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일부만 써보았는데 이게 맞나 싶어서.. 어떤 부분이라도 좋으니 이상한 부분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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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이 참 좋았다.

책은 항상 내게 새로운 이야기들을 전해주곤 했다. 책은, 현실과 이상 사이의 합리적이고 아름다운 세계였다.

진한 우정, 뜨거운 열정, 그리고 무한한 사랑과 희망적인 세상 속.

그 속을 마음껏 누빌 떄면 걱정할 틈도 없었다. 책 속의 위인을 떠올리며 흉내내보기도 하고, 소설에 몰입해 하루를 보내고, 새로운 지식들을 쌓아갔다.

상상들 속에서는, 나는 나다울 수 있었다. 떳떳하고, 정의롭고. 행복하며, 불행과는 거리가 먼. 선한 사람.

내 감정들을 모두 표출해도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 그런 나만의 세계.

그래서 나는 책이 참 좋았다. 그 자유로움이 나는 너무나도 좋았다.

좋았다. 나를 둘러싼 세상도, 친구들도, 소중한 집도, 졸린 눈으로 가던 학교도.

나 자신도.


그러나, 결국 바뀌어만 간다. 나에게 공부는 한없이 자유로운 것이였었다. 게으름을 선택할 자유로움이 아닌. 학원에 앉아 눈을 감기지 않게 애를 쓰면서도, 숙제를 해가지 않아 혼나는 날에도, 나는 항상 자유로웠다.

즐거웠다. 무언가에 목숨 걸고 하는 것이 아닌, 나를 위해서. 이제는 지긋지긋하게 들려오는, 어른들이 일컫는- 공부의 이유. 너 자신을 위해. 너 자신. 그것이 나에게는 공부였다. 그렇게 믿었다.

'너 자신을 위해' 라는 말이 이제는 내게 의문밖에 남겨주지 않는다. 누구를 위해? 정말? 나라고?


나를 둘러싼 세상이 변해 간다.

어른스러워져 간다.

'우울'이 '나약'함, '힘들다.' 라는 말이 투정으로. '성취'란 말이 누군가를 짓밟고 일어서는 경쟁으로. '우정'이 '효율적인' 이용으로. 

'자유'는, 무거운 책임으로. 아. 원래 이런 건가요?


주변의 친구들은 익숙해지기라도 한 듯, 굳어버린 얼굴로 학교와 학원을 밤까지 옮겨다니고, 서로에게는 가식적인 웃음을 내비치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뒤에서 실컷 조롱한다. 진심을 드러내는 사람은 보이지가 않아.

난 애써 웃어 보였다. 그 조롱거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친구를 보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경쟁 상대로써가 아닌, 거짓말하지 않아도 되는, 내 진심을 드러낼 수 있는. 언젠가는 볼 수 있을까?

그 가식적인 사이에 끼려고 애써 노력한다. 경쟁의 일환이 되기 위해서. 소모품이 되기 위해서.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고. 누군가에게 밟혀 내려가고. 조롱거리가 되지 않게 고군분투하고.

아무도 나를 이야기하지 않을 '착한 아이'로 남기 위해.

기억 한구석에 미미하게 남으나, 증오는 받지 않을 사람이 되기 위해.

남기 위해. 되기 위해. 누구를 위해?

아. 이런 삶이구나. 거울 속 울고 있는 아이를 매일 보는 나날.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빛바랜 눈으로 인터넷 창을 열어 보고 도움을 청해본다. 내 진짜 감정들을 쏟아낼 수 있으니까.

어느 떄보다 더욱 더 간절하게.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본 두 자는

'고작'.


두 자 속에는, 끝없는, 역겨운 자기자만이 채워져 있다.

'내가 너보다 더 불행해. 그따위 것이 불행이라고? 진짜 불행이란 이런 거다-' 같은 비참한 우월감이다.


어릴 적 좋아했던 음악 방송에서 보았던 말이 떠오른다. '여긴 불행마저 등수를 매기거든.'

잠시라도 그 소외감과 비참함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아 이를 악물고 공부에 매진한다.

어떻게든 나를 사로잡는 그 감정에게서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 어쩌면 집념.

당분간은 그렇게 지내고 싶었다. 남을 밟고 올라가더라도,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버티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내 속마음을 털어놓으면, "너 전혀 그렇게 안 보여." 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어머니께는 '자랑스러운 아들', 친구들에게는 '모범적인 친구'로 남을수 있게.

가면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두꺼운.

진짜 내 모습을 잊고 가면이 내 얼굴에 달라붙기를 원했다.

내 자신이 나에게 세뇌되기를 원했다.

불행 따윈 겪어본적 없는 행운아로, 뭐든지 열심히 하는 애로, 어떻게든 살아남아, 해피 엔딩을 맞을 친구로.

중학교의 마지막 1년을 그렇게 보냈다.


가면은 내 얼굴에 반쯤 스며들었다.

친구들 앞에선 깊게 눌러쓰고, 자기 전 5분에서야 답답함을 벗어낸다.

끊임없이 몰려오는 두려움과 자기혐오.

혹여나 실수한것은 아닐까? 누군가에게 증오받는 것은 아닐까? 착하게 살았을까?

단순한 행동들이 누구에게 상처가 된 것은 아닐까?

그러다 내 행동들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두려워진다.

내 작은 행동들이 상처를 입히진 않았을지.

내 농담들이 그들의 마음을 긇어냈을지.


이 감정이 섬세함인지 강박인지.

그리고.

내가 정말 잘 하고 있는 건지.


질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곤 나를 한 가지 결론으로 이끈다.

'실수였어. 그것도 아주 큰.'

'왜 그랬지? 왜 그랬어?"

자기반성을 위핸 독백이, 수많은 목소리로 갈라진다.


가벼운 농담을 건냈던 옆자리 친구의 목소리로.

내게 문제를 물어본 한 남자아이의 목소리로.

내게 질문하신 선생님의 목소리로.

목소리로, 또 목소리들로.


아프다.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들일까.

졸업식 날 밤, 이불을 깊게 뒤집어쓰고 기도했다.

'날 잊었으면 좋겠다. 그저 그런 애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간절히 기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