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트럭 사이에서,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에서 타닥 타닥 비비탄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딱 딱 하고 철제 미끄럼틀에 맞아 사방으로 튀기던 그것은 이따금씩 본래의 목적대로 어린 소년의 살갗에 맞아 누런 살결을 붉게 물들인다.


 "야, 아프다고! 맞추지 말라니까!"


 이윽고 흰 총탄에 맞은 그 소년은 나를 향해 소리친다. 나로써는 애초에 사람을 향해 쏜 총탄을 왜 맞추면 안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지만 일단은 사과하는 수 밖에.


 "미안해, 앞으로 조심할게."


 나는 저 소년의 이름을 모른다. 그건 저 소년도 마찬가지일터. 만약 동생에게 총알을 맞추었다면 동생도 어머니도 난리를 피웠겠지만 여기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곳에서, 이 고무바닥 놀이터에서 우린 권총의 황제요 곧 법이니라. 아무도 우릴 막을 수 없다. 이 무법 천지에서는 선생님이, 그리고 부모님이 가르치던 규칙이란 없다. 그리고 저 소년도 그 사실을 익히 알고있다. 이내 그 소년은 두 뺨에 기쁨을 한껏 물고 나에게 비비탄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야, 야! 잠깐... 반칙이야!"


 그놈의 권총에서 쏟아져 나오는 총탄을 피해가며 나는 소리친다. 이윽고 근처 계단 옆에 몸을 숨긴 나역시 기쁨을 머금고 반격할 준비를 한다. 나는 괜히 비비탄 총의 탄창을 꺼내어 본다. 앞으로 8발. 넉넉한 숫자는 아니지만 즐기기엔 충분하다. 내가 막 고개를 내밀고 소년에게 반격하기 바로 직전, 누군가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퍼진다.


"너네도 비비탄총 가지고 있냐?"


 옆반 부잣집 아들 대원이의 목소리였다. 대원이의 집은 예전부터 돈이 많았다. 그래서 우리들이 이런 조그만 권총 나부랭이를 들고 다닐때 혼자 빠알간 사인펜으로 점찍은 조준경까지 달린 커다란 장총을 가지고 바지에는 건전지를 넣어 작동하는 전동총을 꽃아넣고 다녔다. 그는 우리 한민초 최고의 명사수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마찬가지로 길다란 장총과 쌍권총으로 무장한 패거리가 함께 있었다.


"우리 지금부터 서바이벌 할건데 너희도 비비탄총 있으면 같이 할래?"


 대원이가 물었다. 서바이벌! 그것은 빈 콜라캔과 문방구에서 파는 500원짜리 사탕가루가 바람에 흩날리는 이 무법천지 놀이터에서 가장 인기있는 여흥거리이자 용돈이 많아 주머니가 두둑한 진짜 기득권층을 위한 놀이였다. 비비탄은 부의 상징이었다. 권총 한두개 정도야 흔한 수준이었지만 대원이의 것처럼 조준경이 달린 장총은 그야말로 대장의 상징이자 힘 그 자체였다. 


"너네 서바이벌 할거야?"


 그네를 타고있던 또다른 소년이 물었다. 대원이는 그 소년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그 소년도 어느새 서바이벌에 합류했다. 비록 그 소년이 가진 총은 비비탄총이 아니라 문방구에서 파는 1000원짜리 다트건이었지만 그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서바이벌에는 세가지 비밀이 숨어있다. 첫째로 서바이벌은 키보드 앞에서 모니터만 보는 컴퓨터 게임과는 다른, 내 피부에 엄폐물이 닿는게 느껴지고 총알이 아슬아슬하게 내 뺨을 빗나가는 그런 스릴을 즐길 수 있다는 것,


 두번째로...


 "야! 왜 날 쏘는거야? 우린 팀이야!"


 그래, 저렇게 놀이를 시작할때는 분명히 없었던 누군가가 저렇게 내 팀을 자처하며 내 뒤를 봐준다는것, 마지막으로....


 "아아악!"


 반드시 누군가의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로 서바이벌이 막을 내린다는 점. 한 아이가 무리하게 높은 미끄럼틀에 올라갔다가 저격수 대원이가 쏜 비비탄에 맞아 그만 떨어지고 만 것이었다. 떨어지며 그만 무릎이 까진 그 아이는 울면서 전장을 이탈한다. 그래, 이것은 서바이벌. 문자 그대로 약육강식의 세계. 약한 자는 살아남지 못한다. 울먹이며 전장을 떠난 패배자의 주변에 삼삼오오 모여든 아이들이 마치 서부시대 결투를 하는것마냥 일제히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었던 그때 갑자기 대원이의 전화벨이 울린다.


 "네 엄마, 발써 6시라고요? 네... 집에 갈게요."


 시계는 어느새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나는 이만 집에 가볼게. 내일은 주말이니까 2시에 여기서 모이자."


 이 말을 마지막으로 대원이가 집으로 돌아갔다. 대원이가 돌아가자 모여들었던 아이들도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남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울리는 휴대폰 진동을 느꼈다. 폰을 열어보니 이렇게 쓰여있었다.


'이제 저녁먹을 시간이니 집에 오렴.'


 나도 배가 고파졌다. 나는 나 홀로남은 전장을 한번 훑어본다. 수많은 탄알을 홀로 받아내 칠이 벗겨진 나무기둥, 바닥에 나뒹구는 비비탄들. 나는 마침내 전장에서 발을 떼어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향하는 길, 대원이가 사는 아파트가 보인다. 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나즈막히 속삭인다.


"내일 2시라고했지?"


하지만 다음날 2시에 대원이는 나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