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

뺨을 얻어맞고 계집은 뒤로 자빠졌다.



'우당탕쿵탕'



따귀 한방으로 몸이 붕 뜨고 날아가서 엎어진다.


지금의 계집은 그렇게 작고 여렸다.


지금의 나는 계집보다 크고 강했다.



"주둥이! 그 놈의 주둥이 좀-!"



어린 계집 아이가 상처 입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마음이 흔들렸다.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


왜지. 난 이런 놈 아니었잖아.


한낱 꼬맹이 때렸다고 죄책감 느낄 놈 아니었잖아.



"주둥이 좀... 놔두시오. 날 놔두시오."



기세 좋게 외치던 첫마디와는 달리, 말은 뒤로 가며 그 위세가 꺾였다.



"부탁이오."



나는 집의 한구석에 찌그러졌다.



"지쳤단 말이오. 오늘은."



놀라고 충격 먹은 눈이던 어린 계집이 내게 쪼르르 다가왔다.


이번엔 측은히 바라보는 눈이었다.

그러곤 언제 나한테 맞았다는 듯이 오지랖을 부렸다.



"벤 게냐? 베고 만 것이냐?"


"말 걸지 마라 했소."


"베었구나? 네놈... 아아니 너, 베고 온 거구나.
이번이 처음이었던 게고."


"시끄럽소."



내 퉁명스런 답변에 확신했나보다.


계집이 날 끌어안았다.


평소의 짜증나는 성깔은 간데 없이 없애버리고선.



"얼마나 힘들었겠느냐. 사람을... 고된 일이거늘."



계집이 내 등을 토닥였다.



"괘념치 말아라. 네가 아니라도 누군가는 했을 게야."


"그런 거 아니오. 난 살인자였소.

사람 하나 베었다고 충격 먹을 리가 없잖소."



내 허세는 계집에겐 통하지 않았다.


계집은 날 쓰다듬었다.



"가녀린 아낙의 몸으로 떠벌려도 설득력이 없지 않느냐."



계집의 몸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계집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겁을 한껏 집어먹은 내 심장 소리도 들렸다.


계집은 한동안 그리 있었다.


내가 잠들 때까지.



*



"어제도 처형이 있었다지?"


"그렇다더군."


"'그렇다더군' 은 이 사람아! 자네 담당 아니었나?"


"아니었네. 어젠 영 그럴 마음이 아니었던 지라 관에 청을 해서 바꿔달라 했지."


"그런 짓을 해도 되는 겐가."


"안될 테지. 그래도 요즘은 영 손이 올라가질 않는다네."



동료 두 명이 잡담을 떨고 있었다.


둘 다 사형집행인이었다.


두 사내 중 뚱뚱한 쪽이 질책했다.



"원, 이 사람아! 일인데 그리 농땡이를 치면 쓰겠나."


"최근엔 꿈에 나온단 말일세."


"뭐가 말인가."


"그야 당연히 내가 벤 사람들이지."


"꿈 따윌 믿는 겐가?"


"자네도 몇 달째 악몽만 꿔보게. 이해할 테니. 그리고...."



마른 사내가 말을 잠시 멈추었다.



"그... 요새 이곳저곳 이상한 기미가 보인단 말일세."


"얼씨구, 누군 길몽만 꾼 줄 알겠군그래."


"그래서 당일 처형을 나한테 떠맡긴 거요?"



두 처형인의 잡담 사이로 내가 끼어들었다.


하루 새에 제법 초췌해진 내 얼굴을 보고 두 사내가 놀랐다.



"아이고 이 양반아 인기척 좀 내게!"


"아이쿠!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사내대장부들이 호들갑하곤."


"그리 말하는 거 보니 김망난이도 요녀가 다 됐군."



두 처형인이 껄껄 웃었다.



"무슨 얘기하고 있었소?"


"꿈 얘길세. 개꿈."


"개꿈이라니. 주변에도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까!"


"어떤 일 말이오?"


"자꾸 망자의 얼굴이 보이곤 하네. 원혼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네."


"피로가 쌓인 걸세. 요즈음 자네, 몸도 나날이 말라가지 않았나."

"말라가니 더더욱 원혼의 소행이 아니겠나."



두 처형인은 또 다시 그들만의 대화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알았소. 그쯤 하시오.
내, 사람을 찾으러 왔으니."


"우린 망나니지, 우편배달부가 아니외다."



뚱뚱한 사내의 불평을 무시하며 물었다.



"한쪽 눈에 흉터가 있는 이립而立 정도 나이의 처형인이오. 어디 있는지 아시오?"



일전에 '김망난' 에게서 돈을 빌려갔다는 처형인이었다.


계집이 말하기를, 그 돈이면 한동안은 처형을 시키지 않아도 호주머니가 넉넉하리라 하였다.


원혼 타령을 하던 빼빼 마른 사내가 되물었다.



"한쪽 눈 흉터?"


"박철수 아닌감? 그 자가 딱 조건에 들어맞는데."


"그렇소. 박철수. 행방을 아시오?"


"알고 자시고도 없지. 그 친구 이젠 없잖나."


"무슨 말이오?"


"죽었네. 그 친구."



그러고보니 어제 만났던 중년의 처형인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참.


한데 그냥 죽은 게 아니랬지 않았나.



"죽긴 죽어도 뒷소문이 퍼졌지만."



그래, 뭔가 기이한 구석이 있다 했었다.


마른 사내가 말했다.



"자네도 '그 소문' 들은 게로군?"


"처형인들치고 '그 소문' 모르는 양반이 어디 있겠는가."


"정말로 귀신의 소행 아닐까싶네. 어찌 그런 해괴한 일이 있는지."


"이 사람아 괴력난신이 세상에 어디 있나. 그 소문도 그저 뜬 소문에 불과할 걸세."


"아니 때린 장구에 북소리 나겠소?"


"'그 소문' 이란 말은 그만하시오. 나는 모르니."


"그게 그...."



두 처형인이 눈치를 보며 침묵을 지켰다.


짧은 눈치싸움은 뚱뚱한 망나니가 종식시켰다.



"결론부터 말하면, 죽음치곤 너무 깔끔했단 걸세."


"목이 잘린 시체였는데-."


"그건 나도 들었소."


"방안에는 핏자국 하나 없었다네."


"그건 못 들었군."



핏자국 하나 튀지 않은 시체라.


요상한 죽음이긴 했다.



"목이 잘렸다면 필히 타살일 텐데 핏자국이 없었단 말이오?"


"바로 그걸세."


"내 보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귀신의 소행일세."



어쩐지 대화를 하면서 호흡이 갑갑해지는 게 느껴졌다.


어제의 충격이 아직 남아있던 걸까.


뚱뚱한 사내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좌우간 유감이로군. 자네가 박철수한테 떼어먹힌 돈은 못 찾게 되었어."



무의식 중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깟 돈이 중요하단 말인가?


마른 사내가 내게 물었다.



"돈은 얼마나 떼어먹혔길래 그러시오?"


"사람 셋 베는 수당만큼 빌려줬소."


"이이이, 이 양반 비유하고는...."



바로 그때였다.


뒷쪽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그깟 나무가 그리 비싼 게요?! 내 모가지보다도?!"



고래고래.


소란을 피우는 이는 죄인인 모양이었다.


굵은 밧줄로 몸이 묶여있었으니.


앞에선 포졸들이 오랏줄을 당기고 있었다.



"아따, 고놈의 자슥 기차 화통을 삶아묵읐나."


"인석 힘도 장사로세. 꿈쩍을 안 하네."


"나는 못 가오! 땅 좀 밟았기로서니 옥을 들어가야 한단 말이오?"


"척 보니 성지에 침입을 했군."



누군가가 말했다.


성지.


성지 천경림이다.



"용감도 하군. 천경림에 발을 들이면 '이거' 란 건 세살배기 어린애들도 아는 얘기이건만."



뚱뚱한 처형인 목을 손으로 긋는 흉내를 내었다.


마른 처형인이 말했다.



"근시일 내로 처형이 한건 더 생기겠군."


"아니, 천경림 관련은 속전속결이 관습일세. 오늘 내일 중으로 거행되겠지."


"오늘 처형 당번이 누구요?"



내가 그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자네잖나."



*



달갑지 않은 시간은 돌아오고 말았다.


오늘은 사람도 많았다.



"셋."


"예?"


"세 명의 목을 베면 되네. 오늘은."



셋이나.


고개가 힘없이 떨궈졌다.


내가 안쓰러웠던 걸까.


포졸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아마 요참은 없을 걸세. 단숨에 자르기만 하면 되네."


"... 알려줘서 고맙소."



한숨 9할, 말 1할의 비율로 포졸에게 답했다.



"쳐라!"



명령이 떨어지고 칼을 뽑았다.


처음은 성지에 들어갔던 자였다.



"내 죄를 헤아려보시오! 내 어찌 죄인이란 말이오!"



여전히 떠들썩하게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이전번처럼 응시의 대상이 나였다면 견디기 힘들었을 터.



"후우, 쓰흡... 하아."



죄인이 뱉은 숨이 아니다.


내가 뱉은 숨이었다.


심박수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허리 위만 남은 채로 내게 다가오던 끔찍함이.



"죄, 죄인!"



하기 싫은 일은 미뤄두는 성격이었다.


후다닥 해치웠으면 한결 나았을 것을.


자그마한 현실 도피를 시전하고자 했다.



"죄인 하... 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무어라?"



내 질문이 상상 외의 질의였던 건가.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이 한결같은 반응을 보였다.

한사코 목청을 높이며 항의하던 죄인도 말을 멈추고 날 바라보았다.


나는 말을 더듬으며 해명했다.



"저, 저기 죄인의 청이 있다면... 혹시라도 있다면...

마지막이니 들어주는 것도 좋, 좋지 않을까 싶은 것이오...!"


"김망난아 그게 무슨 말이더냐?"



처형을 명하던 이가 말했다.



"그 자의 청은-."


"내 청은 사는 거요."


"그렇다지 않느냐."



들어줄 수 없는 청.


그럼에도 나는 매달렸다.


사형수가 아닌, 처형인이 매달린다는 우스운 상황이 되었음에도.



"진... 진정 그것 밖에 청이 없는 것이오?"


"천경림의 소멸이 청이긴 하오."


"그 또한 들어줄 수 없는 청이로다."


"다른 청은 없소? 하루... 하루만 더 살고 싶다거나."



하루가 지나면 내일 당번이 처형을 하게 된다.


내가 치는 목은 하나 줄게 된다.


그 무시무시한 살생을 하나 덜하게 된다.


그런 희망이었다.



"하루라도 더 살 수 있다면 기쁘긴 하겠지만...."



죄수가 힐끔 단상 위를 쳐다보았다.


단상에 앉은 관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된다. 천경림 관련 건은 즉결 처분이 원칙이니."


"그렇다지 않소."



왜 그렇게 포기가 빠른 거야!!


생사여탈권을 포기하지 말라고!!


절규를 하려다 목 너머로 씹어삼켰다.


베어야 했다.



"우으... 에라이!"



칼을 쥔 손 끝에서부터 반발감이 전해져왔다.


묵직한 느낌은 얼마 안 가 끝났다.


대신 죄인의 피가 튀어올랐다.


솟구친 검은 피는 덧없이 비행을 만끽하다가 착지했다.


여인이 되어 부푼 내 가슴 위로.



"아아, 으읏윽...!"



어금니를 깨물었다.


피에선 죄수 생전의 체온이 전해졌다.


질척미지근한 감촉도.


소름이 돋는 느낌이었다.


흉부의 핏방울을 손으로 털어내려 했으나 소득은 없었다.


곁에 있던 포졸 몇몇이 말했다.



"왜 그러시오. 평소 같지 않게."


"평소엔 쓱싹하고 목을 잘라내지 않았소?"



그랬다.


나는 이들에게 전문 처형인, '김망난' 이었다.


전문 처형인은 피가 묻었단 이유로 호들갑을 떨지 않을 터.


만일 내가 김망난이 아니란 게 들통나면 어찌 되는가.


이번에 목이 잘리는 것은 내가 될 터였다.



"모기가... 있었소."



끝내 피가 튄 흉부는 그대로 놔두고 둘러댔다.

구토가 나올 것만 같았다.


어금니를 깨물었다.



"모기? 아직 모기가 나오기엔 이를 텐데."


"참말이오... 가려워서 긁은 것 뿐이오."



마음을 독하게 먹어야 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아니던가.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아니던가.


은퇴는 100명을 베면 된다고 했던가.


그때까지는 감내해야 했다.


아니, 적어도 오늘 이 순간만이라도.


하지만 그런 결심은 머지 않아 부숴지고 말았다.



"다음 죄인을 베라!"


"맹효렴...? 자네 맹효렴인가?"


"별일이구만 처형인 양반이 내 이름을 다 알고."



옛 친구였다.


어렸을 적의 절친한 친구.


옛 벗이 말을 보탰다.



"귀신 소굴에 들어가니 귀신 하나가 아는 체하는 것 마냥 복잡한 기분이오."



우리, 죄수들에겐 처형인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죽음 자체보다 두려운 게 있다면 그것이 처형인이었다.


죄인의 입장에선 망나니를 귀신에 빗대어 말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알다마다. 우리... 함께 피리 불고 마을을 돌지 않았나."


"피리...? 그랬소. 그런 적 있었지."


"자넨 병법에 그리 관심이 많았지.

옆마을이랑 석전이라도 한다치면 자네 그 비상한 머리가 항상 반짝였고."


"맞소. 맞긴 한데...."


"나랑만 둘이 있을 때면 뒷집 소희한테 장가 갈 거란 얘길 실토했고.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구만...! 소희는 잘 있나?"


"잘 있소. 내가 아니고 다른 남자한테 시집을 갔지만."


"아깝구만! 하긴 다들 좋아했지! 고 기지배 도통 참한 게 아니었으니!"


"그랬소. 그랬지."



한껏 고양되었던 감정은 다시 우울하게 내려앉았다.


망나니의 차고 거대한 칼은 옛 친구를 봤다는 반가움도 현실로 내려앉혔다.



"헌데! 헌데...

왜 자네가 여기에 있는 겐가."



쓰고 슬픈 현실로.



"자넨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왜 왔나?

자네 아래로 어린 동생만 셋이지 않았는가...."


"그건...."



효렴이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았다.


관리는 나를 재촉했다.



"처형인 김망난! 어서 죄인의 목을 쳐라!"



어지럽고 메스껍고.


반갑고 슬프고.


허공엔 독촉만 남아서 심란한 날 괴롭혔다.


독촉과, 방금 내가 베어넘긴 목 하나만 남아서.

얼이 나가 상실감을 곱씹던 때에 효렴, 나의 벗이 물었다.



"잠깐만, 김망난이라고 했소?
내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