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당연한 슬픔




*





“꽃밭은 비유일까?”

 

“뭐?”

 

뜬금없는 말에 나는 얼른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러나 승후는 여느 때와 같은 편안한 표정이었다. 그는 목이 쉬어 가느다래진 목소리로 다시 내게 말해주었다.

 

“꽃밭 말이야. 밭이라는 건 원래 농사를 짓는 땅을 이르는 말이잖아? 하지만 꽃밭은 아무 땅이라도 꽃이 많이 피어있기만 해도 꽃밭이라고 불러주잖아. 그럼 비유적인 표현인 걸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를 지켜봤다. 승후는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의 머리맡 위로 원리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의료기기들이 링거를 통해 그와 연결되어 있었다. 16개월 전 그가 크론병을 진단받은 이후 승후는 줄곧 여기에 있었다. 그는 다시 내게 말해왔다.

 

“하지만 일부러 꽃을 심어 가꾼 밭도 꽃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걸 보면, 역시 비유적인 표현이 아닐지도 몰라. 혹은 둘 다일지도. 언어란 때에 따라 변형되어 불리곤 하니까.”

 

승후는 계속해서 내게 말을 쏟아내고 있다. 나는 문득 그 일련의 말들이 내게 전하는 신호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뜬구름 잡는 소리였고, 우리의 관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말들이었다. 옛날에는 승후가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실용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다투었던 기억이 난다. 같이 바다로 여행을 갔을 때였다. 그때 나는 여행 도중, 지독한 몸살 감기에 걸려 숙소에 누워만 있었다. 하지만 승후는 너무나도 멀쩡했고, 내가 아파도 그는 태연히 제 할일을 하곤 했다. 그것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껴서서 눈물을 터트렸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자주 싸우곤 했다. 대개는 내가 먼저 울어버리는 쪽으로 끝났다. 눈물은 연인 관계에 있어서 어쩌면 비겁한 수단이었지만 내가 의도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풍선에 바늘을 찌른 것처럼 갑작스럽게 터져나오고는 했고, 그 눈물 때문에 대화의 방향이 엇나가버릴지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물론 감정을 조절하는 것 또한 서툴렀지만, 감정을 조절하는 것과 몸의 반응을 조절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승후는 그런 면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는 감정과 자신을 분리하여 생각할 줄 알았다. 그것은 내가 승후를 좋아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사람이란 자신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끌리는 것이다. 우리는 자주 싸웠지만 그 이상으로 서로를 사랑했다. 

 

다만 여기에 입원한 이후로 승후는 유독 생각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것은 때로 흥미로웠고 어쩔 때는 그다지 흥미가 없기도 했지만, 확실한 건 이전에 승후는 이런 류의 이야기들을 굳이 화젯거리에 올린 적이 없다는 것이다.

 

몇 달 전 승후는 장 천공을 비롯한 누적된 합병증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았다. 나는 본디 시한부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때문에 그것이 현실에 있기에는 너무 비극적이라고 느껴졌지만, 승후는 뜻밖에 신이 난 얼굴로 수연이 네가 좋아하는 거 아니였냐며 내게 그 비극을 전해왔다.

 

내가 쉽사리 웃지 못하자 승후의 표정도 점차 굳었지만, 이미 그의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내가 변한 것일 수도 있고 그가 변한 것일 수도 있었다. 확실한 것은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그 사실이 제일 비극적인 사실이었다. 우리는 일부러 남은 시간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승후가 이상한 말을 하는 빈도는 점점 늘어갔고 그 일련의 지리멸렬한 이야기거리가 단순히 질병의 연장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꽤 고통스러웠다.

 

나는 승후에게 한 번도 남은 시간을 물은 적이 없었고 그 또한 처음에 해주었던 이야기를 제외하면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언제 그가 내 말을 듣지 못하고 어느새 싸늘한 시체로 누워있을지 알 수 없었고, 매일매일 그 가능성을 염두하며 병원으로 오는 것이 몹시도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물어볼 용기 또한 남지 않았다. 

 

“수연아, 듣고 있어?”

 

“응. 모두 듣고 있어.”

 

정말이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말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

 

“내가 뭐라고 말했는데?”

 

“꽃밭에 대해 말했잖아. 비유일지도, 아닐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그것은 알 수 없는 사실이라고, 내게 모두 말해줬잖아.”

 

그러나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잃은 듯 했다. 그때 나는 나로서는 그 공허를 채워줄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니야. 수연아. 너는 듣지 못했어. 너는 알 수 없어.”

 

승후가 말했다. 그는 여전히 눈물진 눈으로 나를 바라봤고, 나 또한 묵묵히 그와 눈을 맞췄다. 우리는 서로 같은 곳을 보고 있었지만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눈물로 흐려진 승후의 눈동자 안에서는 내 상이 잘 맺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문득 그의 말이 일종의 몸부림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 어쩌면 곧 모든 기억과 육체와, 사랑과 마음을 잃고, 공허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견디지 못해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거기에 동참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와 함께 죽을 수 없고 비척대는 몸을 이끌고 서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벽 너머의 위로뿐이었다. 그에게는 그 위로가 위선으로 비추어졌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게 사실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아직 그를 사랑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 사실이 나는 못 견디게 슬펐다. 어쩌면 내가 사랑한 것은, 아주 짧은 순간의 그를, 그 우연을 사랑했을 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다른 사람, 누구든지, 누구라도 마찬가지라는 사실 또한 깨달았다.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그가, 내가, 이 병원이, 세상이 너무도 공허하게 보여서, 이제 어디에도 갈 수 없을 것처럼만 보여서 나는 숨죽여 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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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날먹 엽편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