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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그들에게 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그게 무슨 소리에요, 촌장님. 제가 그럴리가 없잖아요! 【LV.0/용사】


- 면목이 없습니다, 용사님. 당분간만 여기에 계시면 됩니다. 방금 특전병들을 그리로 보냈으니 오해가 풀리는 대로—


- 아니에요, 촌장님.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머리가 지끈거리지만 어렴풋이 기억하기엔 절대 그거는···!


- 조용히 하지 못해! 촌장님께 마저 무슨 짓을 벌이려고. 연기해대는 게 추잡하기 짝이 없군. 인간족이란 족속은.



정확히는 자력으로 움직이지 못한채로, 직접 찾아오신 요정 마을 촌장님의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지금 난 갇혀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요정들이 직접 여기에 넣어버린 이 감옥의 철창살을 사이에 껴두고 면회 온 것 마냥 들어오셔서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계속해서 늘어놓으셨다. 막 잠에서 깨어나 비몽사몽 했던 탓이었던가, 아니 정신이 온전했어도 저 이야기를 토대로 머리로 이 상황을 쉽게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분명히 정신이 끊긴 곳에 일어나야 정상인데, 어느새 요정들에 의해 요정마을로 옮겨져 있었다. 그래서 촌장님과 요정에게 그 정신이 끊긴 후 부터 여기로 오게 될 때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보던 중이었다. 그런데도 방금 들은 과정들을 믿기 힘들었다. 특히 그 과정 속에서 제일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은 내가 극초반에 쓰러진 걸 발견할때, 즉 이 감옥으로 옮기게 된 발단 부분에서 부터.



- 용사님께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당장 그만두지 못할까.


- 그러셔도 촌장님. 저놈은 그놈과 같은 인간족입니다. 뭣보다 증거가 떡하니 있고, 또 얼버무리는 데 어떻게 그냥 넘어갑니까. 용사든 뭐든 간에 수피아 특전병의 본분 이전에, 모든 요정들에게 멸시를 받아도 마땅한 놈입니다.


- 정말 아니라구요. 정말로····.


- 보셨습니까.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근거도 없는 헛된 주장만 내세워 대는 게, 촌장님. 이대로 봐줘야 되는 겁니까?


- 그만두라 하였다. 어떤 착오가 있으셨을 게다. 잘 알지도 못한채, 곧이곧대로 사태를 과대해석 해서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은 채, 어떠한 말도 들리지도 않은 듯, 자연스레 내 말은 서서히 묻혀져만 간다. 만약 저 말그대로가 사실이라면 저렇게 열을 올리는 요정과, 갑작스런 분위기에 뜻을 확실히 못 세우시는 촌장님의 입장만은 너무나도 잘 안다. 하지만 난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할 수 없기에 저 말들은 역한 감정만 쌓여만 갔고 이내 쌓여가던 감정들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려 저들의 대화 사이를 가로질러갔다.



“전 요정을 죽이지 않았어요! 다들 제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난 어느새, 나도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

요정을 살해한, 추잡한 인간족이 되어있었다.











제 24화. 시인의 밤, 홀로 남긴 잊혀진 시











요정을 죽이지 않았다고 몇번이나 몇번이고, 해명하였다.



설마 이것도 꿈일 거라며 외면한 난 깰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돌아오는 건 오직 순응할 수 없는 현실뿐. 차마 담아내기엔 힘든 현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로 촌장님께서 말씀하신 설명들과, 중간중간 거들며 나를 수시로 몰아붙이려던 수피아 특전병의 일원이라는 요정의 악담은 이러하였다. 우리가 숲에 들어가서 한참이 지난 시각에도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은 우리일행을 보고 의문을 갖던 촌장님과 특전병 전사들. 그렇게 해가 저물어가며 붉은 검주가 하늘을 물들일 때 즈음, 갑자기 신호음이 세차게 들려왔다고 한다. 그것도 내가 지니고 있었던 신호기에서. 그걸 들은 수피아 특전병들은 곧장 소리가 들린 쪽으로 부대를 이끌고 날아갔다. 그렇게 내가 있는 곳에 다다르고, 곧이어 쓰러진 나를 발견함과 동시에, 예상치도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예그리나와 만나 처절한 패배를 맛봤던 그 장소에서 발견한 것과 동일한


온몸이 시커멓게 변질된 요정의 시신이 붉은 하늘애 그을려 초라하게 남겨져 있었다····.


그것도 원인불명으로 쓰러져 있던 나의 마주편에, 놓여져 있었다고 말씀하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요정이 나를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요정에게 무슨짓을 저질렀냐면서 신경을 곤두 세웠고, 거듭해서 부인하자 그럼 근처에 단검을 떨어져 있단 건 뽑아들었다는 흔적이 아니냐고 즉각 반발했다. 거기서 난 얼버무린 게 큰 실수였다. 제대로 답문을 못내는 내게로 반겨주는 건 의심과 질탄뿐. 그런 모습을 지켜보시고, 계속해서 날 믿어주셨던 촌장님 마저 흔들리시는 조짐이 엿보였다. 


어찌됐든 발견한 특전병들은 즉시 시신을 서둘러 거둬내고, 근처에 의식을 잃은 난 자세한 사정도 몰랐던 그들이기에 위험대상으로 인식되어 수피아 특전병이 관리하는 옥에 가둬 놓은 것이었다. 뒤늦게 소식을 들으신 촌장님은 오해라 굳게 판단되어 얘기만 들어주고 곧장 꺼내려고 하셨지만,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시다며 당분간 증거가 모일때까지 머물라고 하신거다. 그순간 억울한 감정이 빗발쳤고 끝내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내게도 죄책감이 있어 금방 잦아들었다. 말을 다 마친 그들은 철장 바깥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조용해진 공간, 그속에서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아닌 혜움. 그런 혜움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 “저놈들 제정신이야?! 요정의 시신이 발견된 걸로, 여태껏 옹호하던 우리를 감방에 쳐넣는 게 말이 되냐고!” 【LV.15/용사의 수호령】


- 혜움. 내가 의식을 잃은 거, 그 요정 때문이지.


- “뭐야, 너 다 알고 있었네! 그래, 넌 그 요정에게 기습당해 쓰러진 거야. 내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 역시, 나한테 다가온 요정은 특전병이 아니었어.


- “그보다 너 웃긴다. 다 알고 있었으면서 왜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은 건데? 적어도 여기서 풀려날 순 있었을 거 아니냐고.”


- 그건 이유가 있어서 그래. 솔직히 답하기 그랬던···. (이건 꿈에서도 했던 짓)


- “억울하게 남의 억지 누명에 씌여선 요정에게 온갖 비난은 다 들어놓고, 뭔 넉살좋은 이유 타령? 아까는 소리도 지르더만.”


- 소리 친 건 순간 감정에 휩쓸려서 그만··· 여튼 있는 그대로 말할 순 없었어.


- “하, 그러셔. 너도 나름 생각이 있겠지. 그래. 어디한번 그 이유를 들어볼까.”


- 너도 봤지. 아까 저 요정이 엄청 증오하던 거.


- “그야, 당연하겠지. 같은 요정이니. 언뜻 들어보니 예전엔 친한 동료라 하더라고. 그래도 저쪽에서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건 아니지.”


- 그것도 그렇지. (예전 동료라···) 그 싸늘한 시신이 전까진 날 덮쳐 공격을 가했어. 그리고 어째선지 쓰러져 있었어. 분명히, 검을 쓰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 “맞아, 좀 이상하긴 했어. 네가 쓰러지고 나서 그 요정의 행동을 지켜봤는데, 제정신이 아닌지 계속 짐승소리를 내더라고. 그러다 갑자기 혼자 쓰러지던데. 솔직히 요정인지 아닌지 분간이 안되던데.”


- 혹시 쓰러질때 신호기는—


- “그건 본의아니게 쓰러질때 충격으로 눌러져서 난···· 아니. 이유를 말하랬더니, 느닷없이 심문을.”


- 지금까지 우리가 얘기한 걸 요정들에게 그대로 들려주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아?


- “반응? 그야···· 어떤 괴이체에게 순간 기습을 당해 아무런 대처도 못한채 기절했는데, 사실 정체가 특전병들의 동료였고, 혼자 쓰러져 죽은···.”


- 너 같으면 쉽사리 우리 말을 믿어줬을까. 그들도 우리 인간처럼 죽는 걸 심각하게 다룬다고. 아까 요정과 저번에 촌장님을 본다면.


- “····죽은 자는 말이 없다지, 하아. 그래도 네가 죽인 게 아니라고 밝힌 순 있었잖아.”


- 그래. 하지만 검을 꺼내들었던 건 맞지. 단지 대상이 다른 거였고. 하지만 검을 꺼낸 이유를 밝히면 그에 대해서도 순순히 털어놓아야 했을거야. 그 시신의 원인에 대해서도. 


- “그러면, 그냥 꺼낸 게 아니였다 하지. 목적이 달랐다고.”


- 이미 전투 목적으로 검을 떨어뜨린 걸 눈치챘고 앞서 언급한 거땜에 머뭇거린 때부터 끝난거야. 내 실수지. 주범이라 생각한걸 인정하게 되는 꼴이 됐으니. 그 시점에 사실대로 얘기해봤자 더 안 믿었을 거야.



혜움은 내 말에 어느정도 수긍하곤 일리가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불만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 싶었지만. 요정의 감정을 헤아려 보면 가둬두는 것이 형식상으로라도 충분히 했을 법한 행동이다. 당연히 죽는 걸 달갑게 받아들일 순 없다. 요정도 나도 그렇고, 모두가 그럴테니까. 내 감정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저지른 적도 없는데 억울한 누명을 씌워대면 흥분하는 게 당연한거다. 어쩌면 이게 그나마 최선의 선택이였다 생각을 바로 잡는다. 그에 대한 사실 통보를 간신히 피할수 있었고, 더이상에 트집은 잡히지 않을 테니. 아직 내가 했다고 단정 짓지 않을 거고. 물론 나에 대한 신용과 위상은 떨어졌겠지만 촌장님 말대로 후에 오해가 풀릴 가능성이 있으니 기다려보기로 한다. 기다릴 수 있을때까지. 그렇게 마음 쓰이던 하루가 지나간다. 그들의 상처와 오해가 아물 때까지. 내일에도 그날의 무게가 달리겠지. 상황이 좋지만은 않으니까,  아니 나쁘니까.



- 촌장님만 아니었다면 넌 내 손에 끝을 내줬을 거야. 특전병의 오명을 씻어내기 이전에, 이전 동료의 복수를 위해서라도. (째릿)


- “쟤 또 왔네. 째려보는 것 봐. 하긴 동료를 잃었으니 오죽하겠어. 나같아도 저랬겠지만, 막상 우리가 아닌걸 어떡하라고. 아윽,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답답해 죽겠네!”


- ···저 요정님. 잠시 이야기를 나눠도 괜찮을까요?


- 너 같은 추잡한 종족에겐 할 말 따윈 없어. 사적인 감정 이전에 내려진 임무를 받잡을뿐. 말 걸지마라. 소름끼치니까.


- “저게! 아무리 입장이 불리해도, 말을 꼭 저렇게!”


- 그럼 얘기만 들어주세요. 할 말만 할테니까.



나는 차가운 벽에 살짝 기대어 철장틈 사이로 소리를 흘러보낸다. 그러나 요정은 이에 못마땅한 듯 잠시동안 무시하던 입술은 이내 때어내어 내게 쏘아붙인다. 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게 말을 이어나갈 뿐이었다.



- 요정님이 저를 발견하셨을 당시, 즉 동료분이 죽은 걸 목격하셨을 때, 이상한 걸 못 느끼셨나요.


- 조용히 해, 인간족. 뭘안다고 동료에 대해 함부로 입에 담아!! (버럭)


- “야야, 이민. 괜히 섣불리 요정 얘길 꺼내지 않는게 좋을 거 같은데;”


- 알아. 하지만 그래도, 촌장님한테 분명 들었잖아.


- “촌장한테? 뭘?”


- 감히 요정의 목숨을 앗아가다니. 반드시 내가 널—


- 요정은 물리적인 힘만으로 해칠 순 없다. 맞지요, 요정님.


- 뭐? 그 사실을 갖고 뭐 어쩌라는 거지. 그런다고 네 입장이 바뀐다고 생각해? 장본인 주제에 어딜 뻔뻔히.


- 저는 그 검으로 절대 요정들을 해칠 수 없습니다. 절명시킬 정도에 오염된 에너지가 없는 이상, 불가능 하단 걸 압니다. 혹시 요정님은 제게 그런 힘이라도 느껴지시는 겁니까.


- 알 게 뭐야. 인간들은 더러운 생명체야. 그 존재만으로도 오염시킬 수 있지. 그러니 용서못해. 요정의 비밀을 이딴 식으로 악용한 너를—!


- 자꾸만 감추려고 하는 건가요, 요정님. 전 잘 압니다. 요정들이 왜 즉시 처단을 내리지 않고, 이 감옥에 갇어둔 것인지.


- 네 따위가 자꾸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야. 농락하려 드는거냐, 너.


- 약한 생명체와 시들어가는 생명을 보살펴주시고 생명에게 함부로 대하시지 못하는 그 다정한 마음시에, 저같은 놈도 해코지 못하고 그대로 감옥에 수용시켰단 걸요.


- !!! 그런적 없어. 너 같은 인간족을 생각한적이 단 티끌만큼도 없어!


- 그럼 그 단검을 가지고 가셨을 때, 이미 불길한 느낌이 감돌았을 테죠. 그런데도 저를 여기에 놓아둔 것도 그 티끌만한 생각이 자리잡아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정말 의심 이상에 또다른 뭔가가 있으셨던 건가요?


- 난, 우린, 모두가, 널 두려워 하고 있다. 연류되어 있다고. 네가 요정들을 그렇게 만든 장본인으로. 인간족은 다 똑같다. 추잡한 것들은 다····


- 저를 어떻게 단정지으셨는지 함부로 논할 순 없지만, 하나만 말씀드리고 싶네요. 상대를 다 아는 것 마냥, 단정 지으시지 마세요. 요정님. 또한 사사로이 감정에 얽매이지 마세요. 



“자신이 처음에 느꼈던 걸 부정하지 마세요. 요정님은 거짓말을 정말로 못 치시니까요ㅎㅎ”



- “야, 이 상황에 웃으면;;”


- 너, 진짜 내게 하고자 하는 말이 뭐지? 그따위 말장난으로 난 놀아나지 않아. 네 말대로 거짓말도 하지 않지. 흔들리지 않아. 특전병을 얕보지마라. (째릿)


- 그럼 제가 이 문을 열고 요정님을 밀쳐낸다면 어쩌실 건가요? 별거 없어 보이는데.


- 턱도 없다. 네 따위 래버력과 그저그런 힘따위로 내게 어떤 힘도 못 미치기에 불가— (!)


- 알겠습니다. 그렇담 감옥에 꼼짝말고 있을수 있겠네요. 이제야 진심을 볼수 있어서ㅎㅎ


- 아, 아니다! 넌 위험인물이다! 암만 요정을 건드릴 힘따위 없단걸 떠나— 아아니 이게 아니라; (버벅)


- 네? 뭐라고 하셨어요?


- 으으!!



그렇게 성이난 요정님은 어느새 철장에 밀착하던 몸을 재빨리 때어내시고는 돌아서서 다시 감옥을 지키신다. 왠지 그 행동에 한시름 놓인다. 혜움은 내게로 웃음기를 띄우며 돌아선 요정을 가르키곤 숨죽여 웃어댔다. 잘 된 일만은 결코 아닌데도 통해서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면서 검을 가져가 버려 허전해진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때, 손이 욱신거렸다. 곧바로 손을 펴서 손바닥을 직시했다. 



“(·····착각인가?)”



아무런 이상이 없어보이는 허공에 놓인 손에서 왠지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던가 하고 손을 위로 들어본다. 그러고는 손에 반쯤 가린 감옥 위쪽에 새겨진 문양을 보고선, 동굴에 새겨진 수피아의 표시와 겹쳐들었다. 그때, 도망친 동굴에 남겨진 동료들이 순간 떠올랐다.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돌아서 계시는 요정님께 동료들은 못보셨냐고 말하자 본적 없다며 선듯 답을 주신다. 아직 마을로 안 온 걸까. 그러면서 혹시 그와 어떤일이 생긴게 아닌가 의구심이 들어도 현잰 알 수 없는 상황. 그를 전적으로 믿을 수 없기에 궁금증은 커져 갔지만, 아직 원초적인 수수께끼, 그의 진심이 뭔지 모르기에 잠자코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 그러고 며칠이 지났을까. 이때, 한가지 소식이 들려왔다.



음유시인 예그리나, 바로 그가 마을로 직접 찾아왔다는 소식을.



- “걔가 제 발로 여길 왔다구?! 그렇다면 얘기 끝이네! 어서 여길 내보내줘야지, 촌장!”


- 붙잡았긴 헌데···· 그 인간족이 아무리 말을 걸어봐도 대답을 해주지 않더군요. 대신 이 한마디만 전해주더군요. ‘용사를 만나러 왔다’ 라고.


- ···저를요?


- “뭐야? 용사를 만나러 왔다니. 언젠 지가 기다리겠다며 하더··· 아아, 어쨌든 그자식이 용사를 만나고 싶다니 이상하네. (걔랑 만난 걸 제대로 말해선 안되지, 참;)”


- 그런 이유로, 먼저 용사님이 그자와 면회를 가지시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갇어두긴 했으나, 함부로 다가가선 안될 분위기라··.


- 알겠습니다, 촌장님. 그러도록 할게요.



저벅저벅



그렇게 나는 예그리나와 면담을 나누기 위해 그가 갇혀있는 감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가 직접 마을을 제 발로 찾아왔단 사실도 놀랐지만 나를 만나러 왔다는 방문 목적에 궁금증이 생겨났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것인가. 혹시 비밀을? 그렇게 생각에 잠시 잠긴 틈에 어느새 그와 철장을 끼고 정면을 봤다. 그런데, 그는 모자를 푹 눌러쓰고 큰 판초를 몸에 걸친채로 마주했다. 모습을 숨기려고 하는듯이. 어쨌든 말은 걸어보기로 한다.



- 예그리나, 당신. 내게 무슨 말을 하고싶어 찾아온거야.


- ····


- 혹시 내게 털어놓고 싶은 거라도 있는 거야. 당신답지 않게 직접 여길 찾아오다니, 무슨.


- ····


- “음? 뭐야, 얘 왜 대답 안해?”


- 예그리나? 왜 아무 말도 없—



철컥



그때였다. 갑자기 그에게서 총의 장전 소리가 들려왔다. 보니, 판초 사이로 튀어나온 총구가 나에게로 향해있었다. 순간적인 돌발행동에 눈앞에 보고있던 나보다 주변에 지켜보던 촌장님과 특전병들이 소스라치게 놀라선 즉시 제압하려 들었다. 그렇게 그는 총을 스스로 떨어뜨리곤 뒤돌아서며 내게 대화 거부의사를 밝힌다. 난 그때, 놀람보다 어이가 없어 요정의 제지로 그에 곁을 떠나며 한참을 쳐다봤지만 그의 등은 꿈쩍도 안했다. 그렇게 접촉은 끝이났다. 하지만 나는 다시 감옥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왜냐면 그는 요정에게 ‘용사는 나를 배신하고 도망친 동료다’ 라며 거짓 조장을 꾸며댔기 때문이다. 옆에서 듣던 혜움은 미친 거 아니냐며 왁왁 소리쳤지만, 촌장님은 만약을 대비해 그가 이상행보를 지켜보고, 대화를 재시도하기 위해 이삼일 정도만 잠시 대기하라고 하셨다. 어이없어 하는 혜움과 혼란스러워 하는 나, 그리고 왠지 나를 흘끗 쳐다보는 요정들.



- “뭐가 어떻게 되가는 거야, 정말로! 쟤 또 왜 저러는데! 다짜고짜 총을 드냐고!”


- 모르겠어. 혼란스러워, 나도···.


-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저놈, 진짜로 요정을 죽였던 게 맞을 수 있어. 이중인격인 게 확실하다고!”


- 모르겠어, 정말. 나도···.


- “똑같은 소리 하지 말고! 소식도 없는 네 동료들이 지금 어떻게 됐을지 걱정도 안돼!”


- !



맞다. 그러고보니 리내하고 제나, 그리고 치이에 대한 소식은 여태껏 들려오지 않았다. 분명히 그와 같이 있었을 텐데, 허나 그들이 지금 어디서 어떻게 됐는지 나로선 알 수 없었고, 진실은 예그리나만 알고있다. 만에하나, 그가 동료들에게 나처럼 총구를 들이대고, 무언가 벌이고 이번엔 나를 찾아온 것이라면···· 아니야, 아닐거라고! 갑자기 엄습해오는 공포. 내 안에 어딘가가 아슬아슬하게 흔들리고 있다. 부숴지려 하고있다. 그에 대한 생각의 일부분이 변질되어 가는 것 같다. 진정되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그를 만나 따지고 싶었다. 그를 만나 동료의 행방을 듣고싶어 미칠 것 같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형식상 갇혀버린 가로막는 철장을 뜯어낼 수 없었고, 만약 빠져나왔다 하더라도 난 그와 맞설 힘이 없었다. 물론 싸움은 원치않지만, 아무것도 모른채로 떨고있는 것도 싫었다. 아아, 진심으로 머리가 아파온다. 무엇을 보지 못한 거지. 무엇을 깨닫지 못한 거냐고. 그가 그딴 짓을 벌일수록 느낌표와 물음표만이 안을 어지럽힐 뿐이었다. 혼란스러워···· 그렇게 난 잠을 지새웠다. 하루가 지나면서 누구와도 대화를 나눌 수 없어. 그와의 대화에 쓸 목소리를 아끼는 것 마냥, 소리를 죽인다. 요정에게 요청을 청하고 싶어도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이후로 날 더 경계하고 있기에. 대체 그는 내게 왜 이러는 것인지, 나로선 이해할 수 없어—


없어— 없었다고—

말할— 밖에— 밖에—

없— 없— ····



털썩



•••



···서서히 어둠의 틈 사이로 갈라지는 시야에 들어오는 눈부신 빛. 뭐지하고 눈을 떴을 땐 옆에 있던 혜움도 나와같이 잠이라도 든 것인지 꾸벅꾸벅 졸고있다.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몸을 바로 세우고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아니, 의심했어야 했다. 눈 안으로 들어온 물체를. 나는 거듭 눈을 비비볐지만 앞에 대상이 흐릿해지기는 커녕, 오히려 선명해진다. 바라보았다. 저 모자와 몸에 두른 저 판초는···· 예그리나다. 지금 이 감옥 안에 나말고 그가 내 앞에 꿋꿋이 서있는 거 아닌가. 난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기겁한 나머지 소리를 내질렀다.



- 당신이 왜 이 안에 있어?!!? 예그리나!?!?


- ····


- ㅇ으응? 뭐야, 무슨 일 있—(!) 머뭐야, 저놈이 왜 여깄어!? (깜짝)



내 목소리에 졸고있던 혜움이 깨고나서 그를 보곤 깜짝 놀란 기색을 보이자,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난 온몸이 뻣뻣해져 말이 안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 야. 뭐하고 있어. 빨리 움직이지 않고. 어서 서둘러야 한다니까!


- 뭐, 뭐?! 잠만, 내 머리가 잘못된 거야?? 지금 눈 앞에 있는 게—!!


- 이거 이거 난감하군, 용사여. 어찌 진실을 눈 앞에 두고 부정하려 드는가. (쓰윽)













“물론, 우리 용사라면 놀랄만도 했겠지만? (웃음)”











어디서 들어본 목소리가 모자 밑으로 새어나오더니 이윽고, 모자와 판초를 벗어던지자 긴 생머리를 들추며 모습을 마주한 건 다름아닌, 무녀 라온 제나?! 그리고 아까 전에 들려온 또다른 목소리의 정체는 바로 마법사 미리내였다. 빠르게 돌아가려는 상황속에서 나와 혜움은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어째서 여기에 동료들이 있는거지??



- 하는 눈치네, 후훗. 우선 나가서 설명할게. 그사이에 요정들이 깨면 곤란하니까. 【LV.43/무녀】


- 요정들이라니··· 아니 그보다 너희들이 여긴 어떻게!


- 놀랄 틈 따위 없어. 어서 서둘러야 한다고, 둔탱이 용사! 하여튼 둔해 빠져선. 【LV.18/마법사】


- 아, 알겠어;



난 상황 파악도 제대로 못한채 열려있는 감옥 문을 통해 얼떨결에 밖으로 빠져나왔다. 빠져나오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요정들이 땅으로 내려앉아 곤히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이게 어찌된 영문인지도 모른채로 동료들의 따라 조용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건물 밖에도 이상하리 만큼 조용하다는 걸 느꼈다. 바깥 주위를 확인해 보니 날아다니는 요정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걸어나가면서 군데군데 보이는 잠든 요정들만 유독 눈에 띄었다. 그렇게 마을을 서둘러 나와 멀지않는 인근에서 제나와 리내는 언제 갖고나왔는지 단도 한배검을 내게 건내준 다음, 이제서야 어찌된 사태인지 빠짐없이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말을 다 듣고나서 여러모로 충격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숨기려 했던, 아니지. 그가 처음부터 내게 말하려 했던 비밀을 뒤늦게 남아 알게되니 흩어져 있던 퍼즐들이 맞혀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아직, 몇가지 풀리지 않은게 남아있어. 그가 정말 ‘그런’ 거였다면 대체 왜지. 잠만, 그때면



- 혜움, 내가 그의 총에 맞아 쓰러지고 나서 그가 어떤 표정으로 총을 집어넣는지, 기억해?


- 총을 집어넣은 거? 그야 옆에서 다봤으니 기억 나겠지····· 그러니까···· 어··· 어라? 왜 도망친 장면만 떠오르지? 분명 쭉 주시했었는데, 어?


- 그러면 내가 총에 맞고 거의 쓰러가던 판에, 난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해?


- 그건 말이지, 음···· 아! 그거라면 기억해. 네가 분명히——



좋았어.

나는 혜움이 말한대로라면 한가지 시도해보고 싶은 게 생겼다.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그래서 우선은 그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 전에 리내와 제나에게 조금 있다 따라갈테니, 먼저 가있으라고 부탁을 했다. 그러나 리내는 내게 여유부릴 시간이 없다며 강요했지만, 난 해야될 일이 있다며 그녀를 다독였다. 그러자 제나는 내 모습을 보곤 싱긋 웃더니 리내를 데리고 먼저 가있겠다며, 내게 약도를 건네주었다. 그건 바로 예그리나가 그려준 약도였다. 잘 해보라며 내 목적을 전부 꿰고 있는 것처럼 눈짓을 하며 서서히 떠나갔다. 이제 남은 건 나와 혜움. 난 동료들이 멀리 갔을 거라 생각이 들 때, 허리에 찼던 단검을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칼날이 밤이 다되어가는 조촐한 별빛에 은은히 빛났다.



“(!) 이민, 지금 뭐하는 거—!”



그리고 날카로운 칼날은 어딘가로 자취를 감췄다. 이제 빛은 더이상 검을 비추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비추지 못한 것이다. 이제, 그에게로 다가갈 준비가 다 되었다. 자, 가자. 그가 있는 곳으로. 이번에야 말로 꼭, 그를 이기겠다는 다짐을 맹세하며,




그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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