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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부를 꿈으로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을것이다. 그 또한 사람들과 같았다.  무대 뒤에서 쥔 것은 냄새나는 대걸레고 그의 일이라 하는 것은 빈 무대 위를 다음 사람들을 위해 청소하는 것이지만, 한때는 그 무대 위에서서 주인공이 되기를 꿈꾸었다.  조명 위에서 쩌렁 쩌렁한 목소리로 관중들에게 이야기 하는 그, 주인공 말이다.


 기억의 조각들은 선이 찍찍 그어진 구린 화질의, 노이즈 낀 소리만 잔득 들리는 무성의 흑백 영화로서 머릿속에 재생된다.  지친 몸을 뉘이고 눈 앞을 가리어내 만든 저녁밤의 암실에서, 곤히 잠든 그 순간에.


 서슬 푸른 칼날 끝에 묻은 피는 자신의 피였다. 깊이 파고든 것은 아니었던지라, 그저 떼고 할 일을 이어나갔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칼을 맞았다는것. 스승이 자신을 막아 섰다는것. 그리고 어떻게던 피하고 싶었던 스승의 구겨진 얼굴이 그 앞에 있다는  현실이너무도 고통스러워, 어린날의 그는 한발자국도 앞으로 발 내딧일 수 없었다. 


 그의 뒷편에는 어리둥절한 자세로 누워있는 소녀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던 것인지 멀리 떨어진 검을  주섬주섬 손으로 가지고 와 있었다.  몸으로 얕게 박혀있던 칼날이 뽑히며 피가 조금씩 흘러 나왔다.  그와 함께 굳게 다문 스승의 입술이 짧게 달싹였다.  달싹인

스승의 한마디는, 날카로운 비수로서 그의 폐부를 깊숙하게 찔렀다.  


 어두컴컴한 빈 공간 위에서 그는 관객석을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발버둥 치듯, '여기를 보아달라' 소리치며  우스꽝 스러운 몸동작을 날리고 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이목을 끌기 위해 애 썻지만, 공간 너머의 관객들은 그의 반대편에 서 있는 밝게 빛이나는 조명

쪽을 바라보았다.  바라본 곳에서 서 있던 것은, 칼을 놓친 소녀.  소녀의 환한 웃음과 함께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환호성의 뒷편에서, 애써 웃던 그의 미소가 천천히 사라졌다. 어꺠위로 열심히 흔들던 몸동작들도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는것을 깨닫

고는 축 처진 어깨로 쓸쓸히 뒤 돌아선다. 저벅 저벅, 뒤돌아서서 걸어가는 그의 뒷편에는 휫파람 까지 불어가며 반대편 무대를 환호

하는 관객들만이 있을 뿐, 자신의 쪽을 바라봐 주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뒤돌아 서는 그의 모습에 마지막으로 들어 온 모습은 

스승의 구겨진 얼굴이었다. 


 그는 그때 깨닫았다. 나는 주인공이 될 수 없겠구나. 이 무대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구나.


 뒤 돌아 내려간 무대 한 켠에, 구져진 양동이 안 속에 있던 대걸레가 그때서야 눈에 들어왔다. 무대 위를 바라볼때는 한사코 들어오

지 않던 것이었는데, 그것이 그 곳에 있다는 것을 그때야 알았다.  무심한 표정으로 그는 그 대걸레의 자루를 두 손으로 움켜 쥐었다.

그와 동시에 노이즈 낀 그 저녁 밤의 암실 이야기는 끝이 났다. 


 아침 이슬의 축축함에 서늘함을 느끼고 그는 잠에서 깨었다. 눈 앞에는 타오르던 장작불이 재가되어 불씨만이 조금 남았다. 동이 트기 직전의 푸른 빛이 감도는 아침이었고 그는 잠긴 목을 헛기침으로 풀고, 곤히 잠든 사람들의 쪽으로 소리를 내 질렀다.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니, 잠은 이쯤 끝내야 했기에.


-4-


 가까스로 도착한 용병단을 맞이한 것은 뜻밖의 모습이었다.  


 용사 일행이라 할 법한 사람들의 모습들은 충분히 흔해 빠졌다. 누가 봐도 나는 도적이고, 나는 궁사고 나는 마법사다! 고함을 지를법한 스테레오 타입의 사람들이 양 옆으로 줄 서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에는 뾰족한 귀의 빼어나게 예쁜 엘프까지 떡하니 서 있었다.  뜻밖이라 하는 것은 그런 그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그들의, 정 중앙에 선 주인공.    고전 소설에서나 들을법한 명백한, 고어의 구어체로서 그들을 필요 이상으로 환대하는 그 남자.너무도 뜻밖이었다.


 그의 키가 적지 않은 키긴 하지만, 빼든 목을 좀 내리고 더 내려야지 볼 수 있는 작은 키의 남자.  이제 갓 수염이 날 법한 어린 아이의 키에 건장한 성인 남성의 커다란 머리가 박혀 있어 괴랄하다 못해 조금은 기괴하기까지 한 고객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