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분 속 설화.




 ‘존재’란 무엇입니까?


뜬금없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설화’라는 꽃은 항상 같은 말을 되풀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날 기억해 주는 사람은 있을까?”


전 함부로 대답해 줄 수 없었습니다. 


세상의 끝을 달려 생명력을 다했을 때 우린.. 그 사람이, 그 꽃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만일 사라진다면 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매번 해맑게 웃지만 타들어가는 설화를 보며 전 항상 웃음만 짓습니다.     


“내가 기억해 줄게.”     


시들어가는 설화를 보면 자연스레 가슴이 시립니다. 창백하게 피워 오른 설화의 피부, 쳐져가는 눈매, 눈매를 가리는 덥수룩한 긴 머리. 마치 꽃이 고개를 숙인 듯 매번 같은 병실에 누워 있는 설화. 설화는 제가 꽃에 물을 주듯 다가가야만 그제야 고개를 듭니다. 


 “.. 매번 찾아와 줘서 고마워.”


조용히.. 목소리가 퍼져나가니 저는 괜스레 웃음만 짓습니다.     


 


 설화는 왜소한 몸과 다르게 활발한 소녀였습니다. 저 같은 남자와는 반대되게 말이죠. 설화는 항상 병실을 누비며 주변 사람들을 도와줬습니다. 자신도 아픈데 남을 도와주려 하다니 그 모습이 보기 좋으면서도 안쓰럽기만 합니다.  


 어느 날은 어린아이가 겁에 질린 채 병실에 누워 있었습니다. 심장 수술했어야 했기에 다가오는 미래에 두려움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그때까지 전 설화만 보느라 병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미처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그런 저와 반대로 설화는 꿈틀- 병실 침대에서 일어나 기꺼이 어린아이에게 다가가 몇 시간을 놀아줬습니다. 그 시간 동안 설화는 몇 번의 기침을 하고 몇 번의 어지러움을 호소했지만 어째서인지 설화를 말릴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즐거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전 설화와 어린아이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함과 병실이 불러오는 이질감에 슬픔을 삼켰습니다.     


 설화는 사람들과 말하는 걸 좋아하는 소녀입니다. 그렇기에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같은 병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말하고 친해졌습니다. 그런 설화는 항상 역설적이게도 혼자 숲을 가려했습니다. 병원 옆에는 작은 숲이 있습니다. 설화에게는 답답한 병원 공기를 환기시킬 유일한 공간이었던 겁니다. 저는 항상 설화를 이끌고 작은 숲으로 가려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 혼자 가고 싶어.” 싸늘하게 말하니 차마 같이 동행할 수 없었습니다.     


 전 쓸쓸히 걷는 설화의 뒷모습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화가 무슨 병을 가지고 있으며 어째서 매번 병실에 있는지.... 


 하지만 설화가 알려 주질 않으니 제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애초에 설화와의 만남이 학생과 반장 사이의 관계인만큼 저에게 알려줄 생각은 없는 거 같네요. 


 저는 설화와 같은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얼굴을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입학시기부터 병실에 계속 누워있던 설화를 알 도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제가 반장이 되자, 유인물을 병원에 있는 한 소녀에게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반장으로서 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병원까지 가서 유인물을 나눠주라니 꽤나 피곤한 부탁이었습니다.     


저는 귀찮음과 함께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약 냄새가 진동하는 병원. 


계단을 타고 병실로 올라가자 한 송이의 꽃이 있었습니다. 


하얗고 뽀얀 꽃이. 그곳에서 처음 설화를 만났습니다. 




 제가 반장이 된 이유는 그저 공부 잘하는 애였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반장이 된 것도 잡일을 떠넘기려는 친구들의 속셈이었지요. 그 속셈에 제가 반장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전 반장이라는 이름에 큰 책임감 따위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공지와 유인물 나눠주기. 이 두 가지만 기계처럼 하면 적어도 반장의 역할을 다 하는 셈이니까요.      


“여기. 이거 받아.”


저는 곧장 뒤돌아섰습니다. 그러자 저의 손목을 잡고 설화는 


“고마워. 그런데 이게 뭔지 모르겠어.”라고 필사적으로 말했습니다.




 공지라고 해봤자 자잘한 한 학기 일정표였는데 그런 공지를 물어보니 의아했습니다. 이제와 보니 그저 말할 상대가 필요했던 모양입니다. 병실에 같은 또래의 사람이 있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니까요. 


 이후 전 설화가 있는 병원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유인물을 전달하는 일로써 병실을 찾아갔습니다만.. 어느새 전 설화라는 꽃의 향에 물들여져 있었습니다. 


“내일도 와줘라. 나 심심하단 말이야~”


참 해맑은 꽃입니다.      


 그때까지 설화는 아직 시들어가진 않았습니다. 그 시절 역시 설화의 피부는 창백했고 얼굴이 갸름했지만 아직 피부에 윤기가 남아있었습니다. 생기가 남아 있는 탓일까요. 어느 날 설화는 제게 어디로든 놀러 가자는 말을 했습니다. 정확히는 사람이 많은 곳을 말이죠. 전 한사코 거절했지만 절 사로잡은 꽃의 매력에 전 한없이 무너져만 갔습니다.


“그래. 어디로 갈 건데..”


“공원. 사람이 많은 공원이 좋아.”


 저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았습니다.


“부모님이 아시는 거지...?”


“.. 아니? 모르는 데? 그러니까 빨리 갔다 오면 되지!”


참. 저는 설화의 매력에 크게 다칠 거 같습니다.     


 설화는 비록 연약한 신체를 갖고 있지만 걷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걸을 때면 해방감과 함께 기분이 좋다고 말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아마 답답한 병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묻어 난 거 같습니다. 그런 설화가 휠체어를 타고 제게 다가왔을 때는 전 꽤나 당황했습니다. 저의 마음과는 다르게 설화는 명량한 웃음과 함께 말했습니다.


“가자!”


“.. 응. 그래.”     


 휠체어는 마치 꽃을 담은 화분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들이키는 바깥공기에 상쾌한 듯 팔을 허공으로 휘젓는 설화를 보며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꽃을 보는 듯했습니다. 금방이라도 깨질 듯 화분 같은 휠체어 속 설화를 조심스레 다루는 저에겐 꽤나 긴장감 있는 일이었습니다.


“달려! 달려!”


 설화의 명령에 전 휠체어를 힘차게 끌고 마치 화분을 뛰고 달리듯이 달렸습니다. 설화는 기분 좋은 듯 꺄르륵 소리를 지르며 가방 속에 가지고 온 비눗방울을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곤 후-- 불며 더 크게 말했습니다.


“달려라. 달려!”


“눈 아프다고!”전 비눗방울이 눈에 들어갈 거 같아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힘차게 휠체어를 밀었습니다. 그러다 어딘가에 부딪히자 저와 설화는 큰 충격에 둘 다 바닥으로 쓰러졌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먼지를 털 겨를도 없이 설화에게 다가가자 설화는 이미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이 상황 자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바보 같아 우리.”


그 모습을 보며 저도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뭐야.”     


 병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 손은 이미 망신창이가 되어 있었습니다. 보기와는 다르게 휠체어의 손잡이는 꽤나 딱딱했고 때문에 살이 쓸려져 있었습니다. 전 어색하게도 손을 가리려다 설화에게 들켰습니다. 


“괜찮아? 너무 심하게 놀았나..?”


“아니야. 뭐. 아프지도 않고.”


 병원에 돌아오는 길 동안에 설화는 몇 번이나 제 손을 보았습니다. 그러다 병원 안 엘리베이터에서 제 손을 잡으며 자연스레 “많이 아프겠다..” 라며 말했습니다. 차가운 꽃의 손에 그만 얼어붙을 정도로 가슴이 설렜지만 겨우 미소를 피며 버텨냈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병실로 돌아왔을 때. 


설화의 자리 앞 병실침대가 비워져 있었습니다. 젊은 아이의 부모처럼 보이는 두 남녀가 서로를 껴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전 단숨에 누구의 죽음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건 설화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만큼 떠나야 할 시간 역시 다가옴을 느꼈습니다. 이는 병실에 점점 사라지는 사람들과 다시 채워지는 사람들이 반복되면서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심지어 점점 하얗게 퍼져나가는 설화의 피부에 축- 처지는 팔, 전과 다르게 조곤조곤해진 목소리... 이 모든 것들이 불안의 구덩이로 절 내던졌습니다.




 이때. 설화가 처음으로 제게 이 말을 전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 순간 얼어붙었습니다. 저 역시 병실에서 죽은 자들의 잔해들을 보았습니다. 그곳엔 아무런 흔적 없이 타오르고 남은 재처럼 기억만이 남아있었습니다. 


“내가 기억할게.” 전 기억이라는 단어에 무거움을 그제야 실감했습니다. 언젠가 사라지는 기억. 설화는 그게 두려웠던 거였습니다. 같이 놀았던 어린아이의 빈자리를 보며 어느새 사라진 아이의 목소리, 인기척, 온기, 뒤척임... 모든 것들이 사라지자 기억마저도 가물가물해져만 갔습니다. 


 차가운 이 현장이 설화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 고마워.”     


 죽음이 다가올수록 설화는 매번 “내가 죽으면 날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저는 항상 “기억할게”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두려웠습니다. 단순히 설화를 기억 못 한 다는 것이 아닌 서서히 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어린아이도 그 주변에 함께 있던 사람들의 기억도 이제 흐릿한 안개에 가려져 멀어 보이기만 합니다. 아무리 기억을 해봐도 어린아이의 얼굴이 이젠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그런 제가 감히 설화를 단연코 기억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애초에 그 어린아이는 이제 존재하는 걸까요. 사람들은 어린아이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기억하는 건 고작 나와 설화 그리고 그의 부모님 정도니까요. 그 아이의 존재가 없이도 세상이 흘러간다는 게 엄청난 미움을 낳는 거 같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설화를 바라보며 안고 키스하며 설화의 온기를 제 몸에 각인시켰습니다. 꽃의 온기를 제 몸에라도 담고 싶은 욕망이 넘쳐났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최대한 기억을 남겨가며 살아갔습니다.     


 어쩌면 설화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매번 웃고 있었지만 홀로 숲을 가며 무언가에 젖어 울고 있지 않을까요. 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간의 힘에 이끌려 아무것도 못하는 무력감에 분하기만 합니다. 점점 시들어 가는 설화를 보니 제 마음 역시 아려오기만 합니다.     


 전 숲으로 설화를 찾으러 들어갔습니다.      


 설화는 숲 속 한가운데에서 밤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별은 단 하나도 없는.. 밤하늘. 밝게 빛나는 달 역시 자취를 감춘 저녁.. 


전 설화에게 천천히 다가갔습니다. 설화는 제게 말했습니다.     


“이곳엔 아무도 없어.”     


“만일 죽는다면 이런 기분이 아닐까.”     


“나라는 사람은 이제 없는 거지.”


설화는 이곳에서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 집어삼켜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설화를 보며 전 안아주었습니다.


“아니야. 넌 살아있어. 적어도 너라는 사람은 남아 있다고..”


 적어도 제 머릿속, 제 마음속, 제 헌신 속 설화라는 꽃이 만개하고 있다면.. 꽃이 시들어 생명력을 다한다 해도 제 기억 속 설화는 살아 있을 겁니다.      


설화라는 꽃이 울었습니다.     


“날 잊지 말아 줘.”     


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죽음이 가득한 이 공간에 설화의 존재가 없이도 흘러가는 이 세상이 밉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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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점이 스스로가 보기엔 보이지 않네요..

부족한 소설이니만큼 많은 피드백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