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서울 2063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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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은 몇 시간 전, 지원 일행이 해산한 이후. 10여 명의 군인들이 LAD로 들어오자 양복을 입은 바운서가 그들을 제지했다.


“이봐, 여긴 군인 나으리들 오는 술집이 아니…”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군인 하나가 소총 개머리판으로 바운서를 떼려 눕히더니 머리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우릴 뭘로 보는 거냐? 우린 지금 ‘공무’ 수행 중이다.”


“거기까지 해라.”


굵고 중후한 목소리에 군인들이 일제히 양 옆으로 섰다. 그 사이를 ‘아담’이 걸어 들어오며 문을 열었다.


“LAD…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지.”


‘아담’과 군인들이 일제히 LAD로 들어오자, 용병들 모두가 일제히 그들을 향해 각자의 무기를 겨누었다. 군인들도 최신형 돌격소총을 용병들에게 겨누며 대치했다. 어느 용병이 소리쳤다.


“이 새끼들 뭐야?! 군바리들이 여기 뭐하러 온 거냐고!”


“빨리 꺼져! 삼성이라고 못 죽일 것 같냐?!”


그런 대치 상황에서 아담이 그들 사이로 뚜벅뚜벅 걸어들어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구만. 거칠고 하루살이처럼 사는…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가장자리를 달리는 사람들, 진정 ‘엣지러너’라고 불러야 해.”


가장 가까이 있던 용병이 기관단총을 ‘아담’에게 들이밀었다.


“넌 또 뭐야?!”


그 순간, ‘아담’을 중심으로 파동이 퍼져 나가더니 용병들은 일제히 마비가 온 듯 무기를 떨어뜨렸다.


“뭐, 뭐, 뭐야…”


“팔에 힘이 안 들어가…”


‘아담’은 무감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손광민은 어디 있나?”


“여길세.”


‘아담’의 바로 옆방문이 열리고, 손광민은 거기 앉아서 맞은편에 놓인 잔에 술을 따라 아담 쪽으로 밀었다.


“내가… 삼성 나으리들에게 준 ‘뽀찌’가 부족했나? ‘세금’도 착실하게 냈을 건데. 전신 사이버웨어 군인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최신형 사이버웨어까지 달고 이렇게 본격적으로 행차하신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나?”


‘아담’과 손광민 사이에는 이제 2m도 안 되는 테이블 밖에 없었다. ‘아담’은 그가 자신에게 따라 준 술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낮에 일어난 고려그룹의 삼성 폭탄 테러… 이지호 회장의 암살… 7공화국 사상 최악의 사건에 이쪽 소속 용병이 얽혀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아담’이 손을 펼치자 그들의 얼굴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이 네 사람, 여기 용병 맞지?”


손광민은 술을 홀짝였다.


“알려줘야 할 의무는? 고려그룹이 사고를 쳤다면, 평양 쪽 용병들이랑 만나야지… 번지수를 잘못 잡은 거 아닌가?”


‘아담’은 말없이 손광민을 노려보더니 오토바이라도 탈 것 같이 생긴 헬멧을 벗었다. 손광민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가 사라지고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악만이 드러났다.


“자네… 말도 안 돼… 분명 그날 개마고원에서!”


“실종됐었지. 당신이 무책임하게 말도 안 되는 임무에 투입시켜서.”


손광민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지켜보던 용병들도 아연실색했다.


“말도 안 돼…”


“진짜 그 박철곤이야?!”


“삼성의 개가 됐다고?”


“다 죽어가던 나에게 제2의 인생을 선사한 삼성을, 이지호 전 회장을 따른다. 난 그렇게 맹세했다. 이건 당신에게 주는 경고이자, 절연의 메시지이다. 회장 암살 관련자인 이들을… 나에게 넘겨라. 그리고 그날! 용병 박철곤은 죽었다. 내 이름은 이제 ‘아담’이다. 가자.”


지원은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었다.


“여기까지 왔다고…?”


조 씨가 답했다.


“그래, ‘선생님’께서 이리저리 화가 많이 나신 모양이야.”


그때, 누군가 노크를 하더니 방 안에 들어왔다.


“조성환 씨, 그리고 용병 분들. ‘선생님’께서 부르십니다.”


조 씨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그리고 다들 기억해. ‘선생님은 변명하는 것을 싫어하신다.'”


잠시 후, 네 사람은 경호원 둘을 끼고 있는 손광민과 마주했다. 손광민은 경호원이 잔에 따라 준 위스키를 가운데 앉은 조 씨 앞에 두고 자기 잔을 마셨다.


“조성화이… 내 질문에 대답할 수 있겠나? 자네가 못하면 용병들이 해도 되니까.”


“네…”


“삼성의 황제가 죽었다… 거기에 자네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게 사실인가?”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조 씨가 입을 열었다.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희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광민은 들고 있던 크리스털 잔을 탁자에 쾅 내려쳤다. 잔이 산산이 부서지고, 안에 담긴 고급 위스키가 사방에 튀었지만 그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거친 억양을 마구 튀겼다.


“관련 없다? 관련이 없다고?! 그럼 니들은 거기 와 있었노? 일개 용병이 거기 뭐하러 있었느냔 말이야!!”


지원이 항변했다.


“제 개인적인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가족의 일에 삼성이 관련되어 있어서…”


“니 의견은 안 물어봤다!! 내가 지난 근 30년 동안 이길 운영하면서, 한 번이라도 삼성에 ‘슨물’을 주는 것을 빼먹은 적이 음썼다! 근데 씨발! 분명 개마고원에서 호랑이 밥이 되었어야 할 박철고이가! 내 눈 앞에 삼성 새끼들이랑 같이 나타나가이고! 너거들 얼굴을 떡하니 보여줬다 아이가!! 내가 너거들을 팔아 묵지는 않았거든? 최대한 부정을 했다, 이기다! 너거들이 IS야?! 김정은이가?! 용병이면 용병답게 받아오는 의뢰 해결하고 말 것이지, 굳이 수원까지 가서 지랄 염병을 떨어?!”


그 순간, 조 씨는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선생님! 전부 제 잘못입니다. 저희 용병들은 죄가 없습니다! 부디 저 만으로 용서를…”


“용서? 요오옹서어어?! 이게 용서로 끝날 일이라고 보나! 박철고이 금마가 그냥 안 돌아갔으면 이긴 이미 다 시마이였다! 내나 니나 다 뒤졌다고!!”


손광민은 조 씨를 향해 깨지고 남은 크리스털 잔 파편을 집어 던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잔의 바닥도 뒤편 벽에 맞아 산산조각 났지만, 그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손광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물었다.


“니… 나가서 내가 주는 일 하나 받아라. 아이다, 이 자리에서 주께. 평양 올라 가가, 내 이름 대고 마선형이 만나라.”


“그… 마선형 말입니까?”


“니가 아는 마선형이는 둘이가? 싫으면 관둬삐라, 내일쯤 서해 쓰레기랑 때씹하고 있을 기다.”


“네, 받들겠습니다.”


“꺼져라.”


조 씨는 한 번 더 머리를 조아린 다음 방에서 나왔다. 문이 닫히자, 조 씨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인호와 지원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물론 그들도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지금 당장… 평양 갈 준비하자.”


“…애는 어쩌지?”


“몰라, 알아서 해. 지금 당장… 각자 집에 가서 준비 다 하고, 3시간 뒤… 8시까지 서울역으로 와.”


조 씨는 덜덜 떨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사무실로 돌아갔다. 지원 역시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며,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전화를 걸었다. 저 너머에서 정겨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우리 딸. 무슨 일이니?”


“아버지… 그, 그게…”


“속 시원하게 말해 보렴. 무슨 문제라도 있니?”


“며칠만… 맡아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요.”


“사람? 최 서방이랑 싸운 거냐?”


“아니요, 남편이 아니라… 아이예요.”


“아이? 아직 손자 소식은 못 들었는데?”


“제 아이가 아니라…”


지원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아는 분 아들인데, 사고를 당해서 잠시 저한테 맡겼어요. 그런데 저도 며칠 급하게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서요. 될까요…?”


지원의 아버지는 그저 웃었다.


“허허… 우리 딸 부탁이라면 보증 빼고는 다 가능하지! 집으로 올 거니?”


“네, 금방 갈게요.”


잠시 후, 지원은 준용을 데리고 차로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이동했다. 지원이 말했다.


“아버지는 너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야. 게다가 너를 내가 아는 사람의 아들로 알고 있지. 그러니 절대로! 삼성 어쩌고는 일언반구도 하지 마.”

준용은 화가 난 듯한 말투였다.


“알아요, 압니다! 벌써 10번째니까요!”


“아버지는 홀로 10년 넘게 살아오셨어. 말동무도 해드리면 좋아하실 거야.”


“그것도 벌써 5번째입니다.”


물론 준용도 생각이 복잡했다.


‘아랫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배운 적도 없는데… 어쩌지?’


지원은 준용을 아버지에게 맡기며 당부했다.


“애가 집이 좀 잘 살거든요. 그래서 말투라던가 행동 같은 게 특이할 수도 있어요.”


“염려 말거라. 어디가는지는 몰라도, 잘 다녀오고.”


지원은 그대로 서울역까지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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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광민 - LAD와 용병들의 아버지, 그리고 선생님

공식적으로 1989년생. 하지만 그보다 나이가 많을지도 모른다.

평생 과감한 도박을 걸어오며 살아왔다. 필요하다면 동료까지 버리는 비정한 모습과 최대한 자기편을 감싸주는 의리있는 모습을 모두 가졌다.

지금은 없어진 부산광역시 출신이다. 평소 말투에선 거의 드러나지 않으며, 그가 동남 방언을 쓴다는 것은 매우 화가 났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