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잔잔했다. 낚싯바늘이 그곳에 들어오기 전까진. 곧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오랜만에 지렁이를 맛보았다.


 "아니..."


 입질에 대를 당겼지만,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았다. 낚시꾼은 빈 바늘을 만지작거렸다.


 낚싯대를 내려놓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그리고 미끼통을 보았는데, 아까 그게 마지막 미끼였나 보다.


 하지만 아니었다. 누가 "여기." 하면서 낚시꾼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낚시꾼이 앞으로 나자빠졌다. 오른손으론 땅을 짚고,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아까 떨어졌는데, 집중하고 있어서 말을 못 걸었어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눈이 큰 아이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바닥엔 구물거리는 지렁이를 올리고. 곧 그의 눈도 아이처럼 커졌다. 그는 일단 고맙다고 했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왼손 검지와 약지만으로 그 지렁이를 낚아챘다. 그때 아이가 다시 물어봤다.


 "이거 재밌어요? 재밌으면은 우리 형한테 졸라가지고 같이 하자고, 하려고요."


 그는 아이를 쳐다보지 않고 중얼거렸다.


 "네 생각보단 재밌을지도."


 "그러면 정말 재밌을지 구경해도 되나요?"

 

 낚시꾼이 오른손으로 멀리 가리켰다.


"저기서 방해나 하지 말거라."


 그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구석으로 가서 오른발을 땅에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베실베실 웃으며 제 옆머리를 손가락으로 쓸어 올렸다. 


 낚싯줄이 몇 번 출렁이다 구부러진 곳 없이 다 펴졌다. 줄이 강 가운데로 끌려갔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고기와 힘을 겨뤘다. 목덜미가 땀에 젖었다.


 줄을 끌어 올리니 아까 그 힘은 상상치 못할 정도로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아까 재밌냐고 물어봤지? 차암 재미없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있던 의자를 접었다. 아이가 이때다 싶었다는 듯 앵겨 왔다.


 "내일도 여기 오실 건가요?"


 "아마."


 "가족들이 걱정할 것 같아서. 이제 저도 가려고요."


 "그래라 그럼."


 아이는 제 말을 마치고 곧 떠났다. 그도 자기 짐을 슬금슬금 정리하였다.


 이튿날 낚시꾼이 냇가에 왔다. 어제와 똑같이 자리를 잡았다. 앉아서 위로 보니, 흐리고 구름이 좀 있었다. 고갤 내리니 아이가 웃으며 쳐다보고 있었다. 이번엔 뒤로 나자빠졌다.


 "우리 제법 통하네요. 나도 좀 전에 왔는데."


 "놀랬잖냐..."


 화는 냈지만서도 말할 때 입꼬리는 약간 올라갔다. 곧 내려오긴 했지만.


 몇 차례의 입질과 몇 차례의 허탕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아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웃었다.


 어느 물고기가 다시 바늘을 물었다. 힘깨나 쓰는 놈이었다. 아이가 '오'하고 쳐다봤다. 그러더니 힘 좀 내라며 응원도 하였다. 곧 고기가 올라왔다.


 "이건 이름이 뭔가요?"


 "붕어."


 "오, 이게 붕어구나! 그래서 우리 같이 먹을 건가요?"


 "우리는 무슨. 혼자 먹을 거다."


 그는 도마와 잘 갈린 회칼을 꺼냈다. 그리고 능숙하게 비늘을 벗겨냈다. 아이는 솜씨가 좋다며 손뼉을 쳐줬다.


 배에 칼을 넣어 반으로 가르니 기생충들이 득시글거렸다. 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어후, 너무 많네. 못 먹겠다. 네가 먹으련?"


 "아, 아니요오."


  그는 손가락으로 기생충 한 마리를 집어냈다. 아이에게 가서 눈앞에다 달랑거렸다. 아말감이 물에 비친 햇살에 반짝였다.


 "형한테 다 일러줄 거야!"


  소리를 지를수록 손목 놀림이 더욱 화려해졌다. 아이가 울먹이는 것을 보고서야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다시 자리에 돌아갔다.


 "사내자식이 겁은 많기는."


 손질되다 만 붕어는 다시 강으로 보내졌다. 물이 튀겼다. 낚시꾼도 허리춤으로 물을 받았다. 근데 이제는 어깻죽지도 젖기 시작했다. 비였다.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던 것이 어느새 쏟아 내렸다. 그는 가방에 있던 우산을 꺼내서 폈다. 비 따윈 무시하고 낚시를 재개했다. 


 2번 정도 고기를 놓치고, 아이가 있었던 쪽을 바라봤다. 그런데 아이는 가지 않았었다. 비에 홀딱 젖어 오들오들거리고 있었다.


 "바보 같은 놈!"


 낚시꾼이 손으로 그를 불렀다. 아이는 그에게로 뛰어왔다.


 "멀리 서 있으라 하셔가지구..."


 "뭐 하는 거냐?"


 "화내지 마세요..."


 "너 때문에 화가 나잖아."


 입고 있던 잠바의 지퍼를 잠그고 모자를 들어 올려 썼다. 그러더니 내일 갖다 달라면서 아이에게 우산을 내밀었다. 아이는 떨면서 떠났다.


 다음 날, 날씨는 갰다. 늘 그랬듯이 낚시꾼의 낚시가 시작되었다. 잠시 후, 아이가 나타났다. 코를 훌쩍이면서. 


 "안녕, 훌쩍, 하세요."


 "우산은?"


 "아, 그, 훌쩍, 깜빡했네요. 내일 갖고 올게요."


 "아니아니. 오늘 집에 가고, 내일도 오지 말고, 건강해지면 갖고 와라."


 그는 억지로 아이를 밀어서 보냈다.


 며칠 뒤, 낚시꾼은 냇가에 나와서 의자 두 개를 폈다. 그날 낚시가 끝날 때까지 나머지 의자는 비어 있었다.


 다음 날도 의자를 둘 놨다. 오전 내내 의자 하나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그래도 낚시는 이어졌다. 자리에 앉아 낚싯대를 손질하고 있는데 아이가 나타났다. 표정은 흐리고 몸이 약간 수척했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감기는?"


 아이를 자기 옆 의자에 앉혔다.


 "감기는 나았는데 며칠 동안 외출 금지 당했어요."


  그는 낚싯대를 놓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아이가 말을 이었다. 


 "원래 집에서 나가면 안 되는 거였는데, 비를 쫄딱 맞고 감기까지 형이 저에게 벌을 준 거예요" 


 낚시꾼은 영 모르겠단 표정을 지었다. 집에서 왜 나가면 안 되는지를 물어보았다.


 "숙제를 안 끝내고 나갔거든요. 내가 사랑하는 형을 실망하게 했어요. 혀엉아... 를."


 "혹시 학교는 안 다니냐?"


 "홈스쿨링 해요."


 "아무튼, 외출 금지는 좀 아니지..."


 그는 손으로 미간을 집었다. 아이는 자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 말을 듣고도 몇 차례 끙끙거렸다.


 낚시꾼은 턱에 자란 수염을 매만졌다. 아이는 그를 보며 애써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낚시나 하자고 보챘다. 그도 결국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그래... 네가 괜찮다고 얘기한다면. 어쨌든 너 지금 많이 힘들어 보이니까."


 이번엔 미끼 상자가 아니라 비닐봉지와 양파망을 꺼냈다. 아이에게 양파망을 쥐여주고선 하는 말이,


 "여기 든 걸 여기다 담고, 물속에서 휘휘 저어."


 시키는 대로 했더니 물속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는 다시 낚싯대를 잡았다. 그리고 던졌다. 봉돌이 철썩 소리를 냈다. 대를 바닥에 고정했다. 아이의 눈이 똥그래졌고,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고 그의 얼굴엔 옅은 미소가 피었다.


  곧 큰 입질이 왔다. 대가 꽤 출렁거렸다. 그는 빨리 가서 낚싯대를 쥐었다. 


 "아자아자."


 대를 집어 올릴수록 수면으로 검은 덩어리가 올라왔다. 물고기의 물장구에 아주 난리였다. 아이는 꺄악 하면서 팔을 올려 튀어오는 물을 막았다. 얼마 뒤 바닥에 고기가 올라왔고, 물 위로 내쳐졌다. 꽤 큰 잉어였다.


 "저 혹시. 한 번 들어봐도 되나요?"


 그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허리를 숙여 맨손으로 잉어에 손을 뻗었는데 영 미끄러워서 애를 썼다. 아무튼 집어 올려서 아이게 잉어를 안겼다. 그리고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김치."


  사진을 찍고 낚시꾼은 잉어를 건네받았다. 비늘결을 따라 칼로 살살살 긁어내니 잉어의 알몸뚱이가 드러났다. 칼을 배에 넣어 가르니, 다행히도 저번처럼 기생충이 많진 않았다. 그것들을 잡초 뽑듯이 솎아냈다. 


 아가미의 끝부분을 잡고 꼬리 쪽으로 집어 당기니 내장 등이 깔끔하게 발라졌다. 다시 칼을 넣어 뱃속에 핏덩이를 꺼내 버린 후, 생수를 부어 남은 핏기를 씻어 냈다.


 "얘야, 거기 냄비에 물을 끓이거라."


  아이는 냄비를 버너 위에 얹고 물을 부었다. 낚시꾼이 그것을 받아, 무 한 덩이, 파 몇 개, 된장, 고추장 그 외 등등을 넣고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와 생선을 도막 쳐서 넣었다. 곧 잉어 매운탕이 붉은 자태를 뽐냈다. 


 "그 밥은, 설익은 햇반인데 괜찮냐?"


 "저는 얻어먹는 처진걸요."


 잉어의 살코기에 부드럽게 배어든 양념 하며 그 냄새가 두 사람의 콧속을 툭툭 쳤고, 곧 그들의 혀는 군침으로 촉촉해졌다. 입을 와앙 벌려 잉어의 살코기를 받아들이니 생선의 육즙이 뿜어져 나와 그들의 미뢰를 교란하였다. 잘 익은 무에서 아스라이 새어 나오는 맛과 칼칼한 국물에 그들의 목 끝까지 황홀한 전율이 울려 퍼졌다.


 어느 정도 배가 불러오자 낚시꾼이 얘기를 시작했다.


 "낚시하고 매운탕 먹을 땐 물고기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지."


 아이가 들어보겠다고 했다. 그가 흥분한 듯이 얘기한다.


 "일본에는 말이야, 200년 넘게 산 잉어가 있었다고 하더라."


 "그게 끝인가요."


 "끝인데."


 "아저씨는 그 나이 먹고도 그런 이야기를 믿으시나요?"


 "뭐, 그래. 믿거나 말거나지."


 아이가 이번엔 자기가 얘기해 보겠다고 했다. 낚시꾼은 콧방귀를 끼었다. '그래, 어디 한번 보자' 하면서. 아이도 지지 않으려는 표정이었다.


 "아저씨, 니모 아시죠?"


 "그래, 알지."


 "니모 같은 물고기들은 자기 마음대로 성별을 바꿀 수 있다더라고요. 암컷이 없으면 수컷이 암컷으로요!"


 "오, 조금 신기하네. 그래서 너도 그게 끝이냐?"


 "끝인데요."


 그는 허허 웃기 시작했다. 아이도 왼손으로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그들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 했다. 식사는 잠시 후 끝났다. 


 "아, 이제 다시 시작해야겠다."


 그때 아이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아저씨, 저도 낚시 한번 해보고 싶어요."


 "그러면 여기로 와봐."


 그는 자기 자리에 아이를 앉히고 낚시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낚시가 시작되었는데 곧 입질이 왔다. 

 

 아이가 낚싯줄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힘이 부족했는지 영 올라오지 않았다. 낚시꾼이 옆에서 거들어 대를 같이 댕겼다. 곧 큰 고기 하나가 물 위로 올라왔다. 이때다 하고 낚시꾼은 뜰채로 물고기를 건져 올렸다.


 "제법인걸?"

 

 "형아한테 자랑하고 싶어요. 내가 이렇게 큰 고기도 낚았다고."


 "아까 형이 널 집에서 못 나왔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도 또 형 생각인 거야?"


 "형한테 사랑을... 받고... 싶은걸요."


 낚시꾼은 팔짱을 끼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제 말을 계속한다.


 "아까 밥 먹다가 생각난 건데, 사실 뭘 먹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맛난 매운탕이든, 맛대가리 없는 생선 대가리든 간에."


 "그래서, 누구랑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려는 거야? '놔는 횽이 느무 조와. 횽아하고 밥 묵으믄 무든지 마이써. 흐흐헤헤헿.' 이런 얘기나 하려는 거지?"


 "그것도 맞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어요."


 그는 머리를 긁으면서 영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는 일단 들어 보라며 양손을 쫙 폈다.


 "아저씨, 어미 새 놀이를 아시나요?"


 "아니."


 "허어, 형아가 다른 사람들도 다 알 거라고 했는데."


 아이의 말을 빌려 보자면 이렇다. 어미 새 놀이란 한 사람이 밥을 꼭꼭 씹은 후, 입술을 포개고 다른 사람 입속에 넣어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동안 형과 같이 한 즐거운 경험들이 떠올라 얼굴이 새빨개진다면서 아이는 제 뺨을 감싸고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어떻게 너처럼 착한 아이한테 그런 짓을... 내가 그 형이란 새끼가 널 가뒀다는 거에서 빨리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아저씨, 저희 형아 욕하지 마세요. 새끼라니요."


 "너 오늘은 날 좀 따라와야겠다. 널 그 형으로부터..."


 아이가 말을 끊었다.


 "우리 형아한테 그런 심한 말을 한 사람을 따라가고 싶진 않네요."


 아이는 곧 사라졌다. 낚시꾼은 다급한 손길로 바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핸드폰을 꺼내면서 말했다.


 "아동학대... 경찰서에 빨랑 신고해야..."


 갑자기 생각이 번뜩 들었는지 무릎을 찰싹 때린다. 그는 주먹을 꽉 쥐면서 욕지거리한다.


 "젠장, 난 걔가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데? 게다가 경찰이 내 말을 믿어주기는 할까? 나는 그냥 한량 낚시꾼일 뿐인데."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마구 문댔다. 그러고선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격정의 소용돌이 와중에도 물은 한없이 고요했다.


 날씨가 추워지는 가을쯤 되었다. 낚시꾼이 배낭을 메고 냇가로 들어온다. 자리를 펴려고 했는데, 이번엔 아이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새 머리가 어깨까지 길어져 있었으며 하얀색 원피스를 입었다.


 "아저씨, 저는 아저씨를 용서하기로 했어요."


 "..."

 

 아이가 와서 안겼다. 그는 손에서 장비를 놓쳤다. 아이가 교태를 부렸다.


 "그렇게 집에 가니까, 형아... 아니 오빠가 나보고 이게 뭐냐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철저하게 재교육받았지요."


 "그 결과가 이거냐?"


 "맞아요. 그리고 이제 저는 신부가 될 거예요." 


 "신부?"


 아이가 낚시꾼의 팔을 끌어안았다. 그러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 부모님과 오빠는 여자아이가 태어나길 원했는데 자기가 태어났다고. 그래서 맨날 구박당하다 왜 이러냐고 물어보니 이러한 대답을 들었고, 그때부터 여동생이 되기로 했다고.


 "저번에 홈스쿨링 받는다고 했던 것도 사실은, 오빠와 결혼할 자격을 얻기 위한 신부 수업이었죠."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바닥에 완전히 주저앉았다. 표정이 영 멍했다. 아이는 그의 어깨를 손으로 토닥토닥하면서 말했다.


 "몇 년 뒤에 오빠하고 태국에 가기로 했어요. 오빠가 거기 가면 맛있는 거 많이 사 주기로 했어요. 제가 매운 것도 좋아하고 그래서, 태국 고추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거든요. 아저씨가 슬퍼하는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아저씨가 원한다면 오빠한테 같이 가자고..."


 그래도 물은 잔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