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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방금 뭐라고 했어, 이민···?!”



이렇게 나와버린 외마디의 발언과 단번의 내뱉은 의미심장한 문장을 읊조린 후에 순간 주위에 모든 생명체들의 호흡이 멈춘 듯 일시적으로 정적이 감돌았다. 큰 목소리로 지른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뚜렷하게 소리낸 말 한마디에 주변에서 듣고 있었던 동료들과 요정은 놀람을 금치 못하는 눈치를 보였다. 아니, 꼭 못 들을 걸 들은 낯빛들을 띄고는 날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본다. 어째선지 난 그럼에도 담담했다. 하여튼간에 결과적으로 ‘그’것이 아직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 치이··· 치이이··· 치이이이이이이이이?!?!?!?!?!?! (화들짝)


- 변, 변태용사! 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미쳤어?! 아니 그보다도 그거 잘못 말한거지? 그런거지?? 【LV.18/마법사】


- “너! 갑자기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요정들 때문에 여기에 온 거면서 난데없이··· 누굴 죽인다고? 하, 내가 잘못 들은거겠지. 갑자기 상황 이상하게 만드네. 분명 잘못 들은게, 헛것을 들은—“ 【LV.15/용사의 수호령】


- 요정들을 죽여버리겠다···· 라는데? (웃음) 【LV.43/무녀】


- “야! 그런거 웃으면서 함부로 말하지마! 잠만, 그보다 그거 진짜로 한 말이라고?! 야, 용사 아니 이민. 내 말 좀 들어봐! 네가 할일을 그새 잊은거냐! 그게···· (눈치) 넌 그 주인··· (눈치) 그런거라서···· 아놔! 어쨌든 저기가서 조용히 얘기 좀 하—”


- 이거··· 이민이 저런 소릴하게 만드다니, 후훗. 꽤 재밌어지네. 흥미로워.


- “야, 제나! 제 지금 제정신 아닌 거 같다니까! 상태가 진심 같다고! 난 얘 보면 딱 알 수 있단말이지!! 너도 같이 말려봐;;!! (무엇보다 주인공이 저런 막장 대사를 한 자체가;)”


- 말 좀 해봐, 변태용사!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용ㅅ—



“당장 안나오면, 요정들을 한명도 남김없이 전부 다 없애버릴테니까!!!”



버럭



그렇게 내지른 또한번의 소리는 이번엔 전보다 훨씬 큰 고함으로 바뀌어 숲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또다시 주변은 흐름을 일시 멈추고 방향을 전환하여 나를 향해 기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고조되어간다. 그리고 느껴진다. 동료들이 이번에도 믿지못하겠다는 경우를 넘어서서 아예 내게 부정적인 반응으로 나를 뜯어말리려 한다는 것을, 난 안다. 저런 반응이 나오는게 당연한다는걸. 모두가 나를 막으려고 하는게 엿보이는게 당연하단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멈추겠다는 생각이 들지않았다. 미쳤다고 정신이 나간게 분명하다는 동료들을 뿌리친다. 왜냐 난 미치지도 정신이 나가지도 않았기에, 지극히 정상이다. 그렇기에 더욱 해야만 한다. 난 지금 ‘그’가 반응하기를 기다리며,



수없이, 끊임없이 외쳐댔다.



“소중한게 뭔지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야!—”


“난 반드시 요정들을 베어서 닥치는대로”


“죽일거라고! 한명도 남김없이 전부 다!—”


“그렇담··· 우선은··· (째릿) 저깄는 요정부터···!” [단검의 손잡이를 뽑아들며]


“에?! 치이이이?!?!”


“당장 처리하겠어!!!!”


“잠깐만 용사!! 지금 뭐하려는—“



튕!



그리고 칼로 베어가르는 허공으로 작고 세찬 소리 하나가 내게로 들려왔다. 곧이어 난 그게 총성이란 걸 알아차렸으나 어째선지 나를 포함한 주변에 아무도 쓰러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허공에 쏜 소리인가 했으나 느닷없이 들려온 그 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온게 아니란걸 즉각 깨닫게 된다. 내가 들고있던 단도 『한배검』을 정확히 맞추면서 나온 피격소리. 그렇다. 눈을 돌려 단검을 들고있던 손을 확인했을때, 이미 난 느슨하게 뽑아 들던 검을 떨어뜨리고 만 것이다. 빈손을 보고나서야 그 누구도 들렸을 총소리가 검에 부딪히고 나서야 그제서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쏠 때 들리지는 않는, 맞을때 총탄이 날아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통은 말도 안되는 일이겠지만.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할 사람은 ‘그—



철컥



때마침,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걸 증명하듯이 이마에서는 무언가가 장전되는 소리가 뒤이어 들려오게 된다. 그리고 난 옆으로 돌렸던 눈동자를 다시 앞으로 향해봤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총을 들고있는 말의 형상을 띈 갑옷을 둘러매고 있는 자가.


바로 눈앞에 서 있었음을. 











제 22화. 거짓말쟁이의 그림자는, 무슨 색?











지금, 음유시인 예그리나가 내 앞에 서있었다. 


내 행동 하나로 비롯된 결과가 눈앞에 보여지는 순간이었다. 그는 나를 보며 전에 만났을때보다도 거친 숨소리와 살짝 일그러진 낯빛을 적나라하게 들어내 보이고는 내 눈동자를 뜷어지게 매섭게 쳐다본다. 자신이 흥분하고 있다는걸 대놓고 보여짐에도 불구하고, 손을 부들떠는 것 마저 여기까지 느껴지는 듯 했다. 진정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 분명 내 얘기를 들었던 거겠지. 요정들을 없애겠다는 말 한마디, 아니 요정을 죽이겠다는 첫마디부터, 아니 우리가 벌였던 도착했을 때 부터. 아님 어쩌면 우리가 이 숲에 발을 디뎠을 때부터 주시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된다. 또한 그럼에도 그가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단연컨데 요정과 관련된걸로 보인다. 그가 그토록 소중하게 여긴다는 ‘소중한’ 그것을 함부로 건드렸으니 말이다.



“···어째서 여기에 남아있는 것이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건가.”





그러고 곧이어 들려오는 그의 차가워진 목소리와 더욱 붙드는 총 한자루. 처음 만났을때보다도 훨씬 더 낮아진 생기없는 소리를 흘러보내 나를 싸늘하게 반겨준다. 요정을 죽인다는 그 한마디에, 그는 이토록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인가. 아님 진짜 요정이 위험에 처하려는 걸 목격해서? 그것도 진지하게 보이는 그런 ‘빈말’따위에도, 그는 예상외로 크게 먹힌 것 같았다. 계속해서 모습을 안보이길래 나는 마지막에 누군가가 언급한 ‘일부러 모습을 감춘다’ 라는 문장 하나에 갑자기 처한 전체적인 배경상황에서 그에게로 의심을 품게 됐으며, 뭣보다 내가 동료들을 속여가면서 이정도까지 소리친 이유도 전적으로 뒷받치지 않는 느낌이다. 자연스럽지 않은 흐름에 무언가 복받치는 느낌. 예전에 그런 느낌이 아니다. 평범한 영역이 아닌, 그건 아마도



(형언할 수 없는 ‘그’의 영역을 느꼈을지도. 아무튼 이런게 바로 ‘개연성’이라는··· 걸까?)



- 당신, 목숨이 그리 아깝지 않았던 모양이군. 겨우 건져낸 목숨으로 또다시 그따위 천박한 죄를 지으려 하다니. 제정신이 아니군, 그토록 회생 불가능 할 정도의 사내였던가. 【LV.39/음유시인】


- 그래도 상관없어. 당신이 나에 대해 뭐라 떠들든 난 내 할 일을 할거야. 만약에 그 방아쇠를 당긴다해도 말이지. 【LV.0/용사】


- 뭐라고··· 정말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 그쪽이야말로 무지할지도. 만약 진짜 내가 요정을 죽인다고 해도 그쪽에서 내게 뭐라 주장할 입장이 아니야. 뭣보다 당신은 그때 날 진심으로 죽이려 했으니까. 그런데 당신은 어째선지 날 살려줬잖아, 안그래?


- ····정녕 그 이야기에 요점이 뭐지.


- 그때에 당신은 그 총을 들고도 쏘지 않았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아직 뭣때문인지 파악은 안됐지만, 분명 날 쏘지못했던 이유가 있겠지. 근데 방금 나도 당신과 똑같이 되갚아줘야겠다고 생각했거든. 이래도 전혀 모르겠어?


- ····.


- 당신이 말로만 죽이겠다고 뒷통수 친 것처럼, 나도 당신을 요정을 죽이겠다는 거짓말로 한번 속여봤어. 물론 이래야 숨어있는 당신이 나올거라 생각해서도 있지만.”



“어쨌든 이것으로 둘 다 셈셈인거죠? 음유시인 예그리나 씨.”



난 당당하게 말한 그 몇마디에 그가 애써 들은 총을 다시 내려놓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저 뜻은 저번에 나를 죽이지 못해 총을 쏘려고 하려던게 아니라 그저 요정을 해치겠다는 협박 몇마디에 울컥 반응하여 우리 일행을 유유히 피해다녔던 몸을 이끌고 직접 제지하려했던 목적 하나뿐이었다는걸 알았다.  허나 그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라서 자칫 잘못하다가 내 목숨이 정말로 날아갔을 수도 있던 상황. 이런 결과로 이끈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목숨을 건 발언. 그게 거짓이어도 듣는 사람에 따라 받아들이는건 다르다. 그럼에도 그가 쏘지않은 다른 이유가 어쩌면 내가 그러지 않을거란 근거없는 생각을 잠시 해보—



악!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내 귀를 부여잡고 확 밑으로 잡아당기는 바람에 한순간에 느껴지는 따가운 통증에 그만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급작스러운 나머지 눈물이 찔끔 머금은 눈을 재빨리 돌려 잡힌 귀 쪽에 있는 누군가를 확인했는데.



“!”



- 이 바보 용사가! 깜짝 놀랬잖아!! 네가 갑자기 그래서 우리들이 얼마나 식겁했는지 알아!!! (꼬집)


- 아야! 리, 리내야;; 자, 잠만, 귀, 귀 좀 놓아주고;;!


- 네가 갑자기 요정을 죽이겠다는 되지 않는 말을 지껄이는 바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거든!! 아무리 다른 목적으로 거짓말을 친다고 그렇지, 우리들 마저 속일 필요는 없었잖아! 이 바보 똥꾸멍 변태 용사주제에!


- 그게, 나도 방금 머릿속으로 떠오른 거여서;; 또, 생각났다고 해도 미리 말해줄 수도 없는 상황이였어, 믿어줘;! 그러니까 제발 이 손 좀 놓아주고—


- 그딴 변명거리는 됐고, 네가 무슨 목적으로 어떤 이유를 되든 간에 네가 먼저 우리들을 속여서 걱정끼치게 만든게 큰 잘못이거든! 너 때문에 모두를 놀라게, 특히 치이를 놀라게 만들었으니까···.



“우선은 당장 사과하라고! 이 바보야! (꽈악)”


“아아악! 미, 미안해! 모두를 속여서 정말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그러니까 제발···· 으아아악!!! (통곡)”



리내는 정말로 내가 걱정되었는지 큰소리를 질러가면서 나를 크게 야단쳤다. 그럴만도 하다. 먼저 서로 계획하고 저지른 것이 아닌 그저 생각난 그대로 무심코 행동으로 옮긴 단독 행동이었으니까. 그로인해 애꿎은 치이만 당황하게 만들었다. 아니 확실하게 속이려고 진지하게 연기하다가 흐름이 어쩌다 이상하게 흘러 무기를 들고는, 치이에게 휘두르려 했으니 이건 거의 위협 수준, 그래. 아무것도 모르던 요정의 입장에서 보면 충분히 겁먹었을 상황이었을 거다. 뒷일까지 예상하고 한 건 아니니까. 치이에게 잘못한 것도 반성하고 있고, 리내가 왜이러는지도 잘안다. 잘 아는데···.



- 그래도 너무 아프다고!! 끄악!!


- 엄살부리지 말고! 제대로 치이하고, 또 모든 요정들에게도 사과하라고!!


- 으윽, 제발 누가 좀 도와줘어!


- 용사의 그런 박력 넘치는 행동도 귀여웠어. 흥미롭긴 했는데 한편으로 너무 귀여워서 그만, 후훗. 그래도 미리 눈치챈 것도 실례였나. 그나저나 리내나 유령씨는 진심으로 받아들였나 봐. 안그래? (웃음)


- 그런데 전 왜 잡으신거에요! 치이! 날개 좀 그만 놓아주세요, 치이!!


- 어머, 미안 미안. 네가 도망가려고 하길래. 많이 놀래서 내가 진정시켜 주려고 했지. 그래도 어느정도 이해갔어? 진짜로 그러려던게 아니란걸?


- 몰라요! 인간들은 원래부터 싫었다구요! 그저, 언니와의 약속으로 여기에 남아있는 거에요, 치이이. 그렇다고 겁먹어서 날아가려던 건 절대//!!


- 그래, 유령씨만 유일하게 겁쟁이라고 하자. 솔직히 그렇게 소란피울 줄은. (웃음)


- “뭐, 나?! (뜨끔) 크흠! 내가 그럴리가 있나! 난 누구보다 용사를 잘 안다고! 설마 진짜 한다고 믿었겠어, 하하! 전부 분위기를 맞춰주려고 발맞춰 일부로 연기···.”


- 분명히 “야, 제나! 제 지금 제정신 아닌 거 같다니까! 상태가 진심 같다고! 난 얘 보면 딱 알 수 있단말이지!!” 라고 다급히 말했으면서? 으흠?


- “어····; 어쨌든! 이민 쟤가 저렇게 당하는 것도 일리가 있어. 남을 속였으면 저렇게라도 속죄 받아야지, 응응.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인다 한들, 그래도 다신 동료들을 속이면 안되지. 자업자득이야.”


- 자업자득이라, 후훗. 그럴지도.


- (그게 수호령이 할 소리냐?!)



그렇게 나는 모두에게 속인 죄로 리내에게 따끔한 벌을 받는다. 동료들도 많이 화가났는···· 아니 그보다 오히려 즐기는 것 같았지만. 그런 것보다는 무엇보다 제나 곁에 있던 요정과 눈을 마추지려고 시도하자 마자 요정 치이는 그걸 먼저 민감하게 인식하고는 서둘러 제나 뒤로 바짝 숨는걸 목격했다. 역시나 뒤늦게 알아차렸다고 해도 두려운건 두려운거지. 요정들은 거짓말을 못한다고는 듣긴했으나, 내가 봤을땐 거짓말을 못한다긴 보다 거짓말이란걸 못 알아차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예상보다 훨씬 순진무구한 생명체일지도. 뭐가 거짓인지 진실인지 분간을 못 하는 듯 보였으니까. 치이라는 요정을 보니 많은 생각이 드는구나. 저 요정의 언니도 그렇고 요정들도 그렇고 그 사이에 낀 저 사람도···.



“이거,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군.”



다그닥



그러고 우리끼리 난리를 치던 와중, 그걸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던 예그리나는 그 말과 동시에 자신이 둘러매고 있던 특이한 하반신의 말 형상을 하고있는 갑옷의 발굽을 사뿐히 굴렀다. 그러고는 우리를 쓱 흝어보자 살짝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기를 띄우고는 세우고 있던 몸을 천천히 방향을 바꾸더니 우리가 앞으로 보고있던 나무로 가득찬 푸르른 숲 풍경에서 약간 옆으로 기울어진 곳을 향해 몸을 앞세운다. 그러고보니 저 쪽에서 튀어나온 듯 보였는데, 그보다 지금 뭘 하려고 하는거지?



- 당신들은, 저를 그토록 찾으시려던 이유가 무엇이죠? 그렇게 절 한순간에 분노에 사로잡히게 만드시면서.


- 아, 그건 말이죠. (쫓아내려고 왔다고 하면 분명 도망칠게 뻔하니까) 당신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 왔어요. 왜 이 숲속에 어떤 이유로 찾아왔는지,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사적이지만 왜 저를 다짜고짜 해치려고 하셨는지 전부다.


- 그렇군. 그리도 궁금하셨다면 저를 따라오시죠. 천천히 걸어가면서 차분히 얘기를 나누도록 하시죠.


- 예?? (깜짝)


- 뭘 그리 놀라시오? 그것때문에 여기까지 오신거라면 기꺼이 응해줘야겠지요. 혹시 거절의 의사?


- 아, 아니요. 따라가도록 하죠. (쉽게 응해주네?)



그런뒤, 예그리나는 우리에게 등을 보이며 손짓으로 따라오라는 표시를 우리에게 보낸다. 얼떨결에 우리는 의외에 답을 내준 그를 따라 풀을 사그락 사그락 밟으며 걷기 시작한다. 그의 등을 따르며 천천히 따라 나아가며 그와 걸음을 맞추지만 어째선지 난 말을 걸지 못했다. 그때는 아마도 그의 예상치도 못했던 반응에 순간 놀랐던 나머지 벙쩌서 말을 잃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고 어디로 걷는지도 모르는채로 말도 걸지않으면 얻는 건 없으리라, 곱 씹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섣불리 말했다가 또 저 사람의 무언가를 건드리는 발언으로 이상한 쪽으로 흘러갈까봐 뭐라고 제대로 말을 못 꺼낸다는 생각마저 든다. 만약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이 신호기로 수피아 특전병들에게 보내면 되겠지만. 어차피 마음속으로 이미 정했으니까. 저 사람은 분명히···.



- “야, 이민. 쟤한테 말 안 걸어도 돼? 네가 기껏 연기해가며 힘들게 불렀잖아.”


- 어? 아, 그래야지. 미안, 다른 생각을 하느라. 이미 다 정해났어. (그래, 저 사람이 먼저 불렀으니까)


- “정했다니, 뭘?”


- 그보다도 예그리나 씨. 지금 우리 어디로 가고 있는건지···.


- 그거라면 거의 다 도착했소. 조금만 걸으시면 되오.


- 아아, 예.


- 답답하네, 변태용사. 하고싶은 말이 확실히 하지그래. 저 사람이 물어봐도 된다고 했잖아. 하고싶은 말이 많아보이던데.


- 용사가 막상 허락해주니까 몹시 당황해서 그런가봐. 그런 용사도 충분히 귀여워~♥


- 딱히 그런건 아니고, 그게; (나도 모르겠다, 나 자신을)



“자, 여기요. 우리가 걸어가며 말을 나눌 곳이.”



예그리나는 걷던 그 말과 함께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도착했다고 말한 그곳을 확인하게 됐는데, 무슨 동굴 같은데로 온 것 같았다. 잠만, 동굴? 그런데 왜 이런데로 온 거지? 하여튼 여기 안으로 걸어들어간다는 이야기인가. 동굴 안이 상당히 깊어보이긴 한데··· 왜 굳이 동굴 안에서?



- 자, 절 따라서 들어가도록 하지요. 상당히 안이 복잡해서 잘 따라오시는게 좋을거요.


- 근데 왜 여기로 온 거죠. 그보다도 여긴 대체 어디죠?


- 이 장소 끝에는 제가 잠시동안만 머무는 거처도 그쪽에 있지요. 혹시라도 들어가기 껴려지신다면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셔도 상관없소.


- 아니요! 들어가겠습니다. 자세한 사정을 들어야 하니까요. (자신의 거처까지 밝힌다니. 이 사람,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려고 하는건—)


- 치이이이?!?! 잠깐만요!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갑자기 제나 뒤로 바짝 붙어 따라 날아다니던 요정 치이는 동굴을 한참을 뚫어지게 보자마자 기겁하듯이 앞으로 튀어나와 날아오르더니 크게 소리를 내질렀다. 그렇게 안절부절하는 요정에게로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우리는 그 행동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아까 그 일 때문에 서먹해진 요정에게 질문을 못하던 나를 대신하여, 제나와 가까이에 있던 리내가 그런 요정에게 먼저 물어봤다.



- 왜그래, 치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무슨 문제라도 있어?


- 그게 여기··· 들어가면 안될 것 같아요.


- ㅇ? 그게 무슨 소리야. 들어가면 안될 것 같다니?


- 저기 동굴 입구 웟쪽에 써져있는 문양···· 보이시나요?



그리고 요정이 말한대로 우리는 동굴 입구 윗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세히 그 윗쪽을 확인해보니 정말로 무슨 문양 같은 것이 새겨져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어서 문양의 색조가 바래져 거의 벗겨진 상태 그대로 유지되어 있었다. 얕게 비춰지는 저 문양에서 치이는 무엇을 발견한 것인가.



- 저 문양은 분명 본 적이 있어요. 어떻게 안 건진 뚜렷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제가 어렸을적, 언니가 처음으로 특전병에 처음 입대하고 나서 언니가 절 데리고 어딘가로 데려간적이 있었는데, 아마 어릴 적 기억이라 잘 안나지만 저 문양을 보니 그때 기억에서 저게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서요.


- 저 문양이 뭐길래 그러는 거야, 치이?


- 언니가 저에게 알려준대로 라면, 분명히



“나간족이 출몰한다는 표시···· 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렇게 말하고나자 나는 한가지 단문이 불연듯이 떠올랐다. 나간족과 관련된 거라면, 당연히 요정들에게 좋지 않은 거라는 걸 잘안다. 그렇다는건 이리로 데려온 요주의 인물, 예그리나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로 데려온 것 일까 라는 것인데. 이러한 자문이 먼저 떠올랐고, 뒤이어 자답으로 이를통해 예그리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자신의 처한 처지를 제재로 모르고 있단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그에게로 찾아 온 진짜목적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치이가 한 말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대신 말을 이어가려는 것을 보고있자면 그런 방향으로 확고하게 굳어져만 간다.



- 그렇군요. 나간족이라···. 나간족이라면 분명 요정님들께서 꽤나 속 썩인 몬스터였단 건 익히 들어서 잘 압니다. 그것 때문이라면 걱정마시지요. 제가 들어갔을 땐 분명히 없었습니다. 또한 아직 낮이라 녀석들은 없을겁니다. 만에하나 나타난다고 할지라도 요정님은 반드시 제가 지켜내겠습니다. 맹세하지요. (꾸벅)


- 치이?! 됐, 됐거든 치이! 나간족보다 네 녀석이 더 의심간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절대 믿을 수 없어! 왜냐 당신이라면 분명히···! [다시 제나 뒤로 몸을 잽싸게 숨기면서] 난 그래도 따라갈 거니까 당신, 절대로 나한테 다, 다가오지말라구!!


- 명심하겠습니다. 요정님의 뜻이 그러시다면.


- “대체 저 놈, 뭐하던 놈이야. 보면 볼수록 감이 안잡히네. 하긴 현 행동도 감이 안잡히니까, 전에도 마찬가지고.”


- ····.


- 문제가 없으시다면, 이대로 계속해서 가도록 하겠소. 잘 따라오시길.



다그닥



치이는 그에게 하고싶은 말을 생략하고는 제나에게로 다시 날아가 등뒤로 애써 피하는 척 하면서 그를 슬쩍 주시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막상 자신의 언니의 행방을 조금이라도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겠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왠지모를 위기감 때문인지 말을 잇지않고 그대로 피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도 아직 그런 감정이 남아있었는지 내게로도 멀리서 쳐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됐든 그런 반응에조차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무심하게 행동하는 그를 우리는 상당히 커다란 동굴의 파여진 문을 지나 조심하며 들어갔다. 주위에 무언가 있는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이다. 그래도 주위는 예상보다 컴컴하지 않았으며 불이라도 멀리서 쬐어주듯 주변은 무엇이 있는지 세세하게 알  수 있을정도로 밝았다. 별 문제없이 그를 따라가며 대화를 시도하기로 한다. 나의 첫 선문답을 하려는 그때, 예그리나는 내 말을 가로채고 우선 자신의 이야기로 이어나가기 시작한다. 그 이야기에 휘말린 우리들은,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다.



•••



“예, 저는 두 왕궁을 돌아다니며 전언을 전하는 업을 도맡았지요.”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과거상을 우리에게 털어놓는다. 처음에는 이 동굴에 대해 잠시동안 언급을 하더니, 곧이어 이 동굴을 정착하게 됐다는 말 하나, 왜 여기에 정착했는지는 전에 나와 처음 만났을때 대화내용 그대로를 전하면서 거기에 살을 더해 요정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한참을 이어가더니, 리내가 그에게 음유시인 말고, 전에 뭘하던 사람이길래 여기까지 오게됐냐는 물음에 잠깐 고민을 하더니 천천히 자신이 하였던 본업을 밝히기에 이른다. 난 그때동안 입을 닫은 채로 가만히 대화내용을 들어봤다. 이번에는 처음 만났을때 나와의 대화보다 제대로 이야기하는 예그리나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자신의 과거사를, 주의깊게 말이다.



- 그것이 그대가, 그것이 원하는 답이 되었기를 기도하며.


- 전언? 그거, 전령을 얘기하는 거죠. 높은 일 아닌가요?


- 맞소. 보시다시피 이 갑옷도 왕에게서 하사받은 마갑이지요. 빨리 전하기위해선 이것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서. 그것이 이유이자, 그것이 옛 사명이었던 것.


- 흐흠, 그 말이 사실이라면, 딱히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 귀여운 용사를 죽이려고 했던 걸까나? 후훗.


- !


- 아, 그건 약간의 제 쪽에서 오해가 있었소. 그가 한 대화에서 잘못 받아들인 탓인지라. 마지막에 깨달아서 다행히도 무례한 짓거리는 거둘수 있었소. 그땐 정말 죄송했다 간곡히 전하겠소, 용사. [잠시 멈춰 내게로 꾸벅 고개를 숙이며]


- (····오해)


- 그거 다행이네. 아무리 그래도 죽인다는 말까진 좀 그렇지 않나. 이거 두번 잘못 알아들었다간 우리들도 위험해지겠네. (웃음)


- 솔직히 그 얘기를 용사에게 들었을 땐, 정말로 미친 사람인가 싶었어. 그런데 약간은 이해가 안 가지만.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길래.


- 글쎄. 마음은 상당히 워낙 복잡한 수수께끼 투성이인지라, 뭐라 전하기 힘들겠소. 그래도 용사와 동료들과의 정다운 모습들을 보는 순간, 어디선지 제게 잘못된 관념을 바로잡게 해준 것도 같소. 한마디로 제 생각이 짧았던 것을 말이오. 그것이 실수, 그것이 속죄.


- 이제 알았으면 다행이예요. 그래도 조심해주시면 고맙겠네요.


- 알겠소. 그 또한 명심하겠소.


- “이대로 넘어가는게 좋을까. 원래 우리가 할 일은 그를 발견하는 즉시 신호를 보내서 요정들을 불러내서 쫓아내는게 원 목표인데, 으음. 용사. 네 생각은 어때?”


- ·····


- “ㅇ? 용사. 아까부터 왜 말이 없어. 어디 불편하냐. 혹시 아까 오해로 널 죽음으로 내몰려고 했던 것 때문에 그래? 솔직히 그 말도 좀 어처구니 없긴 한데, 다행히 치명상을 입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면 다행··· 은 아니었던 건가. 그래도 용서하긴 했으니까 말이야.”


- ····.


- “야, 용사. 어이, 이민? 왜그리 말이없어. 진짜 어디가 아프기라도 한 건 아니—“



탁탁



그때였다. 난 하나, 아니 몇가지 그에게 말할 결심이 섰다. 그래서 난 자기자신에게 그런 결심을 하고나서 우리보다 앞서 걷고있던 그를 지나 그의 앞을 가로막고 선 다음 그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러자 나에 그런 행동에 의문을 가지는 듯 싶더니, 곧바로 발걸음을 멈추고 나와 눈을 맞췄다. 난 아무것도 들지않은 빈 손으로 주먹을 살짝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선뜻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그랬다.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속으로 고민하고 고민해서 내린 결론이, 과정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결과만이래도 맞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머릿속은 어차피 결과를 바탕으로 한 그의 발언을 기대했다. 그가 어떤 이상한 말을 해도 예상한 답변에만 가까워도 상관없다. 



- 왜 그러시오, 용사. 혹시 제가 당신께 실례되는 말이 있더라면, 그에 대한 죗값을 묻도록 하겠소. 더이상의 죄는 짓지 않을거요, 그리 다짐했으니—


-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가식이고, 거짓인지는 묻지 않도록 할게요. 저희는 어차피 끝에 한가지 대답만 듣고 갈 거니까.


- ····그게 무슨?


- 이거 보이시죠. 혹시 이게 뭔지 아시나요?


- 예? 아니, 그게 무엇인지 제가 어떻게···.


- “잠만! 이민, 그건···!”



난 바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처럼 생긴 소품 하나를 꺼내가지고 그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동료들은 나의 행동에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그럴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적 몰래 행해야 할 ‘신호기’를 보여줬으니 말이다. 그러자 그것을 본 예그리나는 의문을 갖는 모습을 보고 다음 회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설명에 나섰다.



- 그럼 그건 거짓말이 아니라고 가정하고, 이것에 대해 털어놓을게요. 이건 요정들을 부르는 일종의 신호기예요. 이 버튼을 누르면 신호가 가죠.


- 예···. 요정을 부르는 신호기···. 갑자기 그게 어쨌다는 거요?


- 저희는 단순히 당신과 얘기를 통해 오해를 풀고 화해를 하자고 여기에 온게 아니에요. 당신을 쫓아내라는 요정 마을 촌장님의 부탁으로 여기까지 오게됐죠. 당신을 발견하는 즉시, 이 신호기로 요정들을 불러 요정들이 대신 당신을 쫓아내겠다는 요청하에 말이죠.


- ····.


- 용사! 갑자기 그 얘기를 왜—


- 그런데 당신, 왜 요정들이 당신을 쫓아내라고 부탁한지 아시나요. 이것저것 구차한 설명은 본론만 말할게요. 이번 질문에는 거짓없이 확실히 답해주세요. 제가 당신께 밝힌 거처럼. 그럼 이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대로 떠날테니까.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이 요정들을 죽인 다음, 시신들을 묻어둔게 맞나요, 예그리나 씨.”
















그러자 예그리나는 아까 대화하면서 보여주던 여유롭던 모습은 어디가고 동공이 약간 커진 상태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한다. 그리고 그 놀란 반응을 보이던 모습을 끝으로, 말을 하지않았다. 조용해진 분위기와 사그라든 그의 행동, 그리고 그를 소리없이 지켜보는 나. 그 정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단 한 사람, 아니 요정이 있었기에 만약 반응이 없었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했을거다. 곧이어 당연하듯이 떨리는 괴성 소리가 동굴의 울림에서와 동시에 크게 울려퍼진다.



- 저, 저, 저, 저 인간족이 요, 요, 요, 요정을 죽였다····고···· 치이이이이이이!?!??!!


- 어서 대답하세요. 예그리나 씨. 이게 진짠지, 아닌지. 그것만 알면 다 끝나니까.


- ·····



그는 어째선지 반응이 없었다. 아마도 상당히 놀란 기색이 역력해보였지만, 그보다도 오히려 내 쪽이 훨씬 더 놀람을 금치 않을수가 없었다. 뭔가가 빗나갔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분명히 부정의 대사가 나왔어야 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결론을 주장하려고 하는 이유는 분명히 그가 그랬기 때문이다. “소중하다.” “요정을 위해 노래하겠다” “사랑에 빠졌기때문에 여기에 온 것이다” “소중한 것을 뺏는것에 아픔” 이미 그 시점에서 답은 다 나왔다. 아니, 누구라도 이미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는 요정에게 호의를 가지고있었고, 그때문에 여기를 온 것이다. 그 뿐일거다. 전에 치이에게 했던 대사를 통해 충분히 납득이 갔다. 물론 그후에 파악이 되지않았던 몇몇 행동때문에 약간씩 의구심이 들었지만, 그가 말한 것들을 들어보면서 나름대로의 이해되는 부분도 존재했을 참이다. 그럼 그는 분명히 비슷한 말을 할 줄 알았다. 전에 소중한걸 손댄다는 것 처럼 총을 들이대며, 화내거나 말도 안되는 말에 비웃는 식으로 응하거나···. 대충 그럴거라 예상했다. 즉각 반응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안끝났다. 대체 얼마나 중요한 대사길래 이리도 끄는건가. 죽인다거나 하는 말은 분명히 않좋게 받아들일거 아니냐고. 대답을 하라고!



(여기서 뭘 더 해석하라는 거지. ‘그’는 도대체 무엇을 더 원하는 거—)

















“....그럴지도 모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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