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기운이 나의 온몸을 감쌌다. 머리속이 새하얘지고 이성이 저 깊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으로 떨어지는 기분과 함께, 나는 지금까지 있었던 비극들은 모두 내면 깊은 곳에 묻어버리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내 옆에서 나를 데려가려고 기다리는 수많은 악마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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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일자리를 주시는 겁니까?"


나는 내 앞에 서 있는, 검은색의 옷을 입은 남자에게 거의 울다시피 하며 애원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나오는 중압감과, 항상 똑같은 표정의 포커페이스가 상대하는 사람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주었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가 주는 기쁨에 취해 그에게일자리를 달라고 간청하고 있었다.


그는 온화한, 그러나 차가운 느낌이 감도는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물론이죠. 오늘이 금요일이니 다음 주부터 이곳으로 나오시면 됩니다."


벌써 15년 만에 일자리를 얻어본다는 생각에 나는 속으로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IMF 이후로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나는 어떤 곳에서도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한때는 삶을 내던지려고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아내와 이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있어서라도 세상을 등지고 떠날 수는 없었다. 그래서라도 이번 일자리는 나에게 축복이자, 세 가족을 먹여살릴 수 있는 기적이었다. 


하지만, 내가 기쁨에 취해 거의 달리다시피 하면서 방문을 뛰쳐나갈 때까지만 해도, 이 일이 내 인생을 끝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좋아........써먹을 잔챙이가 한 명 더 들어왔군.......마침 필요했는데 말이야."


남자는 작은, 그러나 선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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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취직했어!"


나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를 껴안고, 오늘 있었던 모든 일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얼마나 착한 사람이냐면........처음 보는 사람한테 신뢰가 간다며 일자리를 맏겼다고!"


"드디어 취업에 성공했어요? 이제 우리도........"


아내는 말끝을 흐렸다. 뭔가 하다 끊긴 말이 입 끝에 걸린 듯한 불안감을 눈치챈 나는 아내의 의도를 파악했다. 아마도 그 이야기겠지. 


"이제........우리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어. 길거리에 나앉지 않아도, 구걸을 하지 않아도. 우리도 이제 당당히 살아갈 수 있어!"


나는 아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고 가벼운 키스를 나눈 다음, 아들의 자는 얼굴을 보러 방으로 들어갔다.


"벌써 자네.........아들, 이제 다른 아이들처럼, 남부럽지 않게 키워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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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성-빛과 이어지는 설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