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 10월 5일,일본

일본열도는 내전의 바람에 휩싸였다. 발포사건 이후 수많은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저항했고 일본군 내에서도 하급장교들을 중심으로 시민들의 편에 서는 병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소련은 혁명을 지원하겠다는 명분으로 훗카이도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대한제국은 대마도, 일기도(이키 섬)와 류큐에 병력을 증강시켰다. 그리고 무고한 시민들을 학살한 일본 정부를 규탄한다며 혁명군에게 천마 장갑차를 지원했고, 혁명군은 기갑부대를 운용할수 있었다. 여기에 황족들이 혁명군에게 채포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들을 협상카드로 쓰려 했는지 당장 총살하진 않았다. 승기는 반정부군에게 기울어지고 있었다

1930년 10월 7일, 오사카 군영

일본군 14연대 병사들은 초조해졌다. 시민군을 토벌하려 했으나 그들에 동조하는 병사들이 많았고, 탈영병과 사상자가 속출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연대장은 병사들을 집결시킨후 연설을 시작했다.

''난 14연대장 무타구치 렌야 대좌다! 귀관들에게 묻겠다. 그대들은 군인인가? 군인은 국가의 국민들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라는 상부의 명령을 이행할수 없는 바이다! 지금 저기 우리의 이웃, 친구, 가족이 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집과 가족을 지키고 일본을 다시 일으키자!''

충격에서 벗어난 병사들은 우뢰와 같은 함성을 내질렀다. 몇몇 부사관들이 항명했으나 곧바로 제압되었다. 그들은 시민군들 및 다른 부대를 규합하여 도쿄로 향했다.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른체 혁명군은 이제 도쿄 코앞까지 진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