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일에 꿈

 나는 사방이 거울인 방에 갇혔다. 가끔씩 엘레베이터에 탔을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런 공간에 들어간다면 어떤 느낌일까하고 상상해본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직법 갇혀보니 딱히 즐겁지도 않고 불쾌한 느낌이다. 하필이면 옷은 완전히 하얀 반팔 티쳐츠와 반바지, 어째서인지 머리는 깔끔하게 밀려있다. 도대체 왜 이런 곳에 갇힌걸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전혀 모르는 탓에 무기력함만 점점 쌓여간다.

 여기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나를 따라오며 움직이는 수많은 나뿐이다. 도대체가 내가 엘레베이터에 탔을 때 거울을 보며 이렇게 재미없는 상상을 했던 이유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어지간히도 심심했나보다...
 방금 느낀건데 이 공간 굉장히 부자연스럽다. 우선 틈새라곤 보이지도 않는데 숨이 안 막힌다. 숨이 안막히는 빈틈없는 밀실이라니. 탐정들이 봤으면 아주 환장을 했을 것이다. 다른 부자연스러운 점이라면 여러 번의 행동 중에 가끔 내가 하는 행동과 싱크가 맞지 않는 공간을 본 느낌이 든다. 물론 그런 일 따위는 일어 날 수 없다.  광속으로 내 행동은 똑같이 반사되고 있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건 과학적으로 말도 안된다.
 ...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이유로 싱크가 안 맞았던 걸까. 잠깐을 고민해보고 도달한 결론은 심플하지만 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내가 마주보고 있는 이것은 거울이 아니다. 유리벽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런 황당한 생각을 떠올린 바보에게 질문. 이게 그냥 유리벽이라면, 어떻게 나와 똑같은 생김새를 한 무한대의 사람들이 거울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거지?
 ...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 거울(추론상 유리벽) 너머의 나를 빤히 쳐다봤다. 똑같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는 거울 너머의 나를 바라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진짜 뭐지..."
 중얼 거리는 나를 따라 거울 너머의 나도 입을 움직인다. 이상하다. 저 입은 아무리봐도 내가 한 말과는 다른 말을 한 듯한 입이다. 설마 말을 하는 건 서로 다르게 한다는 말인가. 너머의 나도 아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듯 하다. 나는 천천히 거울 가까이로 다가가 천천히, 그리고 입을 크게 움직이며 말했다.
 "사--아---과"
 너머의 나도 천천히 입을 움직인다.
 "우--우---유"
  나와 너머의 나의 눈이 동시에 휘둥그레진다. 말을 하는 타이밍은 같지만 확실히 말하는 단어는 다르다. 이 기세면 소통이 가능 할지도 모른다. 나는 곰곰히 궁리해보았다. 소통이 될 만한 질문을 궁리해야 된다. 오랜 생각 끝에 한 질문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간다.
 "오---늘 날----짜-는?"
 너머의 나도 입모양이 같은 걸로 보아 생각이 같은 듯하다.
 "사월----이---일"
 "십--일--월 삼---일"
 역시, 날짜가 다르다. 처음 우리가 말하는 내용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말했던 '사과'는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었다. 아마도 사고의 영역도 비슷한 듯 하지만 결정적으로 우리는 아마 다른 시간대에서 여기에 갇힌 듯하다. 어쨋든 대충 대화가 성립 할 듯하니 나는 다른 질문을 생각해냈다.
 "곧---개봉--할--영화."
 이번에도 질문의 입모양이 같다.
 "어---벤져스--엔드---게임"
 "저---스--티---스--리--그"
 이런. 미리 망작이라고 얘기해줘야 할텐데. 어쨋든, 확실하게 시간축이 뒤틀린 무수히 많은 내 자신이 무수히 많은 유리벽을 경계로 존재함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나와 너머의 나는 계속해서 몇몇의 질문을 계속 받았다. 그러던 도중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제일 최근에 산 게임."
 "제일 최근에 본 애니메이션."
 처음으로 질문이 엇갈렸다. 이상하다. 이때까지는 시간추의 차이 밖에 보이지 않은 채 생각의 흐름은 동일했다. 잠들기전 먹은 음식이 일치했던 것도, 일련의 문답에서의 서로의 질문이 같았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추측가능한 가능성은 이 안의 수많은 나의 동일성이 이 문답으로 인해 점점 깨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곧장 너머의 나에게 더욱 가까이 간채로 아무 질문과 대답을 쏟아냈다. 너머의 나 또한 멈추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30분 쯤 지났을까. 퉁. 하고 내 오른쪽에서 유리를 치는 소리가 났다. 고개를 돌린 나는 주저 앉아있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나를 볼 수 있었다. 퉁. 퉁. 퉁. 몇번 정도 유리벽이 울린다. 잘 들어 보니 규칙이 있다. 모스부호인데 대략...
 "우리는 전부 다르게 된 듯 하다."
 나는 너머의 나를 바라보았다. 너머의 나의 눈은 어릴 적 외할머니 집에서 본 밤하늘 처럼 빛나고 있었다. 나는 내 눈도 그렇길 바라면 유리벽을 내려쳤다. 내가 내리친 곳을 너머의 나도 내리친다. 번갈아 가면서 유리벽이 퉁퉁하며 때려진다. 하염없이 내리치는 손에서는 슬슬 고통이 느껴진다. 하지만 내려치는 강도는 약해지긴 커녕 더욱 강해진다. 피가 나올 정도로 내려치자 유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쨍---그랑.
 마침내 유리벽이 허물어졌다. 나와 너머의 나는 한참을 서로를 응시 한후 말없이 서로를 껴안았다.
 너머의 나가 입을 뗀다.
 "띠띠띠띠. 띠띠띠띠."
 나는 눈을 떴다. 끌어안고 있던 죽부인을 내던지고 나갈 준비를 한다.
 아침은 사과우유로 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