 되니까.

 아쉽게도 그때 썼던 소설은 버렸다. 어이없고 웃긴 말인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소설을 버리고 나서 난 불안하지 않았다. 아직 머릿속에 소설로 쓸 만한 주제가 있기 때문에. 그 주제는 천천히 생각하면서 스토리가 떠오르고, 스토리가 완전히 떠올랐을 때 쓰면 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학교 때의 그 끔찍한 기억이 내 목을 조이고 채찍질하지 않으니까. 

 나는 중학교 때의 끔찍한 기억, 그 허송세월을 보냈던 것의 트라우마를 이겨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