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위에는 추억들이 있어"

미처 못 다날린 꽃가루가 조금씩 날아가던 계절에, 

얼어붙어 죽어나간 생명들이 녹아들어 싹을 틔우고, 

만물의 생명들이 한순간 피어나 

추억들을 만개하고 끝내 지기 시작한 계절에, 


다리 위에 있는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암울했던 삶을 끝내려 했던 순간,


그는 너무 늦은 첫사랑을 다시 경험했다.

다리 위에는 기억들이 있었다.

되돌아보지 못함을 알면서도 간절히 소망해온 

순간들이 있었고,


온몸이 녹아내릴 정도의 행복했던 만남들이,

따듯했던 심장을 차가운 빙하의 단면에 가둬버린

이별들이 있었다.

스스로를 감추려는 회의감 속에 무의미한 

기대 속에서 태어난 우연들이 있었고,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를 

유의미한 만남들이 있었다.

지금도 나와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걸어

 나갈 그녀를 만날 수 없음에도,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한 순간들을 

간직하고 있을 뿐임에도.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웠던 

거짓된 순간들이 그 다리 위에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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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하게 맞춰놓은 알람에 이제야 감겨지기

시작한 눈이 떠졌다. 


근무 시간에 바로 옆에서 

볼일을 보는 사람들을 두고 

그 사이에 벽을 하나 낀 채로, 


그것을 등지고 화장실 샤워부스에서 

쪽잠을 자는 스무 살의 직장인은 

아마 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로 돌아기기 위해 급하게 자리를 일어나다

머리에 피가 미처 덜 돌았는지 갑자기 드리워진 

현기증에 시야가 막혀 머리가 지끈거렸다. 


벽에 손을 기댄 채 잠시 정신을 가다듬고, 

문틈으로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재차 확인하고 재빠르게 사무실로 되돌아갔다. 


“서원 씨 월화고 등신대 여덟 장 남은 거 

코팅해서 이따가 화물로 보내고 퇴근 전에 

명성 들러서 아크릴만 좀 받아다 주세요.“


서울 송파구에 위치한 대형 사무 단지에 자리 

잡고 있는 내 직장은,  학교로 나가는 출판물이나 

게시판, 간단한 간만이나 광고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작은 영세기업이다. 


멀지 않은 거리에 한강을 등지고 20층의 높이와 

도배된 채광 창, 여러 유통시설과 편의시설이 

교차하여 이루어진 유려한 외관을 뽐내는 이 건물은,


나 자신이 여기서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울에서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수많은 톱니바퀴들 

사이에 새롭게 맞물려 같이 돌아가는 것 만 같은, 


그런 의미 없는 허영심을 채워주기에는 

충분한 위치에 자리 잡은 멋들어진 건물이었지만, 


정작 이곳에서 수주 받는 일들과 진행 중인 

시안을 바라보면, 이 높고 반듯한 건물에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을, 


어지간한 대학생들이 만들어낸 

디자인 과제보다도 못한 단순한 주제의 출판물들이

 줄지어 높은 가격대에 판매되고 있다.


행정실 교직원 소개 게시판이나 어느 학교를 가도 

비슷한 내용들이 적혀있을 법한 급식실 게시판, 

학생들의 금연과 학교폭력 근절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는 피켓 등이 우리 회사의 주 수입원인데, 


적당히 제단한 폼 포드에 간단하게 만들어 낸 문구와 

그림을 오려붙여 코팅하고, 손잡이만 붙여서 출고되는 

피켓의 가격이 한 장에 2만 원씩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계단에 부착하는 피켓과 사이즈만 다르게 출력한 후

 테이프만 붙여서 판매하는 계단 표찰이나, 

사람 키 정도의 출판물을 세워놓는 등신대 같은 

경우에는 20만원을 웃도는 경우도 흔하다. 


높은 임대료를 내고 사무실을 두 개나 빌려 쓰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원인은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좀처럼 발전이 없는 교사들의 안목과, 

사회문제로 심각해져 가는 청소년들의 강력 범죄, 

늘어만 가는 청소년의 흡연율에 빨대를 꽃아 

손쉽게 수익을 올리고 있다.


역설적으로 모든 청소년들이 피던 담배를 끊고 

조금의 폭력도 불화도 없이 평화롭게 살아간다면, 

적어도 우리 회사에 근무 중인 직원들은

대부분 실업자가 될 것이다.


나는 사무실 반대편 작업실에서 디자이너들이 

만들어 내어 출력된 출판물들을 코팅해 간단하게 조립, 

포장 후 출고시키거나 만들어진 시안의 학교 이름 

정도를 컴퓨터로 수정하고 발주서를 작성하는 등, 


누구든지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는, 

그런 일들을 졸업 이후로 계속해서 하고 있다.  


시험 기간이 끝나고 학교들이 교내 행사를 시작할 때면

혼자 출판물 수백 개를 출고시키면서 1시간이 1분처럼 

지나가는 바쁜 시기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혼자 무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주변의 간섭 없이 

음악이나 라디오를 들으며 

혼자 여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쉽게 주어지지 않을 편한 일자리일 것이기에, 


2시간 가까이 걸리는 출퇴근 시간과

최저 임금 만을 계산해서 산출해낸 적은 봉급도 

나에게는 특별히 개의치 않았다. 


급여는 적을 뿐 분명하게 쌓여가고 있었고, 

최소한의 교통비와 생활비를 제외하고선 

특별히 누굴 만나지도, 돈이 들어갈 만한 

취미를 갖고 있지도 않았기에, 


군대를 제대한 후 최소한의 자립만 가능하다면, 

급여가 적은 것에는 딱히 신경을

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저 숨만 쉬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만 있는 이 삶이, 별다른 

기쁨도 슬픔도 없이, 너무나도 

무의미하고 지루한 나머지 


당장 1~2년 후의 미래를 생각할만한 

기대감조차 갖지 못하게 되어버린

것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지루하지 않은 자극성을 지닌 

경제 라디오와 작곡가를 알 수 없는 

뉴 에이지 음악을 연속해서 듣다 보니, 


어느새 시계가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출판물들을 조립하고 포장하는 와중에 

생긴 종이 쓰레기들을 모아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노래 가사를 읊으며 건물 지하에 

위치하고 있는 쓰레기장에 발길을 내딛었다.


퇴근 시간에 맞춘 6시에 쓰레기들을 버리고

바로 퇴근하면 편하겠지만, 그때쯤이면 

조금이라도 분리가 덜 된 종이와 

상자 조각들을 보면 경악을 하며.


이를 악물고 쓰레기들을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경비원들이 돌아올 시간이기에, 


이른 시간에 대충 분리한 종이와 비닐들을 

남이 버린 쓰레기 더미 사이에 조심스럽게 

꽃아 넣고, 


그대로 올라와 미처 못다 한 작업들을 

마무리하며 퇴근을 준비하는 것이다.


작은 상가 건물의 지하 주차장만큼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회사 건물의 대형 쓰레기 처리장은,

특별한 경계 없이 일반 쓰레기부터 종이상자, 

플라스틱 등으로 시작해 지하상가에 위치한 

식당들에서 매일같이 쏟아져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들까지 다양한 

쓰레기들이 모여져 있는데,


날이 따듯해질 즈음에는 조금이나마 

봉투 값을 아끼려고 음식물을 채워 담다가

터져 나온 봉투 속에서 부패한 음식들이 내뿜는 

악취가 풍겨 나오기 시작한다. 


봄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서 

앞으로 반년 동안은 이 악취 속에서 쓰레기들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 지하 쓰레기장엔 분리가 덜 된 쓰레기들을

병적으로 싫어하며, 옆에 누군가가 있을 경우엔 

투덜거리지 않고서는 버틸 수가 없다는 듯이 

말을 풀어놓는 경비원이 집처럼 생활하는 

작은 거처가 있는데, 


보호용 푸른색 점착테이프로 휘감은

대형 나무판자들을 벽과 천장으로 활용하고,

버려진 아크릴을 창문으로 활용해 언뜻 보면 

작은 옥탑 방처럼 보이는 방이었다.


호기심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그곳을 몰래

 들여다보니 전기는 외부에서 긴 전선을 

연결해서 끌어다 쓰는 듯 했고, 


냉난방은 당연히 기대할 수 없으니 

여름은 작은 선풍기로, 

겨울은 몇 겹으로 겹친

얇고 두꺼운 이불들로 버티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세탁을 한 것이 언제일지 

가늠을 할 수도 없는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이불과 경비 복장이 보였고, 


책상 구석에는 눈매가 경비원과 꼭 빼닮은 

젊은 여인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그의 딸인 듯 했다. 


살풍경인 작은 방을 보며 만약 

지금처럼 내가 아무런 희망도 

가지지 못한 생활을 몇 십 년이고 

반복하며 살아가다 보면, 


나도 결국은 이런 비참한 말로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길한 

상상이 치솟기 시작했고, 


불쾌한 냄새와 기분 나쁜 상상이

점점 머릿속을 채우는 게 짜증이 나 

도망치듯이 그 장소를 빠른 걸음으로

뛰쳐나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시계를 보지 않고 일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부지런하게 게시판들을 조립하는 부장님과, 

교내 행사가 가까워져서야 관련된 출판물들을 

허둥지둥 구입하는 게으른 교사들을 상대하는 

과장님을 뒤로 하고, 


디자이너 누나 분들께 가볍게 인사하고는 

평소처럼 대문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퇴근을 준비하는 누나들의 표정이 유난히 

밝은 걸로 보아 오늘이 1년에 한번 

잠실대교에서 열리는 불꽃축제 행사가

바로 내일로 다가온 듯 했다.


점심을 먹을 때부터 퇴근하는 순간까지, 

이번 한주동안 누나들은 서로의 연인과 

보내게 될 불꽃축제의 이야기를 벌써부터 

꺼내놓느라 정신이 없었다.


퇴근 시간만 되면 어디서 이렇게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많은 

인파 속에 섞이게 되는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지갑이나 휴대폰을 떨어뜨리고, 

내려야 하는 역에서 

내리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지갑과 휴대폰을 꽉 쥐고 직장이 위치한 

8호선 장지 역에서 잠실 역까지 이동한 후, 


지하에 있는 광역 환승센터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을 30분정도 서고  느릿느릿 앞으로

기어가다 보면 내가 타야할 

광역 버스가 드디어 모습을 나타낸다.


퇴근할 때 마다 느끼는 점이 한 가지 있다면, 

두 시간 가량 걸리는 이 퇴근길이, 

내가 일하는 여덟 시간보다 

훨씬 고되고 버거운 작업이 아닌가 싶다는 점이다.  


내가 걸어가는 퇴근길은, 정갈하게 갖춰 입은 

직장인들과 향기로운 청춘임을 어필하는 

꽃 냄새를 풍기는 젊은 학생들, 

온 세상이 파란만장하게 비춰 보일 살아

숨 쉬는 행복감을 영위하는 젊은 연인들이 

서로 겹쳐지고 지나치며, 


서로의 존재감을 어필하는 기묘한 거리이다.


퇴근을 서두르는 몇몇 이들 때문에 주의해서 

걷지 않으면 어깨나 팔이 부딪치기도 쉽고,


얇은 옷을 입어야 할지 

아직은 따듯하게 입어야 할지 

아침마다 고민하게 만드는 

제멋대로인 5월 날씨 속에서, 


살이 드러나는 걸 싫어하는 이유로 

후드 티에 재킷까지 둘러 입은 내 복장은 

이 날씨에 적응하기엔 너무나도 더웠다.


조금이라도 더위를 잊어보려 

잡생각을 지우고 멍하니 이어폰으로 

들려 나오는 노래에 집중하고 있다보면,


슬픈 이별 노래 속에서 들려오는 가사는 

몇 년째 아물어지지 않는 가슴속 한구석 

어딘가의 벌어진 상처를 건드렸고,


행복했던 그 시절 

그녀와 듣던 노래가 재생되면


2년 전으로 돌아가진 듯한 풍경이 

눈앞에서 맴돌았다.


하루에 두 시간씩 출퇴근을 위해 내가 

이용하는 이 광역 버스는, 


크론병을 앓고 있던

전 여자 친구인 한지예와 격주로 

피검사를 받기 위해 내 손을 맞잡고 

서울로 올라갈 때 마다 함께 타던 버스였다, 


버스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일 때 즈음, 


익숙한 노래 가사와 함께 잠실역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기억이 어깨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