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3가역에 카스트로단과 이름 불명의 병단이 결집했고, 노량진역 부근에서 드워스터 레나가 출현해 교전 중입니다. 세계마법협회도 용산역과 노량진역을 중심으로 고강도로 활동 중입니다."
검열의 김미영 팀장이 무덤덤하게 보고했다. 보고를 듣는 성녀 하이렌은 이미 예상했다는 듯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그래? 그래서 뭐. 어차피 너희들이 준비하고 있는 거 있잖아. 그거 쓰면 되지 걱정할 게 뭐 있냐? 크립토 윌은 이미 퍼뜨려줬으니 다 끝난 거 아니야?"
"그게, 하필이면 저쪽 세계의 절대신이 기술자를 불러온 바람에 아직 3% 가량 모자랍니다. 그리고 살인 체스 쪽도 건물이 무너진 바람에 끝이 나지 않아서..."
성녀 하이렌이 김미영 팀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를 한껏 째려보았다.
"이 새끼가 진짜."
"죄송합니다. 조용히 할 수 있었는데 하필이면 절대신이..."
"실패했으면 다시 진행하고는 있겠지? 검열 인력사무소랑 산양이랑 캐롤라인이랑은 지금 뭐하고 있나? 지금 쯤이면 끝나고도 남았을 텐데?"
"그게 달에서 검열의 아버지가..."
성녀 하이렌이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자꾸 그게, 그게 할래? 왜 자꾸 변명인데! 우리가 크립토 윌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 지 잊었어? 아무튼 또다시 실패하기만 해봐! 이번에는 완성시키는 게 먼저라 봐주겠지만 다음에는 바로 이 세상에서 없애버릴 줄 알아!"


김미영 팀장은 그 보고가 끝난 뒤 인천 남동공단을 찾아갔다. 공장 주변을 지나가니 목적지가 보였다. 검열 간판 끄트머리에 A4용지 크기로 붙여진 인력사무소 글씨가 눈에 띄었다.  한 글자씩 굴림체로 인쇄한 뒤 코팅도 하지 않고 청테이프로 붙여서 이제는 매번 비 올 때마다 글자가 번져서 원형을 알아볼 수도 없게 되어버린 글자들이었다.
김미영이 건물로 들어가니 안에서 계산기가 어쩌니 하면서 두 남자가 싸우는 소리가 귀에 박혔다. 그들이 김정철의 활약으로 겨우겨우 나가자 김미영 팀장이 그들과 교차해서 들어갔다.
안에 있던 직원들이 김미영 팀장을 보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검열 인력사무소의 주인 김정철이 나왔다. 그 주변에 다른 직원들도 보였다. 검열
"아이고 고객님, 이번엔 또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김정철이 예의 그 태도로 손님을 응접했다. 이 팀장이 돈을 많이 주는 경우는 드물다 못해 거의 없다시피 하니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절로 나오는 자세였다.
김미영 팀장은 김정철을 째려다보면서 말했다.
"하라는 건 어떻게 됐나?"
"아, 그게 말이죠~ 저희가 아주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쯤 끝나냐?"
"아이고, 그게 쬐끔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치만 걱정 마십쇼! 오늘 안에 끝낼 수 있습니다."
"오늘이 정확히 언제지?"
"지금 살인체스 팀이랑 열심히 협력 중이니 자정까지는 가능합니다!"
"자정? 지금까지 뭐 한 거지? 빨리 할 순 없는 건가?"
"그게 할 때마다 블락이 걸려서 푸느라 고생중입니다."
"그래서 자정이다?"
"아이, 아닙니다. 2시간 땡겨서 오후 10시까지는 해드리겠습니다! 장담합니다!"
"그러냐? 그럼 그 때까지다.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
"아이고, 걱정 붙들어 매십쇼!"
김미영 팀장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노려보고는 문 밖을 나갔다. 발소리가 사라진 것을 듣고 사무소 사람들의 긴장되어 경직된 몸이 탁 풀렸다.
"역시 저 분은 무섭단 말이지. 우리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


"드디어 목적지로 갑니다. 그럼 광화문역에서 출발하겠습니다!"
다행히 여의나루역 이후로는 터널이 많이 파괴되어있지 않았다. 그쪽은 주요 공격지점에서 벗어나있던 탓이었다. 그러나 광화문역 인근부터는 삼 왕국의 군사들과 슬레이어 왕국의 병사들의 교전으로 인해 신길역 이상의 어마어마한 파괴가 일어났다.
코더가 얻은 이유모를 관리자 옵션으로 지하철은 열심히 굴러가고 있었다. 장의민과 김수빈의 지하철을 이어붙인 기다란 열차는 이제 광화문역에서 최종 목적지인 종로3가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터널부근에서였다. 종로3가역으로 가는 터널에서 무언가 마법으로 된 결계가 그들을 막아섰다. 코더가 그 결계를 눈치채고 다급하게 열차를 급정거시켰다. 열차에 있던 사람들이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이게 뭐야?"
김수빈 기관사가 말했다. 코더는 그곳의 정보를 분석해보았다. 그러자 그물 모양의 붉은 빛의 방어막이 보였다. 일반인들은 지나갈 수 없도록 마력을 효율적으로 모아 만든 형태였다.
코더가 확인을 위해 지하철에서 내려 돌을 하나 던져보았다. 돌은 실 형태의 방어막에 닿아 치지직하고 타는 소리를 내었다. 돌은 넘어가긴 했지만 아주 깔끔하게 두동강났다.
이번에는 코더가 돌맹이를 그물 모양 사이로 던졌다. 돌맹이는 실에 닿지 않고 그냥 안쪽으로 넘아갔다.
코더가 실 사이의 간격을 체크해보았다. 가로세로로 6.5cm였다. 어린아이의 주먹만한 크기였다. 코더는 이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하였다. 살인체스의 나머지 3인방들도 그랬다. 그러나 기관실에서 딱 한 명만은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우리에게는 작아지는 인간이 있거든요!"
장의민 기관사가 그 말을 듣고 자동반사로 속에서 뭔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 끔찍한 사실을 모르는 살인체스의 4인방들은 희망이 싹트며 몹시 기대하는 눈치였다.
"장 기관사님, 갑시다!"
"어우, 전 그건 살짝 조금..."
"왜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저 빼고 가주세요. 저는 여기서 전방주시나 하고 있겠습니다. 하하하..."
김수빈 기관사가 의아해하면서 4인방을 데리고 안쪽으로 갔다.

"뭔가 등골이 싸해지는데."
검열이 왠지 모를 불안을 느끼고 검열에게 말했다. 검열이 그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말했다.
"괜찮아. 그게 사실 좋은 일일 줄은 누가 알아?"
"작아지는 우리의 영웅 님 어디 계십니까!"
'ㅅㅂ 이번엔 저 기관사냐?'
김수빈 기관사의 목소리가 쪽팔리는 사람의 기분은 생각도 못하고 사방에 쩌렁쩌렁하게 울려퍼졌다. 검열
"거 봐. 좋은 일이잖아?"
"아놔 ㅅㅂ..."
검열이 다른 사람들이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마음의 소리를 내뱉으며 속을 달랬다. 그리고 반쯤 포기하고 벌떡 일어섰다.
"그래요! 제가 그 작아지는 놈입니다, 어쩔래요!"
그들이 있는 첫 번째 객실에서 환호성이 작렬했다. 검열은 그가 어떻게 작아지는 지도 모르면서 기뻐하는 그들이 살짝 미웠다.
그러나 현실은 불가항력적이었다. 그는 김수빈 기관사의 지시를 따라 나왔다. 그곳을 보니 붉은 실이 그물 모양으로 얽혀있었다. 그 간격은 6.5cm 정도로 신길역의 구멍보다 약간 작았다. 그러나 5.66cm의 검열이라면 들어갈 수는 있었다.
"저기로 넘어가서 구조를 요청해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하... 예, 그러도록 하죠."
"그럼 이제 시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검열의 몸이 스트레스에 부르르 떨렸다. 뒤따라온 검열이 김수빈 기관사와 살인체스의 4인방에게 멋쩍게 말했다.
"아, 저 그게 누가 보고 있으면 안 되거든요. 그래서 안으로 들어가주실 수 있으세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김수빈 기관사 등 다른 사람들에게는 능력발동의 조건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김수빈 기관사와 그 4인방은 생각보다 순순히 따라주었다. 검열은 십년감수하며 마음이 그나마 편안해졌다.
그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가자 검열이 표정을 싹 바꾸고 은근히 입맛을 다시면서 말했다.
"그럼 시작할까?"
"인생 ㅈ돼라."
검열이 작은 소리로 투덜댔다.


"하하하하하하하.... 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런 걸 보는 게 한 번이면 충분하지 어디 두 번이나 있겠어 아니야 괜찮아 아니야 그럴수도 있지 하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그럴수도 있는 거지 응 성소수자라는 것도 있는 거고 응 존중이라는 걸 해보면 되잖아 아 왜 안 되냐..."
장의민 기관사가 운전석에서 횡설수설하며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내 진정하기 위해 창문 앞 계기판에 앉아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아니야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거야. 설마 또 보겠어? 괜찮아 괜찮아 의민아 괜찮아 정신차려."
그러고 한참을 계기판에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안정이 되었는지 서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그것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창문 앞에서는 신길역에서의 장면이 반복되고 있었다. 장의민 기관사는 신들린 듯한 짧은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어지며 눈앞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소리를 듣고 김수빈 기관사가 달려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정신 차리세요!"
"그ㄱ... 그걸... 만ㅈ..."
장의민 기관사가 몇 마디 단말마를 뱉고는 그대로 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김수빈 기관사는 바로 치료 가능한 자가 있는 지 찾으러 조종석을 나갔다. 운 좋게도 그녀는 차창 밖 망측한 광경을 보지 않았다.


"근데 방금 비명 뭐였냐?"
"몰라."
작아진 검열이 비명을 듣고 뭔 소린가 하며 물었다. 검열은 알 리가 없었기에 대충 넘기고 밖으로 보냈다.
검열이 아슬아슬하게 붉은 선을 넘었다. 닿으면 바로 숯불구이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검열의 크기는 적당해서 그럴 일은 없었다.
"그럼 이제 여기로 한 발 쏴 줘!"
"그래야지!"

검열

검열은 그곳으로 달려들어가 철로에 닿은 그것을 먹을 수 밖에 없었다. 기왕이면 위생적으로 먹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더러운 게 잔뜩 닿은 그것을 역겨워하며 죽기살기로 먹어야 했다.
아무튼 검열은 최대한 돌돌 말아 옷을 바깥으로 넘겼다. 속옷은 온전히 넘어갔지만 겉옷의 일부는 타들어가 고기가 되었다. 검열은 살짝 불편했지만 별 이상은 없었기에 그냥 넘어갔다. 입고보니 웃옷의 소매가 팔뚝 부분이 반쯤 찢어져나가있었다.

검열은 길을 걸었다. 사방곳곳이 파괴되어있었다. 발에 채이는 게 돌이요 콘크리트요 끊어지고 변형된 철근이었다. 이곳은 신길역보다 더욱 처참했다.
검열은 몇 분 동안 걸어 종로3가역의 플랫폼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두 명의 소년이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저기 온다!"
저 멀리서 2명의 남자가 스크린도어를 열고 플랫폼에서 뛰어왔다. 둘 다 학생이었다. 그들은 검열이 있는 곳까지 달려갔다.
"신길역 일행이다!"
"안녕하세요!"
검열은 영문도 모르고 그들을 받아들였다.
"어, 안녕."
"저는 이한서라고 합니다."
"저는 이민입니다."
"여의도역에서 특이한 반응이 감지되어서 찾아왔습니다."
"아, 그래?"
검열은 짐작이 가능했다. 코더가 얻은 일종의 현실조작능력인 관리자 옵션을 말하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거라면 따라와."
"예!"
이한서와 이민이 검열을 따라갔다. 검열이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그러다가 어느새 붉은 결계까지 도달했다. 결계 너머에는 지하철 열차가 보였다.

"아 맞다."
검열이 결계를 보며 곤란함에 손을 이마에 가져다댔다. 이 아이들에게 그것을 달라는 모진 부탁을 시킬 순 없었기에 검열철의 그것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미성년자라서 지금 이런 걸 봐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다. 만약 하기라도 한다면 게이에 쇼타로 오해받기 딱이었다. 게다가 저 결계를 넘어간다 해도 이민과 이한서는 작아지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넘어갈 수 없을 것이었다.
"하... 저 결계 어떻게 넘어가냐?"
"다 방법이 있죠."
이민이 검을 꺼냈다. 
검열된 대사와 지문
검에서 어마어마한 빛이 쏟아져나왔다. 그 빛은 마법으로 이루어진 결계를 삼켜버렸다.
"이건 무슨..."
검열이 갑작스러운 섬광에 놀랐다. 결계가 사라진 것을 보자 자신도 이런 능력이 있었다면 그렇고 그런 고생은 안 해도 됐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왠지 모르게 억울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