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호야."

"으응?"

"밥 먹자꾸나."

"콩밥이잖아. 콩 싫어. 이게 뭐야. 내가 503도 아니고.."

"다 너를 위해서란다. 한 입만 먹어 보렴."

"싫어.."

"미역국도 있는데. 그거라도 먹어."

"오늘 누구 생일이야? 안 먹어. 미끌미끌해서 싫어."

"뭐라도 좀 먹어야지.."

"싫은데."

모자는 정말 행복해보인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행복이 느껴진다. 

점점 어두워진다. 

"하하하.."

마치 핸드폰 화면 밝기 줄이듯이, 그 장면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마침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현진호 학생?"

"일어났어?"

이곳은 어디인가. 꿈이였나.

나는 눈을 떴다. 

하지만 눈을 떴는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든 세상의 불빛이 꺼져 있었다. 주변의 삐 삐 삐 거리는 소리가 이곳이 병원임을 알려준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울려고 했다. 

"누워 있으세요. 안정을 더 취해야 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현진호 군의 안구에 심각한 손상이 갔습니다. 현 군의 집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는 이웃의 신고가 들어와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범인은 도망쳤지만 곧 자수했습니다. 묻지마 살인이라고 하네요."

"어머니.. 어머니는요?"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군요. 현 군도 직접 보셨을 테죠."

맞아.. 한순간에 걸레짝처럼 찢겨나가버린 우리 어머니.. 

"혹시 보호자 연락처 없으십니까? 아버지 이런 분.."

아.. 아버지는 이미 수년 전에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으셨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도 이미 다 세상을 떠나셨고.. 친가 쪽도.. 

나는 고아가 되어버렸다. 

나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없네요.."

"아.. 알겠습니다."


20년이 지났다. 

나는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는다.

더 이상 날 도와줄 사람도 없고, 돈도 없다.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시각장애인은 그게 안 된다나. 

용산역으로 걸어간다. 

뚜벅뚜벅. 한 손에 쥐팡이를 쥐고. 

"앗!"

어떤 여성 분과 부딪힌 것 같다.

"아.. 괜찮으세요?"

"앞 좀 똑바로 보고 다니세요!"

"앞을 볼 수가 없어요.."

"아.. 냄새."

뒤에서 "거지 새끼.." 라는 말이 들려온다. 

어쩌다 나는 거지 새끼가 되어있을까.

사실 거지 새끼랑 다를 바가 없다. 용산역에서 앵벌이짓을 한 것도 벌써 5년이 다되어간다. 

나는 용산역 계단에 자리를 잡는다. 

한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내 앞에 있는 바구니를 만져본다. 

차거운 느낌이 든다. 

100원짜리 동전이 하나, 둘, 셋.. 오늘은 수익이 많다. 삼백 원이면, 껌 정도는 씹을 수 있을 거다. 

"아저씨!"

누군가 나의 등을 툭툭 두드린다. 

"아저씨! 여기서 이러시면 안돼요~"

"여긴 내 자리야.."

"미치겠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내 자리라고.."

"아, 됐고 얼른 나가세요."

그들이 날 힘으로 끌어내린다. 지가 뭔데, 니가 내 마음을 아냐고.. 

나는 용산역 밖으로 끌려나간다. 용산역 앞 가로수에 나는 몸을 기댄다. 

내 꼴이 이게 뭐냐.. 

그렇게 나는 잠이 든다. 


"진호야."

"왜..?"

"넌 네가 누군지 아니?"

"갑자기? 난 현진호야."

"그래, 진호야. 그런데 진짜 넌 누구일까?"

"뭐..?"

"넌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니?"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고 보니 벌써 내 얼굴을 본 지 20년이나 되었네."

"너 자신을 보고 싶니?"

"응."

"그럼 내가 선물을 하나 줄게."

"뭔데..?"

"거울이야. 이걸 통해 너 자신을 볼 수 있지."

"당연한 거 아니야? 하지만 난 더 이상 거울이고 뭐고, 그딴 거 볼 수 없어."

"정신 차려. 여기는 꿈이야. 뭐든지 볼 수 있어."

"아, 어느새 꿈을 꾸고 있었네.."

"자, 이제 서서히 눈을 떠 봐."

"엄마!"

"그래. 진호야. 엄마야. 엄마 없이도 혼자서 잘 지내고 있지?"

"사실은 아니야.."

"나도 알아. 하지만 이걸 보렴."

"거울..?"

"그래. 거울이야. 아까 말했듯이 넌 이걸 통해 너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

"어서 보여줘. 뒤집혀 있잖아."

"내가 잘못 들고 있었네. 그럼 보여준다."

"뭐지?"

"무슨 문제라도?"

"아무것도 비춰지지 않아.."

다시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세상이 온통 검어졌다.

"잠깐만!"


틱!

깨어났다. 

몇 명의 행인들이 이상하다는 눈길을 주고 있었다. 

쪽팔린다.. 뭐 거지 주제에 쪽팔릴 건 없지.

그런데 꿈이 너무 생생했다. 너무 의미심장하다.

거울. 

더 이상 날 비추어 줄 거울은 없다. 

하지만 난 나의 모습을 보고 싶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쓸데없어 보이지만, 나는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했다. 

일단 그딴 생각은 접고, 나는 가까운 역인 신용산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다시 앵벌이 짓을 해야만 한다.


2시간이 지났다.

얼마나 모였을까. 

좀 큰 게 들어 있다. 500원이다! 100원짜리 동전이 5개나 있다. 횡재다. 

그때였다. 내 몸을 흔드는 감촉이 느껴진다. 

젠장, 또 경찰 새끼인 건가.

"저기요."

"네..?"

"혹시 시각장애인이에요?"

"네.. 앞을 볼 수 없어요."

"그럼 제안 하나만 할게요. 제가 시각장애인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 되는 게 있는데.."

"무슨 실험이죠?"

"일단 먼저, 시력을 잃은 지 얼마나 됬죠?"

"20년 조금 넘었을걸요.."

"혹시 3시간만 시력을 되찾을 수 있다면 하시겠습니까?"

"3시간요?"

"네. 인공 안구를 만들었는데.. 효율성이 낮아서 3시간 밖에 못 봅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확실하고요."

세 시간이라... 짧을 수도 있지만 나의 모습을 볼수 있다면야, 

"기꺼이 하겠습니다. 혹시 위험성 같은 건 없나요?"

"거의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실패가 없고 매우 안전한 방법으로 인공 안구를 이식하고 있습니다."

"할게요."

"그럼 내일 아침 일찍 지축역 남자 화장실 셋째 칸으로 오세요. 또한 오시면 화장실 문을 따단-딴-따단 간격으로 두드려 주세요."

"왜죠..? 병원 같은 데가 아니고요..?"

"저희도 불법이라.."

"아.."

"절대로 외부에 말하지 마세요."

"네."

"그럼 내일 지축역에서 뵙겠습니다."


다음 날. 약속대로 난 지축역까지 왔다. 

사람이 없는 한산한 역이였다. 아주 조용하다.

나는 점자 블록을 지팡이로 쳐내려가며, 

지축역 화장실을 찾았다.

남자 화장실 하나, 둘, 셋째 칸.. 여기다. 

나는 약속대로,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따다 따 따닥.'

"아, 오셨습니까?"

갑자기 위에서 소리가 들린다. 

"양변기를 밟고 만세 자세를 하세요."

난 그의 말대로 양변기를 밟고 만세 자세를 했다. 

갑자기 끌어 올려진다. 

"이곳은 어디지?"

"안심하세요. 이제 저희는 비밀 아지트로 갈 겁니다." 

"아.."

2분 동안 그들을 따라다녔을까.

"도착했습니다. 여기 누우세요. 김신혜!"

"네! 조 박사님 오셨어요?"

"이 환자 인공안구 이식수술 좀 도와줘."

"아.. 네. 알겠습니다."

"마취약 넣겠습니다."

팔에 따끔한 감각이 느껴진다. 

"주입 완료."

"자, 그럼 이제 시작해."

여러 연장들이 맞부딪혀 달그닥거린다. 

위이잉 위이잉. 

드릴 돌아가는 소리가 난다.

내 눈에 살짝 느낌이 나긴 했지만, 통증은 없었다. 

"자, 그럼 ELV5 들어갑니다."

"어.. 잠깐!"

내 눈에 뭔가 액체가 들어왔다.

"넣었어?"

"네.."

"ELV35를 넣어야지 그걸 왜 넣어? 그건 ELV 실패작이야! 생화학 무기나 다름 없다고."

"그럼 저 환자는.."

"어쩔 수 없지."

"잠깐, 그게 무슨 소리.. 으아아악!!"

눈이 불타는 듯한 고통이 밀려온다. 

"크아아아악!"

"죄송합니다.."

"으어어어어!"

고통이 온몸으로 번진다. 온 몸이 뜨겁다.

점점 식기 시작하더니, 

고통은 멈추었다.

의사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온다.

"....네...사망...."

"...책임.....쇼크사....."

무엇인진 모르겠지만 나는 죽어 있었다.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죽었다.

점점 몸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영혼과 몸이 분리된다는 것이 이런 건가.

나는 저 하늘 높은 곳으로 날아올랐다.

모든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진호야."

"네?"

"날 보렴."

"어..."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것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어머니!"

"계속 지켜보고 있었단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꿈과 달리, 어머니의 형태가 확실했다. 

이건 나의 어머니다. 

"그거 아니?"

"뭘요?"

"그때 왜 거울에 너의 모습은 없었을까?"

"왜죠?"

"넌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게 뭐죠?"

"글쎄? 가장 중요한 것이 뭘까? 일단 널 위해 선물이 있단다."

"저에게 가장 큰 선물은 어머니를 보았다는 거에요."

"잘 알고 있구나. 하지만 선물이 하나 더 있다."

"뭐죠?"

"거울이다."

"또요?"

"이번엔 가장 중요한 걸 생각하며 거울을 보아라."

"또 거꾸로 들고 있는데요? 빨리 뒤집어 주세요."

"아. 또 실수를 했구나. 그럼 뒤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