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란 언제나 나에게 나태와 휴식의 계절이었다.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 불어오는 시원함과 차가움 사이의 가을바람은 내 마음속 불꽃을 시험하듯이 때로는 매섭게 때로는 선선하게 다가왔다. 어렸을 땐 그러한 바람에 불꽃이 꺼질까 노심초사하며 내 주위의 유혹들을 애써 무시하며 무리하게 달렸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지금도 불어오는 이 가을바람은 나의 불꽃을 더욱더 불타게 만들어 줄 원료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는 즐길 수도, 즐겨서도 안 되는 가을바람을 곁에 둔 채 고등학교 2학년이라는 서러움을 안고 지난 나의 가을들을 돌아보고자 한다.


모든 계절이 그렇지만 가을날 갈 수 있는 최고의 여행지는 당연히 집이다. 그중에서도 '내 방' 또는 '방콕' 이라고 부르는 패키지여행은 언제나 나에게 후회 없는 선택지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우리의 부모님은 싸구려 패키지여행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추석 연휴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꽉 막히는 고속도로를 타고 할아버지의 산소와 친정집으로 나를 데려가셨다. 어릴 적의 나는 부모님의 이 여행 선택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산소는 가는 데에만 시간이 오래 걸렸고 도착해도 머무르는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았다. 고막을 찢을 듯이 울부짖는 까마귀들 아래서 차가운 비석에 절을 올리고 소주를 잔에 담아 무덤에 뿌리고 있으면 집 속의 작은 나의 아지트가 너무 그리웠다.


어머니의 친정집은 또 어땠는가?

자식들을 모두 독립시킨 노부부의 집에 찾아가 내 마음대로 돌릴 수도 없는 TV를 뒤로 한 채 나의 손바닥 크기만 한 작은 바보상자로 겨우 심심함을 달랬다.


철없고 자신이 최고인 줄만 알았던 나의 초등학교 그리고 중학교 시절의 추석은 대충 이랬다. 이후 인공지능을 만들고자 했던 꿈을 잃어버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품을 떠나 도착한 추운 산골짜기 속 콘크리트로 쌓아올린 기숙사라는 감옥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의 가을이 얼마나 덧없었는지를 깨달았다.


고등학교 1학년의 추석날 도착한 할아버지의 산소는 지친 마음을 달래주는 가을바람이 불어오며 그리운 할아버지가 나를 기다리는 장소가 되었고 친정집은 이제 아흔이 다 되어가면서도 손주를 위해 30분간 지하철을 타고 김밥과 바나나우유를 들고 오시는 외할아버지와 전화할 때면 상대방에게 말할 틈조차 주지 않는 외할머니가 따뜻한 쌀밥을 짓고 기다리는 장소가 되었다.


어느새 작은아버지를 닮아가기 시작한 사춘기 사촌 동생과 이제 대화조차 나누지 않게 된 동갑내기 사촌 누나, 반면에 시간이 지나가도 사이좋게 웃으며 맘을 따뜻하게 해주는 외사촌 남매들도 이제야 내가 깨닫게 된 가을날 바람과 같은 시원섭섭한 현실이다.


대한민국 고등학생이라는 안개에 갇혀 감옥에서는 소설, 면회를 나가서는 만화와 영화로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려 발버둥 치는 나의 가을날은 안개를 뚫고 도착한 곳에서 붉게 물든 단풍잎과 은행나무의 고약한 냄새를 실은 바람과 함께 나에게 다시 돌아올 것이다. 바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한가한 나의 가을 이야기를 읽어준 이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야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