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식인이기를 포기했다
지식인이란
자고로
사회 현안에 대해 찾아보고 자신의 신념에 비추어 그에 대한 정해를 규정하되
새로이 알게 되는 사실에 맞추어 자신의 신념을 바꿀 줄 알아야 하며
정보원에 대해서는 항상 사전검증을 하고
반대 의견도 경청하는 자세를 견지하여
누군가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비난하거나
그 사람의 신념이나 사상을 근거로
그 사람의 다른 면모에 대한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
너무 어렵다
어렵다기보다는 귀찮다
모두가 지식인이 아닌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사회적 입장을 근거로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그저 시류에 몸을 맡기는 것이 가장 편하다
어차피 수많은 사람들이 개미 떼처럼 무리지어 사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 하나만의 신념과 정해란 세상에 나오기조차 어렵다
그저 조금이라도 공통점이 있는 대분류에 속하여 매년 투표함에
그 대분류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 최선이다.
극단주의자들이 부러워지는 대목이다
영향력이 강한 대분류의 수장들과 입장이 같으니
자신의 주장들이 그나마 세상 밖으로 나오기라도 하기 때문이다
하여간 이 귀찮음은 드디어 병으로 발전한 듯 하다
단편은 커녕 엽편 하나도 쓰기가 두려워
각운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이 글을
꾸역꾸역 운문의 틀에 짜맞춰 끄적여 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것은 곧 지식인 실격을 의미한다
남는 게 시간이던 시기는 지나갔다
이젠 반복되는 일상에서 생각이라는 사치를 부릴 여유는 없다
왜 다들 지식인일 수 없는지에 대해 조금은 이해한 듯 싶다
지성은 잠시, 아니 영원히 빼어두고
눈 앞에 닥친 혹독한 시련과
눈 앞에 닥친 관능적 쾌락에
몸을 맡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