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경험을 겪은 적 있다.

 작가한테 텍본을 받아본 경험이.

 또한 그 글이 어느 날 삭제되어서, 텍본을 받은 나만 열람할 수 있는 경험이.

 내가 가장 좋아하던 소설의 도입부와도 비슷했다.

 만약에 좀 더 상상력이 풍부해서, 개연성 따위는 무시해버렸다면 내가 읽었던 소설처럼 일어나버릴 수도 있지 않을 까 라는 상상도 해봤을 정도로.

 공교로운 건, 작가에게 받은 그 글이 그 소설의 2차 창작이었다는 것이다.

 [전지적 독자 시점]

 한 때 광고의 문구로는 "오직 나 만이 이 세계의 끝을 알고 있다"를 내걸었던 소설.

너무 비슷한 상황이라서 무심코 상상해버렸을 상상도 못해버린 이유는 그 세계관은 개연성을 상당히 따지므로.

 말도 안 되는 상상이긴 했다. 한 세계가 멸망하는 것은 개연성이 있을 지라도 멸망한 세계에서 누군가가 실없는 일에 웃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까.

 심지어 엑스트라들이 그런다는 것은 더더욱.


 그 글이 삭제된 경위란 그 작가가 그 사이트를 떠났기 때문이었다.

 다들 떠나던 때에 떠났기 때문에, 그 사이트는 이전보다는 조용해졌다. 또한 주인공 일행들만 조명될 뿐.

 주인공의 동료는 여전히 관심을 받는다.

 하지만 주인공의 동료의 동료는, 글쎄.

 관심이 없다.

 하기야 엑스트라들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버틴 것도 조금.

엑스트라들의 창작도 충분히 개념글에 갔던 그 때가 기억날때면 그 텍본을 다시 열어본다.

 왜냐하면, 그 글은 엑스트라들에 대한 2차 창작이었으니까.

 그 글을 최근에 다시 올려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하나 정도의 추천만 달려서 지워버렸다. 그 글은 열개도 넘는 추천을 받은 적도 있었고, 그 정도의 관심만 받을 글은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작가님은 이미 떠났다고 말했다.

 애초에 텍본을 받으면서 들은 말은, 더 이상은 쓰지 않을 테니까 이어서 쓰든 말든 알아서 하라고.

 그 작가와 내 취향이 겹쳐서, 같은 엑스트라들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 이유였다.

 더 이상 쓰지 않을 거라고 한 미완성의 글들이 내게 남겨져 있다.


 그래서 그냥 이렇게라도 써보기를,

 그 이야기의 끝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고,

 써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