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과 밀로 유명한 시골 마을, [뚜무].


뚜무의 백작의 집엔 독특한 메이드들이 살고 있었다.



"메이드라면 커야겠지 않겠나."


"그래그래. '포용력' 이 있어야지."


"낮에만 일 시킬 것도 아니고."


"예끼! 이 사람 음란한 것 좀 보게."



유독 흉부를 강조하며 나오는 이 평.


백작의 메이드를 본 이라면 누구나가 내리는 평이었다.


확실히 백작의 메이드는 다소 왜소하긴 하였다. 여러 의미로.


수도에는 백작의 성벽에 대한 뒷소문이 돌기까지 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일은 잘하지 않소, 여하간."



그의 주장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신장 15cm의 요정들이라도 일은 참 기똥차게 하는 게 그의 메이드들이었다.


사고야 자주 치지만.


"요즘 시대에 요정을 대체 어디서 구해온 것이오?" 하는 질문엔, 그는 항상 허허 웃을 뿐이었다.


아침이 되면 이 작은 메이드들은 나비 같은 날개를 퍼덕여 백작에게 날아오곤 한다.


주인의 머리맡에 모인 메이드들은 1cm짜리 아담한 손바닥으로 열심히 가위바위보를 한다.



"좋아! 오늘 당번은 플로라네!"



오늘의 당번은 꽃의 요정 플로라였다.

흰 꽃을 붙여놓은 녹색 머리, 촉촉한 갈색 눈과 솔직하여 귀여운 성격이 챠밍 포인트인 소녀이다.


플로라가 끙끙대며 주인의 몸을 타고 올라갔다.



"왜 또 나람. 어제랑 그제두 나였잖아."


"평소 행실에 대한 보답이겠지 히히."


"조용히 해 실프."



소녀 요정이 제 몸만치 작은 다른 요정에게 입을 삐쭉였다.


침대의 마수에 빠져 잠에 방황하는 백작을 깨운다.


소녀의 임무였다.


메이드로서의 임무.



"주인님! 주인님!"



소녀 요정 플로라가 주인의 가슴팍에 올라 외쳤다.


요정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였을까, 혹은 주인의 피로가 심하게 쌓여있어서 였을까.


주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안 되는데? 포기할래.

주인님도 낮잠 중엔 깨우지 말라고 하셨잖아."


"약한 소리 마. 손님이 오셨다고 집사님이 그러셨잖아."



소녀 요정은 주인의 가슴팍에서 폴짝 뛰어보기도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기도 했만 역부족이었다.



"흐이잉 운디네...."



꽃의 요정이 울먹이며 동료를 바라봤다.


자그마한 푸른 머리 요정이 한숨을 쉬었다.


파란 메이드는 어디선가 냉수를 꺼내더니 주인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일어나 주인!"



히이익-.


백작은 망측한 괴성을 지르며 깼다.


시종들의 느닷없는 물벼락을 꾸짖고 싶었지만 백작에게 그럴 시간 없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내가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백작님? 괜찮으신지요?"



찬물 세례에 백작은 아직도 혼이 나가있는 상태였다.


누가 질문할 세라, 낯선 사내가 선수를 쳤다.



"비명이 들려서 올라왔습니다."


"... 누구시오?"



백작이 사내에게 묻자, 메이드복을 입은 작은 요정들이 앞다퉈 사내의 소개를 대신해줬다.



"손님이래요."


"백작님한테 오신!"


"멀리 남부지방에서 주인 보려고 왔다던데?"



작은 시녀들의 재잘거림에 사내가 피식 웃었다.


사내는 모자를 벗고 흙투성이 지팡이를 앞으로 휘감았다.


사내 나름의 인사인 모양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백작님. 숙녀 분 말마따나 남부 지방에서 온 필부입니다."


"아하."



백작에게 온 손님이었다.


손님이라면 맞는데 필요한 예의가 있는 법이었다.


변경 모 백작이 무례하게 손님을 침실에서 맞았단 소문이 나게 할 순 없는 법이니.


백작은 접객실로 발을 옮겼다.



"남부라. 멀리서 오셨군요."


"실은 남부 중에서도 듀케미어 지방입니다.

배를 타면 오래 걸리진 않습니다."


"듀케미어라면-."


"아이 참 주인님! 해양 도시 있잖아요!"



작은 메이드 하나가 답답해하며 말했다.



"어쩐지 손님에게서 바다 냄새가 난다 싶더니."


"숙녀분 말씀대로입니다. 상인과 모험가의 도시죠."


"그렇군요. 처리할 의뢰가 뭡니까?"


"예?"



백작의 맥락 없는 답변에 사내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듀케미어에서 여기까진 거리가 멀잖습니까.

손님의 행장을 보니 장사를 하러오신 분 같진 않고.

관광이라기엔 분위기가 차분하고.

그렇다면 모험가가 의뢰를 해결하고자 온 걸로 밖엔 생각되지 않는 걸요."



사내, 모험가는 감탄했다.



"맞... 습니다. 대단하시군요."



푸른 머리 메이드는 딴죽을 걸었다.



"주인, 단순히 모자랑 지팡이 보고 모험가라고 생각한 거 아니야?"


"들켰나?"



모험가 사내가 하하 웃으며 품에서 낡은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엉성한 그림과 글자가 이리저리 써져있었다.


현상수배지처럼 생긴 이 종이는 그러나, 사람 대신 물건의 삽화가 실려있었다.



"이겁니다."


"주인님, 듀케미어 사람들은 다 그림 실력이 저래요?

꼭 갓난아기가 그린 그림 같아요."


"그런 말 마라 플로라. 이건 뭡니까 손님, 술?"


"맞습니다. 뱀술이죠.

이걸 찾는 게 이번에 제가 받은 의뢰입니다."


"의뢰까지 내걸어 구한다는 물건이 한낱 술입니까?

김 빠지시겠군요."


"평범한 술이 아닙니다. 천상의 맛이랍니다."


"저는 영 이해가 안 가는군요. 먹을 것에 그리 목을 매다니."



한사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백작.


백작의 태도에 모험가는 기쁘게 말했다.



"그럼 받아가도 되겠습니까?"


"저한테서요? 제겐 뱀술 같은 건 없는데."


"소문으론 백작님의 저택 어딘가에 비밀스레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실은 오늘 온 것도 그 술을 양도해주십사 하고 온 것이었지요."


"선선대는 상당한 애주가란 소문이 있었습니다만...."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백작에게 뱀술이란 녀석은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그런 술은 여지껏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저택에 사는 내내 말이죠."


"백작님, 저는 모험가입니다.

숨겨진 곳을 모험하고 찾는 게 제 일입니다.

정말로 저택 어딘가에 감춰져있다면 제가 찾을 수 있을 겁니다."


"남의 저택을 함부로 뒤지겠단 말입니까?"



백작의 일축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모험가는 멋쩍게 입을 닫었다.


백작은 잠시 고민했다.



"좋습니다. 제 저택을 수색하시죠.

단 최대 사흘까지만요. 사흘이 지나면 순순히 물러가십시오."


"감사합니다 백작님!"


"또, 매일 저녁마다 제게 돈을 주셔야 할 겁니다.

집을 탐색하시는 대가로요."



백작은 그 자리의 냅킨에 뭐라 숫자를 끼적였다.


백작이 제시한 금액은 모험가의 어안을 벙벙케 했다.


하나 모험가가 거래를 거부하게 될 만큼 큰 금액은 아니었다.


제안을 받아들이는 모험가를 바라보고, 백작이 쑥쓰러운 얼굴로 말했다.



"참, 잊고 있었군요.

손님이 너무나 인상적이시라 결례를 범했습니다."



백작이 손가락을 퉁기자 요정 메이드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사라졌다.


얼마 안 있어 돌아온 메이드들은 제각기 찻잔이며 티스푼 따윌 들고 있었다.


요정들의 몸크기는 식기와 비슷한 정도였기에, 식기를 드는 모습은 평범한 메이드들관 달랐다.


찻잔을 담당한 메이드는 머리에 잔을 이고 끙끙거리며 날았다.


티스푼을 맡은 메이드는 스푼의 길이 탓에 2인 1조가 되어 스푼을 옮기고 있었다.


가장 인상적인 모습의 비행은 설탕 용기를 나르는 두 메이드였다.


설탕 용기를 가운데 두고 둘이 서로 부둥켜안은 모양이었는데, 입과 치맛자락에는 황갈색 가루가 묻어있었다.


모험가는 비행 중인 두 메이드의 행복한 표정에서 설탕 가루를 조금씩 떼어먹었겠구나하고 짐작하였다.



"저택의 메이드들이 아주 귀엽군요."


"그렇죠?"



영차영차-.


메이드복에 설탕가루가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누르스름한 각설탕을 옮기는 메이드들.


차에 설탕을 충분히 투입한 후엔 낑낑거리며 티스푼을 젓는 메이드들.


소란스런 메이드들을 보며 두 사내가 허허 웃었다.



"밥상을 차릴 땐 더 귀엽습니다.

사흘간 체류하신댔으니 한번 보시죠."


"아주 기대되는군요."

"주인님, 오늘도 '맛있어져라' 할까요?"

"아니, 하지 마, 당분간."


저택의 주인은 웃던 도중의 메이드의 질문에 공연히 정색하였다.

모험가는 집주인의 체면을 고려해, 캐묻지 않고 마저 웃기만 했다.


*



"얘기 들었지? 다들."



으슥한 밤, 플로라가 친분이 있는 몇몇 메이드들을 불러모았다.


하나 같이 작고 귀여운 요정들이었다.



"이 집 어딘가에 맛난 게 있대!"


"맛난 게 아니고 술."



파란 머리의 메이드가 플로라의 말을 보충했다.



"술이라고?"


"술?"


"와인? 아니면 포도주?"


"둘이 똑같은 거야 바보야."


"뱀술이래. 운디네가 그랬어."



작은 메이드들이 조잘거렸다.



"다 같이 찾아보자! 모험가보다 먼저 찾는 거야!"


"찾으면 어쩌려고?"


"우리가 먹어야지. 엄청 맛있대!"


"주인님한테 혼나는 거 아냐?"


"술은 쓰잖아. 맛 없을 거 같아."


"나도 술 싫어."



이 정신 산만한 꼬마들의 무리는 벌써 이탈자를 낳기 시작했다.


본래 어린 아이란 족속들은 집중력이 낮기 마련이다.


이들은 요정이지, 어린 아이는 아니었지만서도.



"그런 거면 난 갈래. 졸려워."


"나도. 오늘 손님 접대하느라 지쳤단 말이야."


"주인님한테 혼나는 거 무서워."


"재미 없을 거 같아."



앙증맞은 메이드들은 날개를 펄럭이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플로라의 주변에 남은 메이드 동료들은 얼마 없어졌다.



"괜찮아! 입만 준 거지 뭐!"



요정들의 콩알만한 입으로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주동자 메이드는 낙관적이었다.


파란 머리 요정의 말을 듣기 전까진.



"플로라, 플로라."


"왜? 주인님이 깨기라도 하셨어?"


"샐리도 사라졌어 플로라."


"샐리가?!"



샐리.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앙칼진 메이드이다.


놀라서 큰 소리를 냈던 소녀가 황급히 제 입을 막는다.


메이드복의 헐렁한 기장이 소녀의 입가에서 펄럭였다.



"어쩔 거야 플로라?"


"샐리 없이 못 찾을 텐데."


"샐리가 주인한테 일러바치러 갔나보다 히히."


"샐리는 그런 애 아니야, 실프."



다행히 요정들은, 금방 동료를 찾을 수 있었다.


붉은 머리 메이드가 등불 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은은하게 타는 등불 위에서 소녀의 길고 두꺼운 치마가 흔들렸다.


메이드복과 잘 어울리는 흰색의 스타킹도.



"샐리, 함께 모험하지 않을래?"


"싫어요."



붉은 머리 메이드는 첫 말머리가 단호하였다.



"주인님이 깰까 봐 그래? 걱정 마. 주인님은 한번 잠들면 업어가도 몰라."


"싫어요."


"샐리도 술 싫어하는 거야?"


"술은 좋지만 전 안 갈 거에요."


"왜?"


"메이드가 몰래몰래 주인님 먹을거리를 빼먹으면 주인님 실망할 지도 모르잖아요."



마음씨 깊고 선량한 말이었다.


실로 메이드의 귀감이었다.


하나 플로라의 욕망은 그 정도로 굴복할 수준이 아니었다.



"정말이야?"


"그래도 의리가 있으니까 눈은 감아줄게요. 열심히 찾아보세요."


"힝잉. 샐리가 없으면 안 되는데."



슬금슬금 다른 요정들도 플로라의 눈치를 봤다.


플로라의 흉계를 깨달은 것이었다.


요정들이 플로라와 동조하기 시작했다.



"맞아맞아. 샐리가 없으면 우린 아무것도 못하잖아."


"우리한텐 샐리가 필요하다구!"


"저... 정말요?"



붉은 머리 메이드, 샐리는 칭찬에 약했다.


저택의 메이드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설거지할 때나 빨래 말릴 때나 항상 샐리가 없으면 안 되잖아."


"샐리가 우리들의 희망인데 히잉."


"우릴 도와줘 샐리."


"그으... 렇게까지 말하시니 어쩔 수 없네요! 가죠!"



그리 말하는 샐리의 입꼬리는 묘하게 상승조였다.



"그치만 샐리. 밤의 저택은 너무너무 어두워서 길이 보이지 않는걸?"



누군가 작위적으로 미끼를 던졌다.


기분이 한창 고조된 샐리는 망설임 없이 찌를 물었다.



"그런 건 이렇게 하면 되죠!"



이얏-!


샐리가 크게 만세 자세를 취하자 저택의 등불이 전부 켜졌다.


대낮처럼 환하진 않아도 사물을 분간하기엔 충분한 정도였다.



"와 샐리가 최고야!"


"엄청 반짝반짝하다! 햇님만큼 밝아!"


"맞아맞아!"


"헤헤, 가요! 주인님 깨기 전에."



동료에게 추앙 받는 기분.


붉은 머리 메이드는 메이드복의 긴 치맛자락을 이리저리 흔들며 통통 뛰었다.



"걱정 마세요! 주인님이나 집사님 깨기 전에 제가 찾아내드릴 테니까!"



칭찬일색에 우쭐해진 샐리가 앞장을 섰다.


다른 메이드들은 샐리의 뒤에서 수군거렸다.



"샐리는 뭐랄까...."


"쉽다고?"


"쉽지."


"쉽네."


"꼭 받고 싶다고 구워삶으면 아침마다 주인한테 모닝키스도 해줄 녀석이지. 샐리는."



키득키득.


메이드들이 숨죽여 웃었다.


종국에 주인한테 들켜, 한바탕 꾸지람을 들은 건 한참 나중의 이야기이다.



"실프! 너 그렇게 마음대로 할래!"


"그래도 먹고 싶었는 걸요."


"샐리! 그렇게 성실하던 네가 왜 남의 술을 훔쳐먹은 거니!"


"죄송합니다...."


"플로라, 네가 주모했단 거 다 알아. 혼나고 싶으냐?!"


"흐이잉...."



저마다 시무룩해진 메이드들.



"하아. 죄송합니다 모험가님."


"아뇨, 백작님이 죄송할 게 뭐 있습니까."


"시종의 죄는 주인의 죄지요.

이 사고뭉치들 교육을 진작 했어야 되는데.

느이들 오늘 저녁 없는 줄 알아."



거의 울상이 된 메이드들.


이들과 대조적으로 오직 한 메이드만이 태도가 무척 당당했다.


푸른 머리의 메이드였다.


메이드복의 위부터 아래까지 흠뻑 알코올에 젖은 이 요정은 감히 주인을 앞에 두고 다리까지 꼬아가며 주장을 이어나갔다.



"끄윽. 주이인. 다르은 술... 업서어?"


"... 운디네 술병에서 나와."



술병의 안으로 쏙 들어가 온 몸으로 음주를 향유한 메이드.


술에 물 탄 듯, 물에 술 탄 듯한 정신 머리.


밤 동안 알코올을 사정 없이 들이킨 물의 요정이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주셨던 돈은 돌려드리겠습니다."



백작의 미안해 어찌할 줄 모르는 태도완 달리, 모험가는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백작은 한탄하며 물었다.



"의뢰를 실패하셨으면서 기뻐보이시는군요."


"좋은 구경 했잖습니까."



사내가 작은 메이드들을 가리켰다.


백작은 무슨 말이고 하며 멈췄다.


그러나 이내, 허탈히 웃으며 호응하였다.


어딘가 감정이 실린 말투로.



"하긴 그렇군요. 진귀한 광경이긴 할 테죠."


"사랑스런 광경이고요."


"'외부인에게는' 말이죠."


*


다른 동네 대회에 냈던 거 백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