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에 꿈

 내가 차를 몰고 있다. 나는 분명 차를 몰아본 적이 없는데다가 무면허인데, 어쨌든 능숙하게 차를 몰고 있다. GTA에서나 나올 법한 신들린 운전으로 차를 몬다. 왜인지 경찰이 따라붙는다. 달리고 또 달린다. 끝없이 달린다. 뫼비우스의 띠에 갇힌것 마냥 끝이 없을 것 같은 추격전이 나의 운전미스와 함께 다중추돌이 일어나면서 나는 기절한다.

 나는 눈을 뜬다. 몸이 어려져 있다. 어제 뵙고 온 할아버지가 내가 어려진 만큼 젊어지셨다. 차도 할아버지가 옛날에 몰고 다니던 그 차다. 이름은 기억이 안난다. 나는 할아버지께 묻는다.

 "할아버지, 저희 어디가요?"

 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 묵묵히 운전하고 계신다. 차는 내가 알지 못하는 길로 끝없이 나아간다. 할아버지는 전혀 멈추거나 망설임이 없다. 신호조차 한번 걸리지 않는다. 얼핏보니 부산으로 가고 계신 것 같다. 할아버지가 사시던 곳은 대구였으니 아마 금방 부산에 도착할거라 생각하고 기다린다. 딱히 얼마 기다린 것 같지도 않은데 차는 부산에 도착했다. 할아버지의 차는 조용히 달려간다. 그렇게 달려가던 차는 해운대에 도착했다. 하지만 차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바다로 돌진한다. 적지 않게 놀란 나는 할아버지에게 마구 소리를 지른다.

 하지만 여전히 할아버지는 말이 없으시다. 꼼짝없이 수장되나 싶던 그때 차가 고무 보트마냥 둥실둥실거리며 물 위에 뜨기 시작했다.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창밖을 바라본다. 창밖에는 물이 조금씩 출렁거리고 있다. 차체는 조금 앞으로 기울어져 운전석 쪽은 거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밖이 아예 보이지 않아 답답한 나는 다시 한번 할아버지께 묻는다.

 "할아버지, 진짜 저희 어디가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대답따윈 돌아오지 않는다. 간간히 보이는 물고기나 해초를 감상하던 그때, 차가 무언가 커다란 물체와 쿵. 하고 충충돌한 후 나는 의식을 잃었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나는 어딘가에 묶여 있다. 약간 기차 같이 생겼는데, 주변 구조물이 전부 나무이다. 아. 어딘가 익숙하다 싶더니, 수학여행 갈 때마다 무서운 놀이기구에는 흥미가 없는 쫄보인 나에게는 귀중한 친구를 앗아가던 그 유명한 롤러 코스터였다. 왜 하필 묶어놔도 좌석에 앉히고 못 도망가게 묶어놓은 것이 아니라, 열차 왼쪽 편에 가로로 눕혀 칭칭 감아 고정 시켜 놓은 걸까. 정말 내 뇌가 상상해내는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딴 방식의 상상을 하는 놈이 어디있냐고 한탄한다. 그 한탄이 공기 중에서 다 흩어지지도 못했는데, 야속한 이 영혼 탈곡기는 나를 유일한 승객으로 한 채 출발한다. 영혼이 70% 꺼내지며 한바퀴 돌며 나는 한번 쉬면 계속 돌아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열차는 멈추지 않았다. 있는 힘껏 온갖 쌍욕을 구사하며 돌던 나는 밧줄이 끊어짐과 동시에 날아가 땅에 부딪치며 단말마를 내뱉었다.

 '이런 개꿈을 왜..."

 나는 다시 눈을 떴다. 이제 슬슬 그만할 때도 된 것 같은데 렘수면을 아직 내 뇌가 더 하고 싶은지 이번에는 아우토반에서 눈을 떴다. 그런데 이번에는 차에 타고 있지도, 묶여 있지도 않다. 아우토반 정중앙에 내가 팬티만 입고 서있었다. 진짜 아무리 내 꿈 안이라지만 너무 한 것아닌가.  쌩. 방금 엄청난 속도로 차가 지나갔다. 나를 보지도 못한다는 듯이 빠르게 지나간 자동차 바람에 한바탕 기침을 하고 있자니 또 쌩하고 차가 지나간다. 그 차에 정신 팔린 사이 갑자기 정면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온다. 그 후 강렬한 빨강색을 가진 차량이 나의 몸을 걸레짝으로 만드는 데에는 그다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눈을 떴다. 드디어 집이다. 아침이고 매우 정상적이다. 9월 12일. 음. 추석 전날이군.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대구 내려가서 부모님 한테 인사를... 드려야... 잠시만. 나는 이미 부모님한테 인사를 드렸다. 할아버지도 그때 뵙고 왔고. 추석연휴를 꽤나 알차게 보내고 주말이 되어 월요일을 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맞아. 9월 12일이 아니다. 분명 9월 15일이었다. 그럼 아직 꿈속인가? 이번에도 차가 나오나? 뭐지? 도대체 얼마나 더 개꿈이 되려는 거지? 머리가 핑--하고 돈다. 갑자기 욕실에서 누군가 나온다.

 "변기 다 고쳤습니다."

 나는 그말을 듣고 얼마 안 있어 쓰러졌다. 서서히 눈이 감겨 가는데 멀리서 앰뷸런스 소리가 들린다. 그래... 이번엔 구급차구나...

"띠띠띠띠. 띠띠띠띠"

 나는 다시 눈을 떴다. 9월 16일. 틀림없이 꿈에서 깼다. 오랜만에 꾼 엄청난 개꿈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월요일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