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남? 그건 또 무슨 괴담인데?"

"간단해. 말 그대로 '절망한 남자'에 대한 괴담이지."


이윽고 그녀는 몸을 돌려 등받이에 배를 대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괴담에 대해 얘기할때면 취하는 자세이다.


이에 나도 등을 곧게 세우고는 이야기를 경청할 준비를 했다. 그녀의 괴담을 듣다보니 생긴 버릇이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절망남 자체는 괴담이 아니야."

"그러면?"

"괴담을 불러오는 존재라서, 덩달아 괴담 취급을 받는거지."

"전에 얘기해준 "문"이나 "상자" 괴담처럼?"

"맞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


전에 얘기해 준 다른 괴담들을 떠올려 본다. 딱히 무섭지는 않았고, 신기하다는 느낌이 드는 괴담들이었지.


"절망남은 절망한 남자야. 삶에 절망했고, 현실에 절망했으며, 자신에게 절망한. 절망의 끝을 보여주는 사람이지."

"왜 그렇게까지 절망한 건데?"

"불행했거든, 정말로."


불행과 절망. 흔히 엮을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저 정도로 절망하려면 도대체 얼마만큼의 불행을 겪어야 하는 걸까?


내가 이때까지 겪어본 모든 불행을 한꺼번에 모아서 당한다면 저 정도로 절망할 것 같기도 한데.


"주위 사람들은 죽고, 일은 전부 실패하고,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져버릴 정도의 사건사고까지 줄줄이 일어날 정도로 불행했어."

"어..."

"게다가 처음부터 이렇게 불행했던 것도 아니고, 평범하게 살아오다가 갑자기 불행해진거라, 역체감이 심했겠지."


... 발언 취소. 저 정도의 불행이라면 이때까지 살아온 게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 겪을 불행까지 모두 모아야 간신히 닿을 정도였다.


거기에 그런 불행이 조금씩 오는 것도 아니고, 한꺼번에 온다니. 나라면 절망하기도 전에 죽어버릴 정도로 강도가 쎌 것이 분명했다. 그 절망남이라는 사람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실제로 그 사람도 죽고싶어하고 있어."

"잠깐, 그럼 아직 살아있다는 거네?"

"맞아, 그는 겁쟁이라 자살은 하지 못하거든. 그래서 다른 방법을 선택했어."

"그게 뭔데?"

"타살이지."


아, 확실시 그거라면 죽을 수 있을 것이다. 살인에 교통사고, 거기에 실수 같은 것들도 포함하면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죽을 수 있겠지.


"그래서 그 사람은 매번 밤만 되면 길거리를 돌아다녀. 누군가 자신을 죽여주지 않을까 하면서."

"확실히 밤에 돌아다니다가 뭔 일 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무슨 일이든 휩쓸리고 싶은건가 보네."

"그래 맞아. 그가 원하는 건 돌연사이자, 의문사이며, 급사인거지. 물론 괴담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아직 죽지 못한 것 같지만."


여기까지 들으니 참 절망적인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갖 고통과 고생으로 점철된 불행을 겪은 뒤에 하는 게, 죽지 못해 억지로 살고, 죽기 위해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거라니.


정말이지. 나였으면 진작에 미쳐버리고 남았을 정도의 삶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끝난다면 그저 불행한 남자의 이야기일 뿐이다. '절망남'이라는 괴담이 될 정도는 아니란 것이다.


"그래서 여기부터가 하이라이트인 거지."


그녀가 몸을 안 쪽으로 굽혀 내 책상에 머리를 얹었다. 이건 괴담이 절정에 달하는 부분일 때 하는 자세이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마치 라디오같다고 생각한다. 내 책상 위에 놓여진 그녀의 머리라는 라디오. 마침 머리띠도 하고있어, 잘하면 들고다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때까지 말해온 것들을 되새겨보자."

"온통 부정적이었다는 것만 생각나는데."

"바로 그거야."


딱 맞췄다는 듯이 손가락을 튕기기에, 무심코 황금종이라도 울린 것마냥 손을 들뻔 했다.


"절망, 불행, 고통, 밤... 이런 것들을 참 좋아하는 게 있잖아?"

"... 괴담이 환장하는 것들이지."


괴담, 혹은 괴담에 나오는 존재 중 열에 아홉은 인간의 부정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인간의 고통, 인간의 비명, 인간의 죽음 등등. 거기에 주위 상황이 밤이고, 인적도 드물다면 더더욱 좋을테지.


그런데 여기, 타인이 평생동안 겪을만한 불행을 한 번에 겪고 절망해버린 인간이 죽기를 바라며, 밤에 인적이 드문 곳을 걷고있다? 아마 내가 괴담이었다면 당장이라도 찾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면 또 이야기가 이상해진다. 분명 아까까지 말하던 걸 듣자면, 그 남자는 아직 살아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동시에 수많은 괴담에 위협을 받고있다니. 모순적이었다.


"당연하게도 괴담들이 그 남자를 찾아가 죽이려고 했지."

"그럼 벌써 죽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원래는 그랬겠지. 근데 여기서 놀라운 일이 일어나."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눈을 반짝였다. 정말 순수하게 이 이야기를 재밌게 생각하는 것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괴담들이 그 사람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살려두는 거야. 아니, 거의 지키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뭐? 어떻게?"

"그 남자가 너무나도 맛있게 보일거니까."

"그게 무슨.... 아."


앞서 말했다 싶이, 괴담은 인간의 부정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에게 많이 들러붙어서 피해를 입히는 일이 많다.


당연하게도 그 남자에게도 괴담들이 들러붙었겠지. 하지만 그 남자의 부정은 다른 사람의 몇 배나 되는 것일테고, 거기에 더해서 죽으려고 까지 하니. 가히 최고의 부정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 아깝다고.


"이대로 죽여버리면 더 이상 이 최고의 절망을 느끼지도 못할테고, 이 이상 가는 불행을 찾을지도 미지수지. 그래서 괴담들은 일부러 그 남자를 살려둔 채 즐기고 있는거야."

"정말 악취미네."

"괴담이라면 이 정도는 보통이지."


과연, 이거라면 "절망남"이라는 괴담이 될 만 하다. 죽고싶어 하지만, 오히려 그 죽고싶어하는 절망 때문에 죽지 못하는 남자.


그런 사람이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괴담을 몰고 다닌다면, 그건 분명히 괴담일 것이다. 거리에서 만난 사람에게 주위에 괴담들이 무슨 짓이든 할테니까.


"불쌍하기는 한데, 만나고싶지는 않네."

"동감이야."

-딩 동 댕 동

"아, 종 쳤네."

"슬슬 집에 가자."


그렇게 오늘의 괴담도 끝이 나고. 집에 돌아가라는 학교의 종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교실을 나왔다.


따스한 저녁 노을 빛이 복도를 비추고, 그 복도를 걷는 그녀의 검은 생머리가 나풀거리고 있었다. 아까 전의 라디오처럼 보이는 것과는 사뭇 달라보였다.


그리 생각하던 도중, 문득 누군가가 바라보고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자연스레 고개는 창문, 학교의 후문 쪽으로 돌아갔다.


"..."


거기에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낡고 헤진, 넝마 수준으로 닳아버린 정장을 입고. 며칠째 안 깍고, 안 감은지 모를 머리카락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그의 눈 만큼은 또렷하게 보였다. 안광이 비추지도 않는 검은색의 생기 없는 눈동자.


그걸 보는 순간, 그 안에 있던 무언가가 살짝 비춘 것만 같았다. 그것이 절망인지, 불행인지, 아니면 다른 건지는 몰라도. 이것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저 남자가 바로 절망남이라고.


"오늘은 일찍 나왔나 보네."

"응? 무슨 소리야?"

"아무것도 아냐. 오늘은 정문으로 나가자."

"어? 갑자기 왜?"

"그 쪽 카페에 신메뉴가 나왔데."

"아 진짜!? 그렇다면 먹으러 가야지!"


활기차게 걸음을 내딛는 그녀를 보며, 나는 절망남에게 살짝 눈길을 줬다. 아마도 집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되어 괴담이 들러붙기 전인 것 같았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오늘은 정문으로 가야겠다. 위험은 미리미리 방지하는 편이 좋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이런 부류에서는 정말 눈치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게나 괴담을 긁어모으면서도, 정작 창문 밖에 그 괴담이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면 답이 나오지.


"그래서? 그 신메뉴는 뭔데?"

"듣기로는 견과류 케이크라던데?"

"흐음, 그럼 음료는 뭘로 주문해야 되나..."

"그냥 아메리카노면 되지 않아?"


그렇게 나는 카페에 들릴 생각에 들뜬 그녀와 함께 학교에서 나왔다. 그나저나 신메뉴는 얼마일려나. 최근에 카페에 많이 들리다보니, 지갑의 등과 뱃가죽이 거의 붙을 정도였다.


많이 안 비싸면 좋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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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을 늘리기 위한 단편입니다.

다음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