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어디까지나 필자라는 인간개체의 추론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사전에 밝힌다.
이상을 현실로 변환시키는 것은 많은 노력이 따른다. 이러한 현실적 제약은 이상을 이상으로서 규정할 수 없는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이상이 현실로 내려오는 것으로 인해 이상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형상이 변질되기 때문이다. 현실의 앞에서 이상이 타협되는 것은 비일비재한 현상이며, 이상의 추구를 위해 앞장섰던 혁명가가 어느새 타인의 이상을 탄압하는 독재자로 변모하는 것 역시 이러한 이상의 한계에서 비롯되는 현실이라 서술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특정 이상을 추구하는 것을 바탕으로 개체가 소유하였던 전반적인 이상이 상실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가령, 현재의 시간을 이상을 사고하는 것에만 투자한다면, 더욱 많은 이상을 사고할 수 있다. 반면 특정 이상점을 선택하여 현실로 가져오려 시도한다면, 기회비용으로서 다른 이상이 소실된다. 이상의 실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사고한다면, 그 시간동안 사고할 수 있었을 수많은 이상이 상실되는 것은 명확하다. 인간이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시도가 곧 이상의 상실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상, 김해경, 하융, 비구, 소설 ‘날개’의 작가이자, 시 ‘오감도’의 저자이기도 한 이 인물은 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보다 정확히는 인지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이다. 애초에 그에게는 이상을 현실로 가져올 기회가 없었으며, 시간조차 없었다. 그는 26년이라는 짧은 시간만을 살아야 했다. 그가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였음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실질적으로 사고하는 천재로서 활약하는 것이 가능하였던 기간은 10년 전후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짧은 시간 속에서도 그는 현실을 살아가는 데 상당한 수준의 괴리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친부와 친모가 아닌 몰락한 양반인 백부의 아래에서, 차별과 홀대 속에서 한 치의 사랑조차 담겨있지 않은 엄격한 규율 속에서 성장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20세기의 태생임에도 불구하고 19세기의 구시대적인 무의식을 소유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그는 20세기를 살아가려 하였으나, 19세기의 사고관으로 인한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껴야 하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괴리감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오감도’와 ‘삼차각설계도’이다. 그의 작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상은 19세기의 규정된 사고관을 탈피하기 위해 무리하게 새로움을 추구하려 하였다. 이가 그의 철저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의도성은 없었지만 그의 내면에 자리잡은 무의식이 표출된 결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구시대적 사고관을 탈피하기 위해 글의 서술에서 구시대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고자 하였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필자의 추측에 지나지 않다. 그러나, 그가 19세기의 사고관이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가 김기림에게 쓴 편지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내면에 자리잡은 19세기의 사고관, 보다 정확히는 기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그 모든 것을 깨끗이 닦아 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을 터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글은 그저 마음이 내키는 데로 대충 서술한 것이 아닌, 수많은 연구와 고뇌, 수정과 검토를 반복한 결과물로서 해석할 수 있다.
기존에 관념에서 완전히 탈피하여야 한다는 집착 속에서 그의 삶은 다시금 변화한다. 백부의 사망으로 인해 그는 본가로 돌아왔으나, 빈곤과 무지 속에 위치한 본가에서의 삶은 그의 삶과 이미 양립될 수 없는 형상이었다. 관념의 탈피를 향한 강박을 소유하고 있는 그가, 일반 소시민의 삶을 수용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그의 방황은 이미 예견된 일에 해당하였을 터이다. 1933년 폐결핵의 진단과 동시에 건축기사를 그만둔 것은, 그저 계기가 없었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었을 뿐이었던 그의 위태로운 일상이 이미 붕괴되어 있었음을 반증하는 요소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더 나아가, 이 시점에서 이상은 이미 자신의 삶이 길지 않았음을 직감하였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당대의 지식인에 해당하였을 그가, 폐결핵의 결말을 모를 것이라고 판단하기 어렵다. 스스로의 삶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는, 곧바로 방황의 삶으로 접어든다. 기생인 ‘금홍’과의 관계를 시작한 것 역시 일종의 강박과 성급함의 결과물에 해당할 터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그는 아직 이상을 현실로 가져오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서두른다면 이룰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급함 속에서, 그는 많은 시도를 한다. 다방을 차리기도 하였고, 카페를 차리기도 하였다. 1934년에는 구인회에 가입하여 문학적 소양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그의 조급함으로 인해 실패로 이어지고 말았다.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장벽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탈피를 향한 그의 강박을 대중은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의 사고방식은 이상적이었음에도, 현실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에는 시간적 간극이 필요하였다. 막 서구화가 시작되고 있었던 당시의 현실 속에서, 현 시점에서도 최신식으로 평가되는 그의 시도들은 그저 광인의 일탈로 취급되어 무시될 뿐이었다. 악화되는 폐결핵과 다가오는 죽음 속에서, 그는 스스로의 자살까지 고려할 정도로 내몰리기에 이르렀다. 소설가 김유정에게 동반자살을 권유한 것 역시 이 시기의 일이다.
다만, 그의 자살은 자포자기의 의미를 내포한 자살이 아니었다. 그것은 또한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며, 범인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관념의 탈피의 시도였다. 그의 자살 기획은 당시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일종의 공연자살에 해당한다. 현실을 부정하는 도피성 자살이 아닌, 스스로의 마지막을 스스로가 선택하는 확신성 자살에 해당한다. 더 나아가, 문학적 관념탈피의 시도를 보다 널리 알릴 수 있는, 스스로의 자살로서 관념의 탈피를 완성하고자 하였던 시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마저도 김유정의 거절로 실행되지 못한 채로 끝났다.
이 시기의 그의 일탈과정과 사고를 직접적으로 드러난 소설이 바로 ‘날개’이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라는 대목에서 곧바로 인지할 수 있는 바와 같이, 그는 이 시점에서 스스로의 생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스스로의 천재성을 활용하여 이상을 현실로 가져올 수 없다는, 그러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수용하였다. 그는 더 이상 스스로의 삶에서 이상을 현실로 재현하는 가능성은 부재하고 있음을 목도하였다. 그를 대신하여 그는 그저 이상을 이상으로서 사고하기만 하였다.
이불 속에서 잠들지 못한 채로 그저 이상의 연구에만 집중하면서도, 그것을 현실로 가져오고자 하지 않았다. 이불을 걷으면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는 그의 표현은, 말 그대로 그것을 망각하는 것이라고 보기보다는, 그것을 외부에 알릴 가치가 없기에 둘러댄 변명에 가까울 터이다. 추정에 불과할 터이지만, 그는 스스로가 사고한 연구내용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활용하는 언어적 표현의 시간조차도 스스로가 이상을 바라보는 시간의 낭비에 불과하다고 사고하고 있었을 터이다.
그의 삶에서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시도한 것은 동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날개’의 마지막에서 그는 다시금 날고자 하였다. 그가 소설 ‘날개’를 저술한 것이 가능하였던 것 역시, 그가 마지막의 한 줄기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문학으로서 스스로의 사고를 남긴다는 것 자체가 이상을 현실로 가져오려는 시도에 해당하기에, 그는 오랜 고찰과 죽음으로 향하는 포기 속에서 마지막으로 일어서서 희망을 보고자 하였다. 동경이라는 이상향을 꿈꾸며, 그는 1937년 동경으로 떠난다. 애석하게도 그것은 그의 삶에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마지막 날개를 꺾는 선택에 해당했다.
“동경이라는 곳은, 실로 치사스런 데로구려.”
동경에서 기림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상향이란 존재하지 않는 환상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관념의 탈피가 현실로 다가오는 시간까지 그는 살아있을 수 없다. 그러하였기에, 관념의 탈피가 이미 이루어졌을 것이라 기대했던 동경으로 왔으나, 그 역시 그저 환상에 불과하였다. 기회의 땅이라 사고하였던 동경의 치사스러운, 혹은 사치스러운 모습 속에서, 그는 동경 역시 그저 관념에 저항하지 않는 범인들의 삶이 집약된 장소임을 이해하였다.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였던 ‘관념의 탈피’가 현실에 도래한 순간을 자신의 삶 속에서 경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목도한 이후, 어쩌면 이후로도 결코 다가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 절망하였을 것이다.
이 절망 속에서, 그는 비로소 오랜 기간 그를 끈질기게 살려 두었던 희망을 산산이 조각 냈다. 그의 폐결핵이 악화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터이다. 이 시기의 그의 삶의 모습은 명확하지 않다. 그가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로 은거를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햇볕조차 보지 않고, 식사조차 잘 하지 않은 채로, 이불 속에 틀어 박혀 이상을 사고하기만 하였음을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는 이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상을 연구하는 데에 남은 모든 시간을 할애하였다.
한 편으로는 그는 스스로의 죽음을 오히려 가속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스스로의 병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폐결핵을 진단 받았음에도, 하루에 담배를 50개비 이상 피우는 일과를 보냈다. 20세기 초, 담배의 해악성이 아직 대두되지 않았던 시기임을 고려해 보더라도, 지식인 사이에서는 담배의 해악에 관한 내용이 오가던 시기였기에, 지식인에 해당하였던 그가 담배가 폐건강에 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천천히, 어쩌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며, 이는 아마 의도된 행동이었을 터이다. 동경의 은거생활 중에는 더욱 많은 양의 담배를 폐에 채워 넣으며, 사고를 가속함과 동시에 죽음으로 나아가고자 하였을 터이다.
이러한 행위는 1937년 결실을 맺는다. 1937년 4월 17일,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이자, 시대를 너무나도 앞서 나간 불후의 천재는 그 스스로의 의도 속에서 영원히 잠든다. 그의 고뇌와 사고, 그 어떠한 외부적인 교류조차 없이 이불 속에서, 자신의 뇌 속에서 착실히 쌓아간 끝에 완성된, 2천여편이 넘는 작품들을 관통하는 그만의 공식 역시 함께 잠들었다. 후대의 인물들은 그저 그 공식이 무엇일지 추정만 할 수 있을 뿐, 이제 검증은 불가능하다.
다만 확실한 사실은 그저 장난기 가득한 악동에 불과하였던 ‘페르마’와는 달리, 그는 실존하는 하나의 공식, 아니면 복수의 공식, 어쩌면 매 순간 변화하는 유동적인 공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서술하였다는 사실이다. 그 유기적이며 무정형적 공식은 오로지 이상의 이불 속에서만 성립되는 국소적인 형상이며, 그의 이불과 뇌와 함께 소멸되어 더 이상 발굴할 수 없는, 이후로도 증명될 일이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문학계의 손실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러하기 때문에, 이상의 작품들은 80년이 지난 현 시점까지도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으로서 기억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평이한 삶 속에서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관념의 탈피를 시도하고자 하였던 선지자가 바랐던 현실은 여전히 도래하지 않았고, 이후로도 도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러한 사실은 그의 작품들이 언제까지나 최신의 작품으로서, 정확히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지적하는 작품으로 남을 것임을 암시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작품들은, 모든 박제들이 그러한 바와 같이, 살아있는 것들에 비해 조금 바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후로도 기나긴 시간동안 같은 모습을 유지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그가 자신에게 내린 평가는, 진정으로 그가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에 해당함을 인지한 이후에 내린 혜안의 증명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