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보령군의 김 잭 씨는 일요일 오전8시 집앞에서 다리가 부러진 채 쓰려져 있던 제비를 발견했다.

하룻밤동안 쓰려져 있었는지 푸르스름해진 면도자국과 초췌한 몰골의 제비. 

명함을 건내주며 업소를 홍보하는 제비의 투철한 직업정신에 감명한 잭씨는 제비를 집으로 데려가 다리를 고쳐주기로 마음먹었다.

구비된 상비약이라고는 알보칠과 물파스 뿐이였지만 없는것보단 나으리라 생각한 잭씨는 멀쩡한 왼다리에는 알보칠을.

부러진 오른다리에는 물파스를 바른뒤 붕대대신 화장지로 둘둘감아 응급처치를 하고있었다.

발목부터 감아올라가던 화장지가 어느덧 무릎을 지나 사타구니에 닿을쯔음.

제비의 숨소리가 거칠어 졌다.

견딜수 없는 통증 때문인가 싶어 올려다 보니 물기를 머금은 두 눈과 상기된 볼, 그리고 앙다문 입술사이로 신음을 흘리는 제비의 얼굴이 있었다.

갑작스런 제비의 변화에 당황한 잭 씨는 헛기침을 하며 집밖으로 나왔다.

앞으로 어찌해야할지 잠깐 고민하는사이

집앞 횡단보도에 초록불이 들어오는것이 보였다.

확신에 가득찬 표정으로 무언가를 굳게 다짐한 잭씨는 집안으로 들어가 거칠게 제비를 안았다.

피부끼리 맞닿은게 얼마만인지 해가저물어도 뜨겁게 타오르는 둘의 정념은 사그라들 줄 몰랐다.


날짜는 바뀌어 잭씨가 아직 잠들어있는 새벽녘.

잭씨의 치료를 고맙게 여기며 뜨거웠던 지난밤의 증거인 부러진 오른팔을 감싸쥔채 제비는 떠나갔다.


해가 머리꼭대기에 다다를즈음 잭씨가 깨어났다.

밤새 품안에 안겨있던 제비는 보이질 않고 콩 한알만이 남겨져 있었다.

제비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잭씨.

이대로 콩을 먹어버릴까 생각했지만 제비가 남긴것 이기에 땅에 심기로 했다.

마당에 있는 고추밭을 파헤쳐 콩을 묻은 다음 슬픔의 눈물을 한방울 흘리니 금새 뿌리가 자라났다.

놀라운 콩나물의 성장속도에 감탄한 잭씨는 양파 1/4쪽과 대파 반쪽을 가져와 강제적으로 눈물을 콩나물위에 쏟아냈다.

그러자 콩나물은 쑥쑥 자라나더니 표피를 지나 맨틀을 뚫고 외핵까지 닿는것이었다.

학창시절부터 지구내부가 궁금했던 잭씨는 콩나물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급격하게 올라간 온도때문에 땀이 흥건해진 잭씨는 비어있는 커다란 공간에 도착했다.

지하수가 빠져나간 흔적일까.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잭씨의 눈에 매우 작은 사람이 보였다.

매우 빠른속도로 움직이던 난쟁이였으나 잭씨의 가공할만한 동체시력앞에선 느리게 걷는것과 다름 없었다.

카멜레온의 혀처럼 재빨리 손을뻗어 난쟁이를 붙잡는 잭씨.

새끼손가락 끄트머리보다도 작은 난쟁이는 손안에서 발버둥치며 무어라 고함을 치는것 같았지만

너무나도 작기 때문인지 도무지 알아들을수가 없었다.

난쟁이와 소통하고 싶었던 잭씨는 그를 자신의 오른쪽 귀에 박아넣었다.

그러자 난쟁이는 귓속에서 낮은포복으로 고막근처까지 기어들어와 통성명을 하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난쟁이들의 왕국인듯 하였다.

세기의 발견을 한 잭씨는 상기된 기분으로 자기소개를 하였다.

그러자 잭씨의 목소리의 충격에 의해 난쟁이는 단말마와 함께 고막이 파열되며 귓속에서 즉사해버렸다.

귓속에서 귓밥이 되버린 난쟁이시체의 찝찝함에 기분이 나빠진 잭씨였으나 금새 기분을 바꿔 난쟁이 왕국 탐험에 나서기로 하였다.

운이좋다면 지상으로 몇명 데려가 매스컴에 알릴수도 있을 터.

아니 여차하면 플랜B를 실행할 생각이였다.


탐험을 시작한지 5분남짓되어 난쟁이들의 마을을 발견할 수 있었다.

흙으로 만들어진 작고 아담한 마을을 보며 잭씨는 고민했다.

과연 이들과 교섭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그가 고민하는사이 마을에서 난쟁이들이 하나둘씩 집에서 나와 웅성거리고 있었다.

잭씨는 윗옷을 벗어 마을옆에 넓게 펼쳤다.

그리고 양손바닥으로 마을을 떠올려 깔아놓은 윗옷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생각하기 귀찮았던 잭씨는 그냥 플랜B를 실행하기로 한 것이다.

갑작스레 마을을 이동당한 주민들이 공포에 휩싸여 아비규환을 자아냈지만 잭씨에겐 개미의 움직임과 별반 다를바 없었다.

윗옷을 이리저리 접고묶어 어깨에 들쳐맨 후 콩나물 뿌리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마을의 젊은청년들이 광장에 모였다.

촌장은 자주국방을 외치며 그들을 마을밖 거인에게 내보냈다.

가족들은 오열하며 젊은이들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모습을 눈에 담는다.

청년들은 윗옷의 촘촘히 짜여진 실을 부여잡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있어 수직절벽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발을 헛디디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것이다.

가족들을 지키겠단 신념으로 두려움을 억지로 누르며 올라가던 그들이 잭씨의 겨드랑이 근처에 도착할즈음.

가장 선두에서 올라가던 청년이 힘이 풀린듯 발을 헛 디디며 아래로 곤두박질 쳤다.

다행히 서로의 허리를 실로 연결해 두었기에 산산조각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의식을 잃은 한사람의 무게를 고스란히 지탱하는건 여간 힘든일이 아니였다.

그렇게 힘을 쥐어짜내며 버티는것도 잠시.

선두에서 두번째이자 떨어진 선두를 지탱하고있던 청년도 코를 씰룩거리더니 의식을 잃으며 아래로 떨어졌다.

떨어지는 사람들의 체중을 버티기는것은 무리였기에 그렇게 청년들은 실에 이어져 차례차례 떨어져갔다.

다행히 아래쪽에서 올라오던 청년들은 위에서 떨어지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제빨리 허리의 실을 끊어내 목숨을 연명할 수 있었다.

위에서 무언가 위험상황이 발생한것이 틀림 없기에 생존한 청년들은 조심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그러던 중 선두에서 올라가던 청년이 급히 호흡기를 막으며 밑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위험신호를 보냈다.

머리위에서 무겁게 짓눌러 내려오는 유독한 기체...

바로 암내였다.

액취증을 앓고있는 잭씨의 암내는 난쟁이들에게 치명적이였다.


이 루트로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상황

결국 청년들은 목숨을 걸고 잭씨의 옆구리쪽으로 뛰어내려 등을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청년들이 마음을 가다듬고 뛰어내리려는 찰나

눈부신 빛이 청년들을 감쌌다.

맹렬한 기세로 올라온 잭씨가 벌써 지상에 닿은것이다.

평생 태양빛을 본적이 없는 난쟁이들이었기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청년들은 두 눈이 타들어가 고통에 몸부림 치며 아래로 추락해 버렸다.

마을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윗옷의 그림자와 집안에 숨어있던 덕분에 대부분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신선한 공기로 폐를 닦아내려는듯 숨을 들이키던 잭씨는 기쁨의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너무 기쁜나머지 힘 조절이 안되어 들고있던 윗옷에서 마을의 상당량이 튀어나와 마당에 뒤집어 엎어져 버렸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에 놀라 잭씨가 잠시 굳어있는 사이에 마당에 풀어놓고 키우던 닭들이 다가와 마을의 잔해를 헤집으며 난쟁이들의 시체를 죄다 쪼아먹었다.

당황한 잭씨는 살아남은 난쟁이가 있길바라며 서둘러 윗옷을 펼쳐보니 단 한명의 난쟁이가 실밥사이에 끼어있는채로 발버둥 치고 있었다.

남루해져버린 노인네.

그는 결과적으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마을의 촌장이였다.

아직 살아있는 난쟁이가 남아있던 덕분에 표정이 환해지는 잭씨였으나 어디선가 참새 한마리가 날아서 촌장을 낚아채어갔다.

순식간에 모든희망이 바스러져버린 잭씨는 허탈한 마음에 번화가로내려갔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곳에 제비가 있었다.

한시도 제비를 잊지못했던 잭씨는 그길로 제비가 일하는 업소로 찾아가 취업을 해버렸다.

그렇게 둘은 콩나물 무침을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다.


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