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별로 너를 사랑할 순 없을 것 같아.


*


갑자기 느꼈다. 너를 사랑할 것을 인정했던 건 문이 닫히고 며칠이 되던 날. 이 삼천원, 그 정도 되는 금액에 볼 수 있던 달. 그 저편의 칵테일 한 잔, 바텐더의 나른한 말소리. 해서 오늘이 끝인거지? 여기 나오는 건.


바에서 키우는 건 포메라니안이라 했다. 털이 많이 날리는데, 괜찮겠어? 그러곤 내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 아침으로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새벽에는 갑작스러운 토악질이 나와 욕실 타일이 엉망이 되었고, 거울을 볼 수 없었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몰라서였다. 토사물을 치우며 그것들을 수챗구멍에 꾸역꾸역, 일회용 장갑을 낀 손으로 밀어넣고 있던 내가, 어떤 기분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 몰라서였다. 


어쩌면 그 날 새벽에 먹었던 술의 문제였을지도 모르겠다. 카스였나 하이트였나, 하여튼 밤바람을 잔뜩 머금고 파하- 하고 말갛게 하고 웃는 너 때문에 실없는 농담 같은 걸 따먹으며 해가 뜨는 걸 봤다. 이후로 제대로 잠에 들을 수 있던 적이 없다. 잠깐 들었던 네 속삭임 때문이었다. 밤이 길지? 겨울이니까 말이야. 그러나 아니, 나는 몇 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오히려 짧았다. 한번의 숨에 여섯번의 망설임을 담을 수밖에 없던 날이, 굳이 고르자면 그 때였다. 


숙취인가, 오늘 도착하기 전까지 계속 헛구역질을 해댔다. 뭐에 취했던가 나는, 해서 결국 너 때문이었다는 게 결론이었다. 싸구려 펍의 싸구려 조명에 홀렸다던지, 그날 심심풀이로 먹었던 토닉워터에 질 나쁜 약품이라도 섞여있던지 하는 가능성은, 그래 아주 안타깝게도 전혀 없었을 것이다.


바텐더의 말. 술은 뭘로? 몰라, 알아서 줘. 귀찮지만 아무것도 주문하지 않는다면 꼭 누가 이미 쓴 휴지조각 같다. 늘 비유가 달짝지근하다니까, 거창하기도 하고.


실은 아무 의미도 없다. 휴지 이야기이다. 한번 사용된 것들은 도시 외곽 같은 곳의 소각장에 버려진다. 점차 그렇게 더러워진다. 가끔 어느 학교의 어떤 수업 같은 데에서는 그런 예시 등을 들으며 휴지를 비판한다. 물론 아무도 듣지 않는다. 말하는 이 조차, 휴지를 비판해서 뭐가 좋을지, 실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늘어진 휴지조각은 더하다. 주로 그것들은 걸레처럼 끊임없이, 몽상가들에게 더럽혀지고 위치해 있는 장소도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쓸 데가 없다는 거다. 아, 그래 저기 꺼져있는 간판의 네온사인 같은 것들. OPEN이라고 써있지만 정작 지금은 없는 것들.


휴지, 그래 휴지. 책 한 권을 잔뜩 젖은 두루마리 휴지에 말아 창문 너머로 던졌던 것을 기억한다. P의 책이었는데, 분명. 모두가 만났을 적 재미있다 말하던 것이 실은 그저 한심한 종이 쪼가리에 개연성 없는 이야기었을 때의 충격. 매일 그걸 맛본다. 왜 던졌냐 묻는다면 대답한다. 태양이 너무 밝아서? 아니 여긴 태양이 없다. 나는 결국 사형받을 이유조차 제공받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모른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야, 왜냐면 답이 없거든.


오늘은 또 놀이공원에 갔었지. 그래 시내 쪽에 있는 곳 말이다. 거기서 몇 만원을 처 내고 회전목마가 한 열 아홉 바퀴 정도 공전하는 것만 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집에서 펑펑 울어댔다. 하필 그 때 나온 노래가 슬펐던건지, 집의 텔레비전에서 한창 나오던 크리스마스 기념의 특집이 너무 시끄러웠던건지, 아니면 뭣도 모를 회전목마 때문인지.


그 때 네 말 때문인지도 몰랐다. 놀이 공원, 그런 데에는 취미가 없어. 같이 가지 않겠다는 말을 그렇게 직설적으로 돌려 말하는 너에게 조금 지쳐버린 것이 틀림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드디어 깨달았다.


-마티니.


올리브가 올려져 있는 폼이 다소 우습다. 그렇지 않아? 꼭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이.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 바닥에 제대로 떨어뜨려서 뭉게지고 엄지 손가락 바닥의 지문이 그만 아로새겨 질때까지.


생각해보면 나는 올리브를 싫어하고, 굳이 따지자면 식당에서 올리브를 넣은 토마토 스파게티를 주문하여 올리브만 빼먹는 타입인데, 마티니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따지자면 나는 가려운 왼쪽의 머릿통을 오른손으로 긁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를 사랑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유감스럽게도 왼쪽의 머릿통은 내 왼손에게 긁히는 것만을 좋아하고 오른손을 거부하고는 한다. 본능적인 반응일 것이다, 유추하건대.


한번만 더 들으면 아주 질려버릴 뭣같은 비유지만.


오늘은 거의 다 갔고, 그래서 다시 묻는다. 

오늘이 끝인거지? 여기 나오는 건. 달이 밝다. 술값은 따로 안 받을 거고, 달 관람료만 받을게. 얼마? 글쎄, 이삼천원. 처음과 똑같은 말이 지껄여진다. 손님은 아무도 없고, 그때와 모두 똑같다. 


그래, 오늘이 끝인 거지. 여기 나오는 건. 네 후련한 표정에 등이 따가움을 느낀다. 


바텐더가 안녕을 고한다. 너는 꼭.

밤바람을 실컷 머금고 파하-하며 말갛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