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모를 오해를 피하고자 미리 먼저 말해 두기로 한다.




나는 고양이란 동물에 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관심이 없다고 해서 싫어하거나 혐오한다는 건 아니다. 지나가다 고양이가 눈에 보이면 있는가 보다 하고 지나치고, TV에서 귀여운 고양이가 나오면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육비 같은 현실 때문에 금세 포기하고 잊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때 그 일은 단순한 나의 변덕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지, 내가 특별히 고양이를 싫어해서 한 일이 아니다.


그 날. 나는 기분이 매우 나빴다. 밤을 꼴딱 세며 한 숙제를 학교에 가져가는 것을 잊어버려 손바닥을 맞고 욕설까지 들은 데다. 점심급식은 고기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채소밭. 마지막으로 수업 중간에 조퇴한 년 대신에 방과 후 청소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열이 머리끝까지 뻗쳐 있는 상태에서 하교하는 중 나는 인도 한 복판에 앉아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따끈따끈한 햇살을 따라 인도까지 나온 노란색 털의 고양이는 내가 다가오고 있는 것도 모른 체 인도 한 복판에 퍼져 누워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평소라면 스마트 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조용히 옆으로 지나갔을 테지만 이때의 나는 매우 기분이 나쁜 상태였다. 고양이가 행복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 오늘 하루 고난에 시달렸던 나를 조롱하는 거 같이 느껴졌다. 나는 분풀이로 발로 힘껏 땅을 내려쳐 소리를 내, 고양이를 놀라게 했다. 쾅! 하고 제법 큰 소리가 났고 잠에 취해 있던 고양이는 소리에 놀라 쏜살같이 도망쳤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향한 방향이 좋지 않았다. 잠에 취해 있던 고양이는 방향을 잡아 차도로 뛰어들었고, 지나가던 버스에 치였다. 고양이는 버스 안쪽으로 밀려들어 가 내 쪽에서는 형체를 볼 수 없었지만, 바퀴 사이로 검붉은 피가 흘러나오는 건 볼 수 있었다. 버스에서 내린 버스 기사가 욕설을 뱉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일부러 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고양이를 죽인 셈이 돼서 찝찝했다, 그래 봐야 하루에 수도 없이 죽어나가는 길고양이 중 한 마리일 뿐이다. 나는 어쩌다 생긴 사고라 생각하고 고양이에 관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털어버렸다.




사람의 기억이란 건 사소한 거 하나에 바로 되살아나는 법이다. 하루가 지나고 하교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죽은 고양이에 관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처음에는 내 탓에 고양이가 죽었다는 약간의 죄책감이 들었고, 다음에는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에 내가 걷는 길 한복판에 누워 있다가 차도 쪽으로 도망쳐서 죽은 것인지 불쾌감이 들었다. 고양이가 죽은 원인이 내가 아니라 고양이가 자초한 거라고 합리화를 시키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하교 시간이 됐다, 나는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고양이가 죽었던 길로 걸어갔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하다는 의미였다. 어제와 달리 오늘 이 길을 걷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다. 고양이가 죽었던 차도를 바라봤다. 차도는 어떻게 청소를 한 건지, 고양이가 죽었던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찝찝했던 기분을 모두 날려버리고 마음이 가뿐해졌다. 다시 집으로 가려던 차에 길 건너편에서 이쪽을 아니 나를 쳐다보고 있는 고양이를 발견했다. 검은색과, 짙은 갈색 털이 섞인 고양이었다. 나는 어쩌다 눈이 마주친 거로 생각하고 집으로 가는 길을 걸었다. 하지만 목덜미를 찌르는 기분이 사라지지 않아 뒤를 돌아봤다. 뒤를 돌아본 순간 몸을 서서히 움직여 내 뒤를 따라오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 같이 흔한 동물이 사람 등 뒤를 슬금슬금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쭈뼛 소름이 돋았다. 눈이 마주치자 모른 척 딴짓을 하는 모습은 고양이가 아니라 다른 새로운 종의 동물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고양이가 딴청을 피우는 순간을 노려서 전속력으로 집까지 달렸다. 그날 밤은 창밖에서 고양이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들어 한 번도 창밖을 내다보지 않았다.




지옥이 시작됐다.


고양이들은 사람들에게 의심받지 않게 은밀하고, 조직적으로 행동했다. 절대 한 마리 이상 내 눈에 띄는 일이 없었고, 딱 내 눈에만 보일 정도로 거리를 유지했다. 심지어는 버스로 이동할 때에도 서는 정류장 마다. 그것도 내 시야가 닿는 곳엔 항상 고양이가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상담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만약 상담한다고 해도 해결될 일이 아니라, 나는 최대한 그것들을 무시하며 억지로 하루, 하루를 버텼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들이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던 나는 신경과민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간헐적으로 들리는 고양이 울음소리는 나를 미치게 했고 내가 어디에 있던 고양이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공포감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눈 아래 다크서클이 짙게 생기고, 작은 일에도 바로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아빠는 물론이고 학교 친구들과 선생님까지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병원에 끌려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생각이 현실이 되기 전에 내가 가능한 방법을 실행했다.


점심시간. 나는 그가 있는 반을 찾아 들어갔다. 그는 창가 쪽 맨 뒷자리에 앉아 그림처럼 보이는 글자가 쓰여 있는 책을 읽고 있었다. 내가 만나러간 사람은 ‘오타쿠’란 별명의 남학생으로 보통은 상대를 놀리기 위해 부르는 별명인 ‘오타쿠’를 스스로 칭하고 다니는 괴짜다. 하지만 오타쿠라는 일반적인 이미지하고 다르게 그는 음침한 성격도 아니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몰두하는 모습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의 특이한 점을 말하자면 지금 읽고 있는 특이한 책을 항상 가지고 다닌다는 것 말고는 없다. 작년에는 항상 전교 일 등을 차지하는 모범생이어서 같은 학년 중에 얼굴과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지만, 성격이 무뚝뚝하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친구가 없었는데 올해 삼 학년으로 진급한 후에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인기인이 됐다. 삼 학년이 된 오타쿠는 점심시간 마다, 자기 자리에서 상담실이라는 걸 열었다. 말 그대로 친구들의 고민을 듣고 상담해 주는 일이다. 전교 일 등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고 공부 말고도 다른 잡학지식도 많은 데다 선생님에겐 말 못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어 많은 학생이 이용한다.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자 오타쿠는 빈자리의 의자를 끌어다 내게 빌려주었다. 내가 오타쿠와 대화를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그의 넉살 좋은 행동과 말투 때문에 십년지기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그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오타쿠는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오타쿠가 말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이야기네. 꼭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도시 전설 같아.”


“농담이 아니라, 정말 조금만 더 이런 생활이 계속됐다가는 정말 미쳐버릴지도 몰라. 무슨 해결 방법이 없을까.”


“원인을 아는 상태에서 해결방법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야. 원인을 생각해 봐, 너 때문에 우리 친구가 죽었다. 그러니까 그에 대해 사죄를 해라. 대충 이런 메시지를 너한테 보내는 거잖아.”


“나보고 꽃이라도 들고 가서 공양이라도 하라는 거야?”


“그거 좋네, 한번 해보지그래? 그렇게 해서 고양이들의 스토킹이 끝난다면 서로 좋은 일 아냐?”


“만약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면?”


“그때는 방송국에 연락해서 전파를 탄 다음에 사람들의 도움을 받든가 하면 되지. 어차피 상대는 고양이잖아. 물리적으로 해결할 방법도 반드시 있을 거라고. 하지만 나는 전자를 추천하겠어, 감성적이고 좋잖아.”


오타쿠의 상담이 끝나고 내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오타쿠의 말이 100% 들어맞을 거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가 말한 대로 상대는 고작 고양이다.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나는 학교 근처에 있는 꽃집에 들러 국화를 한 송이 샀다. 그리고 모든 사건이 시작된 그 길로 향했다. 역시 이번에도 고양이 한 마리가 계속 따라왔지만, 이제는 고양이의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볼 테면 똑똑히 보라는 심정이었다. 신호를 확인하고 차가 오지 않는 걸 확인한 뒤 차도로 들어갔다. 그리고 고양이가 죽은 자리에 국화를 놓고 묵념을 했다.


‘나 때문에 죽게 해서 미안해. 매년 이렇게 찾아올 테니까 용서해주기 바라.’


짧은 묵념을 끝내는 순간 둔탁한 충격이 몸에 부딪혔다. 그리고 붕 하는 부유감이 드는가 싶더니 바닥에 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 속에서 눈을 뜨자 흰색 자동차가 내 눈앞을 지나가는 게 보였다. 뺑소니였다. 움직이지 않는 시선에 보인 거리엔 아무도 없다. 하긴 그러니까 뺑소니를 했겠지. 저벅저벅, 누군가가 내 쪽으로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살려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발자국의 주인이 내 눈앞에 섰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내 눈에는 검은색 운동화와 교복을 입은 다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덕 시간에 배우지 않았어? 생명은 모두 다 소중한 거니, 작은 동물의 생명이라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거. 남의 생명을 빼앗은 대가는, 자신의 생명으로 보상할 수밖에 없어.”


나는 구급차를 불러줘! 라고 필사적으로 소리쳤지만, 말은 머릿속에서 울리기만 하고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내 애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타쿠는 전혀 바쁠 것 없다는 듯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너를 이 자리로 유인해서 죽게 한 건 나지만 그렇다고 나를 저주하면서 죽지는 마. 나는 오히려 너를 도와주려고 이리로 유인한 거니까. 녀석들은 생각보다 머리가 좋아서 너를 정신병원에 가두고 평생을 괴롭히다가 고통 속에서 서서히 죽이려고 했었거든, 평생을 그러고 사느니 차라리 이렇게 한 번에 훅 가는 게 더 편하잖아. 녀석들 모두를 설득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으니까 내가 너를 위해서 고생한 건 알아줘.”


오타쿠는 내가 사온 국화를 집어서 내 눈앞에 내려놓았다. 나는 오타쿠의 다리를 보며 속으로 온갖 욕설을 내뱉었다. 오늘 점심시간에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걱정을 덜었던 내가 바보같이 느껴져 눈물이 나왔다.


“참, 하나 빠뜨린 게 있는데, 녀석들은 너처럼 매정하지가 않아서 네가 죽는 걸 함께 지켜봐 주겠다고 하네, 마지막 가는 길 심심하지 않아서 좋겠어.”


오타쿠의 다리가 멀어지는 동시에 다른 것들이 내게 다가왔다. 고양이들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열 마리는 넘는 고양이들이었다. 고양이들은 급한 기색 없이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아! 그러고 보니 나 때문에 죽은 고양이 사체는 어떻게 되었더라?


나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정신이 흐릿해지는 가운데 적어도 더는 아프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