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번제 준비는 손쉽다
백화점만 가면 된다
(사바나 초원을 종일 달릴 필요는 없다)
기계에 해체된 소의 살덩이
비닐에 담고
구겨진 초록색 지폐 기계의 입에
툭 던져준다
(소는 종이보다 가볍다)
의식 전에는 몸을 청결히 해야 한다
제물을 만지기 전
합장한다
손가락 사이로 물이 흐른다
(손바닥을 붙인다고 모두 기도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인덕션에 제물을 올린다
가스 불은 이미 구시대적이다
(장작불 곁의 기쁨의 춤도 구시대적이다)
창으로 제물을 고정하고
제물의 붉은 살점
날 선 칼로 가른다
(누구는 창을 포크라고도 부른다)
조각난 제물을 송곳니로 지그시 누른다
입안에 핏물이 가득 스민다
끝이다
21세기의 번제는 이렇게나 손쉽다
(번제에 신은 초대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