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에 전생한지 벌써... 몇해째더라?


전생 이후 자신만의 쿨하고 고독한 길을 걷던 나였지만 문제가 생겼다.


내가 한 행위는 범죄였단 거지.



"일가 방화살인에... 동네 아낙네들 강간하고 다녔다고?"


"예 나리."


"옥에 가둬라. 저놈은 사형 확정이다."



투옥되어 처형만 기다리던 나날이었으나 사람 삶이란 게 허무하기만 하란 법은 없다.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퀴퀴하고 어두운 옥은 간데 없이, 뜨뜻따땃한 방이 아닌가.


몸은 여자로 바뀌어있었고.



"이보게 김망난이. 깨어 있는가?"


"김망난...? 내 이름은 박옥인인데."


"들어가겠네 망난... 으이?"



아무래도 나를 다른 누군가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일견 있을 법한 추측이었다.



"김망난... 자네 아낙네가 된 겐가?"



내게 입혀진 옷은 여인이 입기엔 무척 컸다.


'김망난' 은 옷의 주인이었겠지.


나는 아쉬운 대로 [김망난이 변한 여인] 의 흉내를 내었다.


며칠 안 되어 김망난이란 녀석이 사형집행인이었단 걸 알았을 땐 깜짝 놀랐다.


나나 내 주변에서 그리 두려워하던 사형집행인라니.


본래 정체가 밝혀져서 언제 사형을 당하나 전전긍긍하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나았다.


나는 연기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슬슬 동료들도 내가 '김망난' 이라고 믿게 된 와중에, 감옥에서 기이한 말을 하는 소녀가 나타났다.



"나라고! 내가 김망난이라고! 이 사람들아, 자네들이 그러고도 내 친군가!!"


"자넨 박옥인이 여자로 변한 거잖은가."


"아이고 답답해! 내 박철수 그 녀석 궁둥이의 점 얘길 해야 믿겠는가?"


"자자자자, 잠깐만! 잠깐만 얘야 나 좀 볼까?!!"






{지난 이야기 끝}



*


"그러니까 그럼...."



죄수 하나, 처형인 하나.


땅딸만한 소녀 하나, 풍만한 아낙네 하나.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는 두 사람.



"네놈이 나요, 내가 네놈이고."


"박옥인이 김망난이 된 거고, 김망난은 박옥인이 된 게지."



정리.


사형수였던 박옥인은 처형자였던 김망난과 서로 정신이 바뀌었다.



"거기에, 그 상태에서 서로 성별도 바뀐 거고?"



거기서 그쳤으면 양반인 변화이련만, 그와 동시에 성별과 외양도 바뀐 것이다.


처형인이 된 죄수는 풍만한 몸매의 아낙으로.

죄수가 된 처형인은 어린 작은 계집으로.


처형인이 된 죄수, 내가 말했다.



"바로 그걸세."


"한바퀴 돌아 제자리인 게냐?"


"그렇진 않다네. 신분이나 옷 따윈 그대로니까."


"세상에. 환장하겠군."



꼬마 소녀가 이마를 짚었다.



"내 입때껏 쌀 한되 서리해본 적이 없거늘 사형수로 살라니."


"어쭈! 서리 대신 사람 처형하는 건 하지 않았는감?"



내가 비꼬자, 소녀가 매섭게 노려보았다.



"난들 좋아서 하는 줄 아느냐? 네 놈도 해봤으면 알 거 아니냐!"


"거 방금부터 듣자하니 사람한테 네 놈이 뭔가!"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내었다.



"에잉... 역시 망나니 녀석들은 예의라곤 모르는 상노무자슥들 밖에 없나."


"뭐야 이 놈아? 그럼, 살인자 죄수한테 이놈 저놈 하지, 이분 저분 하겠느냐?"


"지금 죄수인 건 댁이올시다. '전직' 처형인 나리."


"고얀 놈이 뚫린 입이라고...."



소녀가 부르르 떨었다.



"마음대로 해라 이놈! 내 응당 실토해 네놈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낼 테니!"


"어차피 다들 안 믿을 텐데. 방금 반응들 못 봤소?"



처음에야 소녀의 입을 단속하기 위해 둘 만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둘만 남게 되니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그야 이 작달만한 꼬맹이의 말은 아무도 신용하지 않았잖아.


마음이 바뀌었다는 말이올시다.



"그대는 죄수의 몸이오.

지금은 잠시 내가 그대를 빼오긴 했지만 곧 옥으로 복귀해야 하지.

죄수 말을 누가 믿겠소."



자꾸만 빈정거리는 날 보며 깨달은 바가 있는지, 소녀가 입을 뗐다.



"네놈은 내 몸에 눌어붙은 채로 살 작정이더냐?"


"난 사형 당하기 싫소. 그게 내 본래의 형벌이었더라도."


"본래대로 돌아갈 방법을 찾지 않고?"


"되도록 그러고 싶소."


"원래 몸의 미련 같은 건 없는 게냐?"


"미련이 어디 있겠소. 댁관 다르오."



아아-.


내 속내를 들은 소녀가 풀썩 주저않았다.



"그, 그치만 나 이러면 사형 당하는데...."



그렁그렁.


소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소녀를 보며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지금, 내가 소녀와 함께 있는 건 사람을 잠시 물리친 덕분이다.

아는 사람 같다면서 부탁을 하여 물리친 덕택이다.


한데

사형집행인과 단 둘이서 은밀한 대화를 나누던 소녀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다면?



"아 이거 위험한데. 이거 뭔가 아니야. 이거, 이거 위험해."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목숨을 거두시려는 겁니까!!"


"자, 잠깐만 뚝 해보시게! 내가 해보겠네 어떻게든!"



소녀는 순순히 울음을 멈추었다.


소녀가 날 빤히 올려다보았다.



"사실대로 실토할 것이냐?"


"아니 그건 내가 곤란하-."


"거짓, 히끅, 거짓말인 게냐?"


"아아아아 제발! 그러지 좀 마시오. 사내대장부가 무슨 짓거리요!"


"지금은 아니잖느냐. 살려주게 뭐라도 할 테니!"



소녀가 내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내가 소녀를 밀어내면서 말했다.



"어쨌든간에, 어쨌든간에 살기만 하면 되는 거요?"


"끄흑, 그래 개똥밭이어도 살기만 하면 된다!"


"그럼 옷 좀 놓고 내 말을 잘 들으시오. 옥졸은 이틀에 한번씩 사람이 바뀌는데...."



어린 계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귀담아들었다.


며칠 후, 관아에 원인 모를 불이 난 어느 밤이었다.


예정대로였다.


어리고 작은 계집이 날 찾아왔다.


나는 계집을 세상에서 숨기기 위해 방 한구석의 흙바닥을 파냈다.


계집이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게냐?"


"들키면 댁도 곤란하고 나도 곤란하오. 군말말고 같이 파시오."


"'댁' 이라고는 그만 불러라. 누가 들을세라."


"그럼 뭐라 부르는 게 낫겠소?"


"음... 도령? 아니지, 지금은 사내의 몸이 아니니 아씨가 낫겠군."



나는 계집의 철부지 없는 소리를 듣고 엉겁결에 중얼거렸다.



"아씨는 무슨, 팍씨겠지."


"팍씨가 무슨 뜻이냐?"


"... 아씨로 부르겠단 뜻이오."



투닥거리며 흙바닥을 파내니 어느샌가 땅굴이 하나 완성되어 있었다.


대피처로선 그럴 듯한 모양새였다.


미리 시장에서 구해두었던 부적을 꺼내들어 땅굴의 위쪽에 붙였다.


"변해라!" 하고 일갈하니 땅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편평한 흙바닥만 보였다.



"그럴 듯한데 땅굴 몇개만 더 만들지 그러냐?"


"부적 비싼데."


"그거 처형인 녹봉에서 나온 돈 아니더냐?"


"맞소. 처형을 하지 않더라도 관에서 정기적으로 주는 '그거' 지."


"하면 어차피 내가 받을 돈이구만. 아낄 생각 말고 쓰거라."



언뜻 이치에 맞는 말이라 잠자코 그리 하였다.


그후에도 이것저것 집안을 개조하였으나, 결론부터 말하면 괜한 기우였다.



"박옥인 녀석의 건 말이지?"



관아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음에 의문을 느껴 얼핏 떠본 적이 있었다.


동료 처형인은 이렇게 말했다.



"관아에선 포기한 모양이라네."


"어째서입니까."


"탈옥한 박옥인은 지금 소녀이지 않은가?"



진실은 조금 달랐지만 내가 지적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이들은 그리 알고 있었으니.



"한데... 그 우락부락한 살인자, 박옥인이 소녀가 되었단 얘길 누가 믿겠는가."


"예?"


"수배를 하려거든 민초에게 이 기묘함을 밝혀야 하고

보고를 하려거든 윗선에 이 괴이함을 설명해야 하는데

둘다 예삿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


관에선 탈옥한 박옥인을 잡아들이길 포기한 것이었다.


빠른 판정승이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대외적으로 몸을 숨기는 게 안전하겠지만.



"그럼 박옥인은 지금...."


"대외적으론 처형이 이미 집결된 것으로 알려져있다네."



얼씨구, 그 벼슬아치 참 빠릿빠릿한 놈이로세.


방향성은 문제겠지만.



"그건그렇고 소문은 들었나?"


"무슨 소문 말씀이십니까."



궁금증은 해결되어, 그대로 발을 떼려던 순간에 동료가 말했다.



"박철수 말일세."


"누구요?"


"그 꺽다리 박철수!"



박철수? 박철수가 누구더라.


며칠 전에 들은 이름이었다.


아, 의원한테 약값 안 갚았다던 그 녀석이 박철수였던가?


나랑 같은 처형인.



"꺽다리 박철수. 알죠. 그 친구가 범이라도 잡았답니까?"


"잡았다면 범이 그 친구를 잡은 걸 테지."



동료가 두리번거리며 목소릴 낮췄다.



"죽었다네, 그 친구."


"죽어요? 어쩌다가요."


"모르지 그야. 방에서 썩은 시체로 발견됐다더군."


"끔찍하군요."


"나도 보진 않았지만, 그 시체에 묘한 소문이 났어."



동료가 자신의 목을 툭툭 치며 말했다.



"여기가 잘려서 발견 됐는데...."


"살인이군요. 그게 묘하단 겝니까?"


"아닐세, 시체에 해괴한 독특함이 있었다네.

목만 잘렸으면 아직 평범한 축이었지."


그가 손을 내저으며 말을 덧붙였다.


"다들 귀신의 소행이 아니냐고 하던 걸."

"어떤 독특함 말입니까?"


"그게 그... 뭐라 말을 해야할런지 원."



성가시게 뜸을 들이는 장년 동료.


동료의 말을 끊고 누군가 내게 다가왔다.



"이보시오. 길 좀 묻겠소."



복장을 보아하니 포졸이었다.



"처형인, '김망난' 이 어디 사는지 아시오?"


"내가 김망난이오."


"허어, 여자가 되었다는 게 참말이었군."


"용건만 말하시오."


"힘 좀 써야겠소."



나는 지금은 사형집행인.


사형집행인이 힘을 쓸 거리라면 뭘까.



"일이오."



손쉽게 추측 가능했다.



"참수이오? 어디서 하면 되는 게요?"


"따라오면 알 것이오."



요즘 저 말이 유행인가.



"언제 말이오?"


"응당."



어깨를 으쓱했다.


동료에겐 가벼이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어르신, 아무래도 나중에 말씀해주셔야 할 듯 싶습니다."


"알았네. 당분간 조심하게. 위험할 수 있으니."


"하하, 제가요? 망나니가 위험할 수도 있단 말입니까?"



'어르신' 이 내 말에 뭐라 대꾸를 하려다 입을 닫았다.


나는 석연찮은 기분으로 발을 뗐다.



*



"허릴 쳐라."


"... 예?"



포졸을 따라가니 관에는 묶인 채 죄수가 누워있었다.


죄수의 곁에는 큰 작도가 대령되어 있었다.


누군가 외쳤다.



"죄인의 허릴 쳐라!"



허리? 목이 아니고?


주저하면서 칼을 내리쳤다.


죄인의 상반신이 하반신과 분리되어 바닥을 굴렀다.


내게 있어선 첫 처형이었다.



'뭐야 별 거 아니구만.'


'처형이 고된 일이네 어쩌네 하는 것도 다 거짓부렁이었군.'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뒤늦게 피가 솟구쳤다.



"커헉! 아... 아아아아악!!"



죄인도 비명을 질렀다.



'요참이면 허리를 베는 게다.'

'왜 목이 아니라 허리를 베는 것이오?'

'네놈은 아는 게 뭐더냐.'



얼마 전, 우리 집에 얹혀사는 꼬마 계집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간단하니라. 목을 베면 바로 죽지 않더냐.'

'허리는 다르오?'

'잘리고도 길게 살지. 3시진 동안 살아있는 경우도 봤으니.'



피에 범벅이 된 채로 죄인이 몸을 뒹굴었다.


살기 위한 발악이었을까.


그럴 수록 죄인의 몸은 피 범벅이 되어갔다.



"크햐악! 다리... 내 다리가!!"



펄떡펄떡.


상반신만 남은 것치곤 무척 기운찬 죄수였다.



"아... 어아으, 그으우으으어우..."



1각, 2각...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죄수의 몰골은 더 끔찍해져갔고

1시진 쯤 지나자 영락 없는 시체 한 구가 완성되어 있었다.


이 살아있는 시체는 아직은 활동이 멈추지 않은 심장을 기반으로 맹렬히 땅을 굴렀다.


구르고 구르다 '우드득' 하는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나자, 그제서야 '시체' 는 구르길 멈췄다.


시체는 양팔로 땅을 헤엄치며 나아갔는데,

전진을 할 때마다 시체의 잘린 허리 단면이 꿈틀거렸다.



"아, 아후아. 아후, 자, 자이우... 자이우 주시오."



나였다.


시체가 그리 열정적으로 움직였던 내게 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시체는 내 하반신을 잡고 늘어졌다.


바지에 시체의 서늘한 피가 옮겨붙었다.



"옥울... 모글 자라쥬시오. 에바알...."



고통에 혀가 풀어진 것일까.


시체의 발음은 부정확했다.


알아들을 수는 있었다.


목을 베어달라는 것이었다.


고통이 끝나게.



"아니 된다."



나는 소름이 돋아서 얼어붙은 표정으로 있었다.


윗선에선 아직 묻지도 않은 질문에 답을 내려주었다.



"처영인, 처여인 양바... 으타기오."



시체의 간절함은 강력했다.


시체의 손톱이 내 살갗을 파고들었다.



"나 조오, 나 조옴 긋애주시오."



아프다. 아팠다.


다리가 손톱에 찍혀 피가 나기 시작했다.


다리의 살이 한꺼풀 한꺼풀 찢겨져나갔다.



"아아아... 시, 싫어."



나는 사색이 되어 발로 찼다.


시체의 얼굴을, 몸을 발로 찼다.


그러나 그럴 수록 짚신은 붉게 물들어갔다.


시체의 끔찍한 몰골이 옮겨붙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저리 가! 저리 가!!"



두려움에 떨면서 나는 집으로 달아나는 수 밖에 없었다.



*



집을 들어오자마자 문을 걸어잠궜다.


발을 힘껏 굴렀다.



"왜... 왜 안 떨어지는 거야."



핏방울이 다리에 매달려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었다.


호흡이 괴로웠다.



"방화 살인도 해봤으면서 왜 이제 와서 난리인 거야.

떨어져라 좀... 떨어지라고!"



숨을 헉헉거리며 미친 듯 고함을 질렀다.


기행에 놀랐던 걸까.



"왔느냐?"



땅굴 아래에 숨어있던 계집이 빼꼼히 머리를 내민다.


나는 입술을 잘근 물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허, 하아... 후. 나 왔소, 아씨."


"왜 이제야 오느냐! 언제 오나 목이 빠져라 기다렸느니라!"



계집은 시끄럽게 짖어댔다.



"시장하다. 어서 저녁을 대령하거라."



계속해서.



"저녁거리가 이게 뭐더냐. 칠칠치 못한 놈."


"불만 있으면 먹지 마시오."


"몸을 되돌릴 비책은 찾았느냐?"


"무소식이 희소식인 게요."



많이 참았다고 생각한다.



"어허 느려터진 놈. 당최 패륜말고 잘하는 게 뭐냐."



무신경하게 속을 긁는 계집의 말에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짜악-!'



나는 계집에게 따귀를 올려붙이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