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어느 장소, 내가 멈춘 곳. 차의 뒷문을 열고 나와 주위의 풍경을 눈에 담는다. 짧게 깎인 잔디, 가꾸어지지 않은 나무와 가꾸어진 나무가 뒤섞여 있다. 꽤 튼튼해 보이는 울타리가 마당의 주위에 둘러쳐 있다. 나는 괜히 그것을 흔들어보며 잘 고정되어 있나 확인했다. 나를 이곳까지 데려다준 택시 기사에게 지갑의 현금을 전부 꺼내어 주었다. 택시기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거스름돈을 주려 하지만, 나는 손바닥을 보이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택시기사는 기분이 좋은지 이빨을 보이며 웃었다. 나도 똑같이 웃어주었다. 택시의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고, 창문이 열린 조수석 문에 인사했다. 택시기사는 감사하다고 말하며, 차를 돌려 이곳에서 빠져나갔다.


울타리의 주변을 걸었다. 꽃은 빛깔을 잃고 지기 직전이었다. 이 시기에 꼭 맞춰 온 게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지, 정확하게 판단할 수는 없었으나 아무튼 나는 꽃이 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해는 금방이라도 뒤편의 배경이 되어주는 산속으로 들어갈 것만 같다. 겉옷을 입고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울타리의 주위를 돌던 나는 어느새 울타리문의 앞에 섰다. 잠금장치가 안에서 걸려 있었지만, 허리를 숙여 손을 뻗으면 쉽게 닿을 정도로 허술했다. 나는 생각한 바를 그대로 이행했다. 철컥, 하고 울타리문의 잠금이 풀렸다. 나는 문을 밀고 정원으로 발을 내디뎠다. 화려하진 않지만, 고풍스러운 모양새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 정원의 위에 얹혀있다. 울타리의 입구에서 그 건물의 문까지는 평평한 돌이 지면에 박혀 있었다. 나는 그 발판을 하나씩 밟아가며 건물로 나아갔다. 신발의 밑창에서 느껴지는 단단한 감각이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발판을 잘 밟고 이동해서, 잔디가 발목을 간지럽히는 불쾌한 감각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다. 혹여 잔디에 매달려 있을 벌레들이 피부를 자극하거나, 가려운 느낌을 받지 않아도 되었기에 나는 발판을 설치한 사람을 속으로 칭찬했다.


정원을 전부 건너온 나는 계단을 올랐다. 몇 칸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두 칸씩 올라 이동하는데 걸리는 지루한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였다. 나의 신체에 2배 정도 되는 정문이 나를 압도했다. 장식하고 있는 쇠 구조물은 살짝 녹이 슬어 힘을 주어야 움직일 것 같았지만, 더러워 보여 굳이 만지지 않았다. 그것보다 나는 멀쩡하게 달린 초인종에 시선이 갔다. 사람이 누르기 적당한, 어깨와 팔꿈치의 사이 정도의 높이에 설치된 초인종은 꽤 공을 들인 정문과 비교해서 평범했다. 나는 별다른 행동 없이 초인종을 가볍게 눌렀다. 평범하게 말이다. 건물 안에서 맑은 울림이 있었다. 초인종은 고장 없이 자신의 역할을 다 해주었다. 정문 앞까지 다가오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목재를 밟는 소리였다. 삐걱대는 소리는 점점 커지며, 문의 한 편은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주황색의 조명이 은은하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하얀 머리의 노파는 따뜻해 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노파가 별다른 행동을 하는 소리 없이 곧바로 문을 연 것으로 미루어보아 정문은 이미 열려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초인종을 눌러서 예의를 지켰으니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의 등장에도 노파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세월이 가져다준 침착함일까, 그녀는 나를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잠깐 열렸던 한쪽 문은 다시 닫혔다. 나는 바깥과의 연결이 끊기고, 온전히 건물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위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고, 1층의 중앙에는 잡동사니가 놓인 탁자가 있었다. 노파는 잡동사니가 놓인 탁자로 천천히 걸어갔다. 나도 그녀를 따라 조금 걸었다. 노파는 탁자 근처에 있던 흔들의자에 앉았다. 탁자 위에 난잡하게 널브러진 종이 더미 사이에서 금색 줄이 달린 돋보기를 찾아 능숙하게, 한 손으로 두 귀에 걸었다. 탁자 위의 흐트러진 종이를 뒤졌다. 나는 가만히 노파의 맞은편에 서 있었다. 왼쪽으로 이어지는 복도는 식당으로 보였다. 오른쪽으로도 복도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어떤 공간인지 알 수는 없었다. 손톱이 탁자를 두드리는 가벼운 소리가 두 번 났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던 것을 멈추고 다시 노파를 바라보았다. 주름진 손에는 큼지막한 팻말이 걸린 열쇠가 들려 있었다. 나에게 가져가라는 듯, 손목을 몇 번 흔들었다. 나는 건네준 열쇠를 받아들었다. 팻말에는 202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202라, 2층으로 가야 내 방이 있는 거 같았다. 노파는 다시 탁자 위에 산재한 일거리들에 집중했다. 느릿한 손동작으로 종이들을 건져 올려 내용을 확인하고 있었다. 나는 계단 쪽에 시선을 돌렸다. 건물이 꽤 높았기에 계단의 양도 상당했다. 나는 조금 흘러내린 짐가방 끈을 다시 고쳐 들고, 계단을 한 칸씩 올랐다. 계단의 손잡이는 칠이 되어 고급스러웠고, 매끄러웠다. 그 감촉을 느끼며, 한 발자국씩 올랐다. 밟을 때마다 나는 특이한 소음이 불안했지만, 튼튼함을 의심하지 않았다.


2층에 올라가자 긴 복도가 한 층을 관통하고 있었다. 띄엄띄엄 방이 있었다. 문 위에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나는 202호를 눈으로 훑어 찾았다. 계단과 그리 멀지 않은 문에서 그 숫자를 발견했다. 당장이라도 잠금을 풀 기세로 열쇠를 적당한 높이에 들고 문 앞에 섰다. 문고리에 열쇠를 꽂아 넣고, 잡아 돌렸다.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쇳소리가 나며 문고리는 돌아갔다. 나는 문을 열어젖히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침대와 작은 1인용 소파와 탁자. 침대가 놓인 반대편 벽에는 길쭉한 책상이 놓여 있어서 짐이나 잡다한 것을 놓을 수 있었다. 어깨에서 짐가방을 내리고, 일단 그곳에 내려놓았다. 1인용 소파와 탁자가 놓인 벽에는 큰 창이 하나 나 있어서 바깥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겉옷을 소파의 팔걸이에 벗어두고, 탁자 위에 두 팔꿈치를 올리고 창에 그려진 자연을 멍하니 보았다.


널찍한 숲, 동산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잎이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마치 하나의 군집처럼 일체로 일렁이는 식물이 볼거리였다. 그 앞에는 강이 한 줄기 흐르고 있었다. 땅에 박힌 큰 바위의 위로는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워 보이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었다. 창문을 열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추울 거 같아 잠깐 고민하고 포기했다. 대신 짐가방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탁자에는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안에서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것이다. 구겨진 비닐이 싸인 담뱃갑에서 한 개비를 꺼냈다. 그것을 입에 물었다. 담뱃갑은 재떨이의 옆에 두었다. 라이터를 들고 불을 켜서 담배에 붙였다. 깊게 빨아들였다. 담배는 방의 조명과 비슷한, 주황색의 불빛을 밝히며 탔다. 손가락으로 담배를 입술에서 떼었다. 소파의 등받이에 온전히 무게를 기대고 허공에 숨을 불었다. 희고 검은 연기가 얽히며 매캐한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다시 담배를 입으로 가져와 빨아들였다. 다리를 쭉 뻗은 채 소파에 반쯤 누웠다. 천장에는 예술적인 패턴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 패턴을 눈으로 따라가며 그것의 연속성을 깨달았다. 무의식적으로 다시 담배를 물었다. 연기를 머금고 뱉어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의식은 복잡한 생각이 뒤섞이지만, 나는 떨쳐내려고 노력했다. 위태롭게 매달린 담뱃재를 재떨이에 떨쳐냈다. 담배는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다시 빨아들이고, 뱉어냈다. 다시 빨아들이고, 뱉어냈다. 다시 빨아들이고, 뱉어냈다. 곧 붙잡고 있던 손가락까지 뜨거운 불빛이 닿을 것만 같았다. 나는 입안에 있었던 부분을 손가락으로 집고, 재떨이에 짧아진 담배를 짓이겼다. 머리가 맑아졌다. 방 안에는 담배 냄새로 가득했지만, 그리 특별한 냄새는 아니었다. 오히려 담배 냄새가 없다면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담배를 즐겼던 탁자를 한쪽에 치워 두고, 1인용 소파를 길쭉한 책상으로 들어 옮겼다. 짐가방에서 원고지와 펜을 꺼냈다. 책상에 그것을 올려 두고 다시 앉았다. 턱을 괴고 앉아서 무엇을 쓸지 고민했다. 이전까지 쓰던 글이 있었지만, 오늘은 그것을 이어 쓸 기분은 아니었다. 쓸 주제를 고민하다 보니, 바깥은 해가 산등성이 너머로 사라지고, 달빛이 창가에 달린 흰색의 커튼을 뚫고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 분명 저녁 식사 시간은 멀찍이 지나간 후임이 분명했다. 책상 위에 펜을 올려 두었다. 뚜껑을 닫아 잉크가 마르지 않도록 하고, 짐가방에서 잠옷을 꺼내 갈아입었다. 셔츠와 바지는 비치된 옷장에 잘 걸어두고, 소파를 책상 안에 잘 밀어 넣었다. 침대의 위에 누웠다. 단단한 매트리스가 특징적이었다. 흰 베개, 흰 이불, 흰 이불보, 흰 매트리스, 갈색의 나무 침대 틀.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침대였다. 이불을 걷어 안으로 들어갔다. 몸 위로 이불을 덮었다. 침대에 다 들어온 시점에서야 불을 끄는 걸 잊었다는 걸 알아챘지만, 다시 일어나 조명을 끄기에는 귀찮은 마음이 더 컸다.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밝은 조명을 애써 피하며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