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어렸을 적에는 집안이 상당히 화목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며 내가 나이를 먹고 꼬마의 숫기를 벗어던질 때가 되었을 때부터, 우리 집안은 사정없이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난, 그때부터 비가 무서웠다, 비가 두려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이 되면 온갖 생물들은 비를 피해 풀숲으로 도망치곤 한다. 곤충은 젖은 날개를 말렸고 버려진 동물들은 비를 피해 구석진 하수구로 도망치곤 하였다. 그러지 못하면 그들에게 비참하고 처절한 최후가 숨통을 죄여올 것을 그들도 알기 때문이다.


공손, 상대방이 두려워 자신을 없애고 남에게 철저하게 맞추는 감정. 비가 오는 날, 난 누구보다 아버지 앞에서 공손해졌다.


아버지는 비가 오는 날만 되면 술에 잡아먹힌 채, 사정없이 나를 구타했다. 강제로 멱살을 잡힌 채 마당으로 끌려가 나의 존엄성을 마구 짓밟았다.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하던 나의 비명은 빗소리에 묻혔고 손에 상처가 생길 정도로 손바닥을 비비며 용서를 구하던 내 눈물은 빗방울로 인하여 단번에 씻겨나갔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를 말려야 했으나,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어머니마저 강제로 끌고 데려와 사정없이 구타하셨고, 이윽고 나를 다시 구타하곤 하셨다. 어머니가 할 수 있던 최선은 그저 아들이 맞는 것을 바라보며 정신만 놓지 말게 해달라고 신께 빌면서 자신이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죄책감을 온몸으로 받는 게 전부였다.


쳇바퀴처럼 계속해서 굴러가지만 시작도 끝도 보이지 않는 진흙탕 같은 인생, 그날은 유독 달랐다.


평소 같으면 구타가 끝나고 집에서 왕처럼 강림하시던 우리 아버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공포감에 질리더니 술을 마시러 간다며 집을 떠났고, 어머니와 나는 약 상자를 뒤지며 어떤 것이 고통스럽지 않고 편하게 죽는 약인지 찾고 있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돌연사, 술에 취해 비틀거리다 비에 흠뻑 젖어 저체온증으로 돌아가셨다고. 정말로 그에게 어울리는 비참한 최후다. 우린 사망보험금 같은 것도 없었고 아버지가 남겨둔 유품은 더더욱 없었다.


내 나이는 청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년은 더더욱 아닌 나이였다, 어머니는 거동이 힘드셨고 한치의 시야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제발 그것이 아버지의 구타로 인한 영향이 아니라 단순한 노환이기를 빌었다. 장마철이라 그런지 비는 며칠째 계속해서 쏟아졌고 난 그런 빗방울을 보면서 생각했다.


’저것은 내 눈물이다, 난 더는 눈물 흘리지 않고 독해지겠다. 난 절대로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라고.

..

.

그 다짐 이후로 더 이상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머니의 기억조차 희미하고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무엇을 했는지조차 아무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건 어머니는 내가 성인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자살로.


왜일까, 가정폭력의 여파로 제대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해 왕따와 학교폭력을 당했고 그로 인하여 내 무의식이 멋대로 트라우마로 간주하여 잠가버린 것일까? 아니면 그냥 내가 나에게 최면을 걸어서 잠가버린 것일까?


난 전자라고 믿고 싶다.


어느덧 난 성인이 되었고 막무가내로 집을 떠나 자립하였다, 정말로 힘들었지만 다행히 사람답게 살 수는 있을 정도의 일자리를 얻었다. 그리고..나에게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이 생겼다. 사랑을 품게 되었고, 애인을 만났으며, 결혼을 하였다. 어렸을 적의 있었던 내 어두운 과거를 지금에 와서야 보답 받는 느낌이었다. 나에게 이런 달콤한 경험이 허락되는 것이 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때의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행복하고 달콤했다. 하지만 그렇게 달콤한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아이...낳는게 어때?”


심장을 죄여오는 무서운 한마디,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아들이면 어떡하지?‘


’우리 아버지를 닮았다면?‘


’날 틀림없이 죽이려고 들지 않을까?‘


거부해도 괜찮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사정을 말했다면 이해해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 그러지 못했다. 지금껏 살아온 나에게 아내와 겪은 달콤함은 끊기가 힘들었고 난 이 달콤함을 어떻게 해서든 더 맛보고 싶었다. 내가 그토록 바라던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가 실현되는 순간이 다가온다고 느꼈다.


무서운 속도로 시간은 지났고 꽃이 피고 지고를 여러 번 반복했다. 감격에 겨운 건강한 사내의 출산, 잠시나마 느꼈던 행복, 그리고..점점 우리 아버지의 얼굴을 닮아가는 나의 아들.


내 불안감은 점점 커지기만 하고 언제, 어디서 나의 아들이 나와 아내의 등에다가 날카로운 비수를 꽂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아이라는 생명은 너무나 연약하고 예측할 수 없기에 어떤 돌발행위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난 일을 할 때도, 잠을 잘 때도 모든 행위를 할 때도 아들이라는 대못에 내 머릿속에 박혀서 뽑히질 않았다.


’어떡해야 하지?‘


’저 눈매..입..얼굴..모두 우리 아버지와 똑같아..‘


’저 아이는 폭탄 같은 존재일지도 몰라.‘


내 아들은 아직 젊다, 세상 물정을 모르고 순수하며 동심이 많을 나이다. 하지만 아들의 눈매를 볼 때마다 교수대의 밧줄처럼 나의 숨통을 죄여왔다.


난, 난 우리 아버지와 똑같은 인생을 살아선 안 된다. 아이의 성장은 계속해서 나의 숨통을 조여오고 내 머릿속에 대문짝만한 못질 구멍을 내었으며 숨도 제대로 쉴 수 없고 일상생활과 직장 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왜 이럴까, 분명히 예전에는 행복했는데. 아니, 몇 달 전만 하더라도 행복의 달콤한 향기가 집안 곳곳을 돌아다니며 부드럽게 나의 코를 쓰다듬곤 했는데.


..더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어떻게 얻은 행복인데, 난 이 행복을 절대 놓칠 수 없다. 내 아이는 성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꼬마는 아닌 나이다. 마치 어렸을 때의 나처럼, 적어도 독립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을 먼 곳으로 보내자, 대신 지원은 해주자. 그럼 적어도 무책임하게 버리는 부모는 아니겠지. 날씨는 어느새 어두워졌고 비는 매섭게 내리는 밤.


이상하다, 그동안 살면서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도 넘게 비를 봤는데. 오늘 내리는 비는..마치 어렸을 적에 내가 떠오른다.


정신 차리자, 과거의 기억에 휘둘리지 말자. 난 그렇게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

.

“미쳤어?! 애를 내보내? 당신이 그러고도 사람 새끼야?”


“내 말을 들으라고!! 아내라는 사람이 날 사랑한다면서 내 의견도 존중 못 해? 당신이야말로 제정신이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이뤄지는 아내와의 설전, 아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나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나 또한 흥분해서 언성이 커진다.


아, 머리가 아프다, 왜 이러지, 자꾸만 내 아버지 생각이 든다.


“여보 내 말 들어! 쫓아낸다는 게 아니라 금전적인 지원은 해준다는 얘기야!”


“아...그래..알겠어..내가 당신에게 속고 있었네.”

“뭐..?”


“당신은 아빠 자격이 없는 인간이야, 애를 내쫓아? 그게 아버지로서 맞는 방법이라 생각해? 아들이 당신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그만..”


아빠 자격이 없는 인간, 아빠 자격이 없는 인간!!


머릿속이 더더욱 아파진다, 내 신경이 미친 듯이 예민해지고 호흡은 가팔라졌으며 피가 끓는 듯 온몸이 뜨겁다.


왜째서인지 아내의 고함보다 창문에 계속해서 부딪히는 빗소리가 내 귀를 파고든다.


비가 창문을 부수고 나를 조롱할 것 같다.


왜..왜 자꾸 그 빌어먹을 아버지 생각이 나는 거야!!


“그만..!”

“아니, 나 안 끝났어! 그래! 나 제정신 아니고, 아내라는 사람이 속 좁아서 의견도 존중 못 한다! 갈라져! 당신은 아빠 자격도 없어!”


“닥쳐 이 개같은 년아!!!”


접시가 날아가고 가구가 박살이 나고, 하늘을 찢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아내의 비명.


소리 지르지 마, 너가 뭘 잘했다고, 난 널 사랑했어, 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었어, 근데 네년이 내 역린을 건드린 거야, 아가리 닥쳐, 닥쳐, 닥쳐, 닥쳐!! 닥칠 때까지 뒈질 때까지 맞아봐, 이 좆같은 년아!!!


“아빠!! 왜그래!! 엄마 때리지 마!”


야수처럼 이성을 놓아버린 나의 신경과 영혼을 깊게 찌르는 아들의 한마디. 정신을 차린 내 눈앞에 보인 것은 상처로 뒤덮인 채 쓰러져있는 아내와 그런 아내에게 다가가 아내를 감싼 채, 겁이 나지만 어떻게든 엄마를 지키겠다고 나를 노려보고 있는 아들이었다.


...난 보았다, 아들의 공포에 찬 얼굴을, 아내의 경멸의 눈빛을.


난 들었다.. 내 귓가를 찌르는 날카로운 빗소리를.


아....아...왜..아버지 생각이 그렇게 났는지 알 것 같다. 난..지금 아버지랑 똑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다...아..아..

..

.

난 아내를 폭행한 후, 너무나도 무거운 공포감에 휩싸여 집에서 도망쳤다. 난 어떻게든 이 선명한 폭행의 기억을 잊어버리기 위해 비에 흠뻑 젖은 채 술에 취해 중심이 흔들리며 걷고 있다. 중심을 잃은 채로 첨벙첨벙 흙탕물을 밟고 있으며 나의 무거운 발걸음의 영향으로 흙탕물은 비바람을 타고 강한 파도를 일렁이며 주위를 짙은 갈색으로 물들이고 있다..


난..내 어렸을 적의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이유라 하면은 나이가 먹음에 따라 자연스레 발생하는 기억력 감퇴같이 시시콜콜한 이유에서라고 난 지금껏 믿고 있었다. 하지만 비에 흠뻑 젖으며 나를 뼛속 깊은 영혼까지 녹여대니, 어렸을 적 희미한 내 기억의 자취가 보인다.


난..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난 가정을 혼자 책임져야 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와 똑같이 난폭해졌다, 가구를 집어 던지고 물건을 부수고 어머니에게 폭언과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기억난다, 어머니가 왜 돌아가셨는지.


어머니는..이렇게 살 순 없다며 약상자를 모조리 털어서 드셨다. 어머니는..내가 죽인 셈이다, 난 그걸 잊기 위해 집을 떠났고, 기억을 강제적으로 잠가야만 했다. 이제야 기억이 난다..


비는 계속해서 추적추적 내리고 있고, 마치 나를 조롱하듯 무거운 빗방울로 사정없이 내 얼굴을 때리고 있다. 아버지가 왜 그때 나와 어머니를 때리곤 그렇게 공포감에 휩싸여 도망쳤는지 알 것 같다. 아버지도 자신의 그런 모습이 너무나 무서웠겠지.


...억울하다...난..난...행복하게 살기를 바랬을 뿐인데..


그저..좋은 아빠가 되길 원했는데..어두운 과거를 가지고 태어나서 아무것도 잘 할 수가 없다...


난..대체 뭘 어떡해야 하는가..이제 내 아들은 날 보고는 ’아버지 같이 살지 않겠다‘라는 결심이나 하겠지, 나처럼. 그렇게 대물림이나 되겠지..


대체 이 좆같은 악순환은 어디서부터 시작된거지?


대체 어디서부터 찾아왔느냔 말이야!!


아, 죽고 싶다. 아주 비참하고 처절하게 죽어버리고 싶다. 하지만 죽기는 무섭다, 그렇다고 살기에는 두렵다. 40년 가까이 인간으로서 살아왔지만 난 지금껏 단 한 번도 인간으로서 살아본 적이 없다. 하루하루를 재갈 묶인 죄수같이 위축되어 살아왔다. 난 인간이 아니다. 짐승이다, 야수다, 괴물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다...


비는 계속해서 매섭게 내리고 있고, 그런 사실을 이제 알았냐는 듯 계속해서 날 집어삼키고 있었다. 다리는 중심을 잃고 제대로 거동도 못하는 상황이다, 난 이제 걸을 수도 없다, 난 그렇게 균형을 잃고 땅에 처박혔다. 그래..난 아버지 자격이 없는 사람이야..나한텐..이런 게 어울려..난 그렇게 발 끝부분부터 천천히 빗방울에 잡아먹혔다. 비는 계속해서 추적추적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