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하늘에 수놓인 별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아직은 취학하지 않은 아동일 때의 내가 뇌리를 스치운다. 그 땐 생각이 날 때면 이젠 저 하늘의 별 중 하나가 돼버린 할머니와 함께 과천에 있는 과학관을 향하기 일쑤였다.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사호선을 타고 대공원 역까지 내려가는 여정은 나에겐 항상 새로웠다. 어떤 때는 과학관 내부로 들어가보기도 하고, 어떤 때는 거대한 과학관을 한 바퀴 둘러보기만 하며 세상은 커다랗다는 사실을 천천히 음미하기도 하였으나, 갈 때마다 천체관은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매번 갔었다. 항상 그곳에서 진행하는 별자리 해설을 들으며 하늘을 재현해놓은 듯한 거대한 돔형 스크린 아래에 누워 있을 때가 나는 가장 행복했다. 할머니는 그 때마다 주무시기 일쑤였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할머니에게 별자리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에 맛이 들려 내심 다음에도 주무셨으면 했었다. 천체관의 일정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에 집 옥상에 올라가 낮에 배웠던 별자리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의 밝은 조명 아래에선 잘 해봐야 국자 하나 찾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낮에 배웠던 별자리가 있을 것으로 굳게 믿었던 나는, 밤 10시가 넘어가도록 옥상 바닥에 드러누워 엉뚱한 별들로 억지로 끼워맞춘 별자리를 다 찾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장래희망이란 걸 가져봤다. 천문학자. 하늘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들을 찾아내, 그 비밀을 밝혀내는 천문학자란 직업이 한없이 멋져보였던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서도 저학년때까지는 장래희망 란에 항상 "천문학자"라는 네 글자를 쉽게 적어넣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할머니가 별이 되었을 때 나는 내 첫 꿈을 잃었다. 애석하게도 내가 별에 대해 공부해서 별 이야기를 들려줄 대상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골 집의 마당에 드러누워 별자리를 헤아리는 지금. 별 이야기를 들어줄 그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있기를 바라며 두서없는 수기를 적는다. 나는 이랬었다고. 나는 이랬었던 어린이었다고를 알아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