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상당히 진행되셨네요."


작은 손전등으로 정수리를 비춰보던 의사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과 진료방법 자체가 너무 성의가 없어보여 남자는 살짝 짜증섞인 투로 말했다.


"검사라고 하면 현미경 같은 걸 사용해서 보는거 아니였나요?"


"아, 환자분은 육안으로 보기에도 심한 편이라서요."


의사는 어깨를 살짝 움찔거리더니 이내 침착하게 응대했다. 하지만 사실상 정곡을 찌르는 한마디였다. 


"초기에 오셨다면 약물치료로도 효과를 보셨겠지만 지금은 좀..."


잔인한 선고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서 저도 모르게 필사적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어댄다.   


"선생님, 그럴리가 없습니다. 저 아직 서른도 안됐다고요."


의사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누가 잡을 일 없이 하릴없이 내젓기만 하는 손은 이내 자신의 자리를 되찾은 것처럼 무릎에 포개진다. 그리고 이내 주먹을 꽉 진채로 고개를 푹 숙였다. 


과도하게 힘이 들어간 주먹이 떨려온다. 그리고 떨림은 손을 타고 온몸으로 흘러나간다. 지금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알수 없었기에 남자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고, 입에서는 무슨 말이 나올지 몰라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있었다.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의사의 멱살을 잡으며 소리를 질러댔다.


"당신이! 나에 대해서 내 머리에 대해서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는거야!"


많은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머리에 피가 쏠려서 자신이 뭐라고 하는지조차 알수가 없었다. 느껴지는 것이라곤 멱살을 잡히고 흔들리면서도 미동도 하지않는 연민에 찬 의사의 눈빛 뿐이었다. 


계속 그걸 보고 있자니 남자의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고는 무심코 멱살에서 뗀 손을 쳐다보니 신기루처럼 울렁거렸다. 무슨 기분 나쁜 악몽같아 정신나간 사람처럼 계속 실실거리다가 무언가가 생각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선생님... 모발 이식이란게 있죠? 아직 뒷머리도 많이 남아있으니 어떻게 안되겠습니까? 돈이라면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지갑에 있는 현금을 있는대로 꺼내서 책상에 거칠게 놓는다. 하지만 책상에 놓인 돈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눈빛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은채 남자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그 눈빛을 견딜 수가 없었다. 소리를 질러댈수록, 돈을 던져댈수록 그 눈빛은 남자의 가슴을 옭아맨다. 


그리고 격정을 지나 어느 순간 갑자기 숨이 턱 막혀들었다.


원래 크기의 심장이 급속도로 쪼그라드는 느낌이 이런걸까. 여태까지 당연히 있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죽을 때까지 같이 있을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였다. 결손된 부위에 고통은 없다. 하지만 가슴이 쥐어 짜이는 것처럼 고통스러워 주먹으로 왼쪽 가슴을 연신 후려쳤다.


눈물이 나온다. 갑자기 부하가 걸린 몸이 고통스러워서 그런건지 어찌할 도리가 없는 너무나 가혹한 현실에 대한 슬픔인 것인지는 알수 없었으나, 남자에게 있어서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피폐해져서 한계에 몰려 있었던건 분명하다.


그리고 오늘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성인남자는 답지않게 꺼이꺼이 눈물을 흘리며 울어버렸다. 


눈물에 섞인 시야는 정말로 흐릿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눈물은 물론 콧물까지 훌쩍이는 모습은 정말로 추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연민에 가득찬 그 눈빛을 외면할 수조차 없는 남자로서는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북받치는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며 현실을 도피하는 게 지금 남자에게 있어서는 구원일지도 모른다. 나중에 수습하기 힘들거라는 것을 알아도 남자는 그 자리에서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몇분이 지났을까. 여전히 감정은 수습되지 않는다. 그동안 의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설픈 위로보다 침묵이 더 상냥할 때도 있는 법이다. 진료실 안은 꼴사납게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왔고, 도중에 용무가 있어 간호사가 들어왔지만 손짓으로 제지 당한채 눈치를 보며 밖으로 나갔다. 의사의 표정 역시 사뭇 진지해져 있었다.


"환자분의 마음을 압니다... 아니 이런 말이 위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저도..."


어깨에 닿은 손길을 느낀 남자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문이 막힌 의사를 쳐다보았다. 의사가 머리에 손을 얹자 딸각소리가 난다. 그러자 풍성하던 두발이 쥐고 있는 손에 이끌려 통채로 뽑혀져 나가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졌다. 그 모습을 보자 남자는 우는 것도 잊어버린채 그저 얼어버렸다.


"탈모 20년차 입니다. 하지만 자식들은 물론 아내도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죠..."


머리의 각도를 살짝 틀자 실내등에 반사된 대머리가 빛을 뿜으며 눈을 간지럽힌다. 가발 속에서 흥건해진 땀이 윤기를 더한다. 그 눈부심은 사멸된 모근의 잔재였으리라. 


세상에는 많은 종류의 빛이 있다고 한다. 자신을 격렬하게 불살라가며 생명을 위해 뿜어대는 눈부신 태양빛이 있는가 하면, 자연계의 냉광이라고 불리며 효율적으로 빛을 내는 반딧불이의 불빛도 있다. 하지만 남자의 눈에 새겨진 그 빛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서글프고 아련한 반짝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은 동시에 질끈 감은 남자의 눈에도 마지막 눈물이 흘러내리며, 대머리의 역광을 받아 반짝거린다.  


모든 것이 밝게 빛나는 어느 오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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