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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정말인가요, 촌장님?”



우리는 그를 만나기위해 숲속으로 들어가기 전, 즉 어제 촌장님께서 계시던 촌장실 안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해들었던 때였다. 그날에 우리는 요정 마을 촌장님의 기니긴 제안을 받아들이고 난 후, 촌장님께 요정과 관련된 이야기거리들을 여러가지 듣게 되었다. 그중에 우리는 죽은 요정들의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대화를 주고받던 도중, 촌장님께서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예상 밖에 얘기 하나를 입 밖으로 꺼내놓으셨다. 그 말에 눈이 휘둥그래진 나는 한가지 더 답문을 덧대어 촌장님께 의문을 제기했다. 약간 이해가 안 갔기 때문에도 있지만 그 부분에서 석연치 않기도 했었다.



- 그보다도 그 말씀들이 사실이라면, 그가 저지른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 아닌가요. 【LV.0/용사】


-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확실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정황상 그의 행동여부도 의심스러웠던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고 말이죠.


- ····어쨌든 그 말씀이 사실인 건 확실한 거죠, 촌장님.


- 예, 물론입니다. 더 자세하게 얘기드리고 싶지만 요정의 비밀을 함부로 떠벌리는 건 저희 쪽에서도 무리가···.


- 바보용사! 그럼 촌장님께서 거짓말을 하시겠어. 무엇보다 요정이 요정에 대해 말하는 건데 당연하겠지! 【LV.18/마법사】


- 물론 그렇기는 한데, 리내; 그래도 이상해서 말이야. 그런 건 전혀 못느꼈는데.


- “흠,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 그 놈이 다짜고짜 우릴 해치려 든 건 명백한 사실이긴 하나, 걔가 이 사건의 주범이라 단정 짓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여. 아무리 미친 놈이긴 해도.” 【LV.15/용사의 수호령】


- 그래도 모르는 일이지. 그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는 우리쪽에선 정확히 아는게 없잖아? 안그래? (웃음) 【LV.43/무녀】


- 그렇다고 해도 말이지, 제나.



“요정이 물리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죽지 않는 존재라면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가 있어.”



그렇다. 난 이 문장에서 뭔가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요정 마을 촌장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대로라면 억측이라고 생각되는 건 나만 그런게 아닐 것이다. 방금 전, 요정의 시신과 그 원인에 대해 말을 이어가면서 촌장님께서 말씀하셨던 ‘요정의 수명’은 넘어가며 들은 이야기들이었다. 요정들은 자연의 에너지가 가득한 울창한 숲이나 화려하게 피어난 드넓은 꽃밭에서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보며 태어난다. 요정이 태어난다는 의미는 우리 인간들과 다르게 저절로 모습을 발현시켜 생명의 에너지가 넘쳐나는 숲 인근에서 조그마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 시점부터 요정들의 생사가 인간의 생사와 전혀 다르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중에 내가 납득이 가지않았던 부분은 딱 이 3가지였다.


‘요정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생을 마감하는 존재다.’


‘따라서 그사이에 어떠한 피해가 생기더라도 여타 생물들처럼 다치긴 하나, 물리적인 방법으론 절대 죽지않는 불사의 존재다.’


‘하지만 요정이 죽는 특수한 경우는 무척 드물지만, 생명 에너지에 상반되는 오염된 에너지가 그들을 잠식할때 수명은 점차 사라진다. 왜냐 그들은 생명 에너지로 태어난 존재이기에.’


이 3가지를 되짚어 봐도, 전에 촌장님께서 하셨던 이야기와도 무언가 맞지 않는게 있었다. 그래서 우선 나는 나간족과 싸웠던 이야기를 캐물어보기로 하였다. 왜냐면 그땐 분명 사상자가 있었다는 사실 접해듣고, 또 치이가 경보음을 듣고 분명 사상자 경보음이라 얼핏 들은 듯 하여. 허나 촌장님께서 즉각 반문하시길 그땐 사상자가 없었으며 또한 사상자라 해도 심하게 다친 중증 특전병을 가리키는 경보음이었기에 그 의미가 다르다고 하셨다. 한마디로 죽은 요정은 여태껏 나오지 않았기에 또한 이런식으론 이번이 처음이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셨다. 그러면 나간족과는 그 생명의 에너지와 상반된 무언가를 가지고 있던게 아니었냐고 재차 물어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아니라고 하셨다. 무엇보다 나간족과 적대 관계이긴 하였으나 어디까지나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함이었지, 그들은 우리를 해칠만한 힘과 저력과 위엄을 가지고 있지 않는 종족이란 걸 알고있다고 하셨다. 솔직히 그들이 갑자기 돌변하여 마을로 쳐들어온단 소식을 접했을땐, 의아했다고 도리어 의문을 제기하셨다. 그럼, 돌아오지 못한 요정이 있다던데 그건···?



- 맞습니다. 하지만 요정이 돌아오지 않는 단 건 그들에게 완전히 저지당했다긴 보단 그들이 스스로 돌아오지 못했다는 가능성이 큽니다.


- 그게 무슨 말이죠?


- 한마디로 나간족에게 당해서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 보다는 주위 환경이 극도로 변해서 랍니다. 요정들은 특히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려면 한참이 걸립니다. 하지만 특전병이 돌입한 나간족들의 아지트는 파릇한 숲하곤 완전 반대로 축축하고 어두운 폐허 동굴.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그런 곳이라고 하지요. 요정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오래있으면 기운이 빠져드는 법이죠. 생명 에너지가 일절 없으면 누구나 그럴테죠.


- 그렇다면 아직 그들은 살아있단 얘긴가요? 그러면 치이가 자신의 언니가 죽었다는 등, 인간족에게 잡혔다는 걸 믿는 건 대체···.


- 그런 이야기도 물론 하였습니다. 허나 그건 그 아이가 생각하는 관념일 뿐이죠. 치레양과 더불어 전사들이 수십년동안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 애타는 마음이 그 어린애면 오죽 하지요. 죽었단 것도 아직 알수없으니 저흰 기다릴 뿐입니다. 저희 세월로 따지면 긴 것도 아니니까요. 하여튼 그를 어떡하면 좋을지 참···. (한숨)


- 흐음···. (그래도 요정이 돌아오지 않는 거에 대해선 꽤나 덤덤하네. 그들만의 사고방식인가)


- 제나, 차라리 네가 그 용사가 말한 그 이상한 음유시인을 직접 내쫓으면 안돼? 그러면 일이 손쉽게 풀릴 텐데. 우리중에 래버력이 가장 높으니까.


- “잠만, 듣고보니 그렇지. 그러고보면 너, 전에 몇번 곁에서 보조해준 거 빼고는 제대로 싸운 걸 본 적이 없잖아! 그 놈, 래버력이 정확히 39였어. 넌 걔보다 높으니까 어떻게든!”


- 이런, 모두가 날 그렇게 의지해주다니, 후훗. 근데 미안. 그럴순 없어. 난 신의 명령이 없으면, 함부로 공격에 나설 수 없는 무녀의 몸이거든. 신을 모시니까 당연하지. 하물며 전에도 맞선 것도 신의 허락으로 싸우는 거니까. 원래 이 힘도 신에게 받은 거니까. 물론 뭔진 다들 알지? (웃음)


- “····. (결국 너도 빛좋은 개살구였잖아!)”


(딱봐도 그 신은, 암만 봐도···· 그분···· 크윽!)


- 마지막으로 촌장님,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는 총을 쏘는 자입니다. 그렇다는 건 그는 요정들을 그렇게 만들었단 것 자체가 불가능하단 뜻이니까요. 또한 그가 지닌 무기는 그 총 두자루가 다 인듯 했구요.


- 네, 그래서 용사님의 말을 들어보면 혼동의 소지가 충분이 있죠. 허나 방금 전에도 언급했듯이 배제할순 없지요. 의심가는 인물이 지금 그뿐이니까요.


- 그럼, 만약에 그와 재회하고 또다시 공격을 해오지 않는다면···.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판단해도 괜찮을까요, 촌장님.”



그렇게 나는 나의 입장으로서 촌장님에게 할수있는 최소한의 제안을 걸어봤다. 그리고 한참에 고심 끝에 우릴 믿어주셨는지 끝내 허락을 내주셨다. 하지만 누가 왜 그리 그를 감싸냐고 내게 물어봐도 답은 한가지, 착각하지말라고 전할거다. 이건 그저 대화로 모든 걸 해결하자는 게 아니다.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 뿐이다. 그가 내게 해를 끼쳤든 말든 상관없이 난 오직 진실만을 알고싶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에게 궁금하지 않다고 말하면 아니라고 말 못하겠지만. 어쨌든 그뿐이다. 이때까지 혼미해졌던 나를 가다듬고 모든걸 결론을 내렸을땐 난 그가 주범이 아니라고 그에게 내 예상을 걸었다. 아니.




처음부터 그럴거라 굳게 믿고있었던 나니까.











제 23화. 버려진 날개는 지금 어디에











“방금···· 당신 뭐라고 했어···. 그럴지도 모른다니····?”



다시 현재로 돌아와, 우리가 걷고있는 얕은 빛이 비춰주는 기나긴 동굴 안에서 그를 마주본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불빛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처럼 느껴진다. 동굴로 들어오며 통과하는 소리없는 바람이 등에 부딪혀 감각을 타고 느껴져 소름이 팔에 온전히 옮겨가며 고조되어 감을 느끼고 동굴 안 저멀리서 원래부터 들려왔던 물방울이 떨어지며 나는 잡음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퍼지며 한방울 한방울이 긴장감마저 높이는 것 같다. 그보다도 내가 방금 무엇을 들은걸까. 무엇을 들은거지. 분명 머릿속에서 내던 미리 내고있던 대답 하곤 전혀 다른 회답이 서로 튕겨내면서 내 머리 안을 더 어지럽게 헤집는다. 이 모든 게 거짓말인가. 아직도 느껴지는 이 모든 감각이 거짓인가. 거짓이 나의 깊은 곳에 무언가를 건드렸다. 그러자 이윽고 내뱉는다. 깊이 배어있는 악감정이 조용히 찍겨나가 천천히 부르짓었다. 하지만 점차



- 당신이 지금 무슨 말을 했는지 알기나 해.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치려는 거냐고, 예그리나.


- ····.


- 이 자리에 서서 난 당신에게 모든 걸 숨김없이 밝혔다고. 당신이 무슨 반응을 보이든, 갑자기 돌변하든 말든, 난 각오하고 모든 걸 털어났는데. 그런데 왜··· 왜···!


- ····.


- 여태까지 당신이 해왔던 말들 중에 요정을 위한다는 걸 서슴없이, 계속해서 떠들어댔다는 거, 그새 잊은거야. 당신에게 요정은··· 대체 뭐냐고!! (버럭)


- ···.


- 왜 대답이 없냐고! 뭐라도 대꾸하란 말이야! 그저 또 숨기려는 안이한 짓거린 이제 그만두라고! 당신이 우릴 데리고 갑자기 자신의 거처를 밝힌다고 했을때부터, 그때부터 의심스러웠어! 하지만 그게 무슨 의도였든 간에 당신의 모든 행위들이 의심스러워서, 잠자코 말없이 들었지만 자꾸만 혼란이 와! 예그리나··· 당신은···!



“그럴거면 애초에 모두의 곁에 아직까지도 남아있었던 거냐고!!!!”



남아있었던 거냐고!


남아있었던 거냐고···


남아있었던 거···



의미없이 혼자서 소리만 이어가던 대화의 끝에는, 마음속에 응집되어 있었던 역한 응어리들이 복받쳐 올라 결국 견디지 못하고 터져나가 커다란 울림으로 바뀌어, 조용했던 동굴을 하염없이 사방팔방으로 퍼져나가 돌고 돈다. 그리고 나의 귓속으로 파고들어와 끝없이 울려댔다. ‘그는 왜 남아있는가?’ 라는 단번에 내질러버린 질문에도 돌아오는 건 본디 조용했었던 동굴속에 고요함이 다시 젖어드는 것과 쓸쓸하게 응하는 무언의 인사뿐. 그렇게 소리지르고 나니 한순간에 생겨나 일순간에 빠져나가버린 감정에 현재, 남아있는건 텅 비어버린 나 자신. 기복에서 잠시동안 추스러진다. 그러고 있는 동안, 곁에서 금방이라도 소란스러워야 했을 동료들은 잠잠했고, 특히나 그의 예상치도 못한 반응에 소스라치게 기겁하던 요정도 더이상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았다. 겁먹은 어린아이 마냥, 급속도로 차가워진 분위기와 날카로워진 호흡에, 일부러 소리를 죽이는 것 같이. 우리를 그대로 마주보는 요정을 보곤, 이때 처한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을지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어린 요정이 안타까웠다.



터벅



그럴때 쯤, 드디어 내 말이 그에게로 전해졌는지, 아님 이제야 응할 마음이 생겼는지 시인은 몸을 움직여 살며시 질문에 응하여 눌러 쓴 모자의 챙을 잡고 들어올려 서로의 눈을 주고받았다. 그에게 고조되어 순간 목의 힘이 들어가지 않는 내게로, 홀로 지나가는 외로운 바람처럼 스쳐지나가며 한마디를 내 귀로 홀연듯 흘려보낸다.












“이이상, 당신께 드릴 말씀은 없소.”











생기없는 목소리. 그에게서 어떠한 감정따위 느끼지 못했던, 여태까지 장난이라고 생각됐던, 허공에 흘러보내던 구설들 뿐이었던 게 어째선지 그 한마디에서 그의 진심이 전해진 선 왜 일까. 그리고 그런 말만 홀연히 남겨둔채 내 뒤로 돌아서버린 그였다. 유유히 지나쳐버린 그였다. 이제 난 그에게서 나온 어떠한 말도 아무것도 믿지 못한다. 그의 말과 나의 대화는 처음부터 성립되지 않았던 것처럼 이번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진전이 없었다. 우리가 마주보지 않고 등만을 보여주기만 한채로, 서로의 등뒤에 숨어서 멈춰버린 이야기의 흐름을 다시금 이어가본다. 아무 의미없이 풀리지 않은 화풀이 만이 오고갈 뿐인 그런.



- 그런 것도 제대로 대답도 못할 거면서, 어째서 여태까지 여기에 남아있는 거죠. 누구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을 거면서 말이죠. 예? 예그리나 씨.


- ···· 당신과 더이상 할 얘기가 없다고 분명히 말하였소.


- 혹시 수틀리거나 하시면 대화를 막 끊는, 그런 사람이었군요. 하하, 이거 미처 몰라뵈서 정말 죄송하네요. 그러면서 도대체 전언을 어떻게 왕에게 하달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예그리나 씨. 정말로 궁금해서 그래요, 네?


- 용사, 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


- 그게 당신과 무슨 상관이오. 함부로 남의 옛 과거사까지 꺼내들어 논하려들지 마시오.


- 오, 이번엔 아주 잘 대답하시네요. 하지만 그래봤자 믿기지 않거든요. 처음 만났을 때도 느꼈던 건데, 당신의 그 어투와 특히 시라고 지껄여 대는 거, 도저히 못들어 주겠거든요. 그러고도 음유시인 이라구요? 남들이 들으면 비웃겠네요. 하하, 웃겨서 나참.


- ····방금 비웃었소.


- 비웃는 거로 끝난다면 다행이겠지만, 당신은 그렇지 않겠죠. 그야 당연하죠. 아예 내 목숨을 끊기 위해 달려들었던 그때를 아직도 선명히 기억나 거든요. 그런 전적이 있었으니 날 또 어떻게 할지도. 그런데 그때 기억하시나요. 예그리나 씨가 제게 뭐라고 하셨는지. 분명


‘소중한 걸 앗아갈 때 슬픔을 알라는 비슷한 얘기를 잘도 하신걸요.”


- ····.


- 정말로 그것 때문에 진정으로 화나셨다면, 고개 숙여 사과를 했어야겠지만 사과할 시간도 주지 않는 건 둘째치더라도 아직도 모르겠어요. 대체 당신에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 설마 얼렁뚱땅 사과하셨던 착각이 설마 당신을 대면하면서 마물이라고 언급한 거에 대한 수치심 때문에? 아님 그렇게 노래하셨던 요정이었던 건가요. 애초에 우리 곁엔 요정이 없었단 건 전 분명히 보았고, 더군다나 재차 물어봐도 당신은 무음으로 인정하는 꼴이 됐죠. 


- (!) 요정이··· 그렇군····.


- 결국 요정도 당신에게 소중한 게 아니었어요. 이이상 짐작도 안 간다고. 무엇보다도 당신과 이런 되지도 않는 대화를 나누면서까지도!



“당신이 하는 말들이 진심인지 거짓 여부조차 분간하지 못하겠다고!!”



나의 마지막 말에서 조차도 그는, 미동조차 하지않았다. 일부러 그의 성질을 돋구게끔 말을 툭툭 퍼부었는데도 불구하고 즉각 반응이 오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까지 쏘아붙이려 드는 것도 우선적으로 그 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했던 말처럼 허구를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가속되어 만 가는 그로 중심으로 흘러가는 흐름 속에 나는 받아들일 수도 도저히 견디기에도 한계가 왔으니까. 아예 그가 바라던 대로 다시금 분노를 유발시킬 만한 도발을 걸어 그가 총을 집게 끔 하려는 의도가 먼저였다.


지금이라도 충분히 싸울 마음이 있다. 당장이라도 양쪽이 부딪혀 한 쪽이 끝장이 날 만큼, 또 당장이라도 신호기의 버튼을 누를 각오도 되어 있었다. 그만큼, 난 화가 났다. 화가났기에 보이지 않았다. 이번 싸움은 누굴 위한 게 아니다. 누구란 자체는 이미 결여 되어있었다. 그 누구도 보이지 않기에 오직 나만을 믿고 나아간다. 온전히 자신의 해방을 위해. 곧바로 그가 몸을 움직이는 소리가 어깨를 치고 귓가로 곧바로 직결한다. 그의 특유의 발굽 소리가. 그러자 내 손은 곧 단도 한배검의 손잡이에 가까이 댄다. 잡았다. 이것으로 피하지 말고 끝을 내자. 정 끝이 안 난다면 수피아 특전병을 부르면 되는 거—



- “어이, 용사! 진정하라고, 이—!”


- 믿든지 말든지 상관없소. 난 당신에게 믿어달라고 강요한 적도 간청한 적도 없소.


- 이젠 다 틀렸어. 이미 그건 물건너 갔다고. 그 총을 집어든 순간부터 이미 오래전부터 끝난 거라—


- 총이라면 당신의 이마에 가까이 댄 시점부터 이 총엔 총알따위 장전되어 있지 않았소. 아니지, 아예 장전할 필요성따위 느끼지 못했을 테지. 아까우니까.


- !! 아니, 무기가 사용하지 않는다 해도 내가 반드시 검을 휘두를 거야. 당신이 내게 먼저 선공을 했듯이 이번엔 내 쪽이 우선 선방!!! [검을 뽑아들고 몸을 돌리고 바로] 



“그리 성급해서야 제대로 벨 수나 있겠소, 미숙한 용사여.”



난 몸을 돌려 그를 행했다. 그리고 보았다. 그의 몸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않고, 등을 꿋꿋하게 유지한채, 아까 조금 움직인 소리 이후로 움직이지 않았단 사실을. 그가 스스로 결탁을 내린 윤곽선이 그의 등으로 새겨져, 그 아우라에 난 거의 가까이 다가간 그의 등 주변에서 멈칫하였다. 그러자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곤 말을 내게 던졌다.



- 그리고 제대로 듣지 않은 것 같소, 용사여. 난 내가 세운 신념의 꽃봉오리를 보기 위함을 말이오. 그렇지만 아직 그 결실을 못 맺었소. 요정, 예. 그들은 제가 죽였다고 하여도 할말이 없겠지. 그치만 용사인 당신은 저같은 놈에게 조차도 잃지않던 신념을 방금 져버리지 않았소. 그렇지 않으면 그리도 태도가 어긋나지 않을테니까. 난 총을 들지 않았지만, 지지 않았소. 그것이 당신께, 그것이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칠지라 하여도.


- 내가, 무슨···.


- 난 한번도 당신을 쓰러뜨리지 못했소. 설마 이 말에서 부터 당신이 땅에 떨군 몸을 지칭한다 생각했다면 무모한 거요. 총이 당신을 향했을 때도 내게 신념을 핑계로 하나의 생명을 저지하려들던 저야말로 진정한 패자지. 그리 생각해왔소.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소. 숨가쁜 당신을 보고있자니 말이오. 



“뭐든지 자기 뜻대로 상대를 제대로 알 지도 못하면서 성인군자 마냥, 멋대로 정의내린 당신이야 말로”


“정녕 자기 자신에게 단 한번도 잘못됐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나 있소?”


“!”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랬다. 난 발이 벌벌 떨렸다. 무슨 걷지 않으면 죽는 그런 거 마냥, 동동 구르기 급하다 못해, 그의 마지막 문장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했다.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거창한 말을 늘어놓고선 어처구니가 없었다? 일까, 아니다. 제대로 감정이입을 하지못했던지 허투로 판명 내리기 어려운 그런 감정이었다.



“자, 마저 갈 길을 가겠소. 따라와도 안 따라와도 상관없이 길이 나있는대로, 그래도 갈테니까.”


“늦더라도, 돌아올때까지 기다려주겠소.”



되풀이 해봐도, 그는 내가 이해하기엔 한참 먼 존재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걸어왔던 동굴을 다시 빠져나오는데 숨이 가빠와 긴 생각을 못하겠다. 정말로 앞도 뒤도 보지않고 달렸기에, 이때까지 동료들이 뒤쫓아 오는지도 안 오는지도 모르고, 그저 달렸다. 숨이 멎어들 때 까지 달렸다. 얼마나 달리고 있었을까. 무엇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해 달린걸까. 고작 그 말에 말을 더는 잇지 않고 뛰어나온 것일까. 그 해답은 다리가 아파올 때까지 생각나지 않는다. 얼굴에 뭐가 나오는지도 안나오는지도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손에 아직도 검을 집어넣지 않고 그대로 달려왔단 것도 그때까지만 해도 자각하지 못했다. 정말 잊고 있었다.



퍽!



그렇게 앞도 제대로 보지않고 오직 나만을 기대어 달려온 나 자신을 멈추게 한 것은 다름아닌 길가에 굴러다니는 작고 볼품없는 작은 조약돌. 하지만 난 늦게 알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건 알지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지는 내 모습이 필름처럼 빠르게 지나가며 땅에 급 헤딩을 하며 얼굴에 극심한 고통이 느껴져서야 깨닫게 된다. 전까지만 해도 하늘이 보이지 않았는데 몸을 일으키려고 땅을 더듬다 보니 머리는 어느새 하늘에 걸려있었다. 검은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는지도 하늘을 우러러 봐서야 한참있다가 알게된다. 그래, 나 넘어졌구나. 이게 처음으로 떠오른 조촐하기 짝이없는 짧은 답문이었다. 그리고 뉘엿뉘엿 해진 하늘을 뒤이어 그와의 대화상을 하늘을 도화지 삼아 떠올려 본다. 관계없을 문장마저 난데없이 튀어나온다.



“저는 예그리나, 요정들에게 사랑을 노래하는 떠돌이 음유시인이죠.”



“그런걸론 결코 지는 꽃을 빼앗을순 없을겁니다. 그것이 설령, 그것이 피할수없는 운명이라 할지라도!”



“눈부신 꽃의 줄기를 부러뜨리는 것만으로도 큰 죄가 된다는걸 기억하시길.”



“···어째서 여기에 남아있는 것이지.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건가.”



“그렇군. 그리도 궁금하셨다면 저를 따라오시죠. 천천히 걸어가면서 차분히 얘기를 나누도록 하시죠.”



“뭐든지 자기 뜻대로 상대를 제대로 알 지도 못하면서 성인군자 마냥, 멋대로 정의내린 당신이야 말로”



“정녕 자기 자신에게 단 한번도 잘못됐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이나 있소?”



글쎄, 모르겠다. 내가 포커스를 맞춘 건 오직 사건의 중심이라 주목되는 예그리나였고, 그를 향한 끝없는 의혹들은 없는 사실이 소문으로 퍼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니까. 하지만 그를 쌓고 매어 우리에게 보여주는 건 결국은 요정이 전해주던 소문들 뿐. 실상은 두껍게 입힌 겉표면을 봤을 거란 생각에. 그와 두번째로 재회하며 주고받은 그마저도 의심스럽긴 매한가지다. 그래봤자 얻는 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근데 그 한마디에 멋모르게 생각들이 끼어든다. 그를 모르기에 혼자만의 고심속에 빠지면서 의문의 깊이는 더욱 깊어져가고 가라앉아만 간다. 그의 입장은 온데간데 없이 잘못된 방향 쪽으로 비틀어져 간다. 잘못 키워버린 식물이 줄기를 틀어 꺾여가듯이 아름다운 꽃봉오리는 커녕 내가 피울 건 제 뜻만을 곧세운 추잡하게 크기만 커져만 가는 씨봉오리, 결국은 땅 아래로 떨어져 나갈 것이다. 



(현실은 내가 생각한 거보다 훨씬 복잡하고 무겁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를 거짓말쟁이로 내몰아 가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진짜 사실은 부정해봤자 그에게 있다)”


우우웅


(단순하게 생긴 이 전개에도 나름에 숨겨진 게 있을 거 란 걸 알게된다. 그저 그가 만들어낸 내 생각만으로 유추한것은 역시 잘못된 거다)


우우웅— 


“(애초에 그를 거짓말쟁이로 단정 지은 게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 잘못 시작된 관념이 쭉 이어지다보면 고정관념이 되어서 조금만 안 맞아도 혼란이 오니까, 그는 알았던 걸까)”


우우웅—  우우웅—


(단념 할 수밖에. 지금 생각으로는 더이상은 유추해내는 거 무리겠지. 그래도 알아간다고. 지금 생각해낸 키워드는 ‘거짓말’과 ‘고정관념’, 이로써 감이 잡혀 와)


우우웅—!  우우웅—!


(다시 돌아갈까. 하지만 성찰은 여기서 끝이야. 그렇다고 오지않을 테고. 맞아, 동료들을 데리러 가야지. 멋대로 뛰어왔으니까 그정돈 무릅쓰고.... 그래도.... 어?)



저건··· 그나저나 빨리도··· (!)






번쩍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작게 울리는 한마디에 나는 무섭게 감았던 눈을 겨우 뜨고 벌떡 일어났다. 그나저나, 언제부터 자고 있었던 거지? 그보다도 난 분명히··· 어···· 아, 맞아. 난 분명히 그를 만나러 숲으로 찾아갔어. 곧이어 재회한 그를 따라 동굴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차차 조심스럽게 대화를 풀어갔지. 그런데 그는 자신에 대해 스스럼 없이 털어놓은 거였을 텐데, 그런 그와 소리없이 같이 있었던 거 뿐이었을 텐데도. 그저 혼자 초조해지고, 혼자 멋대로 해석하려 들던 무모한 짓거리로 인해 복잡하게 꼬여버린 격정이, 원치않던 대답까지 가세해 버린 바람에 결국 터진버려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그리고 겁쟁이처럼 도망쳐 버렸지. 마음은 정말로 이상한 것 같다. 품은 멈출 수 없는 악의 씨앗처럼 말이다. 심지어 그는 그럴지도 모른다고는 했지, 정확한 답변은 주지 않았어. 하아, 그래도 그가 제대로된 뜻을 세워줬으면. 자꾸만 숨기려드는 무언가를 알고싶어.



“늦더라도, 돌아올때까지 기다려주겠소.”



“(혹시 그게 기회였던 걸까. 나에게 주는 그런 기회···)”


(그리고 거짓말과··· 관념···)



- 용사님, 정신이 드셨습니까. 어디 불편하신가요? 표정이 안 좋아보여서.


- 네? (흠짓) 아,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촌장님.


- 그러시군요. 정말로 다행입니다. 큰 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놀랐습니다.



어느샌가 혼자만의 생각에 잠시 잠겨있던 내게로 요정 마을 촌장님께서 말을 걸어 주신 덕분에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 같았다. 이러고 촌장님께서 서 있으신 쪽을 한참을 바라보니 지금 내가 있는 장소가 어제까지만 해도 묵고 있었던 전망좋은 방 안이란 걸 자각할 수 있었다. 방금 일어난 데도 완치를 위해 종일 누워있었던 포근한 침대 위. 창가에 비친 마을 정경을 확인하니 그 방 그 자리란 건 확실했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여기에?



- 저 촌장님. 전 분명히 숲에 있었을 터인데, 왜 제가 여기에···.


- 숲 한복판에 혼자 쓰러져 계셨던 용사님을 요정들이 데리고 왔습니다. 다행히 다친데는 없어보여서 한시름 덜었습니다. 혹시라도 그에게 당한 것은 아닐까.


- 앗, 그러시다면 정말로 고맙습니다. (근데 언제부터 숲에서 잠든건지. 그때 난 무언가를 봤던 것 같은데··· 뭐였지?)


- 그런데 어째서 혼자 쓰러져 계셨던 거죠? 무슨 일이 있었나요?


- 그게, 잠이 들깼는지 잘 생각이 안나네요; 나중에 생각나면 말씀드릴게요. 그보다도 이렇게 오랜 시간 잠들어 있었으면, 동료들이 걱정하겠네요. 제 멋대로 행동해서.


- ·······그, 용사님. 용사님의 동료 분들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그래요?! 그럼 깨어났으니 서둘러서 가봐야겠네요. 모두가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저···· 그보다 죄송합니다. 그 음유시인은···· 아직 재회를 못했— (지금 사실을 밝히기엔 곤란하니까)



“어차피 가봤자 못 만나실 겁니다. 그리고, 나가시면 위험합니다.”



- 예? 그게 무슨 소리죠. 못 만난다니, 그 무슨.


- 한동안 쓰러져 계셨으니 모르실 만도 하겠군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조차.


- 밖에서라니···. 이 마을에 무슨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 용사님을 마을 안으로 모시고 온 이후부터, 나간족들이 다시 출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수십떼가. 전부 우리 마을로 몰려드려 하고있지요.


- 나간족?! (화들짝) 그거 큰일 아닌가요! 어서 조치를 취해야—!!


- 이미 모든 전사들을 그쪽으로 투입시켜 막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보다 용사님. 한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에? 아, 예. 어떤?


- 용사님께선, 이미 그 인간족을 만나셨죠. 더이상 숨기실 필요 없습니다. 그 요정의 시신들도 그가 저지른 거란 걸 다 아니까.


- ???? 그걸 어떻게 촌장님께서!??! 


-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셨다는 질문에, 왜 생각이 안 난다고 하셨나요, 용사님.


- 아, 저 그게 아니라요; 말 못했던 사정이;;


“그러면서 그에게 화내고, 구박하고, 도망치고 하셨으면서. 정작 자신을 제대로 보지 않으신 걸까요.”


“거짓말쟁이라 단정지으시면서. 어차피 자신도”


“마찬가지인 거짓말쟁이 주제에.”



촌장님은 내게 그 말을 마치신 후, 내 앞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오신다. 어째선지 난 몸을 겨눌 수 없었고 가위눌림이라도 당한 것처럼 옴작달싹 할수없었다. 그리고 난 알았다. 못 움직이는 게 아니라 무척이나 두려워서, 또 죄책감에, 안 움직인단 것을. 왜인지 식은 땀은 삐질삐질 목을 타고 내려온다. 무엇인가 내게로 잠식해온다. 잠식당하는 것으로 난 소리를 지를 순 없었다. 지를 자격이 없다. 엉덩이를 때면 밑바닥이 보일거다. 그런데, 자세히보니 내 앞에 있는 촌장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등엔 날개가 없었고 수염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조그맣던 몸은 이미 어린아이 수준으로 자라나 있었다. 얼굴을 보니, 그는 나간이다. 나간이 말을 끊임없이 중얼거린다. 이때도 아무것도 못한다. 검도 잡히지 않는다.



“거짓말쟁이는 너야.”


“거짓말쟁이는 너야.”


“거짓말쟁이는 너야.”


“거짓말쟁이는 너야.”



앗!



....그리고 캄캄한 어둠속을 가르고 빛을 마주한 눈 앞이 어른거리기 시작한다. 쓰러져 있던 몸을 일으켜 세웠다. 한동안 잠만 잤는지 이곳저곳이 뻐근했다.



‘어라? 아까 전 건···· 꿈이 였던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비어있는 동공 속으로 비춰보이는 건 괴물따위 온데간데 없는 빈 방. 뭐지 라는 생각이 내 들 깬 머리를 벅벅 긁어대며 주변을 살펴봐도 의미 불명이었다. 주변엔 창가라고는 작게 뜷린 철장 창문, 옆으로는 좁게 치면 탕탕 소리가 날 법한 차가운 콘크리트 벽? 앞에는 넓지 않게 자리잡은 공간에 무의식으로 다리를 뻗어봤다. 하지만 몇 인치만 더 추가하면 경계선에 벗어나게 되는 아담한 사이즈에 광경. 그리고 앞을 보니 어디서 본 것 같은 문양이 위에 걸려짐과 동시에 난 특이하게 생겨 장미 넝쿨이 엉켜있는 듯 하면서 촘촘하게 뜷린 철창 같은게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마치 예그리나에게 결박 당했을 때와 비슷하게 나있는 그런····. 어? 뭐야, 여긴 대체 뭐하는 곳이지, 마치 갇혀 있는 것 같잖—



“이제 깨어나셨나요, 용사님”










“아니, 추잡한 인간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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